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흔의 부동산 이야기] 전세 사기 특별법 개정안의 문제점
조정흔 감정평가사 | 기사입력 2024.05.03. 05:05:08
청년·서민 임차인의 주거 불안을 야기하고 심각한 사회적 혼란을 끼치는 전세 사기 보증금 미반환 문제는 끝나지 않았다.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몇몇 임차인이 극단적 선택을 한 이후인 지난해 6월 전세사기피해자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된 후, 2024년 4월 17일을 기준으로 1만5433건의 전세 사기가 확인됐다.
이후 법 제정 당시부터 더불어민주당 및 정의당을 중심으로 전세 사기 피해자의 보증금반환채권을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등이 직접 매입하여 피해 임차인을 구제하라는 소위 '선 구제 후 회수' 방안 도입 요구가 거셌다. 이에 따라 '선 구제 후 회수'를 담은 전세사기특별법 개정안은 야당 주도 아래 국회상임위원회를 통과하고 본회의에 직회부되었다. 이번 총선에서 과반의석을 얻은 야당이 강력하게 밀어붙인다면 통과시킬 수 있다.
그런데 선 구제 후 회수 방안이 과연 효과적인 피해 임차인 구제 방법일까.
전세제도는 본질적으로 임차인의 주택 점유와 인도를 통해 전세보증금채권을 담보한다. 전세계약을 체결할 때 보증금이 주택가격의 70%를 넘도록 계약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임차인 보호를 위하여 제정된 주택임대차보호법은 채권 미반환 시 임차인이 물권과 같은 효력인 선순위, 대항력을 유지하게 해주고 경매 절차를 거쳐 주택의 환가를 임차인에게 반환하도록 했다.
현행 전세사기특별법은 임차인에게 우선매수권을 부여했다. 임차인이 경매 절차에 직접 참여하여 주택을 취득할 수 있고, 이 경우 취등록세 감면, 저리대출 등의 혜택을 받는다. 선순위 대항력을 갖춘 대다수 전세보증금미반환 피해자의 대상주택가격은 자신의 전세보증금 언저리에 있고, 임차인은 보증금을 회수하기 전까지 강제로 쫓겨나지 않는다.
특별법 개정안은 이에 더해 전세사기피해주택 임차인이 임차보증금반환채권의 공공 매입을 신청(28조의2)할 수 있도록 했다. HUG 등 채권매입기관은 임차보증금반환채권을 '공정한 가치 평가'를 거쳐 매입할 수 있고, 이 경우 채권매입기관의 매입가격은 주택임대차보호법 제8조에 따라 우선변제를 받을 보증금의 비율 이상으로 한다(28조의4). '선 구제 후 구상' 절차다.
이는 전세보증보험 구조와 유사하다. 전세보증보험은 보험 가입자가 피해를 입을 경우 보증기관이 우선적으로 전세보증금을 되돌려주고 사후적으로 경매 절차를 통하여 이를 회수하는 구조다. HUG에서 전세보증보험의 가입 한도를 공동주택 공시가격의 126%로 제한하는 반면, 특별법은 '공정한 가치평가'를 거쳐 매입할 수 있다는 점이 둘의 차이다.
그런데 현행 제도상 '전세보증채권의 공정한 가치평가'를 과연 할 수 있을까?
전세보증금채권을 평가하려면 임차인의 전세보증금채권 뿐만 아니라 해당 주택의 낙찰가격을 추정해야 하고, 전세보증금채권과 경합하는 다른 채권 가격도 모두 계산해야 한다. 국세, 지방세 등 조세채권 중에서도 법정기일을 따져서 전세보증금채권에 앞서는 선순위 채권이 있는지, 그 가격은 얼마인지 확인해야 한다. 선순위 근저당이 있다면 근저당권 설정 시 약정된 내용을 알아야 하는데, 현재의 시스템에서 경매법원이 아닌 정부는 이를 알 수 없다.
실제 평가에 나설 경우 발생할 문제는 다음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2024년 5월 1일 기준 현재 서울시 경매 진행 건수는 2755건인데, 이중 강서구 화곡동과 양천구 신월동의 경매 진행 건수만 739건으로 전체의 26.8%를 차지한다. 최근 2개월간 낙찰된 화곡동 소재 다세대주택 57건을 추출하여 분석해 보았다. 감정가격 대비 낙찰가격(선순위 대항력이 있는 임차인의 경우는 임대차보증금 합산 기준, 임차인 본인낙찰은 제외)은 최저 65%에서 최대 110%까지 넓은 범위에 분포되어 있다. 임차보증금 대비 낙찰가격 또한 최저 74%에서 최대 170%까지 분포되어 있다. 그만큼 전세보증금 가격과 주택가격의 분포 범위가 넓어서 정확한 전세채권가격을 산정하기가 어렵다.
현행 시스템상 전세보증금채권이 다른 채권과 경합하는 경우 타 채권의 정확한 금액을 확인할 방법이 없는 데다, 억지로 가격을 산출한다 해도 매우 부정확한 채권평가에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한다.
채권 평가 절차를 거친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있다. 구제가 이루어진 후 해당 주택은 관리주체가 모호해진다. HUG는 전세보증보험 가입자에 대한 보증금반환과 채권 회수 절차만으로도 인력이 부족하다며 비용투입에 난색을 표하는 실정이다.
HUG의 지난해 보증사고금액은 4조 원을 넘었고, 그로 인해 HUG의 당기순손실은 3조8천억 원으로 역대 최대였다. 구제가 이루어지고 난 후 임차주택은 관리의 사각지대로 방치되고, 그 결과 새로운 수요자를 찾는데 더 긴 시간이 걸리게 된다.
즉 중저가 다세대주택 임대·매매 매물 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아 오히려 주택 부족 문제를 심화할 수 있다. 지금도 다세대주택 전세 기피 현상으로 공실이 늘어나고, 아파트 전세 쏠림으로 전세 가격이 오르는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정치권이 나서서 선순위 대항력을 갖춘 임차인에게까지 선 구제 후 회수를 신청할 수 있도록 한다면 행정적·사회적 비용을 고려할 때, 임차인 보호를 위해 큰 실익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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