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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연 사건의 전말①] 윤미향은 ‘국가 보조금 사기꾼’이었을까?

1심 선고 앞둔 윤미향 의원, 재판 쟁점 정리

최지현 기자 cjh@vop.co.kr

2016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1215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서 당시 정대협 윤미향 대표가 발언하고 있는 모습. 자료사진. ⓒ양지웅 기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과 동고동락하며 30년 가까이 시민사회단체에서 활동해온 윤미향 의원이 사기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조만간 1심 선고를 받을 전망이다. 그가 뒤집어 쓴 주된 혐의의 하나는 단체에서 활동하면서 정부를 속여 국고보조금을 받아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국내에서 뿐만 아니라 국외에서도 존경을 받던 그에게 하루아침에 ‘범죄자’라는 낙인이 찍혔다. 30년을 이어온 ‘수요시위’도 혐오세력의 공격에 몸살을 앓고 있다. 한술 더 떠 윤석열 정부는 윤 의원의 사건을 계기로 정부의 민간단체 보조금 지원 현황을 전수조사하고 이를 통제하겠다고 엄포한 상황이다.

하지만 윤 의원의 재판 과정에서는 기존에 알려진 것과는 사뭇 다른 정황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결백을 주장하는 윤 의원과 그를 공격하는 검찰과 정부, 그리고 언론들. 재판부는 마지막에 누구의 손을 들어주게 될까. 오랜 기간 이어지고 있는 1심 공판의 쟁점을 정리하며 사건을 돌아봤다.

1.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을 허위로 등록해 보조금을 부정 수급했다?

핵심 쟁점 중 하나는 윤 의원이 관장을 지내며 운영했던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을 관할청인 서울시에 등록할 때 부정한 방법을 썼느냐는 것이다. 부정한 방법으로 등록된 박물관을 활용하여 문화체육관광부와 서울시로부터 각종 보조금을 받은 것은 위법이라는 게 검찰의 논리다. 여기서 검찰이 말하는 부정한 방법이라는 것은 박물관 등록 요건의 하나인 ‘학예사’의 존재 여부다.

서울 마포구에 자리를 잡고 있는 이 박물관은 윤 의원이 이사장을 지냈던 정의기억연대(구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부설기관으로,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들이 겪었던 역사를 기억하고 교육하는 공간이다. 2013년 1월에 서울시장 명의의 박물관 등록증을 발급받았다.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16조에는 ‘박물관을 등록하려는 자는 학예사를 갖춰야 한다’는 대목이 있다. 검찰은 이 박물관이 법률상 박물관 등록 요건인 ‘학예사’를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담당 공무원을 속여 박물관을 등록하고, 이를 이용해 보조금을 신청해 받았다며 윤 의원에게 사기 및 보조금 관리법, 지방재정법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구체적으로 정의연(구 정대협)은 문체부로부터 총 10개 사업에 걸쳐 합계 1억5천860만원 상당의 국고보조금을, 서울시로부터 총 8개 사업에 걸쳐 합계 1억4천370만원 상당의 지방보조금을 각각 교부받았다. 기소 시점인 2020년까지의 내역이다.

일단 박물관을 등록할 당시 A씨의 학예사 증명서 등이 제출됐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여기서 두 가지 쟁점이 생긴다. 첫 번째는 ‘A씨가 박물관 등록 사실을 알고 있었느냐’다. 여기서 A씨와 윤 의원의 입장이 엇갈린다.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증거 자료에 따르면 A씨는 2008년부터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건립위원회에서 정대협 상근직으로 근무했다. 약 2년간 활동한 정대협에서 일을 그만둔 그는 정대협이 박물관 등록 절차를 밟을 무렵인 2012년 12월 이메일로 정대협에 자신의 이력서와 함께 ‘3급 정학예사 자격증’을 보냈다. 훗날 정대협은 이 자격증을 통해 박물관을 관할청에 등록할 수 있었다.

윤 의원은 “A씨가 박물관 등록시 학예사가 돼주겠다고 허락했고, 그에 따라 이력서와 학예사증을 보내줘서 등록한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A씨는 검찰 조사와 재판 과정에서 ‘참고용’으로 보냈을 뿐이며, 박물관 등록에 자신의 자격증이 활용될 줄은 몰랐다고 주장했다.

다만 자격증을 ‘참고용’으로 보내준다는 게 일반적이지 않다는 점, 자격증을 보낼 당시 이메일에 “박물관 등록하시는데 도움 필요하시면 또 말씀해주세요”라고 적혀있던 점 등은 A씨의 주장에 반할 수 있는 정황으로 지적됐다. 무려 10년이 지난 일이라서 구체적으로 기억이 나지 않거나 그로 인해 진술이 일관되지 않다는 점도 지적됐다. A씨가 ‘나는 단순히 피해자’라는 점을 검찰에 입증하려고 애쓴 흔적도 엿보인다.

지난 5월 5일 서울시 마포구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에서 박물관 개관 10주년 기념식이 열린 가운데 한 중학생이 박물관을 둘러보고 있는 모습. 자료사진. 2022.05.05 ⓒ민중의소리

두 번째 쟁점은 ‘A씨가 박물관에 머물며 상시근무했느냐’다.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에는 ‘등록’ 시 학예사를 갖춰야 한다는 근거만 있지, 학예사가 박물관으로 출근해 ‘상근’해야 한다는 명시는 없는 상태다. 이 때문에 법 해석이 서로 엇갈리고 있다. 검찰은 학예사가 박물관에 상근하지 않았다는 점을 문제 삼으며 허위 자료로 박물관을 등록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윤 의원은 “A씨가 (박물관으로) 출근하진 않았지만 학예사 출근이 (박물관 등록의) 전제는 아닌 걸로 안다”며 “언제든지 일이 필요할 때 학예사로서 일 할 수 있었고 자문이 필요할 때 자문을 해줄 수 있었다”고 반박했다. 서울시, 문체부 담당 공무원들 역시 학예사가 박물관으로 출근해야 하느냐에 대해서는 명시적 기준이 없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박물관 등록을 담당했던 서울시 공무원은 “학예사의 상근 여부는 (박물관등록에) 결정적인 사안이 아니었다”라고 증언하며 당시 상근 여부를 확인하라는 문체부 지침 등도 없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나아가 학예사 문제로 박물관 등록이 취소되는 등 문제가 발생한 전례도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박물관 등록 심사 기준에서 ‘학예사가 상시근무하고 있는지 여부’는 여러 평가 항목 중 참고할 사안이지 필수 요건이 아니라는 게 문체부 지침서에 적혀 있기도 했다. 문체부가 각 지방자치단체에 보낸 ‘박물관 및 미술관 등록업무 지침’에 따르더라도 학예사가 박물관 상근자인지 여부 평가 항목은 ‘정량평가’가 아니라 ‘정성평가’ 사안이었다.

윤 의원의 변호인이 제시한 국공립박물관 등록 현황에도 학예사 인력 표기가 안 된 곳, 아예 없다고 표기된 곳이 있었다.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처럼 국고보조금을 지원받은 사립박물관의 내역에도 이런 경우가 수두룩했다.

박물관으로서 기능이 실제로 없었거나 보조금을 다른 용도로 허투루 썼다면 큰 문제가 되겠지만 그런 것도 전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은 국고보조금 관련 평가에서 계속 우수한 성적을 받아온 건실한 박물관이었음이 재판 과정에서도 확인됐다.

예를 들어 서울시 평가단은 2019년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이 ‘평화시민들과 함께 외치는 평화’라는 사업으로 보조금을 신청한 것에 대해 현장실사를 하고 “참신하다”며 40점 만점에 40점을 줬다. 윤 의원의 변호인은 그해 사립박물관 심사표를 제시하며 “34개 (박물관) 중 현장실사에서 만점을 받은 곳은 5곳밖에 없는데, 그중 한 곳이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이라고 강조했다.

이 과정에서도 역시 학예사의 상근 여부는 평가의 중요 지점이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윤 의원의 변호인은 배점 항목을 제시하며 “학예사 상근 여부를 보면서 평가하는 항목은 없다”고 지적했다. 그 외에 다른 사안에서도 “학예사 부재가 우려되지만 콘텐츠가 우수하다”는 의견이 적힌 평가단 의견서가 공개되기도 했다.

윤 의원의 주장대로 A씨는 학예사로서 자문 역할을 할 수 있는 자리에 있기도 했다. A씨가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운영위원회 운영위원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 2015년 5월 한 차례 운영위 회의에 참석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후로 A씨는 운영위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A씨는 참석 여부를 묻는 박물관 측의 계속된 연락에 응하거나 답변하지 않았다. 자신이 운영위원이라고 분명히 인식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뒤늦게 박물관 측은 A씨가 운영위원으로 참석할 의지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 A씨를 운영위원 명단에서 뺐다고 한다.

윤미향 무소속 의원 ⓒ윤미향 의원실

2. 여가부 사업 수행 인건비를 정대협 경비로 사용한 것은 불법이다?

정의연(구 정대협)이 여성가족부 사업에 참여해 받은 국고보조금도 논란이다. 인건비 명목으로 국고보조금을 받아놓고 목적에 맞게 사용하지 않았다는 혐의다.

검찰에 따르면 정의연은 여가부의 사업인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치료사업’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보호시설 운영비 지원사업’을 2014년 1월부터 2020년 4월까지 총 7차례 걸쳐 진행하고 인건비 명목으로 총 6천520만원을 받았다. 하지만 인건비를 받은 활동가들은 그 돈을 정의연에 돌려주며 운영비로 사용하도록 했다. 정의연은 인건비 명목으로 보조금을 받은 뒤 사업을 직접 진행한 활동가의 계좌로 돈을 이체했는데, 나중에 전액이 다시 정의연 명의의 계좌로 들어온 것이다.

이를 두고 검찰은 윤 의원이 애초 정의연 운영비 등으로 사용할 계획이었음에도 인건비로 사용할 것처럼 여가부에 허위로 신청해 국고보조금을 받았다며, 이는 사기이자 보조금관리법 위반이라고 봤다.

하지만 윤 의원은 “반환이 아니라 기부”라며 적용된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윤 의원은 “본인들이 노동하고 급여를 지급 받아서 본인들의 의사로 그 급여를 기부한 것”이라며 “얼마를 기부했는지 구체적인 건 알 수 없지만 만약 그랬다면 본인 의사”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해당 사업을 진행하고 인건비를 받았던 과거 정대협 활동가는 본인의 ‘양심’에 따라 정대협에 기부한 것일 뿐이라고 재판에서 증언했다. 전직 정대협 상근활동가 B씨의 이야기다. 그는 2014년 1월부터 1년 동안 여가부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치료사업’을 수행하면서 인건비로 총 1천800만원을 받았다. 총 2억 원가량의 예산이 투입되는 큰 규모의 사업이었지만, 이를 수행하기 위해 책정된 인건비는 단 한 명의 인건비인 월 150만원에 불과했던 것이다.

B씨는 인건비를 기부한 이유에 대해 “사업을 수행하는 데 있어 제가 회계업무 등 다양한 실무를 했지만, 전국 순회 방문 사업 같은 경우에는 저 혼자서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고 (정대협 상근활동가가) 다 같이 수행했다”며 “혼자서 인건비를 받기에는 늘 함께 야근하면서 고생했던 상근활동가들에게 인간적으로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있었다”고 밝혔다.

B씨는 자신이 기존에 전담하던 SNS 홍보 등의 업무에 여가부 사업 업무까지 겹치면서 업무가 과중됐다고 밝혔다. 이를 상근활동가들이 서로 분담해 처리했다는 것이다. 당시 정대협 상근활동가가 6~7명에 불과했기 때문에, 너나 할 것 없이 서로의 일을 도우며 늘 함께 하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그러면서 B씨는 “기부는 제 개인적인, 양심적인 선택이었다”고 강조했다.

재판에서 검사는 B씨를 “기소유예 처분을 받은 피의자성 증인”이라고 소개하면서 그 발언의 순수성을 의심하기도 했다. 검사는 ‘그렇게 힘들게 일해서 번 돈을 왜 기부하느냐’며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검사는 “그런 의사를 정확하게 전달하려면 n분의 1로 돈을 나눠주면 되는 거 아니냐”고 묻기도 했는데, 이에 B씨는 “다른 활동가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정대협이라는 시민단체에 대한 지지가 있었기 때문에, 단순히 기부금의 목적으로만 사용하기 보다는 정대협 후원과 상근활동가 후원이 다 연결돼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는 사실 정의연뿐만 아니라 자금이 넉넉하지 않은 시민사회단체들 사이에서는 종종 볼 수 있는 ‘관행’이기도 한데, 검사는 이런 ‘관행’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태도였다.

실제 정의연(구 정대협) 역시 자금 사정이 좋았던 건 아니었다. 윤 의원이 1992년 정대협 상근간사로 일할 당시 받았던 활동비는 단 30만원에 불과했다. 조직 규모가 커지면서 활동비도 점점 올랐으나 일반 기업에 비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다. 사무국장을 할 땐 70만원을, 퇴직했다가 5년 지나 사무처장으로 복귀할 땐 210~220만원 정도를 활동비로 받았다. 정대협 상임대표를 지낼 때 처음으로 직급수당 10만원을 더 받아 230만원의 활동비를 받았고, 퇴직할 땐 마지막으로 300만원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외 수당은 전무했다. 초과근무를 하더라도 사정상 수당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활동가들은 모두 한 마음이 되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명예회복 등을 위해 묵묵히 활동했다.

B씨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사기업에 다니다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 정대협으로 이직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제가 전에 일하던 곳에서 받았던 급여는 250만원 이상을 실수령하는 정도였는데, 여기선(정대협) 150만 원밖에 안 준다고 했다. 그래서 제가 다른 활동가들에게 급여를 물어봤는데 저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아 굉장히 놀라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다”고 말했다. ‘더 적은 월급을 받는데도 괜찮았냐’는 판사의 질문에 B씨는 “처음엔 놀랐지만 정대협에서 10년 이상 활동한 대표님과 다른 활동가 모두 낮은 급여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 불만이 있다기 보다는 오히려 존경스러웠다”고 강조했다.

과거 정대협이 이번에 문제가 된 여가부 사업을 맡게 된 것도 사실은 여가부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정대협이 사업을 하기 직전해인 2013년까지는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이 여가부의 위탁을 받아 사업을 수행했다. 이를 정대협이 인수인계를 받아 사업을 이어갔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할머니들에 대한 지원 규모는 더 늘어난 반면, 인건비는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여가부 입장에선 ‘더 싼 값’에 ‘더 질 높은’ 사업을 이어갈 수 있게 된 셈이다. 검찰의 논리대로 만약 정대협이 단순히 국고보조금을 가로채기 위해 사업을 벌였던 것이라면, 이런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려야 하는 사업을 굳이 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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