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희생자 발굴유해 신원확인 결과 보고회'가 3일 오후 3시 제주4·3평화공원 내 평화교육센터에서 진행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4·3희생자 발굴유해 신원확인 결과 보고회'에서 유족이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의 유골함에 이름을 붙이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유해로만 남아 있던 희생자의 이름을 찾았습니다. 이제 유족 대표는 그 이름을 달아주십시오."

행방불명 4·3희생자 유해 7구가 유전자 감식을 통해 신원이 확인되어 유가족에게 인계됐다. 대전 골령골 발굴유해 3구(강두남․김사림․양달효), 경산 코발트광산 발굴유해 2구(송두선.임태훈), 제주공항 남북활주 인근 발굴유해 2구(강인경.송태우)에서 확인됐다.

이중 제주도 외 형무소에서 행방불명된 희생자 5명의 유해는 지난 2일 세종시 추모의집에서 행정안전부로부터 유해를 인계받고, 세종 은하수공원에서 화장한 후 김포발 항공기를 통해 3일 오후 2시경 제주국제공항으로 돌아왔다. 

이날 제주국제공항에서는 오영훈 제주도지사가 직접 유해를 영접하고, 고향 제주로 돌아온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며 유족들을 위로했다. 제주도가 아닌 도외 지역에서 발굴된 4·3희생자의 유해가 제주로 봉환한 것은 2023년 故 김한홍 씨(대전)와 2024년 故 양천종(광주) 씨에 이어 세 번째다. 특히 경산 코발트 광산에서 발굴된 유해에서 신원이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4·3평화재단은 대전 골령골과 경산 코발트광산에서 발굴된 유해를 통해 신원이 확인된 행방불명 4·3희생자 유해를 봉환하고, 제주공항에서 발굴돼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를 함께 추모하며 유가족을 위로하기 위해 '4·3희생자 발굴유해 신원확인 결과 보고회'를 개최했다. 

3일 오후 3시 제주4·3평화공원 내 평화교육센터에서 진행된 봉환식과 보고회에는 희생자 유가족을 비롯해 오영훈 제주도지사, 이상봉 제주도의회 의장, 김광수 제주도 교육감, 장동수 행정안전부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장, 김창범 4·3희생자유족회장, 김종민 4·3평화재단 이사장 및 4·3 관련 관계자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4·3희생자 발굴유해 신원확인 결과 보고회'에서 오영훈 제주도지사, 이상봉 제주도의회 의장, 김광수 제주도 교육감, 장동수 행정안전부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장, 김창범 4·3희생자유족회장, 김종민 4·3평화재단 이사장 등이 묵념을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4·3희생자 발굴유해 신원확인 결과 보고회'에서 오영훈 제주도지사가 추도사를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오영훈 지사는 추도사를 통해 "지난 역사의 어둠 속에서 오랜 세월 이름 없이 잠들어야 했던 제주4·3 영령들의 명복을 기원한다"고 말한 뒤 "가족의 생사도 모른 채 영겁의 세월을 눈물로 보냈을 유족 한 분 한 분께도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행방불명 희생자 신원확인의 열쇠는 방계 8촌까지 가능한 유족 채혈 참여"라며 "제주도는 단 한 분의 희생자라도 끝까지 찾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제주4·3평화재단과 함께 유해 발굴과 유전자 감식 사업을 지속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장동수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장 대독), 이상봉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의장, 김광수 제주특별자치도 교육감, 김창범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 김종민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도 추도사를 통해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을 위로했다. 또한 박연술 무용가는 진혼무로, 오승국 시인은 '뻐의 노래'라는 제목의 헌시로 추모에 동참했다.

'4·3희생자 발굴유해 신원확인 결과 보고회'에서 박연술 무용가가 진혼무를 추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4·3희생자 발굴유해 신원확인 결과 보고회'에서 박연술 무용가가 진혼무를 추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4·3희생자 발굴유해 신원확인 결과 보고회'에서 참석자들이 헌화 후 묵념을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유가족들은 그동안 못했던 가슴 속의 말을 전하자 장내는 더욱 숙연해졌다. 故 강두남의 손자 강수철 씨는 "77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이름 없는 영혼으로 타향의 차가운 골짜기, 세상에서 가장 긴 무덤이라 불리는 골령골에서 홀로 얼마나 외롭고 추우셨습니까. 저희 곁으로 돌아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제 고향 제주에서 편안히 잠드십시오."라고 말했다. 

강두남(당시 25세)은 제주읍 연동리 출신으로 1948년 10월경 한라산에서 피난 생활 중 가족과 소식이 끊겼다. 조사 결과 1949년 7월경 대전형무소에 수감된 사실이 확인됐으며, 6·25전쟁 발발 직후 대전 골령골 집단학살로 희생당한 것으로 추정되어왔다. 고인의 유해는 2021년에 대전 골령골 1학살지 B구역에서 수습됐다.

故 김사림의 손자 김남훈 씨는 "어제 아버지와 저는 76년 만에 할아버지를 만났습니다. 백발이 된 아들인 아버지는 할아버지 앞에서 지난 효도를 못한 불효의 자식으로서 흐느껴 우셨습니다. 이제 다 같이 우리 집으로 돌아가 할머니 곁에서 영원히 평안히 주무십시오."라고 전했다. 제주읍 이호리 출신인 김사림(당시 25세)은 한라산에서 피난 생활 중 1949년 2월경 주정공장수용소에 수감된 이후 형무소로 끌려갔다는 소문을 마지막으로 소식이 끊겼다. 

조사 결과 대전형무소에 수감된 사실이 확인됐으며,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일어난 집단학살로 희생당한 것으로 추정됐다. 고인의 유해는 2021년에 대전 골령골 1학살지 A구역에서 수습됐다.

故 양달효의 아들 양계춘 씨는"저는 79년 만에 아버지를 어저께 만났습니다. 아버지가 어디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도 모른 채 살아왔는데 오늘 이렇게 얼굴을 찾아뵙게 되어 얼마나 반갑습니까. 이제는 아버지가 고향 제주도까지 왔으니까 하늘나라에서 어머님과 만나 편안하시길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제주읍 도련리 출신인 희생자 양달효(당시 26세)는 1948년 6월경 행방불명됐다. 이후 주정공장수용소에 수감됐다는 얘기를 듣고 한 차례 면회한 것을 마지막으로 소식이 끊겼다. 

조사 결과 대전형무소에 수감된 사실이 확인됐으며, 대전 골령골 집단학살로 희생당한 것으로 추정해 왔다. 고인의 유해도 2021년에 대전 골령골 1학살지 A구역에서 수습됐다.

'4·3희생자 발굴유해 신원확인 결과 보고회'에 모셔진 7위의 유골함.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행방불명 4·3희생자 유해 7구가 유전자 감식을 통해 신원이 확인되어 유가족에게 인계됐다. 유족들이 유골함을 들고 봉안관으로 가기 위해 나서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행방불명 4·3희생자 유해 7구가 유전자 감식을 통해 신원이 확인되어 유가족에게 인계됐다. 유족들이 유골함을 들고 봉안관으로 가기 위해 나서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故 송두선의 손자 강준호 씨는 "아무 죄 없이 희생되신 가족을 이제라도 찾게 되었습니다. 너무 늦었지만 이름을 되찾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르방 고향에 왔수다, 펜안햅써."라고 말했다. 송두선(당시 29세)은 서귀면 동홍리 출신으로 1949년 봄 경찰에 연행된 이후 행방불명됐다. 1949년 7월경 대구형무소에 수감된 사실이 확인됐으며, 6·25전쟁이 발발 후 경산 코발트광산 집단학살로 희생당한 것으로 추정되어왔다. 고인의 유해는 2008년에 경산 코발트광산 수평갱도에서 수습됐다.

故 임태훈의 딸 임진옥 씨는 "얼굴도 모르지만, 많이 그립고 보고 싶고 목놓아 불러보고 싶은 아버지입니다. 그래도 제가 살아있을 때 시신이라도 모시게 되어서 참으로 기쁘고 감사합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라고 말했다. 애월면 소길리 출신인 임태훈(당시 20세)은 1948년 12월 경찰에 연행된 이후 행방불명됐다. 

조사 결과 목포형무소에 수감됐다가 대구형무소에 이감된 사실이 확인됐다. 유해가 발견된 경산 코발트광산 집단학살로 희생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인의 유해도 2008년에 경산 코발트광산 수평갱도에서 수습됐다.

故 강인경의 외손자 고남영 씨는 "차가운 공항 활주로 아래에 계시던 할아버지를 기적처럼 찾아낼 수 있었던 것은 저희 가족의 간절한 채혈과 유전자 감식 덕분이었습니다. 핏줄의 이끌림이 긴 세월을 돌아 마침내 할아버지를 가족의 품으로 인도해 주었습니다. 앞으로 미력한 힘이나마 동료 유족들이 시신을 찾는 데 힘을 보탤 것을 다시 한번 다짐합니다."라고 말했다. 강인경(당시 46세)은 한림면 상명리 출신으로 1950년 6·25전쟁이 발발 후 경찰에 연행된 후 행방불명됐다. 

모슬포 탄약고에서 희생당했다고 알려졌으나, 유해는 2009년에 제주공항 남북활주로 서북편에서 발굴됐다.

故 송태우의 아들 송승문 씨가 유족인사를 하고 있다. 故 송태우 씨의 어린 시절 사진이 영정 사진이 되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故 송태우의 아들 송승문 씨가 유족인사를 하고 있다. 故 송태우 씨의 어린 시절 사진이 영정 사진이 되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故 송태우의 아들 송승문 씨는 "1949년 군사재판으로 사형 언도를 받고 총살된 아버지를 저는 77년 동안 찾지 못했습니다. 포기했던 순간도 있었지만 두 아들과 손자들이 채혈에 참여하면서 결국 아버지를 찾게 되었습니다. 채혈과 유전자 감식에 애써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라고 전했다. 

제주읍 오라리 출신인 송태우(당시 17세)는 1948년 11월 한라산에서 피난 생활 중 토벌대에 의해 연행된 후 바다에 수장됐거나 제주공항에서 희생되었다는 등 전언만 있었으나, 유해는 2009년에 제주공항 남북활주로 동북편에서 발굴됐다.

희생자의 신원확인은 직계 유족은 물론 방계 유족의 적극적인 채혈 참여를 통해 이뤄졌다. 김사림·임태훈의 경우 조카의 채혈 참여가, 강두남·강인경·양달효·송두선·송태우의 경우 손자와 외손자의 채혈이 결정적이었다. 

제주도와 제주4·3평화재단 측은 "행방불명 희생자 신원확인을 위해서는 직계와 방계를 아우르는 8촌(조카, (외)손, 증손 등)까지의 가족 단위 채혈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며, "보다 많은 유족의 채혈이 절실히 필요하다"며 적극적으로 채혈에 참여해주길 당부했다.

이번 신원확인으로 4·3희생자 중 유전자 감식을 통해 신원이 확인된 이는 제주도 내 147명, 제주도 외 7명을 아울러 총 154명으로 늘어났다.

제주도와 제주4·3평화재단은 가족도 없는 타지에서 70여 년간 영문도 모른 채 잠들어 있던 행방불명 희생자 5명의 유해를 최고의 예우로 고향 제주로 봉환하기 위해 김종민 4·3평화재단 이사장, 김창범 4·3희생자유족회장과 신원확인된 유족 대표 등 22명으로 유해인수단을 꾸렸다. 유해인수단이 5명의 유해를 모시고 제주공항에 도착하자 오영훈 제주도지사가 유해 영접을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제주도와 제주4·3평화재단은 가족도 없는 타지에서 70여 년간 영문도 모른 채 잠들어 있던 행방불명 희생자 5명의 유해를 최고의 예우로 고향 제주로 봉환하기 위해 김종민 4·3평화재단 이사장, 김창범 4·3희생자유족회장과 신원확인된 유족 대표 등 22명으로 유해인수단을 꾸렸다. 유해인수단이 5명의 유해를 모시고 제주공항에 도착하자 오영훈 제주도지사가 유해 영접을 하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4·3희생자 발굴유해 신원확인 결과 보고회'를 마치고 유골함을 봉안관에 봉안하기 위해 제주4·3평화교육센터를 나서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4·3희생자 발굴유해 신원확인 결과 보고회'를 마치고 유골함을 봉안관에 봉안하기 위해 제주4·3평화교육센터를 나서고 있다. [사진-통일뉴스 임재근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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