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나마 세금 때문에 의무적으로라도 비계열사들에 줬던 일감마저도 끊으려고 하는 거다. 제가 국회 토론회에도 여러 번 나가 '그것마저 없애버리면 재벌·대기업들과 지분 관계없는 중소·중견기업들 일감 다 끊긴다, 절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아마 (지난해 12월에 일몰을 3년 연장한) 그 부분은 기재부가 좀 양보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선 기업 소득의 사외 유출 촉진 효과가 없다며 폐지를 건의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효과가 없다고, 이마저 없애버리면 어떻게 되겠나. 더 효과가 없지 않겠나. 논리가 성립이 안 된다. 실제로는 투자상생협력촉진세제로 거둬들인 세금이 점차 증가하는 추세에 있었다. 이 세금을 회수해 정부 재정자금이 생기면, 중소·중견기업들에 다른 형태로 조세 지출을 해주면 된다."
투자상생협력촉진세제는 자기자본이 500억원을 초과하거나,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속한 기업을 대상으로 미환류소득(사내유보소득)의 20%를 과세하는 세제다. 홍영표 의원이 공개한 국세청 자료를 보면, 해당 세제로 인해 기업의 사업소득 대비 환류소득 비율은 2018년 49.3%, 2019년 59.8%, 2020년 63.8% 등으로 높아졌다. 기업이 사업소득을 사내에 유보하지 않고 투자, 임금, 상생협력 등에 쓴 비용이 증가했다는 얘기다."
-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2차례나 세제개편이 이뤄졌는데, 기재부가 낙수효과 경로를 대부분 끊어놓은 상황에 대해 시민들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이준구 서울대 교수님이 1980년대 미국 세제개편안 관련 논문들을 분석한 논문이 있다. 내용을 보면, 낙수효과가 없다는 게 대부분이다. 그런데 기재부는 일부 논문을 가지고 낙수효과가 있다고 얘기한다. 여기에 더해 낙수효과가 발생할 수 있는 장치까지 다 끊어버린 상태에서 낙수효과가 있을 거라 주장한다. 세금을 20여년 전공한 사람이 아니면 일반 시민들은 전혀 알 수 없을 정도로 (교묘하게) 진행한 거다."
- 재벌·대기업의 3세 경영이 일반화했고, 4세도 경영에 참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는 공정거래법상 특수관계자 범위를 오히려 축소했다.
"과거 2세 경영일 때는 특수관계인을 4촌 이내로 규정해놨다. 그러면 이제는 6촌, 8촌으로 넓혀야 하는데, 거꾸로 3촌 이내로 줄여버렸다. 전반적으로 재벌·대기업을 위해 아주 잘 만들어진 세제개편, 이렇게 볼 수밖에 없는 거다."
"상속 받은 100명 중 1~2명만 상속세 낸다"
- 기재부가 상속세 과세 방식을 상속인의 유산 전체에 매기는 유산세에서, 피상속인이 각각 물려받은 자산을 기준으로 부과하는 유산취득세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나.
"우리나라 상속세 부담이 정말 무겁느냐 물어보고 싶다. 세율만 보면 무거워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이미 상당수 부자들은 세금을 거의 안 내도 되는 구조가 상속세·증여세법에 만들어져 있다. 그 첫 번째가 가업 상속이다. 가업 상속의 범위가 무제한으로 넓어져 사실상 가업이 아닌 형태로 상속해줘도 상속세를 안 내게 돼 있다. 과거에는 소분류 내에서만 업종 변경이 가능했는데, 이걸 대분류까지 확대했다. 예를 들어 아버지는 철공소를 운영했는데, 자녀가 게임방을 차린다고 해도 가업 상속으로 본다."
- 가업 상속의 취지에 어긋난 것 아닌가.
"이걸 통해 엄청나게 많은 중소·중견기업들이 가업 상속을 진행하고 있다. 상속세가 다 빠졌다는 얘기다. 그리고 가업 증여 공제도 등장한다. 역시 마찬가지다. 공제 금액도 확대하고, 범위도 넓혀줬다. 또 과거에는 상속세를 깎아주고, 증여세를 깎아줬으니 고용을 늘리라는 전제 조건이 있었다. 그것마저도 없앴다. 그냥 세금 빼먹으라는 거다."
- 고용을 늘리지 않아도 상속·증여세를 면제받을 수 있게 된 건가?
"과거에는 가업을 상속·증여받은 당시 고용 노동자들을 110% 유지하라는 조건이 있었다. 사후 관리 기간 5년 동안 10%는 늘리라는 거였다. 그런데 그걸 90%로 바꿨다. 고용을 줄이더라도 세금을 공제해주겠다고 한 거다.
- 이미 상속세 부담이 높지 않은데, 정부가 유산취득세로 전환하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재벌·대기업들은 여전히 상속세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가업 상속·증여세 면제는 중소·중견기업에만 해당한다. 관련법 입법 당시인 1998년에는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상속 금액 중 1억원만 세금에서 빼줬다. 가업 상속을 통해 백년 기업을 육성하겠다는 취지였다. 그런데 그게 25년 만에 600억원까지 올랐다. 우리나라 세법 어디를 뒤져봐도 25년 만에 공제 기준 금액이 600배 인상된 사례는 없다."
- 공제 기준을 더 확대하기는 어렵겠다.
"재벌·대기업들도 봐주자고 하면 엄청난 반발에 부딪힐 수 있으니 상속세 세율이 높다는 식으로 나오는 것이다. 정부는 상속세가 온 국민이 내는 세금인 것처럼 언론을 통해 호도하고 있다. 그런데 전체 상속자 중 상속세를 내는 사람의 비중은 1.6%밖에 안 된다. 상속받은 100명 중 1~2명만 세금을 낸다는 거다."
- 유산취득세로 전환하면 그만큼 세수도 줄어드는 것 아닌가.
"상속세가 누진 과세 구조로 돼 있어 조세 부담이 크기 때문에 유산취득세로 바꾸자는 얘기가 나온다. 일부 동의할 수 있다. 다만, 상속세를 내지 않을 수 있게 하는 가업 상속세 공제, 일감몰아주기를 통한 증여 등 이상한 제도들이 많지 않나. 차라리 이런 것들을 다 없애버리고 유산취득세로 간다면 저는 동의할 수 있다. 이미 상속세 부담을 덜어줄 만큼 덜어준 상태에서 유산취득세로 간다는 건 이중의 혜택을 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부자 감세 이후 벌어질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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