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정권의 3.15 부정선거
3월 15일은 4대 대통령과 5대 부통령을 선출하는 선거일이었다. 조병옥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급사하는 바람에 이승만의 대통령 당선은 ‘따 놓은 당상’이었다. 문제는 부통령. 자유당은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지만, 민주당 부통령 후보인 장면에 밀리는 상황이었다.
자유당 정권은 3.15 선거 전부터 대대적인 부정선거를 준비했다. 내무부 관료들과 이정재, 임화수 등 정치 깡패들을 동원하여 부정선거와 개표 조작을 준비했던 것. 투표자들을 3인 1조로 투표하게 하고, 투표지를 투표함에 넣기 전에 자유당 측 참관인에게 보여주도록 하고, 가짜 투표용지를 만들어두었다가 투표함에 무더기로 투입하는 등 다양한 계획 등을 세웠다. 선거 당일인 3월 15일엔 투표하는 사람들에게 돈을 주는가 하면 한 명이 투표용지를 20장까지 가져가는 등 선거 조작 행위가 저질러졌다.
개표 과정에서 부통령 후보인 이기붕의 득표율이 100%에 육박하는 결과가 나오자, 부정선거가 들통날 것을 우려하여 “이승만은 80%로, 이기붕은 70~75% 선으로 조정하라”라는 지시가 내려가기도 했다.
민중의 분노가 폭발한 것은 당연한 일. 3월 15일 오후와 저녁 전국 각지에서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정권 퇴진의 불씨를 지핀 김주열 열사의 시신
이때까지만 해도 시위의 주된 구호는 부정선거 규탄이었다. 이승만 정권 퇴진의 구호는 등장하지 않았다. 그러나 마산 앞바다에서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떠오르면서 시위는 본격적인 정권 퇴진 투쟁으로 발전하게 된다.
3월 15일 마산에서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시위를 하다가 실종되었던 김주열 학생이 최루탄이 눈에 박힌 참혹한 시신으로 발견된 것은 4월 11일. 시위 진압 과정에서 경찰이 쏜 최루탄에 사망한 것이다. 경찰은 시신에 돌을 매달아 마산 앞바다에 버렸지만, 밧줄이 풀리면서 27일 만에 시신이 떠오르게 된 것이다. 4월 11일 김주열 열사의 시신을 목격한 마산 시민들의 분노는 마산경찰서를 파괴하고, 경찰서장실 앞뜰에 수류탄을 투척할 정도로 극에 달했다.
4월 19일엔 전국 대학생들이 들고 일어났다. 대통령 관저인 경무대와 이기붕의 자택으로 몰려가 이승만과 이기붕의 퇴진, 김주열 열사 죽음에 대한 관련자 처벌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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