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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불복인가?” “그건 아니다” 바보들의 행진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3/08/27 06:03
  • 수정일
    2013/08/27 06:03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의혹 해소되지 못한 상태의 불복 논쟁 의미없어
 
정주식 | 2013-08-26 14:40:04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인쇄하기메일보내기
 
 


 

새누리당 : 대선불복인가?

1) 그렇다. 하야하라.

2) 진상규명이 먼저다.

3) 그건 아니다.

1)번은 호기로운 열정가의 답, 2)번은 합리적 지성인의 답, 3번)은 겁많은 멍청이의 답이다. 민주당의 불행은 여기서 시작됐다.

<수차례 “대선불복은 아니다”라고 밝힌 민주당 김한길 대표>

한편의 코메디같았던 국정조사는 끝이 났지만, 여야의 대치는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다. 어제 국정조사 특위 야당 소속 위원들은 청와대를 항의 방문해 대통령에게 공개서한을 발표했다. 이 서한은 청와대의 제지로 대통령에게 전달되지 못했지만 새누리당을 자극하기엔 충분했다. 새누리당은 이 서한의 내용에 즉각 발끈하며 역공에 나섰다. 공개서한 중 문제가 된 부분이다.

“민주주의 국가의 근간은 바로 공정한 선거에 있다. 3.15 부정선거가 시사하는 바를 잘 알고 있는 만큼 반면교사로 삼길 바란다”

이 서한에 대해 새누리당 김태흠 원내대변인은 “지난 대선을 3·15 부정선거에 비유하는 것은 국민들의 수준을 60년대 수준으로 보는 것이고, 시대에 역행하는 것이자 국민들을 모독하는 행태”라고 비난했다. 윤상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도 기자간담회을 열고 “지난 대선을 3.15 부정선거에 빗대서 대통령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한마디로 국민 선택을 왜곡하고 현 정부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며 김한길 민주당 대표의 사과 등 입장표명을 요구했다.

의도된 ‘발끈’

국정원게이트의 꼬리가 밟힌 뒤 지난 8개월간 국내외 수많은 언론들이 국정원게이트를 워터게이트에 비유한 바 있다. 그것들에 대해 잠자코 있던 새누리당이 3.15부정선거 언급에 갑자기 발끈한 까닭은 무엇일까?

새누리당이 야권의 장외투쟁에 대한 필승카드로 여기고 있는 것이 이른바 ‘대선불복 프레임’이다. 새누리당은 장외투쟁 초기부터 이 카드를 만지작거렸지만 이번처럼 작심하고 꺼내들기는 처음이다. 때를 기다린 것이다. 새누리당이 기다렸던 '타이밍'은 문재인 의원의 장외투쟁 참가였다. 하지만 이것은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여론은 계속 악화되기만 했다. 때마침 민주당이 강경한 발언으로 빌미를 제공하자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이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문제삼은 3.15부정선거 발언은 그저 촉발원인이자 구실일 뿐이다.

국민들이 정치권의 이런 정략적인 몸놀림까지 알 필요는 없다. 국민들이 진짜 알아야 할 것은 이것이 ‘누구에게 유∙불리한가’가 아닌, ‘무엇이 옳고 그른가’이다.

새누리당의 “대선불복인가?”라는 질문은 그 자체로 난센스다. 저 질문에 대해 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먼저 답해야 할 질문이 있다.

“과정이 공정했는가?”

이것에 대한 답을 내리지 못한 상태에서 승복 or 불복을 논하는 것은 순서가 틀렸다. 이는 온건-과격의 문제가 아닌, 기본적인 사리분별에 관한 이야기다. 합리적 선후관계를 따지는 것에 ‘온건파’, ‘과격파’ 따위의 정치적 성향을 갖다 붙이는 건 어리석은 태도다.

<결과승복의 조건은 ‘공정선거’다>

의혹 해소되지 못한 상태의 불복 논쟁 의미없어

검·경의 수사결과 국정원의 조직적 선거개입이 밝혀진 이상 대선과정에서 중대한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이 ‘결과를 뒤집기에 충분한가’라는 물음에는 아직 확답하기 어렵다. 사건의 전모가 온전히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정선거를 바로잡는 것에 대한 두 가지 시각이 있다.

1) 과정이 불공정했음으로 원천적으로 무효라는 시각

2) 선거부정이 결과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바로 잡아야 한다는 시각

나는 1)번 시각에도 동의하지만 반대입장 역시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고지순한 원칙만을 따져 결과를 뒤엎을 만큼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가볍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다만 1)번 만으로 결과를 뒤집기 위해서는 ‘결정적인 불공정’(최고권력자-후보캠프의 개입사실)이 드러나야 한다. 2)번의 경우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관계가 입증된다면 여기에는 반박할 명분이 없다.

분명한 것은 둘 중 어떤 것이라도 관철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진상규명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작성한 댓글 수가 몇 개인지, 공작에 몇 명이 참여했는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들이 있다. 국정원사건 진상규명의 핵심은 전임 대통령의 지시 여부, 박근혜 후보 측의 사전 교감 여부 같은 것들이다. 국정원장이 단독으로 이런 엄청난 일을 벌였다는 건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이 아니다. 대표적인 ‘MB맨’인 원세훈 원장이 매주 대통령과 독대한 자리에서 장기나 두다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합리적의심을 해소하지 않고 승복-불복을 논쟁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이것들에 대한 진상규명은 아직 걸음마도 떼지 못했다. 장장 6개월간 이루어진 검경의 수사과정에서는 온갖 외압과 은폐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추진했던 국정조사는 한편의 코메디로 마무리됐다. 사건의 핵심 피의자인 원세훈 원장의 구속조차 이루어지지 못했던 말도 안 되는 수사가 끝났을 뿐이다. 결국 검경의 수사와 국정조사는 사건의 핵심에 근접하지도 못했다. 국정원과 전정권, 현 정권의 책임범위가 서로 어디까지인지도 파악되지 못한 상태에서 승복-불복을 논하는 건 가당치도 않다. 지금 해야 할 일은 공허한 불복타령이 아닌, 진상규명을 위한 노력이다. 그 수단이 국정조사든, 특검이든, 거리투쟁이든 목표는 다르지 않아야 한다.

<이런 한심한 논쟁에 참여말아야. 출처:채널A 박종진의 쾌도난마>

‘대선불복’이란 표현은 이미 지난 선거가 공정했음을 전제하고 있다. 따라서 “대선불복인가?”라는 질문을 정확히 풀이하면 이렇게 된다.

“(과정이 공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선결과에 불복할텐가?”

민주당은 수차례 이렇게 답했다.

“그건 아니다”

“대선불복인가”라는 질문은 ‘승복’ or ‘불복’의 양자택일을 유도하는 객관식 질문이다. 민주당은 최악의 오답을 선택하며 스스로 저들의 프레임에 갇혀버렸다. 우문우답(愚問愚答)이다.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으니 반복되는 공세에 휘청거리는 것이 당연하다.

민주당은 이 간단한 답을 말하지 못해 곤경에 빠졌다. 상대가 잘못된 전제로 질문을 해 올 때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 정답이다.

“질문이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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