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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동밥에 즉석밥까지 ‘미국산 쌀’ 밀어넣는 대기업들

컵반에 미국산 쌀 사용 시작한 CJ제일제당 “소스와 잘 어울려” 황당 해명

 
대형마트 한편에 마련된 즉석밥 판매대 ⓒ뉴시스
 
 
식품 대기업이 미국산 수입쌀 사용을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입쌀에 대한 거부감이 적은 젊은세대가 이용하는 간편조리 제품군에 미국산 쌀 사용 비중을 늘리고 있다. 자원 무기화가 세계적으로 가속화하는 시점에, 대기업의 무분별한 수입쌀 사용이 한국 농업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3일 민중의소리 취재를 종합하면, CJ제일제당은 자사 제품군에 미국산 쌀 사용을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CJ는 지난해 4월 출시한 ‘BIG치킨마요덮밥’, ‘BIG스팸마요덮밥’, ‘BIG스팸김치덮밥’ 등 7종의 컵밥 제품에 미국산 쌀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출시 당시 이들 제품은 100% 국산쌀을 사용한 즉석밥이 들어갔으나, 지난 3월 말부터 미국산 쌀로 대체했다. CJ는 모두 30여종의 컵밥, 덮밥, 국밥 등의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컵밥 제품에 미국쌀 사용 비중은 0%였다가 지난 3월부터 23%까지 올라갔다.

식품 업계에선 “이대로 가면 국내 컵밥 제품에서 국산 쌀을 찾아보기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오뚜기가 생산하는 비슷한 형태의 덮밥 13종은 모두 국산쌀을 쓰고 있는데, 치열한 원가 절감 싸움을 벌이는 식품업계에서 경쟁 업체들이 언제까지 국산쌀을 고집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미국쌀 살 사용이 시작된 CJ제일제당 컵반 제품과 원산지 변경 고시 ⓒCJ몰 캡쳐


CJ제일제당 “소스와 어우러짐 중요해 미국쌀 쓴다” vs 농업계 “구차한 핑계” 일축

CJ 측은 미국산 쌀 사용 이유에 대해 “수차례 테스트 진행한 결과”라고 해명했다. 미국산 쌀이 소스에 가장 잘 스며들어 높은 점수를 받았다는 주장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원가 절감을 위해 수입쌀을 쓰면서 여론 악화가 우려되니 궁색한 해명을 내놨다는 뜻이다.

CJ가 컵밥에 쓰는 미국산 쌀 품종은 칼로스(Calrose)다. 앞의 칼(Cal)은 생산지인 미국 캘리포니아의 약자다. 뒤의 로스(rose)는 장미라는 뜻이다. 칼로스는 ‘캘리포니아의 장미’라는 뜻을 담고 있다.

칼로스는 한국과 일본이 주로 먹는 ‘자포니카’ 품종이다. 학계에선 쌀알의 길이에 따라 한국 재배 자포니카를 ‘단립종’, 미국 캘리포니아 재배 자포니카를 ‘중립종’으로 구분한다. 쌀 낱알 하나의 길이가 한국은 상대적으로 조금 짧고, 미국이 약간 길기 때문에 하는 구분이다. 밥을 지어 놓으면, 일반인은 구분하기 매우 어렵다. 밥 맛도 비슷하다. CJ가 “미국산 쌀에 소스가 잘 스며들었다”는 해명에 전문가들이 동의하지 않는 이유다.

수입쌀의 대명사인 장립종과는 구분해야 한다. 장립종은 미국산 중립종보다 쌀알의 길이가 훨씬 길다. 일반인도 척 보면 구분할 수 있다. 원산지 표기에 ‘쌀 = 국내산’이라고 적힌 식당에서 공깃밥을 열고 흠칫 놀라는 길쭉한 쌀이 바로 장립종이다. 종도 자포니카가 아니라 인디카 품종이다. 베트남 쌀, 태국 쌀로 알려진 ‘안남미’가 대표적이다.

특성도 다르다. 길이가 길고 윤기가 적어 소스를 잘 흡수하는 게 특징이다. 또 찰기가 적어 볶음밥 등의 요리에 주로 사용한다. 김호 단국대 환경자원경제학과 교수는 “CJ 말처럼 소스를 잘 흡수해서 칼로스를 쓴다면, 그보다 더 잘 흡수하는 안남미를 써야하는 것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문제는 가격이다. 20kg 한 포대를 기준으로 미국 자포니카는 한국 자포니카에 비해 1만원 정도 싸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지난 18일 기준 국산 쌀(중품) 도매가는 20kg당 4만6천원이다. 반면 미국산 칼로스는 20kg 한 포대에 3만6천원이었다. 도매 낙찰가 기준, 1만원 차이다.

컵밥에는 통상 210g 짜리 즉석밥 1개가 들어간다. 쌀 20kg 한 포대면 즉석밥 95개를 만들 수 있다. 컵밥 판매량을 연 백만개라고 가정하면, 국산쌀로 만들었을때 재료비가 480억원, 미국산 칼로스 재료비가 370억원으로 100억원 이상 절감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김정룡 전국쌀생산자협회 사무총장은 “덮밥류인 컵밥에 국산 쌀보다 미국산 쌀이 더 적합하다는 CJ제일제당의 주장은 구차한 핑계일 뿐”이라며 “결국 돈 더 벌자고 한 일 아니겠냐”고 지적했다.
 
미국산 쌀 사용을 시작한 BIG사이즈 햇반컵반 ⓒ캡쳐


‘경계’ 넘어 컵밥까지 미국산 쌀 사용 시작한 CJ
‘너도나도 미국산’ 식품업계 도미노 도화선 되나
‘식량위기’ 우려도 커져


식품업계에 볶음밥·비빔밥 등 ‘냉동밥’에 미국산 쌀이 침투한 지는 오래다. CJ가 생산하는 22개 냉동밥 제품 중 21개(95.5%) 제품에는 수입산 쌀을 사용한다. CJ뿐 아니다. 풀무원 역시 17개 중 11개(64.7%) 제품에, 오뚜기는 14개 중 9개(64.3%) ‘냉동밥’ 제품에 수입산 쌀을 사용한다. 냉동밥에 국산 쌀을 사용하는 대기업은 하림 뿐이다. 8개 냉동밥 제품 모두에 국산 쌀을 쓴다.

컵밥은 상황이 다르다. CJ의 미국산 쌀 컵밥 사용은 그간 업계에서 합의된 경계를 무너뜨렸다는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컵밥 시장에서 CJ와 경쟁하는 오뚜기는 제품 24종 모두에 국산 쌀만 쓴다. 업계에선 오뚜기가 컵밥에 미국산 쌀을 쓰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컵밥 시장 진출을 타진하고 있는 풀무원과 동원, 하림 역시, 원가 경쟁력을 감안하면 국산 쌀 사용 정책을 고수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산 쌀은 냉동밥을 넘어 컵밥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아직 ‘햇반’이나 ‘오뚜기밥’ 같은 원조 즉석밥에 국산쌀이 쓰이지만, 이 추세 대로라면 미국산 ‘햇반’이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전문가들이 컵밥 미국산 쌀에 우려를 보내는 이유다. 식품 대기업 수익은 늘겠지만, 국내 농업 기반은 더 흔들린다. 지난해 기준 국내 즉석밥 시장점유율은 CJ제일제당이 67%다. 부동의 1위다. 오뚜기(30.7%)와 동원F&B(2%)가 뒤를 잇는다. 최근 하림 등이 즉석밥 시장에 뛰어들긴 했지만, 시장점유율은 미미한 수준이다.

CJ는 국내에서 가공용 쌀을 가장 많이 쓰는 기업이기도 하다. 2019년 기준 CJ가 계약재배로 사들인 쌀은 약 5,122톤에 달한다. CJ가 수입산 쌀 사용 비중을 늘려갈 수록, 국산 쌀 농가의 판로가 줄어드는 것이 현실이다.

국내 쌀 산업 위기는 최근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생산비는 늘어나는데 쌀 가격은 하락 추세다. 이근혁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정책위원장은 “비룟값부터 농약값, 인건비 등 쌀 생산비가 최하 25% 이상 올랐는데, 국산 쌀 가격은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어서 농민들의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식량 서플라이 체인’도 위기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밀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인도가 밀 수출을 중단하고, 인도네시아는 팜유 수출을 막았다. ‘자원 무기화’, ‘식량 무기화’는 눈 앞에 닥친 리스크가 됐다. 한국 쌀 산업의 위기가 식량 위기로 직결될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김정룡 사무총장은 “국내 기업들조차 한국쌀을 쓰지 않는다면 우리 농업은 버틸 힘을 잃게 될 수밖에 없다. 식량 위기가 현실화하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추수 자료사진.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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