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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왼쪽) SK그룹 회장이 지난 4월 1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이혼 소송 항소심 2차 변론에 출석하고 있다.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변론을 마친 뒤 법원을 나서고 있다. 2024.04.16. ⓒ뉴시스
재벌 2세와 권력자 자녀 결혼은 사실상 정경유착으로 이어졌고, 이 정경유착이 부부의 거대한 재산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최태원 SK그룹(전 선경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나비 관장 재산분할 소송 재판부의 판단이다.
최 회장 아버지(최종원 선대 회장)가 노 관장 아버지(노태우 전 대통령)의 영향력 하에 SK텔레콤(전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하고, 노 전 대통령 비자금 일부를 받아 SK증권(전 태평양증권)을 사들인 것 아니냐는 세간의 의혹이 사실상 확인된 것이다.
그 결과, 최태원 회장의 재산 약 4조원 중, 1조 4천억원가량을 노소영 관장에게 분할해야 한다는 판단이 나왔다.
서울고등법원 가사2부(부장판사 김시철 김옥곤 이동현)는 30일,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 소송에서 “최 회장은 노 관장에게 재산분할로 1조 3,808억 1,700만원, 위자료로 20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1심 재산분할 약 600억원에서 20배가량 불어난 규모다. 재산분할 규모가 크게 차이 난 것은 부부가 형성한 재산에 대한 판단이 달랐기 때문이다. 고등법원은 노 전 대통령이 최 전 회장에게 도움을 줬다는 점을 인정하고, 최태원 회장의 SK 지분을 재산분할 대상에 포함했다. 앞서 1심은 SK 지분을 재산분할 대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노 전 대통령 측이 최 전 회장에게 무형의 도움을 제공했다는 점을 짚었다. 재판부는 “최 전 회장이 이동통신 사업 진출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이 보호막이나 방패막이 역할을 하며, 결과적으로 (SK그룹의) 성공적 경영활동에 무형적 도움을 줬다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선경그룹은 노 전 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인 1992년, 제2 이동통신사업자로 선정됐다. 사돈 특혜 논란이 일었다. 선경그룹은 일주일 만에 사업권을 반납했다.
선경그룹이 이동통신 사업에 진출한 건 노 전 대통령 퇴임 이후인 1994년이다. 김영삼 정부는 한국이동통신 민영화를 추진했고, 선경그룹이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했다. 동시에 제2이동통신사업자 선정이 진행됐다. 제2이동통신사업자 선정은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맡았고, 전경련 회장은 바로 최 전 회장이었다.
최 전 회장은 전경련 회장 지위를 이용해 제2이동통신사업사 선정에 개입하는 한편, 한국이동통신 인수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었다는 시각이 많다. 최 전 회장의 전경련 회장 내정은 노 전 대통령 임기 말기에 이뤄졌다.
재판부는 “SK 상장이나 이에 따른 주식의 형성, 그 가치 증가에 관해 1991년경 노 전 대통령 측으로부터 최 전 회장에게 상당 자금이 유입됐다”고 판시했다.
1990년대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가운데 약 300억원이 최 전 회장에게 전달돼, 태평양증권 인수와 SK 주식 매입에 사용됐다는 노 관장 측 주장이 확인되지는 않았으나, 정황상 사업적 도움과 권력의 비호가 있었다는 것이 재판부 판단이다.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세간에 알려진 건 1995년이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이 다수 기업에서 돈을 받았다고 보고,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혐의를 적용해 구속기소 했다. 당시에도 노 전 대통령 비자금이 SK그룹으로 유입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재판부는 최 회장과 노 관장의 합계 재산 총액을 4조 115억원으로 산정했다. 해당 금액을 토대로 재산분할 비율을 최 회장 65%, 노 관장 35%로 정했다.
1988년 결혼한 최 회장과 노 관장은 2017년 법원에 이혼 조정을 신청했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해 이듬해 소송에 돌입했다. 이혼에 반대하던 노 관장은 2019년 12월 최 회장을 상대로 반소를 제기하면서,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이 절반을 요구했다. 노 관장이 요구한 주식은 시가 기준 1조원 규모다. 위자료는 3억원을 청구했다.
2022년 12월, 1심은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재산분할 665억원과 함께 위자료 1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SK 지분은 재산분할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노 관장은 항소심에서 재산분할 형태를 주식에서 현금으로 변경하고 금액을 2조원으로 변경했다. 위자료는 30억원으로 올렸다.
노 관장 대리인 김기정 변호사는 판결 직후 기자들과 만나, 최 회장의 SK 주식이 재산분할 대상이라는 판단에 대해 “선대 회장으로부터 상속받은 돈으로 산 주식이 확대·유지됐다는 상대방 주장에 증거가 없다는 판단”이라며 “부부 공동재산으로 형성돼서 30년 동안 확대됐으니 나누는 것이 맞다는 것”이라고 했다.
최 회장 측은 입장문을 통해 “6공 비자금 유입 및 각종 유무형의 혜택은 전혀 입증된 바 없으며, 오로지 모호한 추측만을 근거로 이루어진 판단이라 전혀 납득할 수가 없다”며 상고 의사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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