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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가 알고도 안 막은 45cm 틈…하청 노동자를 죽였다

“생산 라인 세우면 누가 책임지나” 위험 감수하며 작업하던 외주업체 직원 협착사...전형적인 ‘위험의 외주화’

홍민철·강석영 기자
발행 2021-01-05 18:28:20
수정 2021-01-06 08: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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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생산 라인을 정비하던 외주업체 노동자가 압축 기계에 상반신이 끼여 목숨을 잃었다. 압착 사고 위험이 상존하는 ‘A급 위험작업’이었지만, ‘라인을 멈추면 손해가 막심하다’는 경제 논리 앞에 위험을 감수하던 50대 하청 노동자는 결국 지난 3일 세상을 떠났다.

사고는 어디서 발생했나

사고가 발생한 곳은 철판을 압축해 차체 부품을 만드는 프레스 공정이다. 넓은 철판을 필요한 모양으로 눌러 구부리고 필요 없는 부분은 잘라낸다. 잘린 철판 찌꺼기는 3~4m 아래에 있는 컨베이어벨트로 떨어진다. 철판 찌꺼기 크기는 다양하다. 손바닥만 한 철판이 있는가 하면 폭 5cm 길이 1m 이상 되는 대형 조각도 있다. ‘타당’ ‘우당탕’ 컨베이어벨트에 쉼없이 떨어지는 쇠붙이 소리에, 고함을 쳐도 바로 옆 사람과 대화하기 힘들다는 것이 현장 노동자들의 설명이다.

컨베이어벨트를 따라 이동한 철판 찌꺼기는 베일러머신이라 불리는 압축기에 들어간다. 압축기는 모인 철판을 블록 형태로 압착해 배출한다. 대형 압축기가 위에서 아래로 내려와 철판 찌꺼기 부피를 줄인다. 전면에는 압축기가 과도하게 내려오지 않도록 막는 원기둥 두개가 있다. 압축기와 원기동 사이에는 40~50cm가량의 틈이 있는데 이 틈에 완전히 압축되지 않은 철판 찌꺼기가 쌓이곤 한다. 고인은 이 찌꺼기를 제거하려다 압축기와 원기둥 사이에 몸이 끼이면서 사고를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사고 현장을 처음 목격한 동료는 “압축기 스토퍼(원기둥) 옆에 고인이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압축기 전면에 설치된 안전 철문. 문이 열리면 전원이 차단되면서 압축기가 멈춘다.
압축기 전면에 설치된 안전 철문. 문이 열리면 전원이 차단되면서 압축기가 멈춘다.ⓒ민중의소리
압축기 안전 문 뒷편 45cm 가량의 공간. 현대차 하청 노동자 사망 사고가 발생한 곳이다
압축기 안전 문 뒷편 45cm 가량의 공간. 현대차 하청 노동자 사망 사고가 발생한 곳이다ⓒ민중의소리
압축된 철판 찌꺼기들이 큐브 형태로 배출되고 있다.
압축된 철판 찌꺼기들이 큐브 형태로 배출되고 있다.ⓒ민중의소리

안전조치, 제대로 진행됐나

 

원청인 현대자동차도 위험한 작업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현대차가 외주업체에 발급한 ‘안전작업허가서’를 보면, 사고가 발생한 작업은 최고 위험 등급인 A등급이었다. 허가서엔 추락·누전 등과 함께 협착이 주요 위험요인이라고 명시됐다. 현대차가 작성한 ‘위험성평가표’에도 ‘보수·점검시 동력차단을 하지 않을 경우 협착·충돌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평가표는 안전 대책으로 ‘동력을 차단하고 조작 스위치를 잠가야 한다(Lock out/tag out)’고 권고했으나 현장에선 지켜지지 않았다.

외주업체 관계자는 “동력을 차단한다는 말은 라인을 세운다는 뜻인데, 지금껏 단 한 번도 우리 작업 때문에 라인을 세운 적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1분 50초마다 차가 한 대씩 생산되는데, 우리가 보수한다고 라인을 20분 멈추면 그 손해를 누가 어떻게 감당하나. 라인 정지 요청은 엄두도 못 낼 일”이라고 토로했다. 손해를 우려해 인명 피해를 강요하는 전형적인 ‘위험의 외주화’다.

사고가 발생한 압축기계 앞에도 긴급 안전장치는 있었다. 수리를 위해 작업자가 진입하는 노란 철문에는 감지기가 달려 있다. 작업자가 문을 열면 전원이 자동으로 차단되면서 동작을 멈춘다. 혹시나 모를 압착 사고에 대비하기 위한 장치다. 하지만 장치는 작동하지 않았다. 전원이 차단되면 라인이 멈추고 손해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노동자들은 알고 있었다.

노동자들은 안전장치가 달린 문으로 출입하지 못했다. 대신 문 옆에 난 45cm 틈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작업했다. 작업 내내 압축기는 쉴새 없이 오르내렸다. 위험을 알고 있었지만 라인을 정지시킬 수 있는 권한은 작업자도 외주업체에도 없었다. 죽음을 무릅쓰고 작업했다. 사고가 난 김모씨는 이 틈에서 작업 하다 상반신이 기계에 끼어 변을 당했다.

외주업체에선 안전 펜스로 틈을 막아야 한다고 여러차례 건의했다. 원청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외주업체 관계자는 “이번 사건이 개인 과실로 묻히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경제적인 이유로 2인1조 작업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주장도 나왔다. 현대차 울산비정규직지회 관계자는 “2017년 외주화 이전에는 2인 1조로 했던 업무였는데, 외주화 되면서 비용 때문에 수칙이 지켜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금속노조는 “안전 의무를 지키지 않은 채 위험천만한 작업으로 노동자를 내몬 현대차의 살인행위”라고 비판했다.

금속노조가 공개한 현대자동차의 안전 작업허가서. 위험등급이 A등급이고 추락, 협착 등의 주요 위험요인이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금속노조가 공개한 현대자동차의 안전 작업허가서. 위험등급이 A등급이고 추락, 협착 등의 주요 위험요인이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제공 : 금속노조

작업은 왜 시작됐나

작업이 시작된 이유도 석연치 않다. ‘민중의소리’가 확보한 통화 녹음에 따르면 사고 당일 오후 12시40분께 외주업체 간부는 “안전쪽 중역들(현대자동차 울산공장소속 임원)이 작업 확인을 나온다고 하네, 그 전에 지저분한거 정리좀 해달라”고 지시한다. 작업자는 “어제 엄청 치워 놓았다”고 말했지만 관리자는 “다시 한 번 확인해보고, 사람들 오기 전에 정리 부탁한다”고 재차 강조한다. 지시를 받은 작업자들은 오후 1시경 현장으로 향했고, 30분 뒤 고인은 쓰러진 채 발견됐다.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관계자는 “대대장 온다니 닦았던 곳 또 닦으려다 끔직한 사고가 발생한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와 정규직 노동조합은 안전교육실시, 재해예방 전문 요원 배치, 관련 임원 징계 등 재발방지 대책에 합의했지만, 안전펜스 설치가 합의에 포함 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현대차그룹 정의선 회장은 지난 4일 신년사에서 “진심으로 깊은 애도를 표하며, 고인의 명복을 빈다”며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안전한 환경조성과 안전사고 예방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짤막한 입장을 내놨다.

홍민철·강석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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