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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하들의 '거짓말' 위에 선, 한때 '정직한 검사'였던 윤석열



[박세열 칼럼] 이젠 '거짓말 정권' 소리 들으려는가

박세열 기자 | 기사입력 2024.06.01. 04:24:15

 

 

미국의 도덕 철학자 시셀라 복은 <거짓말하기>라는 책에서 "진실을 말하는 데는 어떠한 정당화도 필요하지 않은 반면 거짓말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정치에 있어 거짓말은 치명적이다. 휴대전화, 인터넷, SNS가 없던 시대는 '정보 독점', '기록 독점'의 시대였다. '은폐'는 쉬웠다. 미국의 현대 정치사는 '정치인의 거짓말'이 대중들에 의해 비토당한 역사라고도 할 수 있겠다.

 

1960년 미국의 U-2 정찰기가 소련에 의해 격추되고 조종사가 생포당했을 때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미국인들에게 "기상연구용 비행기가 실종됐다"고 거짓 발표를 했다. 이유는 명확했다. 며칠 후 소련의 흐루쇼프와 정상회담을 열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상회담에서 흐루쇼프가 이를 폭로했고, 아이젠하워는 체면을 구겼다. 그때 미국인들은 정부의 거짓말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해 있던 대선에서는 공화당 리처드 닉슨이 패배하고 민주당의 로버트 케네디가 대통령이 됐다.

 

베트남전의 계기가 된 '통킹만 사건'이 조직적 거짓말이었다는 건 1971년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스의 특종으로 드러났다. '허위 정보'를 실제 사건으로 조작하는 과정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베트남 무력 개입에 부정적인 미 의회의 승인을 얻기 위해 당시 행정부와 군 당국 그것이 거짓 사실이라도 '미국이 공격당했다'는 명분이 필요했다는 게 정설이다. 이 '거짓말'은 '반전 여론'에 불을 붙였고, 미국의 정치, 사회, 문화 저변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정치에서 거짓말은 고도화되고 있다. 1998년 미국의 빌 클린턴 대통령은 '르윈스키와 부적절한 관계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부적절한 관계는 없다"고 답한다. "과거에 성적 관계가 없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한결같이 "성적 관계는 없다. 그건 정확한 사실이다"라고 답한다. '과거 시제'로 물은 질문에 두 번 모두 '현재 시제'로 답해 거짓말 논란을 교묘히 피해 간 유명한 사례다.

 

채상병 사망 사건 수사 외압 의혹에서 '거짓말'이 난무하고 있다.

 

이종섭 전 국방부장관은 지난해 8월 21일 "대통령실의 어떤 누구에게 전화받은 것이나 어떤 문자를 받거나 메일을 받거나 한 것이 없느냐"는 질문에 "이 문제(채 상병 사건 수사)와 관련해서 문자나 전화나 받은 것 전혀 없다"고 말했다. 신범철 전 국방부 차관은 지난해 8월 30일 예결위 회의에서 이첩 보류의 정당성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그래서 국방부 장관이 대통령과 통화를 했느냐"는 민주당 진성준 의원의 질문에 "통화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어떻게 아느냐"고 재차 묻자 신 차관은 "제가 장관께 쭤봤다", "장관님 누구와 통화하신 적 있느냐고 하니까,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정훈 해병대 전 수사단장 항명 사건 재판에서 통화기록이 나왔다. 이종섭은 8월 2일 낮에 윤석열 대통령과 '개인 휴대전화'로 세 번 통화했다. 모두 18분가량의 통화였다.

 

'클린턴식 거짓말'이다. 사건 초기 대통령과 통화 여부를 묻자 이종섭은 "이 사안과 관련해"라는 말을 붙여서 교묘히 넘어간다. 그리고 해외 출장을 간 사이 국방부 차관은 "이종섭은 통화하지 않았다"고 재차 말한다. 그들은 답변하면서 아마도 '이 사안과 관련해'라는 전제를 마음 속으로 붙였을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문제는 대통령과 '개인 휴대전화기'로 나눈 통화 내용이 "이 사안과 관련한 통화"인지 아닌지를 아무도 확신할 수 없다. 그건 '피의자 이종섭'의 일방적 주장일 뿐이다.

 

ⓒJTBC 보도 화면 갈무리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의 거짓말은 더 심각하다. 김계환은 지난해 7월 30일(채상병 사건 수사 국방부장관 결재가 있던 날)부터 나흘 동안 대통령실 국가안보실 관계자들과 16번이나 통화한 사실이 최근 드러났다. 하지만 김계환은 지난해 8월 25일 국회에 출석해 '안보실로부터 이 건과 관련해 몇 번 통화를 했느냐'는 질문에 "이 건과 관련해 안보실과 통화한 적은 없습니, 한 번 있습니다"라며 말을 더듬는다.

 

그 '한 번'에 대해 김계환은 "안보실 2차장이 이첩하고 난 이후 휴가 중이었는데 들어오면서 상황 파악을 위해 저한테 전화를 해서 관련 경과에 대해서 잠시 말씀드렸다"고 했다. 추후 밝혀진 데 따르면 김계환이 안보실 임종득 2차장과 통화를 했다는 시점은 8월 2일 낮 12시 50분이다. 김계환은 이 '한 번'의 통화 말고도 안보실과 15번 더 통화를 했다. 말을 더듬는 행위는 전형적인 거짓말의 징후다. 스스로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김계환은 결국 위증했다.

 

거짓말은 또 있다. 'VIP 격노설'과 관련해 김계환은 군 검찰 조사와 군사법원 재판에서 "박정훈 전 수사단장이 항명 사건을 벗어나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라고 반박해 왔다. 하지만 공수처가 김계환의 휴대전화에서 'VIP 격노설'을 언급했다는 녹취 파일, 물증을 확보하자 갑자기 입을 꾹 닫았다. 공수처에서 'VIP 격노설'을 추궁받든 그는 "해병대 사령관인 내가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에 대해 언급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했다. '박정훈의 지어낸 얘기'라고 했던 그다. 이건 '무고'에 해당할 수 있다.

 

진실을 말하는 데에는 이유가 없다. 그러나 '거짓말'을 하고 있는 데엔 반드시 이유가 있다. 뭔가를 감춰야 할 것이 있다는 방증이다. 진실이 드러났을 때 '누군가'가 곤란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거짓말들이 하나둘 들통나면서 '대통령실 외압 의혹'은 이제 '대통령 외압 의혹'으로 좁혀졌다. 모든 손가락이 한 방향을 가리킨다.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그간 감춰졌던 '전화 통화'의 내용과 진실을 밝히면 된다. 검사 시절 그는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 외압'을 폭로하면서 본인의 선배와 상관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 '정직한 검사'가 최고 권력자가 되어 부하들의 '거짓말' 위에서 위태롭게 서 있다.

 

정치에서 거짓말의 가장 큰 문제는 정치인과 유권자간의 신뢰를 해체한다는 데 있다. 니체는 <선악의 저편>에서 "내가 화가 난 것은 당신이 내게 거짓말을 해서가 아니다. 더는 당신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썼다. 대통령이 부하들의 얄팍한 '거짓말의 토대' 위에 서서 '동문서답'으로 일관하는 사이 윤석열 정부에 대한 신뢰 자본은 바닥나고 있다. 국정수행 지지율은 21%(한국 갤럽 기준)를 찍었다.

 

채상병 사망 이후 해를 바꿔가면서 거의 10개월 동안 진행된 이 '거짓말들'은 우리 사회에 아주 나쁜 영향을 끼쳤다. 전화 통화 몇 번 한 문제를 두고 그것이 '거짓말'인지 알아내기 위해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쏟아부어야 했다. 공수처와 군 검찰의 수사 역량이 낭비됐고, 출국 금지된 자(이종섭)가 호주대사로 내정됐다 취소되는 과정에서 외교 자원이 불필요하게 소모된 데다 국제적 망신까지 감내해야 했다. 채상병 특검법 처리와 거부, 그리고 재의결 과정에서 여야간 벌어진 불필요한 정쟁도 이런 '거짓말들' 때문이다.

 

거짓말은 그래봐야 '진실의 부산물'일 뿐이다. 찌꺼기를 걷어내면 진실은 드러나게 돼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30일 충남 천안 재능교육연수원에서 열린 제22대 국민의힘 국회의원 워크숍에서 만찬을 마친 뒤 어퍼컷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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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열 기자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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