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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노동자 생존 위한 파업 왜곡하며 ‘을들의 싸움’ 부추기는 보수언론

화물노조 양보에도 물러서지 않는 SPC 측, 이를 ‘노조 갑질·빵대란’으로 보도하는 보수언론

조선일보 자료사진ⓒ이승빈 기자

 최근 조선일보 등 일부 언론이 민주노총 산하 화물노동자 노조가 한국노총 산하 노조와 이권다툼을 벌이는 파업으로 식품업계에 큰 피해를 주고 있다는 기사를 쏟아냈다. 하지만 화물노동자들이 파업을 한 이유는 이권다툼 때문이 아니었다. 업계 매출 증가로 운송 거리 등이 10년 전보다 2배 이상 늘면서 화물노동자들의 노동 강도도 배로 증가했는데, 회사는 운송 차량을 늘리지 않고 계속 화물노동자들의 희생만 강요하고 있어서, ‘증차’를 요구하며 벌인 파업이었다. 그나마 노조가 양보하고 양보한 끝에 고작 화물차 두 대 늘리는 안에 합의했지만, 회사가 이조차 지키지 않아서 벌어진 파업이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는 17일 보수언론에 거짓보도 중단을 촉구하는 논평을 내고 이같이 밝혔다.

앞서 화물연대본부 광주지역본부 SPC지회는 노사합의 불이행에 항의하며 지난 2일 파업에 돌입했다. 이후 회사가 파업에 참여한 화물노동자들에게 계약해지(해고)를 통보하자, 15일부터 전체 SPC 사업장에 대한 화물노동자 파업으로 커지고 있다.

지난 16일 조선일보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사이의 다툼으로 벌인 파업으로 빵과 빵 재료가 가맹점에 배송되지 않으면서 애꿎은 가맹점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고 기사를 썼다. 또 같은 날 한국경제는 사설을 통해 “노조끼리 힘을 겨루다 벌인 불법 파업으로 ‘빵 대란’이 벌어졌다”라고 전했다. 모두 화물노동자들이 파업을 벌인 이유를 감추면서 ‘노조 혐오’만 자극하는 왜곡된 기사와 사설이었다.

주요 식품업체 매출 추이ⓒ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토대로 화물연대본부가 정리

10년 전 비해 2배로 늘어난 가맹점
화물기사 노동 강도도 덩달아 높아져
과로 해소 위해 고작 2대 증차 양보안 제시
회사, 양보안까지 걷어차 파업 유도

 

화물연대본부에 따르면, 식품유통을 전문으로 하는 ㈜에스피씨 지에프에스(SPC GFS, 이하 SPC)가 배송을 담당하는 대리점 수는 10년 전보다 2배 이상 늘었다. 하지만 배송을 담당하는 차량과 인원은 10년 전에 머물러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화물노동자들의 노동 강도도 덩달아 높아졌다. 대리점이 많아지면 그만큼 운송거리가 늘어나고, 빵 같은 경우 정해진 시간에 배송을 끝내야 하기에 과속을 해야 했으며, 더 일찍 일어나서 더 늦게 퇴근하는 일이 반복됐다.

특히, 여러 프랜차이즈 식품사업을 하는 SPC삼립의 지난해 상반기 대비 올해 상반기 매출 증감률은 13%를 보였다. 화물연대본부는 “영업이익으로만 따져도 2020년 대비 55.3%가 증가한 것”이라며 “빵 분야의 선전이 이를 견인했다”라고 분석했다.

이처럼 SPC그룹의 계열사가 매출과 이익을 올리는 데 매진하는 사이, 화물노동자들의 과로는 나날이 쌓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화물연대본부 광주지역본부 SPC지회는 회사 측에 3대의 증차를 요구했다. 화물차량을 추가 배치하여 화물노동자의 과중한 업무 강도를 낮추자는 제안이었다. 민주노총 조합원 차량만 38대라는 점을 고려하면, 수십 대 차량 중 3대를 추가 보강해 달라는 요구는 아주 무리한 요구로 보이지는 않는다. 화물노동자들은 “살인적인 스케줄에 시달리는데, 작업 방식을 달리 개선할 방법도 없는 상황이었기에, 증차만이 유일한 대안이었다”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회사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화물연대본부는 양보를 거듭한 끝에 최초 요구에서 1대를 줄인 ‘2대 증차 안’을 제시했다. 여러 자영업자가 상부상조하는 유통산업의 특성을 고려해 최대한 파업을 피하려고 화물연대본부 나름대로 애를 쓴 것이다.

무엇보다 화물노동자는 회사가 고용한 임금 노동자가 아니고, 차량 운용비 등을 모두 노동자가 감당하면서, 배송 수수료로 살아야 하는 특수고용직이기 때문에 파업 만큼은 피해야만 하는 구조다.

그런데도, 회사는 이 양보안까지 걷어찼다.

화물연대본부 광주지역본부 관계자는 “파업 전날인 1일 회사 측은 우리 양보안에 대해 수락하겠다고 했는데, 2일 아침에 다시 못 받아들이겠다고 했고, 2일 오후 3시까지 기다리겠다고 했는데, 결국 그렇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양보안을 제시했음에도 개선될 여지가 없자, 어쩔 수 없이 파업에 돌입했다는 설명이다.

그런데도, 조선일보와 한국경제 등 일부 언론은 화물노동자들이 별다른 명분도 없이 단체행동을 벌이며 회사와 가맹점들에 피해를 주고 있다는 식으로 보도한 것이다. 앞뒤 맥락을 살펴보면 이번 사태의 가장 막중한 책임을 져야 할 대상은 SPC인데, 화물노동자만 공격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는 셈이다.

민주노총 화물연대 광주본부 2지부 SPC(파리바게뜨)지회 소속 조합원들이 지난 16일 오전 광주 광산구 호남샤니 광주공장 앞에서 '조합원 집단해고 철회'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노조는 사측인 SPC그룹에 불공정한 출차 시간을 없애기 위해 증차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지난 3일부터 14일째 운송거부 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2021.9.16.ⓒ뉴스1

이날 논평에서 화물연대본부는 “SPC의 합의 뒤집기는 하루 이틀이 아니다”라며 “화물연대는 그동안 파업이라는 수단을 피하기 위해 항상 합의에 최선을 다했다. 화물노동자의 생존권이 전체 사회의 권리와 함께 공존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하지만 SPC는 화물연대가 양보한 대부분의 합의를 이행하지 않고 오히려 합의를 뒤집거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라고 밝혔다.

이어 “가맹점주는 안중에도 없고, 화물노동자는 탄압해야 하는 대상으로 보는 것이 유통산업의 최대기업이자 ‘갑’으로 군림하는 기업의 민낯”이라며 “보수언론은 SPC의 이해에 맞게 을(가맹점)과 병(화물노동자)의 싸움을 부추기고 있다. 보수언론의 농간 속 유통산업의 최고 정점에서 모든 이윤을 가지고 가는 ‘갑’의 책임은 삭제된 채 을과 병의 바닥을 향한 경쟁만 계속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한편, SPC 그룹은 파업에 참여한 일부 화물노동자들에 대해 계약해지(해고)를 통보했다. 또 전체 화물연대본부 SPC지회 조합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비롯한 법적 대응을 예고한 상태다. 지난 16일 호남샤니 광주공장 앞 화물연대본부 기자회견에서 박상남 화물노동자는 “목숨을 바쳐 억울함을 호소한 노동자들이 이해가 된다”라며 회사의 입장만 기사로 전하는 언론을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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