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취임 7개월 최대 위기 맞은 박근혜

원칙·신뢰 흔들... 취임 7개월 최대 위기 맞은 박근혜

복지 등 대선 공약 줄줄이 백지화... 박 대통령 국정 리더십 타격 받나

13.09.24 09:47l최종 업데이트 13.09.24 09:47l

 

 

기사 관련 사진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7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40회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청와대

관련사진보기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7개월 만에 최대 위기를 맞았다. 경제민주화·복지·권력기관 독립 등 여러 대선 공약이 새 정부 출범 1년도 채 안돼 폐기될 운명을 맞으면서 박 대통령의 정치적 자산인 원칙과 신뢰가 뿌리부터 흔들릴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 가운데 후퇴가 가장 두드러지는 분야는 복지다. 복지는 경제민주화와 함께 박 대통령의 중도층 끌어안기를 상징하는 핵심 공약이었다. 그 중에서도 65세 이상 노인에게 매달 20만 원의 기초연금 지급, 4대 중증질환(암·심장·뇌혈관·희귀난치성질환) 진료비 전액 국가부담 등과 같은 복지 확대 공약은 고령층과 중산층의 환심을 샀다.

대선 때는 "반드시 공약 지키겠다"고 했지만...

대선 당시에도 재원 마련 등 실현 가능성을 두고 논란이 일었지만 박 대통령은 "공약은 반드시 지킨다"며 진화에 나섰다. 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 당시 야권에서 복지 공약 베끼기나 진정성에 대한 의구심을 제기할 때마다 "실현 가능한 것만을 공약으로 제시했다"고 반박해 왔다.

대통령직 인수위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4대 중증질환 보장 확대 공약의 후퇴 논란이 일었을 때 박 대통령은 "제가 한 공약은 국민과의 약속이니까 반드시 지켜야 한다. 그래야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쌓인다"고 강조했다

새 정부가 출범한 뒤에도 청와대의 기조는 달라지지 않았다. 박 대통령을 비롯해 청와대 참모진들은 공약 수정 가능성이 거론될 때마다 강하게 부인해 왔다. .

지난달 초 정부가 마련한 세제개편안이 촉발한 복지공약 축소 논란 국면에서도 청와대는 공약 수정은 없다고 공언했다. 당시 청와대 참모들은 "대선 때 제시한 공약은 박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실현 가능성까지 꼼꼼하게 챙긴 것이다", "대선 공약 중 인수위에서 추린 140개 국정과제는 매우 세밀하고 재원 마련을 위한 공약가계부까지 마련했다", "임기 첫해부터 공약에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했었다.

신뢰 강조하다, 취임 7개월만에 백기 든 박 대통령

박 대통령은 지난달 20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정부가 국민들의 세금 부담을 덜 주고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나가려는 노력을 왜곡해서 해석하기보다는 다같이 힘을 모아 끝까지 노력해 나갈 필요가 있다"며 '증세도, 복지 축소도 없다'는 점을 재확인 했다.

하지만 신뢰·약속을 강조하던 박 대통령은 임기 첫 해, 박근혜 정부의 철학과 국정운영 기조가 반영되는 첫 예산안 마련 과정에서 백기를 들었다.

오는 26일 발표할 정부의 내년도 예산안에는 기초연금과 4대 중증질환 보장 확대 공약이 대폭 축소돼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기초연금은 소득하위 70~80% 계층에게만 차등지급하고, 4대 중증질환 보장 확대도 축소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지방자치단체와 재정 투입을 놓고 갈등하고 있는 무상보육, 반값등록금도 후퇴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 후퇴는 복지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검찰 등 권력기관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보장 약속도 사라졌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임기가 보장된 경찰청장, 감사원장은 이미 낙마했고 채동욱 검찰총장은 청와대의 찍어내기 논란 속에 이미 사의를 밝혔다.

전시작전권 환수를 차질 없이 추진하겠다던 대선 공약도 국민적 공론화 과정 없이 밀실에서 연기하기로 했다.

약속 지키겠다며 신뢰 위기 키운 박 대통령... 정치적 자산 흔들
 

기사 관련 사진
지난 17일 추석을 앞두고 경기도 용인 중앙시장으로 민생현장 탐방에 나선 박근혜 대통령이 환호하는 상인들에게 손을 들어 답하고 있다.
ⓒ 청와대

관련사진보기


사실 신뢰의 위기를 키운 것은 박 대통령이다. 복지 공약만 해도 '증세 없는 복지'라는 고차원 방정식에는 애초에 해법이 없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지만 '풀어낼 수 있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 같은 대국민 선전에는 '약속을 지키는 정치인'이라는 박 대통령의 정치적 자산도 동원됐다.

하지만 '공약은 반드시 지키겠다'는 박 대통령의 약속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정치권에서는 대선에서 박 대통령을 가장 많이 지지했던 노년층과 중산층이 직접 혜택을 보게 되는 핵심 복지공약이 흔들리면서 국정원 대선 개입 문제와는 차원이 다른 신뢰의 위기가 닥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월급쟁이 증세로 반발을 샀던 세제개편안 보다 더 큰 역풍이 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도 이번 사안이 정권 전반에 대한 신뢰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는 것 같다. 원칙과 신뢰라는 박 대통령의 정치적 자산이 상처를 입을 경우 국정운영의 동력과 리더십은 땅에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박 대통령이 직면한 위기의 진원지는 정권의 외부가 아니라 내부라는 점에서 심각성이 크다. 대선에서 국민에게 한 약속을 지킬 수 있느냐는 정권의 기본 역량과 관련된 문제다. 또 복지는 박 대통령이 그토록 강조해왔던 민생 문제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야당의 장외투쟁 탓이라는 바람막이 속에 숨을 수도 없다.

정면돌파 선택한 박 대통령, 시험대 올랐다

박 대통령이 직접 대국민 설득 작업에 나서기로 한 것도 사안의 심각성을 반영한 결과로 해석된다. 박 대통령은 오는 26일 내년도 예산안이 상정 심의 되는 국무회의에서 기초연금 등 복지공약 후퇴 논란에 대해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이정현 홍보수석은 23일 기자들과 만나 "이번 주 목요일에 내년도 예산안이 국무회의에 상정되는데 박 대통령이 직접 국무회의를 주재하게 된다"면서 "이 자리에서 기초연금 문제 및 4대 중증질환의 국고지원(확대 공약)에 대한 박 대통령의 말씀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국무회의는 당초 국무총리가 주재하기로 돼 있었지만 박 대통령이 직접 하기로 바꿨다. 복지 축소에 따른 반발을 정면돌파 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셈이다.

민주당 등 야권은 이미 "공약 먹튀", "대국민 사기극" 등의 수사를 동원해 총공세에 나섰다. 시민사회의 반발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박 대통령이 이날 대국민 호소를 통해 야권의 반발을 잠재우고 국민들을 설득해 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재정이 부족해 복지 축소가 불가피하다고 하든, 복지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증세가 불가피하다고 하든, 진보·보수 어느 한쪽의 공약 파기 비판은 피할 수 없다. 박 대통령이 퇴로 없는 시험대에 올랐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