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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백발 휘날리며 울산 누빈 권영길 “노동자 정치 다시 시작하자”

 
19일 제8회 지방선거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된 가운데 현대중공업 전하문 앞에서 권영길 전 민주노총 위원장(왼쪽)이 윤장혁 민주노총 금속노조 위원장과 함께 출근길에 오른 노동자들을 향해 김종훈 진보당 울산 동구청장 후보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권영길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백발을 휘날리며 울산에서 3박 4일 동안 진보단일후보의 선거운동을 돕는 강행군을 펼쳤다. 제8회 지방선거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되면서다. 지방선거와 관련해 이번이 세 번째 울산 방문이다. ‘진보정치 1세대’인 그에게도 이번 선거의 의미는 그만큼 남달랐던 것이다.

권 전 위원장은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된 19일 오후 진보당 김종훈 울산 동구청장 후보 선거대책본부에서 민중의소리와 만나 “많은 사람들이 왜 울산에 세 번씩이나 가느냐, 울산에서도 왜 세 번씩이나 오느냐고 이야기하고 있는데, 특별한 의미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밝혔다.

권 전 위원장이 처음 울산을 방문한 것은 지난달 15일 민주노동과 노동당, 정의당, 진보당이 진보정치의 단결을 약속하는 ‘울산선언’을 발표할 때였다. 두 번째 방문은 지난 2일 김종훈 후보 선대본 출범식이 열리는 날이었다.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은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물론이고, 권영길, 단병호, 이갑용, 한상균 등 전직 민주노총 위원장들도 명예 선대위원장으로 한 자리에 모였던 날이다. 권 전 위원장은 울산을 방문할 때마다 노동조합을 만나는 등의 행보도 이어갔다.

“진보대통합 이뤄야 한다”

어느덧 80세를 지나고 있는 권 전 위원장이 고령의 몸을 이끌고 연이어 강행군을 펼치고 있는 것은 ‘진보대통합’을 이뤄야 한다는 소명 때문이다. ‘민주노동당 창당주역’이었던 그로서는 현재 여러 갈래로 쪼개져있는 진보정당들을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권 전 위원장은 이날도 울산 동구와 북구를 오고가면서 진보단일후보들의 선거운동을 지원했다.

“민주노동당이 분열돼서 지금은 여러 진보정당으로 나뉘어졌다. 2000년 민주노동당이 창당되고 2007년 분열됐다가 통합진보당으로 잠깐 단일화됐다가 2차 분열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냉정하게 말하면 진보정당들은 존재감마저 상실돼있는 상황이다. 정의당이 원내정당으로서, 원내 제3당으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지만, 실제 국민들에게는 진보정당으로의 역량을 발휘를 못하고 있다.”

결국은 ‘분열’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권 전 위원장은 콕 집어 말했다.

“이념이 차이가 얼마만큼 있나. 국민들은 그걸 구분하지 못한다. 실제 국민들은 정의당이나 진보당이나 노동당이나 뭐가 다르냐고 묻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구체적으로 뭐가 다른지 이야기를 못해주고 있다. 정파 간의 대립으로 인한 분당인데, 그 차이를 일반 국민들은 절실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진보정당이 다시 부활해야 한다고 권 전 위원장은 힘주어 말했다. 하나로 뭉쳤던 민주노동당의 정신이 되살아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 전국 곳곳에서 4개 진보정당이 후보단일화를 이룬 것은 좋은 신호다. 그 시발점은 울산이었다.

권 전 위원장은 “분열된 진보정당의 재통합이 울산에서 시작되고 있다”며 “노동자들이 여기서 앞장서고 있다”고 강조했다. 진보정당뿐만 아니라 노동자, 즉 민주노총이 진보대통합에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선거운동을 하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진보정당이 분열됐을 때엔 현장에 접근하기가 굉장히 어려웠다고 한다. 현장에서 노동대중들이 ‘진보정당도 꼴보기 싫다’, ‘들어오지 말라’, ‘우린 선거운동하지 않는다’며 받아들이질 못했다. 그래서 (후보 쪽에선) 접근을 못했고, 실제로 현장에선 노동자들이 떠나갔다. 그런데 이번에 진보후보 단일화가 되면서 그 현장 접근의 벽이 무너졌다.”

실제로 울산에선 민주노총 금속노조가 선거운동에 결합해 진보단일후보 지지를 직접 호소하고 있다.

권 전 위원장은 “그 장벽을 깨뜨리지 않고는 진보정당이 성장할 수 없다. 진보정당이 재도약 못한다”며 “이 벽을 넘어서는 방법은 진보단일화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오랜 기간 성찰과 반성을 통해서 ‘분열한 건 잘못했다, 우리가 다시 출발하겠다’며 하나 된 진보단일후보를 냈다”며 “이게 재통합의 출발점이다. 재통합이 쉽지는 않겠지만 여기서부터 한 걸음 한 걸음 진보통합의 길로 갈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19일 제8회 지방선거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된 가운데 현대중공업 전하문 앞에서 권영길 전 민주노총 위원장(왼쪽)이 윤장혁 민주노총 금속노조 위원장, 정동석 민주노총 금속노조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 지회장과 함께 출근길에 오른 노동자들을 향해 김종훈 진보당 울산 동구청장 후보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민주노총 바퀴와 진보정당 바퀴가 함께 굴러가야 한다”

권 전 위원장은 과거 민주노동당이 국회로 들어가 한국 정치·사회·경제 시스템을 바꾼 것은 민주노총이 함께 움직였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권 전 위원장은 “노동자 정치세력화는 실패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다. 민주노총 안에서도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하지만 과거 민주노동당만 봐도 그렇지 않다는 게 그의 말이다.

그는 “민주노총이 1996~97년 노동법 날치기 파업을 승리를 이끈 다음 대선에 참여했고, 이어서 민주노동당을 창당했다. 민주노총이 주도해서 민주노동당이 창당된 것이다”라며 “사실 민주노동당은 엄청난 업적을 이뤘다. 주5일제도 민주노동당이 법제화한 것이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현재 국민건강보험 체제의 기틀을 만든 것도, 학교 무상급식도, 민주노총의 투쟁을 바탕으로 민주노동당이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오늘날 비정규직 문제가 매우 심각한데, 노무현 정부 때 처리된 비정규직법 때문이다. 당시 비정규직법을 처리하려고 할 때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그야말로 결사적으로 막았다. 하지만 민주노동당 의원들이 강제적으로 감금됐고, 결국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함께 그 법을 통과시켰다. ‘비정규직 보호법’이라고 돼있더라. 그래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한 보호법인데 왜 노동자를 위한다는 민주노동당이 왜 반대하냐고 따지더라. 하지만 그건 비정규직보호법이 아니라 비정규직양산법이다, 이 법으로 인해서 앞으로 한국사회는 비정규직 사회가 될 것이라고 민주노동당은 얘기했다. 비정규직을 법제화하고 2년이 지나면 해고시킬 것이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렇게 극단적으로 보지 말라고 하더라. 그런데 실제 어떻게 됐나. 365일이 되기 하루 이틀 전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해고시키고 있다. 오늘날 비정규직 사회가 됐다. 이 문제를 노동자들이 해결해야 한다는 바람을 일으켰던 게 민주노동당이었다.”

그러면서 “민주노총이라는 한 수레바퀴, 민주노동당이라는 한 수레바퀴가 함께 굴렀기 때문에 수레가 앞으로 나간 것”이라며 “현장 노동자들과 당이 함께 가는 것이다. 이건 세계적으로 공통된 것이다.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필요한 이유”라고 강조했다.

나아가 권 전 위원장은 “민주노동당 활동 이전에는 정치개혁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 전에는 패거리 정당, 지역주의 정치가 있었다”며 “이걸 바꾼 게 민주노동당”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민주노동당은 한국의 정치·경제·사회를 완전히 바꿨다. 그래서 세상을 바꾸자고 한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19일 제8회 지방선거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된 가운데 현대중공업 전하문 앞에서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회와 사내하청지회 지회장 조합원들이 출근길에 오른 노동자들을 향해 김종훈 진보당 울산 동구청장 후보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서민들에게 밥을 먹여주는 것이 진보정치...그 기둥은 ‘노동’”

권 전 위원장은 향후 진보정치는 윤석열 정부의 ‘시장경제 강화’에 맞서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윤석열 정부가 이야기하고 있는 건 시장경제를 더욱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시장경제 자본주의의 중심국가인 미국에서도 바꿔야 한다, 이대로는 안 된다고 하고 있는데, 우리는 국민의힘이나 민주당이나 똑같이 그렇게 가고 있다. 진보정당이 다음에 할 일은 시장주의 중심의 경제를 바꾸는 것이다.”

그러면서 권 전 위원장은 “서민들에게 밥을 먹여주는 것이 진보정치”라고 강조했다.

“서민들을 위한 정치, 민생정치는 다 내걸고 있는 거 아닌가. 그러나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건설 없이는 서민들에게 밥을 먹여주는 정치가 이뤄질 수 없다. 시장주의에 매몰되면 빈부격차만 더 강화하고 양극화만 더 강화할 것이다. 진보정당의 재출발, 재통합은 실질적으로 서민들의 살림살이를 나아지게 하는 정치다.”

다만 진보정당의 기둥은 ‘노동’이어야 한다고 권 전 위원장은 강조했다.

“진보정당은 노동 중심의 정당이다. 노동이 기둥이다. 노동중심의 정당 위에서 기후위기, 생태, 평화, 젠더 이런 과제를 함께 안아야 한다. 예컨대 노동중심의 토대를 갖추지 않고 젠더 문제에만 몰두한다면 그건 진보정당의 완성체가 아니다. 오늘날 잘못된 인식이 뭐냐면, 정의당을 보고 ‘젠더정당이지 진보정당이 아니다’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건 노동중심이 갖춰지지 않았다고 본다는 말이다. 진보정당은 노동자들이 만들고, 노동자들이 운영하고, 노동자들을 위한 것이다. 노동자들의 정치, 노동자들을 위한 정치여야 한다.”

권 전 위원장은 울산에 이어 부산을 찾았다. 이곳에서도 권 전 위원장은 민주노총과 함께 진보단일후보를 지지해달라고 호소했다.

권 전 위원장은 “보수정치의 틀로 보면 구청장 하나는 점에 불과할 것”이라며 “하지만 김종훈 울산 동구청장 후보의 당선은 한 사람의 구청장 문제로 끝나는 게 아니라 진보재통합의 시발점이라는 굉장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울산 동구에서 시작해서 전국에서 진보정당이 재도약한다는 자신감을 사람들에게 불어넣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진보정당 간 골이 깊어서 후보단일화를 했다고 재통합이 되겠느냐는 비관적이거나 회의적인 견해를 갖고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며 “뼈아프게도 많은 노동자들이 진보정당에 등을 돌리고, 그동안 민주당을 찍거나 기권했다. 그런데 이걸 지금 바꿔내고 있는 것이다. 전과는 다르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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