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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에 디즈니랜드를 유치하겠다"

[인터뷰] 배경환 울란바타르 'OPERAPLAZA ONE' 회장..."지금이 진정 시작할 때"

남북 입구 열린 DMZ 국제평화도시로 '교차관광' 제안

경제적 실리·구조적 안전 보장 커 매력적인 유인될 것

남북 통로 단절 상황 민간 파격적 제안이 외교 메커니즘 자극할 수 있어

핵과 제재를 둘러싼 공방이 수십년째 반복되고 있다. 공허하고 지친다.

핵은 더 이상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며 이미 헌법에 핵보유국 지위를 명시한 한쪽을 향해 'CVID'조건의 '비핵화' 공동성명, 실효가 의심스러운 제재발표가 무시로 날아들며, 서로 옴짝달싹 못하고 있다.

 

누구나 평화와 발전을 갈구하지만 서로를 믿지 못해 벌어지는, 그래서 평화는 위협받고 발전은 지체되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막상 겪는 당사자들에겐 '참극'이다.

70년 이상 '정전상태'가 유지되는 비정상적인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끝내 폭발해서는 안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즉시 평화와 발전의 수레바퀴가 돌아갈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제안하는 한 사람이 있다.

2008년 2월 로린 마젤(Lorin Maazel)이 지휘한 뉴욕필하모닉 공연을 유치해 평양 동평양대극장 공연을 전 세계에 생방송으로 송출한 배경환 씨가 그 주인공이다.

군사분계선(MDL, Military Demarcation Line)을 중심으로 남과 북에서 각각 진입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 둔 중립적 완충지대를 만들어 세계의 관광객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제안의 핵심 내용이다.

MDL 기준으로 남북이 각각 2km씩 뒤로 물러나 설정한 완충지대인 4km 폭의 비무장지대(DMZ, Demilitarized Zone)에 디즈니랜드와 같은 세계적인 대형 테마파크를 유치하고 배후도시와 고속도로·공항·크루즈 선착장 등 인프라를 구축하는 이른바 'DMZ 국제평화도시' 시범사업을 하자는 것이다.

관광객들은 서울이나 평양을 통해 국제평화도시에 들어와 상주하거나 또는 상대 지역으로 나가 '교차관광'을 즐길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중심 아이디어이다.

두말할 것 없이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와 금강산을 연결하여 한반도를 세계적 관광중심지로 조성하겠다는 등의 포부가 포함되어 있다.

세계의 관광객과 다국적 자본이 24시간 상주하는 국제평화도시는 존재 자체만으로 군사적 도발 가능성을 자연스럽게 차단하게 되며, 관광 및 물류 수익을 남북이 합리적으로 분배하고 각각의 관광 산업을 더욱 키울 수 있으니 경제적 실리와 더불어 국제사회의 참여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외교적 명분도 있다는 판단이다.

국제평화도시의 사업 주체는 다국적 민간기업이며, 이들은 철저히 경제논리에 따른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한다. 또 국제평화도시는 그와 함께 지역평화와 안정에 기여하는 것을 기대한다.

북한이 남북관계에 대해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임을 부정하고 '적대적 두 국가관계'로 재정립할 것을 선언한 마당에 실현 가능성이 있겠느냐는 부정적 평가가 있을 수 있으나, 그저 몽상으로 치부하기에는 제안자의 이력이 간단치 않다.

지난 달 15일 사업제안을 하고싶다는 그를 광화문 [통일뉴스]에서 만나 국제평화도시 구상을 비롯해 2008년 뉴욕필하모닉 평양공연 기획단계부터 성사에 이르기까지 과정에 대해 긴 시간동안 이야기를 들었다.

이후 지난 5일 한 차례 더 만나 미진한 부분을 보완하고 몇 차례 통화를 통해 내용을 다듬었다.

현재 몽골 소재 울란바타르 'OPERAPLAZA ONE'(오페라프라자1) 회장 직함으로 활동하는 그는 조만간 중국 베이징에서 사업의 상세한 내용 및 향후 진행 절차, 허허실실한 세부 전략을 담아 북측에 문서로 제안한 뒤 추이에 따라 워싱턴과도 소통하겠다고 말했다.

배 회장은 "2008년 뉴욕필하모닉 악단의 평양공연 때와는 달라진 현 정세 하에서 천지개벽과도 같은, 최고지도자만이 결단할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라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직접 제안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그동안 주고받은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재구성한 내용이다.

배경환 'OPERAPLAZA ONE' 회장 [사진-배경환]

□ 통일뉴스 : 먼저 'DMZ 국제평화도시' 구상의 핵심 내용에 대해 설명해 주십시오.

■ 배경환 'OPERAPLAZA ONE' 회장 : 남쪽 입구로 들어가 북쪽 입구로 나오는 '교차 관광' 인프라를 조성하고, 다국적 관광객과 자본이 24시간 상주하는 구조를 만들어 발생한 수익을 참여기업들이 합리적으로 분배하여 경제적 실리를 추구하는 구조입니다.

정권 교체나 정치적 환경 변화에 흔들리지 않도록 남북 정부의 직접 개입을 최소화하고, 철저히 '다국적 민간 합작 사업' 형태로 추진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 이런 구상을 처음 기획하게 된 계기와 목적은 무엇인가요?

■ 군사적 긴장이 해소되지 않은 한반도 정세 속에서 남북 간 직·간접적인 완충 지대를 조성하여 물리적 도발을 억제하고 경색 국면을 타개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추진한 일입니다. 남북 당국 간 직접 충돌을 피하기 위해 주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상호 안전을 보장하는 평화 구역을 구축하려는 취지라고 할 수 있겠네요. 또한 언젠가 정전상태가 종전으로 전환된 이후 DMZ의 생산적이며 안정적인 유지관리를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나서게 됐습니다.

 

□ 이번에 처음 제안하시는 사업인가요?

■ 실은 2008년 2월 뉴욕필하모닉 평양공연 이후 2011년부터 북측이 홍콩에 설립한 대풍그룹을 통해 일차 제안했던 내용입니다. 당시 북에서는 '조용히 진행하라'며 묵인·방조하겠다는 반응을 보였고 그에 따라 한국에서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진행하던 중 발생한 국방위원장 유고로 인해 중단되었죠. 2013년 김정은 위원장 체제가 들어선 후 사업가능을 다시 타진했어요. 디즈니랜드 회장을 평양과 DMZ 일대로 초청해 현장을 보여주려고 실제로 초청 서한을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미국측 법률 대리인을 통해 정중한 거절 의사를 받았는데, 저는 그 때 일을 계기로 미국 국무부 등에 관련 기류가 전달되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DMZ 국제평화도시를 통해 남북은 어떤 이익을 취할 수 있을까요?

■ DMZ 국제평화도시는 북한에는 '체제 안전 명분과 합리적인 경제적 수익 분배'를 제공하고, 남한에는 '군사적 도발 억제와 정권 변동에 흔들리지 않는 지속 가능한 완충지대 확보'라는 실리적 이익을 동시에 가져다주는 구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북측은 당장 경제적 실리 뿐만 아니라 상시적인 수익을 창출할 수 있죠. 국제평화도시를 위해 만들어지는 인프라를 통해 남북 입구를 왕래하는 '교차 관광' 및 물류 상권이 형성됩니다. 다국적 자본과 대규모 유동 인구를 통해 발생하는 관광·물류 수익을 북에 합리적으로 상시 분배함으로써, 경제적 난국을 타개할 실질적인 자금원을 얻게 되죠.

미국과 중국, EU를 비롯해 다국적 자본과 인원이 24시간 상주하는 중립화 구역이 형성되어, 북한 입장에서도 미국 등 국제사회의 일방적인 무력 도발이나 압박으로부터 안전을 보장받는 자연스러운 완충지대 역할을 하게 됩니다. 또 이들과의 민간합작 거래를 통해서 국제사회의 제재를 타개하고 합법적으로 국제 거래질서에 참여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겠죠.

한국 역시 다국적 자본과 인원의 상주로 인해 쌍방의 물리적·군사적 도발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는 실질적인 '완충 지대'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이건 남북 직접 충돌 위험을 줄이고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를 완화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또 정부 주도의 기존 대북 사업과 달리 '다국적 민간 합작' 구조로 추진되어, 국내 정권이 바뀌거나 정치 환경이 바뀌더라도 사업이 백지화되지 않고 지속되는 신뢰 구조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DMZ 교차 통로'를 확보함으로써 남쪽 입구로 들어가 북을 거쳐 중국·러시아로 이어지는 국제 물류·관광의 활성화로 경제적 효과를 누릴 수 있습니다.

□ 국제평화도시 구상이 낯설지는 않은데, 그동안 발표된 박근혜 정부의 'DMZ 세계평화공원', 문재인 정부의 'DMZ 국제평화지대' 등과 비교해 어떠한 차별점이 있습니까?

■ 요약하면 과거 정권들은 안 될일을 안되게 하였거나 가능한 방법을 찾는 노력을 하지 않았지요. 한국 정치의 한계라고 봅니다. 구조적으로 정책의 일관성이 유지될 수가 없으니까요.

△남북 정부 개입의 최소화와 '다국적 민간 합작' 구조 △다국적 인원 상주를 통한 일종의 '인간방패(Human Shield)' 메커니즘 △일방향 관광이 아닌 '교차 관광(Cross-Border Tourism)' 방식 △실질적인 경제적 실리와 수익 분배 구조로 차별점을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정치적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남북 정부의 직접적인 정치 개입을 최소화하고, 철저히 다국적 민간 합작 사업 형태로 구상되었다는 점, 물리적·군사적 무력 도발을 다국적 민간 인원 및 자본의 상주라는 자연스러운 안전장치를 통해 차단하는 실질적인 억제 구조라는 점이 특징입니다.

또 기존 금강산관광이나 개성공단 사업처럼 남측 인원만 특정 구역에 들어갔다 되돌아오는 '단방향·격리형' 관광 방식이 아니라 남쪽 입구로 들어가 국제평화도시를 거쳐 북쪽 문으로 나가 중국·러시아로 연결되거나, 반대로 북쪽 입구로 들어와 남쪽 문으로 빠져나가는 '인프라 교차 관광 구조'를 제시합니다. 인적·물적 자원이 끊임없이 통과하고 흐르게 만들기 때문에 유동 인구 기반의 실질적 거점을 구축할 수 있습니다.

퍼주기논란이나 단순 경제 지원형태가 아니라 다국적 자본을 유치해 국제 물류·관광 상권을 형성하고, 거기서 발생하는 관광·물류 수익을 북한에 합리적으로 상시 분배하는 구조를 취하는 것이 큰 장점입니다. 이를 통해 북한이 스스로 국제사회 거래 질서에 참여하고 명분과 실리를 동시에 취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 디즈니랜드에 초청의사를 전달했으나 공식적으로 거절했다고 했는데, 현재 입장은 어떻습니까?

■ 김정은 위원장 체제가 들어선 2013년 디즈니랜드 회장에게 직접 평양방문 초청 서한을 전달했으나 법률 대리인을 통해 정중하게 거절하는 답신을 보내와 최총 참여는 성사되지 않았습니다. 비록 디즈니랜드 측의 수락은 받지 못했으나, 이 과정에서 과거 뉴욕필하모닉 평양공연 때와 유사하게 미국 CIA 및 국무부 등 관련 당국에 이같은 기류와 정보가 보고·전달되는 계기가 되었다는데 의미가 있습니다.

 

□ 디즈니랜드 측의 공식 거절에도 불구하고 이 구상을 낙관하면서 계속 추진 가능성을 열어두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 디즈니랜드 회장 같은 글로벌 거물이 평양이나 DMZ로 초청을 받으면 기업 차원에서 독자적으만 판단하지 않고 반드시 CIA나 국무부에 보고 및 상의를 거치게 됩니다. 디즈니의 기업적 거절과 상관없이, 이 제안을 계속 추진하려는 것은 미국 외교·정보 당국에 메시지가 전달되고 한반도 문제에 대한 관심 기류를 형성하는 메커니즘이 작동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측면에서는 '디즈니 투자유치' 자체보다는 '미국 당국의 기류 자극'이라는 본래 목적은 달성했다고 봤기 때문이죠.

과거 2008년 뉴욕필 평양공연 때도 뉴욕필하모닉 재단 측은 처음에는 거절했으나, 이 제안이 미 국무부에 보고되면서 김계관과 크리스포터 힐을 대표로 한 미·북 당국간 외교회담으로 격상되어 성사된 바 있습니다.

이번에 국제평화도시 구상을 하면서도 처음부터 디즈니랜드 유치가 100% 쉽게 성공할 것이라 장담하고 접근하지 않았어요.

북측에도 "반드시 성사된다"고 부풀려서 말하면 오히려 믿지 않았겠죠. 디즈니랜드 초청과 같은 파격적이고 상징적인 카드를 던져서 핵심부의 반응을 유도하고 대화의 공간을 만들어내는 과정 자체가 전략적으로 유의미하다고 생각했죠.

말하자면 "안 될 줄 알면서도 던져보는 '허허실실'(虛虛實實) 접근법"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또 이 사업은 디즈니랜드에만 의존하는 단독 사업이 아니라 남북 정부의 직접 개입을 배제한 '다국적 민간 합작 사업'을 지향하는 것이니까요. 디즈니랜드가 참여하지 않더라도 몽골이나 중국계 법인, 제3국의 자본이나 인프라 기업 등 다양한 다국적 민간 자본을 결합할 수 있는 거대한 판이 바탕에 깔려 있죠.

게다가 북한 지도부는 어쨌든 고립을 타개하고 안전보장을 이뤄야 하는 궁극적인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거대 자본이 참여하는 'DMZ 완충구역 조성'과 '교차 관광 수익 분배 모델'은 북한 지도부로서도 체제 안전(완충지대)과 경제적 실리를 동시에 챙길 수 있는 매력적인 방안이므로, 언젠가 판이 깔리면 북측이 응하리라 봅니다.

□ 다시 한번, 하나 하나 여쭤보겠습니다. 말씀하신 '교차관광'의 주요 내용과 특징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 기존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처럼 남측 인원만 특정 구역에 들어갔다가 되돌아오는 '단방향 체류형'이 아니라 '양방향 통과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남쪽에서 진입해 DMZ 국제평화도시를 거쳐 북쪽으로 나갑니다. 거기서 중국이나 러시아 대륙으로 이동하는 거죠. 반대로 중국, 러시아에서 북쪽 입구를 통해 국제평화도시로 들어와서 남쪽으로 들어오는 '교차통행' 방식을 취합니다. 대륙 및 일본, 미국 등 제3국으로 자유롭게 연결하는 허브가 되는 거죠.

여기서는 남북 주민들 뿐만 아니라 중국, 몽골, 유럽, 미국 등 다국적 관광객, 그리고 물류 관련 직원과 자본이 24시간 끊임없이 흐르고 상주하는 구조가 생겨납니다.

교차관광 및 물류 통로 조성 과정에서 유입되는 다국적 자본과 상권 수익, 통행·관광 수익을 조선에도 합리적이고 제도적으로 상시 분배하는 겁니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비난하는 퍼주기 논란을 피할 수 있구요, 조선 스스로 합법적인 거래 질서에 참여해서 경제적 실리와 외화를 얻도록 할 수 있기 때문에 사업의 지속성을 보장할 수 있습니다.

이미 십여년 전에 중국 관광객을 남북으로 통과시키는 교차관광 사업을 위해 몽골 법인과 중국 국영회사, 북한 OO무역 등과 3자 합작 형태로 평양 및 금강산에서 회의를 진행하고 북측으로부터는 승인서까지 발급받았으나, 당시에는 중국쪽에서 관광 버스 등 인프라 비용 부담 약속을 이행하지 않아 최종 성사되지는 못한 일이 있습니다. 지금 북한과 중국은 사이가 나쁘지 않잖아요. 될 겁니다.

2018년 이탈리아의 세계적인 오페라 극단인 '라 스칼라'와 300명 규모의 전세기로 이동해 평양, 금강산 공연을 한 후 고성 동해선 도로를 통해 한국으로 내려오는 남북 교차 이동 사업을 기획하기도 했는데, 북측 정치 일정으로 무산된 적도 있습니다.

□ 북쪽과 대화 통로가 다 막혀있는 상황에서 이 사업을 어떻게 추진하려고 하시나요.

■ 남북 사이에 공식 통로가 차단되었기 때문에 오히려 민간의 창의적 구상이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당국 간 교류가 활발할 때는 역설적으로 민간의 입지나 역할이 줄어들지만, 남북 당국의 모든 대화와 공식 통로가 막혀 있는 지금과 같은 국면이야말로 신뢰를 가진 민간이 나서서 새로운 대화의 공간을 만들어야 하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시기라고 봅니다.

정세가 냉각되어 있을 때는 '반드시 성공한다'는 거창한 확언보다 '안 될 줄 알면서도 던져본다, 하지만 될 수도 있다'는 식의 가벼우면서도 명확한 구상을 던져 상대의 반응과 판을 흔드는 전략이 실효적이라는 생각입니다. 이게 제가 역사적 흐름속에서 공간을 만드는 방법입니다.

지금과 같이 남북 당국 간 통로가 끊긴 상태에서 한국 정부나 특정 정권이 이런 일을 주도하려고 들면 시작도 할 수 없을 겁니다. 남북 정부의 직·간접 개입은 최소화해야 합니다. 남북이 직접 대화하지 않더라도 다국적 기업과 자본이 이해관계를 걸고 판을 짜면, 조선 역시 명분과 경제적 실리를 챙기기 위해 제안을 검토할 여지가 생깁니다.

이런 메시지는 민간이 과거 뉴욕필하모닉 평양공연(2008)이나 디즈니랜드 회장 초청(2013)과 같은 대형 제안을 하면 CIA나 국무부와 같이 해당 국가의 정보기관, 외교당국에 자연스럽게 보고되고 전달됩니다. 요약해서 말씀드리면 민간의 제안이 제3국 정부를 거쳐 국가간 외교 당사자 회담으로 발전하는 물꼬를 틀 수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과거의 경험을 통해 확인한 프로세스입니다.

2007년 6월 18일자 조선 문화성으로 부터 받은 뉴욕필하모닉 평양방문 확인서 영·한 문건 [사진-배경환]

□ 아무래도 이 정도의 사업을 추진하려면 실현 가능성에 대한 자신감 없이는 안될 것 같은데...2008년 뉴욕필하모닉 평양공연 유치에 대해 여쭤 보겠습니다. 그 일은 어떻게 가능했는지 설명해 주십시오

■ 처음 제안을 한 건 북한이 1차 핵실험을 한 2006년 10월 직후입니다. 저는 그때까지만 해도 북한이 파국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좀 달래줘라, 제재를 거두고 대화하자"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미·북 관계 개선을 위한 '테스트'를 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북측에 미국 5대 대표악단의 평양공연을 제안했습니다. 미국이 악단을 보낸다면 미국도 관계 개선 의지가 있는 것이니 대화에 응하고, 그렇지 않다면 북도 신중해야 한다는 취지의 '미국 신뢰도 테스트용' 아이디어였습니다.

시카고, 필라델피아, 보스턴, 뉴욕필 중 하나를 고르라고 제시했고, 북측에서 선호 의사를 밝힌 '뉴욕필하모닉'으로 결정된 거에요.

저의 제안에 대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관심을 보이며 베이징으로 실무인사를 파견했고, 그를 통해 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한 후 '1호 사업'으로 승인이 떨어졌죠.

북측에서 뉴욕필하모닉의 평양공연을 받아들이겠다는 문화성 명의의 확인서를 저에게 전달해주었고, 저는 이 공식문서를 가지고 미국 당국, 뉴욕필재단과의 실질적인 협상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북한은 북미사안에 대해 한국이나 한국인이 끼어드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원칙을 고수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북측 '조선대풍그룹 홍콩법인'의 '문화담당 부총재' 명함을 쓰면서 우회적으로 사업을 추진했어요.

막상 북측의 호응이 확인되자 뉴욕필 평양공연은 개인 기획에서 국가 사업으로 격상되었습니다. 북에서는 김계관이, 미측에서는 크리스토퍼 힐이 파트너로 나섰죠. 북의 유엔주재 뉴욕대표부와 미 국무부가 행정절차와 출입국 문제등을 협의·처리하고, 미 국무부가 출·입국을 허가하면서 뉴욕필 재단이 실무 진행을 맡게 됐죠.

당시 참여정부 국정원은 '돕지도 않고 하지 말라고 막지도 않겠다, 알아서 하라'는 답변을 주었기 때문에 통일부에도 신고하지 않고 제가 알아서 추진했습니다. 북에서는 미국방송의 중계를 원했지만 저는 제작비 조달과 한국 국민의 시청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조건을 걸어 최종적으로 MBC를 중계방송사로 참여시켰어요.

350여 명에 달하는 대규모 인원과 악기 수송을 위해서는 전세기가 필요했는데, 아시아나항공이 평양순안공안의 짧은 활주로 조건에 맞춰 좌석을 떼고 무게를 줄인 개조 전세기를 투입하는 등 도움을 주었습니다.

종합하면, 북한의 1차 핵실험 직후 관계개선의 물꼬를 트기 위한 파격적 제안과 북한 최고지도자의 호응, 그리고 북미 외교당국이 나서 국가사업으로 격상되고 민간기업의 재정 투입이 일체화되어서 이루어진 결과라고 볼 수 있겠죠.

2000년 10월 평화를 위한 국제음악회 추진 당시 배 회장이 남북의 금난새·김일진 지휘자와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배경환]

□ 뉴욕필하모닉 평양공연을 추진할 당시 관계개선 의지를 타진해 보려는 양측의 의중이 맞아 떨어진 것이 성사 비결이었다고 하셨는데, 지금 미국과 북의 입장에서 '국제평화도시' 구상은 어떻게 판단할까요.

■ 미국 입장에서는 북한과 대화의 계기를 마련하고 회담으로 발전시킬 채널 확보의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대만 문제를 비롯해 동아시아의 군사적·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다국적 자본과 민간 인원이 상주하는 DMZ 완충구역 구상은 우발적 군사 충돌을 억제하고 정세를 냉각시키며 한반도 위험을 관리하는 유용한 외교적 수단이 될 겁니다. 한반도 정세관리와 완충장치(Safety Cushion) 구축의 의미가 있겠죠.

이 제안을 3방(남·북·미)이 외면하면 전쟁의 가능성이 높아지겠지요.

현재 북한 지도부는 국제사회의 제재와 고립, 공포감 속에서 답답한 상황에 놓여 있다고 봅니다. 강대국의 이해관계를 결합한 국제평화도시 조성은 북이 주장하는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일방적인 군사 도발이나 체제 위협으로부터 안전을 보장받는 명분, 즉 체제안전을 위한 완충지대를 제공한다고 할 수 있겠죠.

또 앞서 말한대로 막대한 수익을 창출함으로써, 자본주의 거래 질서에 합법적으로 참여하고 경제적 난국을 타개할 실질적인 외화 수입원을 얻게 됩니다.

북의 입장에서 다국적 민간 자본 중심의 접근은 부담 없이 실리를 챙길 수 있는 안전한 대안이 됩니다.

 

□ 흥미롭네요. 그렇지만 여전히 과연 실현 가능할까 하는 의구심이 가시진 않는데요.

■ 땅바닥만 쳐다봐서는 현재의 상황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지평선 너머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죠. 안되는 줄 알면서도, 아니 안될 줄 알면서도 판을 벌이는 접근이야말로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일 수 있습니다. 상대가 나와 사귀고 싶은지, 계속 싸우려고 하는지, 그 속생각을 파악해야 할 때라면 넌즈시 응수타진하듯 던져보는 방법도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북이 고수하는 핵무기에 대해 말해 보겠습니다. 핵은 억제를 위한 무기이지 쓸 수 있는 무기는 아니지 않아요. 만들어서 큰 소리칠 수 있을 때까지는 도움이 되겠지만, 계속 보관하려면 점점 힘들게 되어 있어요. 칼부터 미사일까지 모든 쇳덩어리는 시간이 지나면 다 녹슬게 되어 있습니다. 미국의 핵무기, ICBM이 다 온전하게 남아있을 성 싶나요. 네바다 사막의 어느 한 구석에서 녹슬어 모래속에 섞여 들어갔을거에요.

존재 자체가 서로에게 이익을 가져다 주는 조건이 되면 싸우라고 등떠밀어도 싸움은 벌어지지 않습니다. 통일이야 그 뒤에 필요하면 하지 말라고 해도 하게 되겠죠. 제가 꿈꾸는 우리의 미래는 이런 거에요.

내친 김에 말씀드리면 국호를 제대로 부르는 문제만 해도 그렇지 않아요. 스스로 정한 이름을 불러달라는대로 불러주는 거야 상식아니에요. 터키를 튀르키예라고 불러달라고 하자 우리도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거기에 무슨 이견이 있을게 있나요.

아이다 공연 당시 배경환 회장. 맨오른쪽 [사진-배경환]

□ 정부 당국을 배제하거나 최소화하려는 이유는 무엇인지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십시오.

■ 역대 정부 주도의 대북 프로젝트는 남북 당국 간 협상이나 정권 차원의 치적쌓기 목적으로 추진되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이로 인해 국내 정치 정권이 교체되거나 남북 간 정치·군사적 정세가 냉각되면 사업이 전면 중단되거나 백지화되는 한계가 있었죠. 또 사업 추진 과정 중에 어느 한쪽의 정치적 논리나 군사적 긴장에 따라 상대방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기 쉽습니다. 불필요한 논쟁에 휘말려 본래 취지를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현재 남북 당국 간의 모든 공식 통로와 대화 채널이 닫혀 있어 정부가 직접 나서서 사업을 협상하거나 추진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상태 아닙니까.

정부가 움직이기 어려운 국면일수록 자율성과 유연성을 가진 민간이 제3국 자본과 기업을 활용해 우회적으로 제안을 하는 것이 닫힌 대화의 물꼬를 터뜨리는 유일한 대안이라고 봅니다.

 

□ 북측의 호응은 있을 것이라고 보십니까?

■ 기본적인 생각은 '당장 100% 호응을 기대하기보다는 판을 흔드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북측이 즉각적으로, 또는 100% 긍정적인 확답을 줄 것이라고 단정하고 접근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될 수 없는 일을, 안 될 줄 알면서도 일단 판에 던져놓는다'는 입장입니다. 상대방인 북측에도 '반드시 성사된다'고 부풀려 말하기보다는, '안 될 것 같은 파격적 제안'을 제시해서 반응을 유도하고 거기에서부터 '성사될 수도 있는 여지'를 만들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뉴욕 필하모닉 공연같이 지도자가 용단을 내리면 안될 것도 없잖아요?

당장 공식 수락을 받지 못하더라도, 제안 자체가 격화된 정세를 완화하고 대화의 공간을 만들어내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겠어요. 끓어오르는 냄비에 찬물 한 바가지를 끼얹듯...말이죠.

북 최고지도부는 현재 국제적 고립과 경제적 난국 등 매우 답답한 상황에 놓여 있다고 봅니다. 명분과 경제적 실리를 동시에 제공하는 이 제안이 최고지도자에게 정확히 전달되기만 한다면 반갑게 검토할 유인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북의 실질적인 호응과 사업 추진으로 이어지기까지 현실적인 한계는 분명합니다. 대화의 통로가 막혀있는 게 가장 크죠. 그래서 언론매체를 통해 이런 제안을 공개적으로 하는 겁니다.

정부 간 대화 통로가 완전히 닫히고 정세가 위험하게 과열된 지금이야말로, 정권 변동에 흔들리지 않는 다국적 민간 구상을 던져 북한 지도부의 '니즈'(필요)를 자극하고 꽉 막힌 한반도 평화의 판을 펼칠 수 있는 적기라고 확신합니다.

아이다 공연 성공 이후 당시 반기문 대통령 외교보좌관으로부터 받은 감사장 [사진-배경환]

 

□ 이후 사업 추진은 어떻게 할 생각이신가요?

■ 'DMZ 국제평화도시' 구상이 북 최고지도자에게 직접 전달이 되어서 대화의 실마리가 잡힌다면 북측이 내세운 민간기업과 저의 몽골 회사가 싱가포르에 합작회사를 설립하고 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본격적으로 사업을 가시화해 나가겠습니다.

당국 간 공식 대화 채널이 전면 차단된 지금이야말로 민간이 창의적인 대안을 던져야 할 시기이며, 스스로 유효하게 움직일 수 있는 기회의 창이 약 1년 정도 남아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 마지막으로 'OPERAPLAZA ONE'은 어떤 회사인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 세계 유일의 초대형 오페라 제작 전문 회사인데요. 2003년에 잠실올림픽경기장에서 세계 최대의 오페라 '아이다'를 제작했었어요. 지금은 몽골에서 오페라 '징기스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세계 시장을 대상으로 월드투어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징기스칸의 압박에도 굴하지 않는 주인공 공주의 기개를 평양시민에게도 보여주고 싶습니다.

400~500마리의 말과 대형 동물이 투입되는 공연이라 능라도 5월1일경기장 정도의 규모라야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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