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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연 박경석이 '나쁜 장애인'이 돼버린 이야기

지난 6월 27일 오전 서울 지하철 5호선 애오개역 승강장에서 서울교통공사 보안관들의 제지로 열차에 탑승하지 못한 박경석 전장연 대표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쥐고 있다.

ⓒ 복건우

쫓겨나고, 쫓겨나고, 쫓겨났다.

지난 6월 27일 오전 8시, 휠체어를 탄 장애인과 휠체어를 미는 비장애인이 애오개역 서울지하철 5호선 열차를 타려 했다. 서울교통공사 보안관들이 그들 앞을 막아섰다. 두 사람은 옆 칸으로 자리를 옮겨갔다. 보안관들이 그보다 빠르게 옆 스크린도어를 봉쇄했다.

두 사람은 보안관을 피해 승강장 끝과 끝을 질주했다. 그러자 보안관들은 방패 삼아 들고 있던 이동식 안전발판(휠체어 바퀴가 승강장 틈에 끼지 않도록 지원하는 편의시설)으로 휠체어를 가뒀다. 두 사람은 열차 밖으로, 승강장 밖으로, 역사 밖으로 쫓겨났다.

지하철을 탈 수 없던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애오개역을 나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로 가는 260번 버스를 탔다. 15분쯤 지났을까. 장애인이 찌그러진 피켓을 들고 휠체어에서 내려와 사람들 발밑을 기어갔다. 비장애인은 장애인의 흐트러진 옷가지를 정리했다. 장애인이 마비된 두 다리를 붙들고 사람들을 올려다보며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서울 시민 여러분. 서울 시민 여러분. 장애인도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며 감옥 같은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도록 해주십시오!"

 

지난 6월 27일 오전 애오개역 앞에서 탄 260번 버스에서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포체투지를 진행하고 있다. 정창조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활동가가 기어가는 박 대표 뒤에서 그의 옷가지를 정리하고 있다.

ⓒ 복건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상임공동대표 박경석과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활동가 정창조는 이날도 서울 시민들의 출근길을 막았다. 막아야 막을 수 있는 게 있었다. 휠체어가 굴러간 자리마다 박경석이 외친 말들이 남았다.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해 주십시오."

"감옥 같은 시설에 중증장애인을 몰아넣지 마십시오."

기어가는 박경석을 본 사람들이 정류장에서 하나둘 자리를 떴다. 바닥에 비스듬히 몸을 낮춘 정창조가 텅 빈 휠체어에 박경석을 다시 앉혔다. 박경석의 호흡은 거칠었고, 팔꿈치와 손가락은 후들거렸다. 오전 9시 무렵 버스 뒷문이 열리고 두 사람은 DDP 인근에서 하차했다.

바로 전날 두 사람의 책 <출근길 지하철: 닫힌 문 앞에서 외친 말들>(위즈덤하우스)이 나왔다. 이동권, 교육권, 노동권, 탈시설권리 등 박경석이 2001년부터 외쳤던 구호를 2023년부터 정창조가 1년 넘게 기록한 결과물이다. 박경석의 말을 정창조가 받아 적은, 그리고 두 사람이 함께 세상에 전하고픈 말이 이 책에 담겼다.

"박경석은 과격하고 전투적이고 불법적인 이미지로만 소비되는데 그가 왜 그렇게까지 싸우는지 알릴 수 있도록." 정창조의 말을 박경석이 받았다. "우리를 혐오하는 사람들과 권력을 가진 오세훈(서울시장)·이준석(개혁신당 의원)이 고민해 볼 수 있도록." 그들은 책 출간을 맞아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한 이 날도 쫓겨나고, 쫓겨나고, 쫓겨났다.

지하철과 전장연, 컨베이어벨트와 이쑤시개

 

지난 6월 27일 오전 '서울약자동행포럼'이 열리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앞에 선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와 정창조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활동가. 두 사람 뒤로 '약자동행 T4동행'이라고 적힌 붉은 스티커 수십 장이 벽면에 붙었다. T4는 과거 독일 나치가 30만 명이 넘는 장애인을 학살한 프로그램을 뜻하는데, 박 대표는 이것이 장애인 차별이 공고한 한국 사회의 현실과 다르지 않다고 주장한다.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장애인단체는 이날 DDP 앞에서 장애인 권리를 보장하지 않는 서울시의 서울약자동행포럼을 비판하며 '2024 오세훈 서울시장 장애인권리 약탈포럼'을 열었다.

ⓒ 복건우

"그때 지하철 막을 생각은 없었거든."

2021년 12월 3일, 문재인 정부 임기의 마지막 해였다. 세계 장애인의 날을 맞아 박경석을 비롯한 휠체어 장애인 100여 명이 장애인 예산 반영을 요구하기 위해 홍남기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 집 앞을 찾아가기 위해 나섰다.

그러나 장애인들이 국회의사당역(9호선)과 여의도역(5호선)에서 공덕역(5호선)으로 한꺼번에 '이동'하는 것 자체가 혼란을 가져왔다. 대다수 언론과 경찰은 이 사건을 '45분간 연착', '열차 운행 지연', '출근길 대란' 등으로 다뤘다. 대중교통 시스템의 공백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후에도 경찰의 강경한 태도는 풀리지 않았고 이들의 '이동'은 '이동권 투쟁'으로 점차 확대됐다.

2년 반 전 그날은 정창조가 박경석의 곁에서 기록해 온 '지하철행동'의 시작이었다. 전장연은 지하철 승하차 시위와 출근길 선전전을 통칭해 지하철행동이라고 부른다. 장애인들은 휠체어에서 내려 팔꿈치와 무릎으로 열차 바닥을 기었다. 포체투지(匍體投地), 오체투지를 할 수 없는 장애인이 기어가며 하는 행동이다. 그 사이 9000건이 넘는 전장연 기사가 쏟아졌고(2021년 말~2023년 3월), 전장연은 '지하철 막는 나쁜 장애인'이 되었다.

 

"전장연이 지하철행동 시작하고 4개월쯤 지나서일 거예요. 이준석 당시 국민의힘 당 대표가 우리를 '비문명'이라며 공격하기 시작하더라고요. 그 덕에 '선한 시민'과 '범죄자 장애인' 간의 갈라치기 프레임이 더 강화됐죠." - <출근길 지하철> 7장 '해방되려면, 원형경기장 바깥으로 나가야 돼요' 중

"오세훈 시장이 그렇게 표현을 했는데요, 전장연은 '사회적 테러'를 저지르고 있는데도 장애인이라는 약자 지위를 이용해서 처벌도 제대로 안 받는다고요. (...) 누군가의 일상을 방해하고 그러는 게 테러라면요, 여태껏 이 국가가 장애인들에게 해온 역사는 그럼 장애인들한테 매 순간 테러였어요." - 1장 '출근길 지하철은 왜 안 되는 건가요?' 중

지난 6월 27일 서울 종로구 혜화역 인근 거리에서 정창조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활동가가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의 휠체어를 밀며 함께 이동하고 있다.

ⓒ 복건우

20년 넘게 온갖 투쟁을 이끈 박경석에게 쉽사리 주어지지 않는 것이 있었다. 바로 '기회'였다. "장애인 문제가 100분 토론 주제가 되는 게 꿈"이었다는 그가 공론장에서 투쟁의 이유를 시민들에게 알릴 기회.

정창조는 일문일답 같은 인터뷰가 아니라 구술 기록의 형식을 빌려 이번 책을 썼다. "박경석이란 상징적인 인물의 캐릭터를 최대한 살리면서 장애인 운동의 역사를 전할 방법을 고민한 결과"라고 정창조는 말했다.

"처음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를 생각했는데, 박경석은 깊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더라. 이를테면 지하철행동이 장애인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 지하철이란 공간은 노동자와 학생들을 정시성에 맞춰 굴러가게 하는 '컨베이어벨트' 같은 곳인데, 그 컨베이어벨트 톱니바퀴에 전장연이라는 이쑤시개 하나가 끼어서 사회 전체가 난리가 났으니 이런 시스템 전체의 문제를 제기해 봐야 하지 않느냐는 것."

정창조는 2016년 9월 활동지원사로 박경석을 처음 만났다. 당시 노들장애인야학 교장이었던 박경석과 함께한 세월이 어느덧 8년을 바라보고 있다. 활동지원사를 시작한 뒤로 정창조에게 여러 직책이 생겨났다.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원, 박종필추모사업회 사무국장, 전장연 노동권위원회 간사를 차례로 맡았다.

두 사람은 전장연의 주요 국면마다 함께했다. 2022년 4월 박경석이 이준석 당시 국민의힘 대표와 JTBC '썰전라이브' 일대일 토론을 벌일 때도 정창조가 그의 휠체어를 밀었고, 2023년 11월 혜화역 승강장에서 박경석이 경찰 진압으로 휠체어에서 떨어져 다쳤을 때도 정창조가 그의 활동을 지원했다.

"시민 여러분, 우리도 시민이고 싶습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가 지난 2020년 4월 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에서 시사프로 ‘썰전라이브’에서 일대일 토론 출연을 위해 스튜디오로 이동하고 있다.

ⓒ 이희훈

2년 반이 지나자 언론과 정치의 관심이 크게 줄었다.

박경석은 지난해부터 지하철 지연을 최소화하고 출근길 선전전에 집중하기로 했다. '과격하게만 시위하지 말고 시민들의 지지부터 받아라'는 말이 쏟아졌고, 경찰과 보안관에게 맞서는 활동가들도 정신적·육체적으로 힘들어했기 때문이다. 혜화역 승강장에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침묵시위'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장애인 이동권, 교육권, 노동권, 탈시설 권리는 오히려 사회적 무관심 속에서 무뎌졌다.

 

"문제가 해결되긴 뭐가 돼. 이제 사회적으로다가 관심은 싹 잦아들고 현장 찾아오는 기자 수도 확 줄어버렸어요. 사람들이 우리가 계속 싸우고 있는지도 잘 모르더라고. 오죽했으면 작년에 제가 라디오에 나갔는데, 진행자가 '요새 전장연 소식이 잘 안 들려오던데 지하철 시위는 이제 안 하고 있는 건가요?' 이렇게 물어봤을까." - 1장 '출근길 지하철은 왜 안 되는 건가요?' 중

2023년 11월~2024년 4월 지하철 시위 도중 스물네 명이 경찰에 연행됐고, 이를 취재하러 온 기자들도 서울교통공사에 의해 개찰구 밖으로 끌려 나갔다. 경찰과 보안관으로 가득 찬 승강장과, 그 승강장을 울리는 경고 방송과, 그 방송에 항의하는 장애인들의 퇴거가 출근길 지하철 풍경을 이뤘다. 박경석은 "그렇게 서서히 잊혀 가는 장애인들의 역사를 책으로 기록해 우리들의 투쟁과 전망을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다"고 전했다.

지금도 출근길 지하철엔 박경석이 있다. 출근길 지하철이란 컨베이어벨트에서 가장 먼저 치워진 장애인들이 있다. "서울 시민 여러분!" 박경석이 열차 바닥에 눕는다. 23년 동안 외쳐 온 '그 구호'를 다시 외친다.

"장애인도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며 감옥 같은 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도록 해주십시오!"

 

지난 6월 27일 서울 종로구 혜화역 인근 카페에서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왼쪽)와 정창조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활동가가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두 사람이 전날 출간된 <출근길 지하철: 닫힌 문 앞에서 외친 말들>을 들어 보이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 복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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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박경석, #정창조, #전장연, #포체투지, #출근길지하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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