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가격에 항복했다. 깐 쪽파 한 단에 2만 6000원을 낼 수는 없었다. 여름에 1만 4000원 하던 게 3만 원까지 찍을 기세였다. 처음엔 마트에서 가격을 잘못 찍은 줄 알았다. 당시가 겨울인 걸 감안해도 충격적인 가격이었다.
바로 옆 흙 묻은 쪽파는 1만 3900원이었다. 살까 망설이다 생각을 접었다. 쪽파가 아니라도 날마다 무, 쑥갓, 무순, 당근, 양파, 대파, 느타리, 숙주, 양배추, 청양고추를 다듬어야 한다. 쪽파만 끌어안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이참에 쪽파를 대파로 바꿔보기로 했다. 깐 쪽파 한 단이면 대파가 예닐곱 단이다.
테스트해 보니 생각보다 맛이 괜찮았다. 가다랑어포 육수의 진한 감칠맛을 매운 맛의 대파가 잡아줬다. 진즉에 쓸 걸 그랬나. 하지만 대파도 과거에 비하면 상당히 비싸다. 한 단에 875원짜리 대파는 눈 씻고 봐도 없다. 있으면 거래처 연락처 좀 주시라. 부탁이다.
품목별로 돌아가며 괴롭히는 채소값
사실 '널뛰는 물가'는 외식업자의 숙명이다. 2017년에는 조류인플루엔자로 인해 계란 공급이 부족해 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 옆 블록 빵집에서 계란을 못 구해 발을 굴렀다. 이때는 '부르는 게 값'이라는 말도 의미가 없었다. 있어야 사지.
결국 우리에게도 불똥이 튀었다. 돈가스 덮밥을 한 달 가까이 팔지 못했다. 그 기간에 빵집 직원이 다급하게 가게를 찾아와 "혹시, 계란 한 판만 꿔 갈 수 없을까요?"라고 물어 온 적도 있었다. 잊지 못할 광경이었다.
그 다음에 터진 게 2022년에 벌어진 식용유 대란이었다. 이때도 만만치 않았다. 기름 한 통에 3만 2500원 하던 게 순식간에 7만 1000원을 넘어섰다. 거래처에선 아르헨티나의 콩 농사가 궤멸적인 흉년을 맞았기 때문이라 했다.
그러니까, 그때는 시세가 폭등하는 이유가 있었다. 지금은 이유도 없이 오른다. 설명해 주는 사람도 없다. 원인을 모르는 걸까. 아니면 오르는 게 일상이라 더 이상 궁금하지도 않은 걸까.
그래도 저장성이 높은 재료들은 값이 저렴할 때 쟁여놓을 수 있다. 문제는 신선식품이다. 얘들은 매일 새롭다. 요즘엔 아예 품목별로 돌아가면서 기록을 갱신한다.
양배추는 2월에 세 통 1만 700원 하던 게 이번 주에는 1만 4800원이다. 양파는 겨우내 15kg당 1만 9500원이던 게 지금은 2만 9800원을 찍었다. 가격표를 보자마자 머리가 지끈거렸다. 양파는 지금이 제철이라 출하량이 제일 많을 때인데도 이 모양이다. 아무도 이유를 모른다.
그나마 싼 게 없을까 싶어 주변 청과물 가게들에 전화를 걸어 가격을 매일 물어본다. 외식업은 귀찮은 일의 연속이다. 서빙하고 요리하고 청소하는 것도 피곤한데, 날마다 시세까지 파악해야 한다. 그렇게 재료별로 돌아가면서 사람을 괴롭힌 게 1년이 넘었다.
물가상승률 3%가 무서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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