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엄마가 너무 못나서"...편지 속 2199명의 참혹한 사연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6/03/11 08:13
  • 수정일
    2026/03/11 08:13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보이지 않는 아이들] 베이비박스 통계로 본 유기아동 발생 원인

26.03.11 06:51최종 업데이트 26.03.11 06:51

부모에 의해 양육이 포기된 아이들, 세상에 나오자마자 ‘보호대상아동’이라는 행정 용어로 분류되는 아이들에게 국가는 어떤 존재였을까요? 대한민국은 유엔 아동권리협약 등을 지지한다고 말하지만, 현실에서는 행정 편의주의와 국가적 직무 유기로 보호대상아동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습니다. 통계 속에 가려진 아이들의 목소리를 기록하고 아이들이 당당한 시민으로 성장할 수 있는 행정 시스템의 대안을 모색하고자 합니다.[기자말]

편지 이미지김지영

2014년 어느 날 새벽, 한 아이가 베이비박스 앞에 놓였다. 함께 넣어둔 쪽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아기는 2014년 ○월 ○일 오전 7시 25분 태어났습니다. 여자아이구요. … 임신 5개월부터 아이 아빠는 연락도 두절되고 그 부모님을 찾아봤지만 나몰라라 하시고요. 법적으로 알아봐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고만 하고요… 제 애기 잘좀 부탁드립니다."

번호 556. 베이비박스가 보관해 온 수백 장의 편지 중 하나다. 가장 흔히 보이는 사연이다. 남자(가끔은 여자)는 도망가고 부모님 도움은 바랄 수 없고, 혼자 모든 걸 감당해야 하는 처지.

2010년 12월, 서울 관악구 난곡동 주사랑공동체교회 담벼락에 작은 문이 하나 달렸다. 처음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듬해부터 아기들이 놓이기 시작했고, 2013년 한 해에만 252명이 맡겨졌다. 2014년도엔 253명으로 정점을 찍었다.

재단법인 주사랑공동체가 집계한 베이비박스 현황통계(2026년 1월 기준)에 따르면, 2010년 이후 누적 보호 아기 수는 총 2199명이다. 이 숫자 안에 편지나 쪽지가 있다. 그리고 이름 없이 시작된 삶이 있다.

"사랑하는 ○○아, 엄마가 너무너무 미안해.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키울 수 없어 잠시 떨어져 지내는 것뿐이니까 건강하게 무럭무럭 씩씩하게 크고 있어. 엄마가 꼭꼭 찾으러 갈게… (2018년)"

또 다른 편지(2018년)는 아버지의 손 글씨다.

"미안하다 ○○야. 아무리 설명하려고 노력해보려 해도 미안하다는 말 이상으로 해줄 수 있는 말이 없는 것 같아… 내 아들 ○○야 정말 사랑한다."

글은 짧지만 사연은 참혹하고 절박함은 깊다.

베이비박스 앞에 도착한 사람들이 모두 편지를 남기는 것은 아니다. 아이만 놓고 뛰듯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편지를 남긴 사람들은, 그 짧은 쪽지에 자신이 가진 전부를 쏟아냈다. 아이의 생년월일, 체중, 이름. 젖병과 인형. 그리고 누군가는 반드시 나타날 것이라는 약속. 이 편지들이 지금도 베이비박스 사무실 어딘가에 보관되어 있다는 사실은 아이들이 단순한 통계 숫자가 아니었음을 말해준다.

베이비박스에 가는 아기 수는 왜 줄었을까

베이비박스김지영

베이비박스 입소 아기 수는 2015년 이후 꾸준히 감소해 왔다. 2015년 242명에서 2019년 170명, 2021년 113명, 2023년 79명, 2025년 26명으로 줄었다. 2026년 1월 현재 1명이다. 그런데 보건복지부가 2025년 발표한 2024년 유기 아동 통계는 30명. 역대 최저다. 언론은 이를 보호출산제의 성과로 보도했다. 하지만 이 숫자를 그대로 받아들이기 전에 먼저 물어야 한다. 왜 줄었는가.

감소의 배경에는 적어도 네 가지 요인이 겹쳐 있다. 첫째는 출생아 수의 구조적 감소다. 2015년 43만 8000명이었던 전국 출생아는 2024년 23만 8300명으로 10년 사이 45%가 줄었다. 위기 임신과 유기의 모집단 수가 절반 가까이 줄어든 것이다.

둘째는 분류 기준의 변경이다. 2024년 7월 보호출산제 시행 이후 병원에서 가명으로 출산해 국가에 맡겨진 아이들은 '유기아동'이 아닌 별도 항목으로 분류된다. 시행 이후 2025년 1월까지 보호출산 건수는 107건이다.

셋째는 복지 지원의 실질적 확대다. 2024년부터 0세 부모급여가 월 100만 원으로 인상됐고 첫만남이용권이 둘째 이상 300만 원으로 늘었다.

넷째는 2020년 10월 신설된 아동보호전담요원과 베이비박스의 상담 기능 강화다. 두 곳 공히 2020년 이후 상담률이 97~100%를 유지하면서 원가정 복귀 사례가 늘었다.

이 네 요인이 각각 얼마나 기여했는지는 현재의 통계 체계로는 분리해 낼 방법이 없다. 정부 통계는 결과만 보여줄 뿐 원인을 말하지 않는다. 30명은 하나의 숫자지만, 그 안에는 적어도 네 개의 서로 다른 이야기가 섞여 있다.

주사랑공동체 통계에서 '병원 외 출산' 비율은 2018년 12.4%에서 2025년 23.1%로 오히려 상승했다. 자가분만, 화장실 출산, 모텔 출산. 제도가 정비되고 지원이 늘어난 시기에 이 수치가 오히려 높아졌다. 공식 통계 밖에 있는 사람들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잘 보이지 않게 된 것일 수 있다. 두 통계를 겹쳐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교차 분석은 다음 회에서 별도로 다룬다).

왜 그들은 베이비박스를 택했을까

베이비박스에 오는 사람들김지영

누가, 왜 베이비박스에 오는가. 발생 유형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가정상황별로 보면 미혼 어머니 비율이 가장 높지만(2024년 78.8%), 기혼 가정도 매년 7~27%가량 포함된다. 혼외 관계(외도)로 인한 경우도 3~17% 수준이다. 특히 국외자(局外者) 비율도 적지만 일정 정도 꾸준하게 차지한다. 일각에서 규정하는 미혼모 문제라는 프레임은 전체를 수렴하지 못한다.

연령대도 다층적이다. 20대가 46~67%로 가장 많지만 10대 청소년도 4~19%를 오간다. 2025년에는 10대 비율이 19.2%로 반등했다. 30대도 15~32%를 차지한다. 지역 역시 서울·경기 중심이지만 경상권(17~20%), 충청권(6~15%), 전라권까지 전국에서 온다. 서울 관악구 난곡동의 작은 문 앞까지 찾아온다는 사실은 지역 복지체계의 공백도 들여다봐야 한다는 걸 말해준다.

이 분포는 한 가지 질문을 남긴다. 이들이 왜 다른 합당한 경로—병원, 지자체 상담, 복지관—가 아닌 베이비박스를 택했는가. 상담 기록이 남지 않고 아이를 맡긴 사실이 알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공식 경로에 들어서는 순간 신원이 노출되는 걸 극도로 꺼리는 제각각의 사연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절박하게 이 문을 두드린다. 베이비박스는 제도에 닿을 수 없는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닿는 곳이었다.

제도의 이면을 보여주는 편지

베이비박스 이후 아이들이 간 경로는 시설이 압도적이다.김지영

아이들의 시설행, 그 이유는 '제도의 구멍'이었다. 베이비박스를 거친 아이들의 53%(최근 3년 평균)가 시설로 갔다. 원가정 복귀 28%, 입양 14%와 대비되는 숫자다. 가정보호 원칙을 강조하는 유엔아동권리협약 따위 아예 모르쇠다.

베이비박스 아동은 경찰 신고 → 구청 인계 → 병원 검진 → 서울시아동복지센터(일시보호소)로 이어지는 절차를 거치지만, 일시보호소의 정원 초과나 행정 지연으로 인해 중간 단계를 건너뛰고 곧바로 보육원으로 이동하는 사례가 십 년이 넘도록 반복되어 왔다. 중간 단계가 생략된 채 시설로 직행한 아이에게 충분한 관찰과 사례 검토는 처음부터 없었다. 종이가 닳도록 펼쳐봐야 할 아동보호매뉴얼은 업무용 책장 안에 얌전하게 꽂혀 있을 뿐이었다.

2024년 7월 19일, 위기임신보호출산제가 시행됐다. 임신 사실을 숨기고 싶거나 양육이 불가능한 여성이 익명으로 출산하고 아이를 국가에 맡길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시행 이후 2026년 1월 말까지 보호된 아기는 48명. 제도가 어느 정도 기능하고 있다는 신호였다.

그러나 편지들은 이런 제도의 이면을 말하고 있다. 사람 사는 세상의 그늘진 곳에 늘 있어왔던 딱한 사연의 주인공들. 이들 곁에 아무도 없었다는 사실을. 당장 눈앞에 닥친 위기의 순간에 기댈 가족이 없었고, 내 일처럼 의견을 나눌 사람이 없었다. 고립은 선택이 아니라 조건이었다.

2018년의 한 편지는 "혼자라도 키우겠다 키웠지만, 당장 아이 병원비조차 해결할 수 없어서"라고 썼다.

"엄마는 ○○ 싫어서도 아니고 미워서 널 보내는 것도 아니야. 엄마가 너무 못나서 ○○을 많이 사랑해줄지도, 웃고 행복하게 해줄 자신이 없어서… (2018년)"

'못난 엄마'라는 자책은 어디서 왔는가. 제도는 임신과 출산의 위기를 다룰 수 있다. 그러나 한 사람이 평생 축적해 온 고립과 자기불신, 돌봄 받지 못한 경험이 낳은 두려움은 제도의 설계도 안에 없다. 시스템이 닿기 이전에 이미 그 사람의 삶 전체가 시스템 밖에 있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아이들

유기아동 통계는 세 개의 기관이 각각 다르다. 세 개의 통계 안에 가려진 아이들이 있다.김지영

보호출산제 시행 이후 통계만 보면 나아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문제를 수치로 추적하면 세 개의 통계가 각자 다른 현실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보건복지부 보호대상아동 현황보고에서 '유기'를 원인으로 한 보호조치 아동은 2020년 169명 → 2022년 73명 → 2023년 88명 → 2024년 30명으로 급감했다. 경찰 접수 영아유기 사건은 2016년 109건에서 2018년 183건으로 늘었다가 2020년 107건으로 감소했다(서울신문, 2022). 그러나 같은 기간 실제 기소·확정 사건은 연평균 10건 수준에 불과했다. 부모 중 한쪽이 자수하지 않는 한 수사 자체가 불가능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결국 경찰 접수 건수(연 100~180건대), 검찰 기소·확정 건수(연 한 자릿수~십수 건), 복지부 보호조치 건수(연 30~169명)는 각각 전혀 다른 현실의 단면이다. 그 숫자들 사이의 넓은 공백 속에, 제도 어디에도 잡히지 않은 아이들이 있다.

주사랑공동체의 2199명은 그나마 어딘가에 닿은 아이들이다. 편지라도 남겨진 아이들이다. 닿지 못한 아이들의 수는, 통계 어디에도 잡히지 않는다.

2018년 작성된 한 편지가 보이지 않는 그 아이들이 실제는 어떤 존재들인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같이 살기 위해 잠시떨어져지내는 거야. ○○아. 정말 엄마 우리 ○○이 너무너무 사랑하고 엄마한테 와줘서 고마워… 빨리 만나는 그날까지…우리 너무 슬퍼하지 말고 용기내 씩씩하게 버티자."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이 편지 곳곳에서 숨 가쁘게 묻어나는 이 편지에 부정할 수 없는 한 가지가 있다. 아이는 버려진 것이 아니라, 살리기 위해 맡겨진 것이라는 사실 말이다. 지금도 어딘가에 있을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이 아이들에게 이제라도 우리 사회가 응당 손을 내밀어야 한다. 아이는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덧붙이는 글 **[참고 통계 출처]**

- 재단법인 주사랑공동체, 「기자&방송 인터뷰 관련 정보제공 — 베이비박스 현통계(2026년 1월 기준)」

- 보건복지부, 「보호대상아동 현황보고」 연도별 (2020~2024)

- 보건복지부, 「2024년 출생통보제 및 위기임신보호출산제 시행 실적」 (2025)

- 통계청, 「출생통계」 연도별 출생아 수 (2015~2024)

- 서울신문 (2022), 경찰청 영아유기 접수·기소 통계 보도

- 아동복지법, 입양특례법, 위기임신보호출산법 관련 조항

*이 기사에 수록된 편지는 주사랑공동체의 협조로 제공되었으며, 아동 및 부모의 신원을 특정할 수 있는 모든 개인정보는 익명 처리하였습니다.*

#유기아동 #보이지않는아이들 #베이비박스 #주사랑공동체 #보건복지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