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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을 치유하는 언론 VS 갈등을 조장하는 언론

[이상민의 경제기사비평]

고1 아이가 다이어트를 결심했다고 한다. “아니 넌 전혀 살찌지 않았는데 왜 다이어트를 하니?” “내가 5년 전보다 몸무게가 29% 급증했단 말이야.”

5년간 29% 몸무게가 늘었으면 ‘급증’한 것일까? 도대체 ‘급증’의 정의가 무엇일까? 다른 아이들 몸무게 평균 증가율을 조사해봐야 하지 않을까? 만약에 다른 아이들 몸무게 평균 증가율이 29%보다 크면 우리 아이 몸무게가 ‘급증’했다고 할 수 없다. 29% 증가 사실만으로 다이어트를 주장하면 안 된다.

조선일보 12월28일 1면 및 5면 기사다. <문정부, 민간단체에 보조금 연 5조 뿌렸다>, <민간단체 사업 연 25만 건 정부지원… 5년간 29% 급증>.

5조 원이 얼마나 큰 금액일까? 1조 원, 2조 원, 다음은 많다는 아니다. 그래서 조선일보는 5년간 29% 급증했다고 부연했다. 그런데 지난 5년간 우리나라 총지출은 얼마나 증가했을까?

2017년 우리나라 총지출은 406.6조 원에서 2021년 600.9조 원으로 5년간 47.8% 증가했다. 국가 총지출이 47.8% 증가하는 동안 민간단체 보조금 건수는 29% 증가했으니 <총지출 증가율에 크게 못미치는 민간단체 보조금… 민간 거버넌스 저버린 문정부 >란 제목도 가능하겠다. 지원 건수뿐만 아니라 지원 금액도 총지출 증가율을 하회한다. 최소한 민간단체 보조금은 ‘급증’한 것은 아니다. 보조금이 많다는 이미지를 주기 위해서 ‘뿌렸다’, ‘급증’이라는 서술어가 등장한다. 통계를 전하는 기사 제목은 좀 더 드라이할 필요가 있다.

▲ 2022년 12월28일 조선일보 5면

오해하지 마시라. 민간단체 지원금이 총지출 증가율을 하회 하니 민간단체 지원금을 더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민간단체 보조금 사용내역을 조사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보조금 지급액이 많든 적든 국가의 보조금 사용내역은 당연히 점검되어야 한다. 그런데 보조금 사용내역을 조사해야 한다는 당연한 요구를 가로막는 거의 유일한 논리는 윤 정부가 정파적 목적으로 민간단체 보조금 내역을 조사한다는 오해(?)다. 보조금 사용내역은 철저하게 규명되어야 한다. 그러나 보조금 조사 목적이 건전한 민간 거버넌스 확립이 아니라면 문제다. 만약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 단체 보조금 삭감 목적이거나, 문정부 이미지에 흠집을 내기 위한 정파적 목적이라고 오해(?)를 받는다면 민간 보조금 조사는 명분이 떨어지고 국민적 저항을 받을 수도 있다.

정부 보도자료에는 문재인 정부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정부는 문정부 5년간 민간 보조금 지원 내역을 공개한 것도 아니다. 정부는 2016년부터 2022년까지 7년간 보조금 지원 내역을 공개했다. 그런데 일부 언론은 7년간 보조금 사용 내역을 전하지 않는다. 문정부 5년간의 보조금 내역만을 전한다. 정부의 보조금 지급 내역을 점검하는 행동도 정파적 행동으로 해석해서 기사화한다. 결국, 보조금 사용내역 점검이라는 행동도 구정권과 신정권의 갈등으로 포장하여 기사화 한다. 언론의 역할은 공론장에서의 토론을 통해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언론이 오히려 사회적 갈등을 조장하는 역할을 선두에서 한다고 생각이 들때가 자주 있다.

▲ 2022년 12월28일 이관섭 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이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비영리 민간단체 보조금 현황과 향후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물론, 정부는 스스로 지난 정부 흠집내기와 입맛에 맞지 않는 민간단체 보조금 삭감이으로 읽히도록 ‘떡밥’을 제공한 측면도 많다. 보조금 부정 사용 예시를 보면 ‘공산주의’, ‘종북’, ’반미’, ‘민노총’, ‘김일성’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온다. 보조금 수령 단체 대표가 ‘공산주의’를 추구하고 SNS에 반미 성향의 글을 썼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보조금 단체 대표가 SNS에 반미적 글을 올리는 것을 어떻게 걸러낼 수 있을까? 보조금 단체 심사시에 블라인드 테스트를 할 때도 있다. 즉, 보조금 수령 단체를 공정하게 선정하고자, 단체명을 가리고 보조금 사업 수행 능력에 대한 정보만으로 공정한 평가를 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상황에서 특정 보조금 사업을 수행하는 단체 대표가 SNS에 반미 성향의 글을 올린 것이 보조금 사업의 문제점이라는 정부 보도자료는 입맛에 맞지 않는 단체의 보조금 수령을 줄이라는 정파적 목적으로 읽힐만 하다.

결국, 정부는 보조금 내역을 조사한다면서 지난 정부를 흠집내고자 하는 ’떡밥’을 흘렸다. 그리고 언론은 이 ‘떡밥’을 확대 재생산해서 지난 정부가 정치적 목적으로 좌파단체에 보조금을 뿌렸다고 보도를 한다. 이렇게 정부의 행정 점검 행위를 정파적으로 과잉 포장하고 확대 재생산 했을 때의 최대의 피해는 정부 보조금 사업이 잘 집행되는지 조사하는 진솔한 점검행위다. 그래서 정부가 보조금 사용 내역을 점검하면서 이를 정파적 목적으로 활용하고자 한다면 언론은 보조금 사용내역 점검을 보다 차분하게 조망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정부 보도자료에 조차 나오지 않는 정파적 의미를 더욱 확대 재생한 하면, 진솔한 보조금 사용점검은 더욱 어려워지고 사회 갈등은 더욱 커질뿐이다.

출처 : 미디어오늘(http://www.media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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