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인사 영입으로 비대해진 우측으로 편향을 견제하고, 당 내부에 신선한 자극과 진보적 압력을 넣는 ‘메기’ 역할을 바랐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는 “민주당이라는 큰 생명체 내에서 조국혁신당의 DNA도 잘 섞이게 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일 뿐, 혁신당의 정책적 요구와 가치들을 어떻게 보호하고 계승할지에 대한 구체적 비전은 제시되지 않았다.
‘밖에서 쇄빙선 하지 말고 들어와서 키를 잡아라’라는 말은 매혹적이지만, 이미 거대 선박의 엔진과 조타실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그 키를 순순히 내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언주 의원 등이 쏟아낸 색깔론은 합당 이후 혁신당 출신들이 마주할 거대한 벽을 예고했다. 그런 점에서 합당을 찬성하는 일부 사람들이 제시하는 미국의 사례도 자세히 봐야 한다.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나 조란 맘다니(Zohran Mamdani) 같은 미국의 진보 정치인들이 민주당에 들어가서 기회를 잡으려고 하는 것은, 양당 구조를 벗어나 제3의 대안을 만들 수 있는 공간이 극도로 제한되어 있는 미국 정치의 제도적 문제점과 구조적 현실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샌더스나 맘다니 같은 정치인들은 어쩔 수 없이 민주당에 들어갔다.
그들은 민주당 입당이 최종 목표가 아니고, 민주당보다 더 진보적이고 친노동자적인 새로운 정치적 대안을 건설하며 양당 구조를 극복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즉, 만약 민주당-공화당 양당 구조를 벗어나 제3의 진보 정당을 성공적으로 건설할 통로가 제도적으로 보장되어 있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민주당-혁신당 합당은 한국 정치의 양당 구조를 그대로 두거나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 정치가 보여주듯이 양당 구조는 제도와 구조 때문에 쉽게 바뀌지 않을 뿐 아니라, 그 구조에서 기득권을 누리는 주류 양당이 그것을 바꾸려는 시도를 가로막는 경향이 있다. 물론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양당은 절대로 같지가 않다.
국힘은 극우 반동이지만 민주당은 중도적 보수-진보를 포괄한다. 하지만 제3의 대안이 등장하는 것을 꺼리는 점에서는 두 당이 비슷한 이해관계를 가지는 점이 있다. 만약 민주당이 혁신당을 흡수하면 양당 구조를 그대로 두고 거기 머물려는 경향이 더욱 강해질 것이다. 혁신당 왼쪽의 진보 정당들이 그 공백을 흡수하며 성장할 수도 있지만 역사가 보여주듯 당장은 쉽지 않은 일이다.
따라서 한국 사회가 장기적으로는 국민의힘 같은 극우 정당을 소멸시키고 민주당과 더 왼쪽의 진보 정당들이 경쟁하고 협력하는 더 나은 정치 체제로 나아가길 바라는 입장에서도 민주당-혁신당 합당은 바람직한 대안으로 보기 어렵다. 결국 이번 합당 논란이 우리에게 남긴 과제는 분명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정당들의 통합을 통한 세 불리기가 아니다.
다당제 속에서 다양한 정치적 지향이 공존하면서 연합하고 경쟁하며 정치를 발전시킬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더 장기적으로는 민주당을 뛰어넘는 능력으로 대중의 더 큰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정치 세력이 등장해서 민주당을 발전적으로 대체할 미래의 가능성을 남겨놓기 위해서도 승자독식 속에서 유지되는 양당 구조가 아니라 그러한 구조가 더 낫다. 대립과 갈등을 피하면서 그런 방향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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