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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무’ 아웅산 테러 이야기 유감

이런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진 이가 없는 것도 문제
 
강진욱  | 등록:2021-07-12 14:41:36 | 최종:2021-07-12 14:50:45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꼬꼬무’ 아웅산 테러 이야기 유감

<1983 버마> 저자 강진욱

1.
7월 8일 방송된 SBS ‘꼬꼬무’(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시즌2’(18회)가 ‘1983 버마 사건’을 다뤘다. 3월 9일 KBS <역사저널 그날>이 ‘전두환 암살 미수,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를 다룬 지 꼭 넉 달 만이다.(www.poweroftruth.net/news/mainView.php?uid=5108).

‘어!’‘아!’ 같은 출연진의 헤픈 추임새와 이들의 표정을 클로즈업하는 연출이 돋보였지만, 내용은 허접했고 구성도 엉성했다. 매우 치밀해야 할 출연진의 멘트(해설.설명) 모두 두루뭉술했다. ‘아웅산 사건 = 북한의 테러’라는 메시지 전달 효과만을 노린 딴따라 쇼의 전형.

전두환과 장세동이 탄 차는 행사장에서 몇 분 거리에 떨어져 있고, 버마주재 한국대사(이계철)이 대통령 비서실장(함병춘)까지 대동한 채, 태극기와 버마기를 양 사이드에 달고 앞뒤로 싸이카가 배치된 벤츠를 타고 행사장에 왔고, - 꼬꼬무는 이처럼 상세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 - 테러범들이 이 대사를 전두환으로 착각해 기폭 장치를 눌렸다면, 마땅히 왜 이런 황당무계한 일이 벌어졌는지를 파고들어야 한다. 시키는대로 토막 대본을 읽는 출연진도 궁금한 표정을 짓지 않던가.

처음에는 서울에서 왔고 영등포에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고 진술했던 범인 강민철이 갑자기 ‘나 북한 공작원이요’ 했다면 그 진술 번복의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자폭용 수류탄을 줬다는 사실에 배신감을 느껴서 그랬다고? 그러면 손목이 날아간 채 몇 날 며칠 병원에 누워 있을 때는 그 수류탄이 자폭용인 줄 몰랐어? 그게 곰곰이 생각해 보고서야 깨달을 일이야? 꼬꼬무는 이런 엉성한 논리로 역사를 농단했다.

정작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에서는 딴청을 피웠다. 버마 수사당국이 남북한을 특정하지 못해 “코리언이 범인이다”라고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했고(1983.10.17), 그 다음날 안기부 대공수사국 국장(성용욱. 훗날 감사원 사무총장, 국세청장)과 과장(한철흠)이 급히 버마로 날아가 강민철에게 “너 어떻게든 살아야 할 것 아냐!” 하며 설득한 뒤 강민철이 말을 바꿨다는 사실은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한철흠이 누군지는 아나? 이 자는 4년 뒤 전두환네와 미국이 또 한 번 자작테러를 조작한 뒤 바레인 병원에 - 실신한 척 하고 - 누워있는 김현희를 데리려 간 인물이다. 전 국정원 해외담당 차장을 지낸 라종일 씨가 2013년 <아웅산 테러리스트 강민철>에서 “강민철은 김현희와 같은 부서에 있었다”고 쓴 것과 연결되는 지점. 이렇게 전후좌우로 통시적.공시적으로 살펴야 겨우 그 진상이 보일까 말까 한 ‘1983 버마 사건’을,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 수준으로 하면 되겠어?

‘아웅산 테러 = 북한의 테러’를 강조하려 기를 쓰는 모습은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출연자들이 ‘DIPLOMATIC POUCH’라고 새겨진 검은 가방에서 클레이모아(폭탄)와 묵직한 쇠덩어리 모양의 격발장치를 꺼내는 느릿한 영상. 외교행랑 이야기는 세세연연 ‘1983 버마 사건’을 북한의 소행으로 조작하는 과정에서 계속 추가되는 가공의 이야기들 중 하나일 뿐이다.

‘1983 버마 사건’과 관련해 가장 먼저 출간된 장세동의 책 <일해재단>(1995)에도 외교행랑 이야기가 없다. (장 씨의 이 책은 이후 나오는 ‘1983 버마 사건 관련’ 책자의 기준 역할을 하고 있다.) “[범인들이 모처에서] 2주간 머물며 ... 범행에 필요한 폭약과 폭파 장치 등 모든 장비를 이곳에서 준비하였다.”(64쪽) 그의 책에 실린 버마 법원 판결문에도 “[범인들이 랭군 모처에] 도착한 지 2일 후 그들은 그 방에서 폭발물을 받았으며...”로 돼 있다(316쪽). (*외교행랑으로 받았다고 하면 버마 정부가 책임을 질 부분이 생기니 그랬을 것이라고 상상들 하지 마시라. 외교행랑으로 받건 현지에서 만들었건 어떻게 설명해도 버마는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버마 법원 판결문에 외교 행랑 이야기가 없는 것은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다 2013년 나온 <아웅산 테러리스트 강민철>에 “[범인들이] 거처를 잡은 지 이틀 후 ... 폭발물이 외교 파우치 편으로 도착했다”는 이야기가 들어갔다. 그런데 출처가 없었다. 전에 거론되지 않았던 사실을 밝히려면 출처가 있어야 한다. (*이 책에는 이처럼 출처불명의 이야기가 많이 들어 있고, 지명도와 신뢰도가 높다는 ‘창비’에서 낸 책 답지 않게 구성이 매우 엉성하다.)

이북(북한)이 테러를 저질렀다고 떠벌리다 멋대로 상상력을 발휘해 그럴싸한 이야기를 꾸몄지만, 외교행랑으로 클레이모어 폭탄을 나른다는 발상은 터무니없다. ‘북한 공작원들’(?)이 1주일 걸려 북한 화물선을 타고 와 버마에 온 뒤 다시 2주일 동안 은신처에 숨어 있었다는 각본만큼이나 웃기는 얘기다.

버마는 5개국과 접경하고 북동부 산악은 여러 무장 소수민족들이 차지하고 있으며 지금도 태국에서 밀입국이 가능한 나라다. 전대미문의 테러를 저지를 특수공작원이 화물선에 실려 1주일, 다시 안가에 틀어박혀 2주일을 보냈다는 이야기는 테러의 배후와 범인들의 잠입 경로를 북한 화물선(동건애국호)의 버마 입항 일정과 꿰맞추려다 나온 웃기는 각본이다.

2.
역사적 사건에 대한 이야기는 연예든 다큐든 강연이든 책이든 반(대)론을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 역사 인식은 그 시대적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고, 그래서 ‘역사적 사실’은 항상 미완성이기 때문이다. 

꼬꼬무가 감히 ‘1983 버마 사건’을 제멋대로 다루는 만용은 전두환 정권 및 그 시절의 역사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다. 무식하니 용감한 것이다. 전두환 정권 7년 동안 아웅산 테러를 포함해 우리 국민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자작테러가 무려 4건이나 자행됐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이 전무한 때문이다.

다른 셋은 지금도 유족들이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있는 KAL 858 사건(1987.11.29, 일명 ‘김현희 사건’), 대구 미 문화원 정문 앞 시한폭탄 테러(1983.9.22), 김포공항 국제선 청사 현관 문 밖 쓰레기통 속 크레모아 테러(1986.9.14) 등이다. 전두환네는 이들 네 건의 자작테러를 벌인 뒤 ‘북괴의 소행’이라고 몰았지만 모두 자작극임이 드러나고 있다.
(참조 : 대구 미 문화원 사건에 대해서는
https://www.poweroftruth.net/news/mainView.php?uid=4901 /
김포공항 사건에 대해서는 http://www.poweroftruth.net/news/mainView.php?uid=4581)

아웅산 테러의 진상을 재대로 인식하려면 위 네 건의 테러 각각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필요하다. 그런 다음, 왜 전두환 정권은 이런 끔찍한 자작테러를 네 건이나 자행했을까에 대한 사유가 따라야 한다. 이 사유는 우리 한반도 분단체제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전제로 한다.

이땅의 분단체제는 남녘의 대북 적대감을 기본 인자로 한다는 사실, 이 적대의 인자가 불식될 즈음이면 또 수상한 사건이 일어나 대북 적대감을 다시 부풀린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적지 않은 공부가 필요하다. 이런 깊은 사유는커녕 개별 사건에 대해서조차 천박한 인식에 머문 채 역사를 논하는 것은 역사를 모독하는 것이다.

꼬꼬무는 올 2월 <그들은 왜 순국해야 했는가>(최병효, 박영사)가 나온 데 고무됐던 것일까. 이 책을 보여주며 저자의 멘트를 몇 개 땄다. 그런데 그 멘트가 영 어색하다. “비동맹 외교는 허수아비와의 싸움이었다.” “비동맹 외교를 한다고 하면 정부가 예산을 잘 배정해 줬다.” 일정부분 맞는 지적이지만 ‘1983 버마 사건’의 진상을 찾는 입장에서 보면 샛길로 빠지는 얘기다.

최 전 대사는 사건 당시 외무부 서남아과 서기관이었고 36년의 외교관 이력을 갖고 있다. 아마도 ‘1983 버마 사건’에 대해서는 가장 자세히(?) 이야기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지는 이다. 그런 이가 은퇴 직후 책을 내고 ‘아웅산 테러 = 북한의 소행’이라고 주장하니 모두들 그런가 보다 한다.

그런데 이 책은 저자 개인의 기록에 가깝다. 자신이 체험한 것을 토대로 자신의 생각을 정리했을 뿐이다. 개인의 경험은 역사적 사유를 거쳐야 비로소 사회적 의의를 지닌다. 사유의 깊이에 따라 사회적 의미가 달리 부여된다. 그는 매우 유능한 외교관이었는지는 모르지만, 한국 현대사 및 국제관계에 대한 그의 이해는 친미반공 이데올로기에 심하게 경도돼 있다. 이런 협소한 역사 인식에 갇힌 상태로 남북 분단의 모순이 가장 극단적 형태로 폭발한 사건의 진상을 제대로 볼 수가 없다. (*최 전 대사의 경험과 인식의 한계를 지적한 졸고.「그들의 죽음이… 순국이었을까? - 한-미의 버마 공작의 시원」<진실의 길> 2021.7.9
http://www.poweroftruth.net/news/mainView.php?uid=5155&table=byple_news
그가 말하는 비동맹 외교론이 얼마나 협소하고 몰역사적인지를 지적하고 싶었다.)

TV가 우리 역사의 음지를 비추는 한 줄기 빛일 때가 있었다. 2000년대 초반이 그랬다.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 mbc의 <이제는 말할 수 있다>, kbs <역사스페셜>. <이제는 ...>은 문세광 사건(1974.8.15, 육영수 살해 사건)의 진상을 파헤쳤다. 북한의 사주를 받은 조총련계 어쩌고 하는 이야기가 말짱 거짓말이며 중앙정보부가 문세광을 오래 전부터 주시해 왔다는 사실, 문세광을 사건 현장인 국립국장에 들인 것은 바로 청와대 경호실이었다는 사실을 밝힌 것이다. mbc <PD수첩>은 KAL 858 사건에 대한 안기부 해설이 엉터리였음을 입증했다. 그 주인공 행세를 하는 김현희의 행로를 추적해 그의 증언과 안기부 해설이 모두 거짓임을 밝혀냈다.

( 2005년 3월 이 프로를 제작하고 진행한 김환균 PD는 현재 대전MBC 사장이다. 이 프로는 지금 다시 봐도 훌륭한 작품이다. 시사다큐는 이렇게 만들어야 한다.https://www.youtube.com/watch?v=fsVfg2cvNvo)

이들 프로를 통해 분단체제의 늪에 빠져 있던 역사의 진실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만약 이들 프로가 지금도 살아 있다면 ‘1983 버마 사건’의 진상도 어느 정도는 밝혀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꼴통 정권’ 10년 간 언론 생태계가 엉망진창이 됐고, 이 지저분한 생태계를 살아가는 언론은 역사의 진실을 다시 구정물통에 빠뜨리려 한다. 제대로 된 다큐는 없고 빈머리 딴따라들의 잡담이 판을 치고 기레기들의 잡문만 넘쳐난다.

꼬꼬무도 지난 4월 ‘문세광 사건’을 다뤘다.
https://www.youtube.com/watch?v=lDLMrNm_r78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가 16년 전 밝힌 사건의 진상이나 박정희네 청와대 경호실 및 중앙정보부가 사건에 개입돼 있음을 시사하는 내용은 모두 빼거나 건성건성 다뤘다. 시답잖은 이야기만 늘어놓으며 간간이 ‘음모론’ 운운했다. 사건의 진상에 대한 논의를 ‘음모론’으로 폄훼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이런 현실을 단지 언론(인)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아웅산 테러나 KAL 858 사건 등은 이 나라 분단체제의 말뚝이고 쐐기와 같은 것이라 자칫 이 말뚝과 쐐기가 뽑힐까 두려워하는 세력이 있기 마련이다. 분단체제의 말뚝과 쐐기를 박으면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키워온 분단적폐 세력이 그들이다. 같잖은 책을 내고 이 방송 저 방송에 같잖은 프로를 만들게 하는 것은 이들에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2013년 아웅산 테러 30주년에 맞춰 <아웅산 테러리스트 강민철> 등 여러 책들이 동시다발로 출간됐고, 장세동의 <일해재단>도 이때 <역사의 빛과 그림자>로 재출간됐다.)

이런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진 이가 없는 것도 문제다. 역사학자니 남북관계 전문가니 하는 이들 누구도 우리 분단체제의 근간이 무엇인지, 이 반인륜적 체제를 누가 어떻게 70년 동안 유지하고 보수하며 지탱하고 있는지를 제대로 읽어내는 이가 없다. 전두환 정권의 수상한 언동의 내막을 들여다보지도 않은 채 전두환을 ‘대인배’라 칭하기까지 하니 ...

( 오마이뉴스 2016.2.27)

꼬꼬무 진행자도 아웅산 테러 직후 전두환 정권이 보복전쟁을(?) 하려다 말았다며, ‘어느 역사학자’를 들먹였다. 전두환 대통령이 울분을 참고(?) ‘제2 한국전쟁’을 촉발하지 않은 데 대해 높은 점수를 줘야 한다고 말한 이가 있다고. 그런데 그 역사학자가 누군지를 밝히지 않았다. 아마도 그가 코멘트를 거부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역사학자’는 성공회대 교수 한홍구 씨다. 2013년 KBS 다큐멘터리 ‘아웅산 테러 그리고 2013’에서 “저는 민주진영이기 때문에 전두환을 그렇게 비판하는 입장이지만 그래도 전두환이 집권 기간 동안 가장 잘한 일이 아웅산 사태를 평화적인 무드로 갖고 갔고 더 이상 확산시키지 않은 것”이라며 “지나 놓고 보면 그래도 전두환 정권에 점수를 줘야할 대목”이라고 말했다. 우리 사회의 진보에 나름 기여하고 있고 사석에서는 자신을 ‘친북.종복 역사학자’라고 말하는 그가 ‘1983 버마 사건’을 북한의 소행으로 철석같이 믿고 있다. 웃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혹시 지금은 생각이 좀 달라졌을까? 그래서 코멘트를 거절한 것은 아닐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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