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히 프롬이 말하는 '사랑의 기술'은 개인의 실존과 남녀 간, 혹은 모든 인간관계에 필요한 것이기도 하지만, 물신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적 갈등과 인간 존엄성의 파괴를 치료할 수 있는 강력한 철학적, 실천적 처방전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에리히 프롬은 나도, 상대방도 인간으로서의 주체성과 존엄성을 회복하면서 안정된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참된 사랑을 얻기 위해서는 네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 네 개의 핵심 요소는 계층, 젠더, 동서, 세대, 이념으로 분열된 우리 사회를 치유하는 데에도 꼭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첫째, 관심(Care)이다. 사랑의 반대말은 무관심이라는 말이 있다.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까지도 더불어 살아야 한다고 믿는다면, 진실로 사회적 약자를 사랑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원한다면, 남과 북이 평화롭게 살기를 원한다면, 지속 가능한 지구를 원한다면, 무엇보다 약자가 당하고 있는 소외와 불평등, 불공정에 대해, 지구 생태계를 망치고 있는 반 생태적 산업과 정책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관심은 나와 현실을 분리해서 그저 바라보거나 평론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을 보내는 것이고, 손길을 내밀어 나의 문제로 받아들여서 해답을 찾기 위한 실천에 이르게 하는 적극적 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이해관계, 이념, 지역, 세대, 계층 간에 드러나는 차이와 다름을 형식으로 구별(distinction)하는 능력도 중요하지만, 나와 상대가 지닌 내면의 역사성과 철학, 가치의 차이와 다름을 식별(discernment)하면서 그 차이와 다름을 보듬어 안는(Care) 능력이 더욱 중요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은 이러한 관심으로부터 출발한다.
둘째, 책임(Responsibility)이다. 책임은 주어진 관계와 조건, 상황, 지위와 직책에 따라 그 내용과 범위가 다르겠지만 공통적인 것은 대상과 상대의 필요와 욕구, 행위와 결과에 반응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끊임없는 갈등과 크고 작은 참사를 겪으면서도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문제가 쌓여만 가는 이유는 바로 책임 문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경제 대국과 문화 강국을 자랑하는 우리나라 위상에 걸맞지 않은 후진적인 사건과 사고가 빈발하고 있는데, 이는 특별히 정치와 관료집단, 경제적이든 문화적이든 권력을 가진 집단의 무책임과 책임에 대한 무감각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믿고 있다.
책임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표현되지 않은 문제에 대해서도 반응(Response)하는 '능력'을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과는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서로가 무엇을 원하는지 너무나 잘 알지 않는가!
수동적이고 기계적인 책임은 결과에 대한 '태도'로서 책임의 한 부분일 뿐이다. 책임을 진다는 것은 문제의 뿌리까지 치고 들어가 끝내 해결책을 찾아내는, 내가 책임져야 할 일과 사람의 욕구와 필요가 충족될 때까지 반응하는 적극적인 태도와 실천적인 능력을 의미한다. 행동이 없는 사랑은 울리는 꽹과리와 같다고 하듯이,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하늘의 별도 달도 따다 주겠다고 하듯이!
나와 진영, 경계와 경계 넘어서는 지식 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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