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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언론, 그리고 기자라는 ‘아이’들에게 고한다

확인될 때까지 지켜야 할 최소한의 기자윤리
 
임두만 | 등록:2013-09-10 11:32:57 | 최종:2013-09-10 12:45:28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인쇄하기메일보내기
 
 


 

나는 며칠 전 매카시즘에 관련된 포스팅을 하면서 미국에서 약 4년 간 광풍을 일으켰던 이 사건의 물길을 돌린 사람이 당시 CBS의 에드워드 머로우 기자라고 했다. <매카시즘 광풍과 종북놀이 광풍>

당시 미국의 여당이던 민주당도, 매카시가 이끄는 ‘비미활동위원회(非美活動委員會, Committee on Un-American Activities)’가 무서워 반공만 부르짖었고, 매카시 소속당인 공화당은 이 광풍의 덕을 톡톡히 보면서 오랜 민주당 정권을 무너뜨리고 정권탈환에 성공했다.

그런데 이의 가장 확실한 도우미는 언론이었다. 그 수많은 미국 언론들, 매카시의 한마디 한마디를 보도하면서 살을 붙이고 퍼뜨리는 나팔수 역할만 하므로 억울한 희생자의 인권 등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이를 깨부순 이가 에드워드 머로우다. 1954년 3월 9일, 머로우는 자신이 진행하는 <See It Now>라는 시사 프로그램에서 매카시의 주장을 조목조목 따지며 그의 주장이 거짓이라고 논박했다.

2013년 대한민국, 이석기 사건과 관련‘보도’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거의 모든 기사들은 국정원, 검찰, 새누리당, 정부, 공안당국이라는 이름표 아래 보도소스는 익명으로 처리되고 있다. 그리고 그 익명의 우산아래 ‘카더라’천국으로 만들고 있다. 아무도 어느누구도 현재의 ‘종북몰이’광풍이 비정상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무릇 모든 사안은 음이 있고 양이 있는데 음은 익명으로 확산되고 양은 감춰진다.

오늘 아침 네이버 스마트폰 탑을 차지한 서울신문의 <RO핵심 ‘공중전화’로 北인사 우회 접촉했다“는 기사, 그리고 이어진 관련기사들… <국정원, 수원 공중전화 1년여 감청… ‘RO·北 커넥션’ 전모 파악> <고유번호 파악후 회선통해 통화내용 빼내> <RO 핵심근거지 ‘수원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까지, 전 기사를 모두 읽어보았다. 그러나 전체 기사가 전하는 내용이라고는 모두 ‘공안당국’ 또는 ‘국정원’의 소스를 이용한 받아쓰기에다 이석기와 RO는 빨갱이 집단이라고 말하는 추정기사였다.

또 국민일보의 <공안당국이 전하는 ‘이석기 영장심사’… “감청·압수수색 증거로도 충분”>이나 <국정원, '압수수색 방해' 통합진보당 당원 수사 의뢰> SBS TV, <"RO의 수장 맞죠?" 국정원, 이석기 자백받기에 초점>노컷뉴스까지 위에 언급한 서울신문 기사와 똑같은 논조였다. 즉 국정원이 내놓는 소스 외에 통합진보당의 해명을 끼워넣는 짜깁기의 전형이었다.

그리고 압권은 연합뉴스가 오늘 오후 2시 30분 경에 보도한 <이석기 나흘째 진술거부…국정원 "수사진행 문제없다">라는 기사다.

이 기사는 국정원의 수사에 피의자 이석기가 진술거부권을 행사함으로 수사에 협조하지 않고 있다는 팩트를 전하며 <판사출신 한 변호사는 “피의자가 묵비권을 고수할 경우 결국 재판에서는 자백없이 증거만으로 공방을 벌이게 된다”며 “이 경우 수사기관이 확보한 증거가 명확하다면 피고인은 ‘반성의 기미가 없다’고 비춰져 중하게 처벌되고, 증거가 명확치 않더라도 스스로 해명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것에 진술의 신빙성을 의심받을 수 있다. 결국 스스로에게 좋을 것이 없다”고 설명했다.>고 덧붙였다.

나는 이 기사를 쓴 기자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피의자의 진술거부권, 이는 법이 정한 피의자의 권리다. 모든 사법경찰리는 범죄의 혐의자를 체포할 때 그 혐의를 받은 이에게 피의자의 권리를 고지할 의무가 있다. 이를 미란다 원칙이라고 한다. “당신은 이러이러한 범죄혐의가 있어 체포합니다. 당신은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으며 묵비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습니다”라는 내용이 주를 이루는 고지다. 즉 피의자의 권리 중 진술거부권(묵비권)은 피의자가 자신의 진술이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생각할 때 사용할 수 있는 당연한 권한이다.

현재 이석기가 진술거부권을 행사하고 있는 것은 이석기 스스로 자신이 가진 고유권한을 행사하고 있음이다. 따라서 그 진술거부권이 자신에게 불리하더라도 그것은 이석기 스스로 책임질 일이다. 그러함에도 이석기가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는 이유는 자신을 소추하려는 소추기관이 가진 증거와 자신이 가진 증거를 놓고 재판정의 판사 앞에서 따지겠다는 계산이다.

따라서 위 변호사의 말대로 피의자의 진술이 없더라도 검찰이 소추시 제기하는 증거가 완벽하다면 피의자는 ‘개전의 정이 보이지 않는 점’이란 괘씸죄까지 더해진 가중처벌도 따른다. 특히 이석기는 지금 20여 명의 변호사가 변호인단을 구성한 메머드 변호인단의 조력을 받고 있다. 이 변호인단이라고 저 판사출신 변호사가 말하는 내용을 숙지하지 않을 리 없다. 때문에 이석기는 이런 다각도의 조력과 판단에 의해 진술거부권을 행사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모름지기 기자라는 직업을 갖고 기사를 쓰려면 위의 판사출신 변호사가 말한 내용과 반대되는 생각을 가진 변호사의 리딩도 덧붙일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그러지 않았다. 이는 간단하게 해석해서 “이석기는 이런 불리함에도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는데 이는 진술이 자신에게 더 불리하기 때문”이라는 단정으로 볼 수 있다. 결국 “그래봐야 너만 더 다쳐”식의 검찰 국정원을 대변한 기사라는 얘기다.

며칠 전 KBS 추적 60분에서 방영된 중국동포 남매 간첩사건… 이 사건을 조작한 국정원은 탈북한 여동생에게 “오빠가 간첩이라고 자백하면 김현희처럼 살게 해주겠다”고 회유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그리고 어제 한겨레는 이석기 변호인단을 소스로 민혁당 사건의 예를 들면서 이석기에게 ‘공소보류’를 무기로 회유하고 있다는 내용도 보도했다.

이거다. 현재 국정원 등 소추기관은 전방위로 이석기 등을 압박하고 있다. 그 압박의 수단이 회유와 협박, 그 방법은 직접 당사자를 놓고 하는 방법과 언론을 통해 하는 간접적 방법… 위에 적시한 기사 내용을 접한 가족 친지 등이 겁을 먹고 피의자의 가중처벌을 우려 대신 설득해 주기를 바라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을 KBS추적 60분은 적나라하게 까발렸다.

한국언론, 그리고 기자라는 ‘아이’들, 당신들에게 에드워드 머로우 같은 기개를 바라지도 않는다. 그러함에도 역사의 현장에서 기록자라는 지위를 누리고 있다면 기록자로서 최소한의 중립성은 요구 한다. 우리는 불과 5년 전 당신들의 패악질에 대통령을 지낸 인물의 자살도 목격했고, 50년 전 전직 대통령 후보가 사형수로서 형장에 이슬로 사라진 역사도 갖고 있다.

그 외에도 수많이 일어났던 공안사건들… 그 공안사건으로 희생되었으나 나중 재심에서 무죄로 복권된 사람들… 인혁당, 민청학련, 김대중내란음모 등의 사건들… 당신들의 선배가 당시 써제꼈던 기사들을 보면서 그 패악질이 무고한 생명들에게 어떤 고통을 안겼는지 살피기 바란다. 이것은 이석기 일당이 ‘여적죄’로 처벌될 반역의 무리라고 확인될지라도 마찬가지다. 확인될 때까지 지켜야 할 최소한의 기자윤리를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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