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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맹' 말하던 시절 끝났다... 트럼프 '변덕' 대응은 이렇게

[임상훈의 글로벌리포트] 미국의 새로운 동맹 전략... 한미동맹의 형태도 바뀌어야

26.02.05 06:54최종 업데이트 26.02.05 06:54

2025년 11월 11일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JD 밴스 부통령이 버지니아주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열린 재향군인의 날 기념식에서 경례를 하고 있다.AFP/연합뉴스

지난해 말 미국은 새로운 국가안보전략(NSS)을 발표했다. 이 문서는 미국이 무엇을 위협으로 인식하고, 어떤 세계 질서를 상정하며, 동맹을 어떤 틀에서 바라보는지를 보여주는 정치·외교적 방향 선언이다.

트럼프 2기 체제에서 발표된 이 NSS는 가치와 규범보다 이해관계와 경쟁을 전면에 내세웠고, 동맹 역시 공동체가 아니라 전략자산으로 다루는 시선을 분명히 했다. 동맹은 신뢰의 관계라기보다, 전략 목표 달성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지를 따져보는 대상으로 재정의됐다.

이어 올해 초 발표된 국가방위전략(NDS)은 그 인식을 군사 전략으로 구체화한 문서다. 여기서 미국은 동맹의 역할을 다시 정의한다. 미국이 모든 전장을 책임지는 구조가 아니라, 동맹이 각자의 지역에서 더 많은 부담과 책임을 지는 방향이 명확히 제시됐다. 국방비, 전력 유지, 산업 기반까지 동맹의 기여 범위에 포함됐다.

두 문서를 함께 보면 하나의 흐름이 드러난다. 미국은 여전히 세계 질서를 주도하겠지만, 그 비용과 위험을 혼자 떠안겠다는 생각에서는 멀어졌다. 동맹은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역할과 부담을 분명히 따져야 하는 관계로 재정의됐다.

"누가 전쟁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가"

2022년 3월 2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외곽 고렌카에서 영토방위대원인 한 시민이 러시아군의 공습으로 피해를 입은 집 뒷마당에서 얼굴을 닦고 있다.AP=연합뉴스

한국의 방위 전략은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게 됐다. 한국은 오랫동안 미국을 혈맹으로 규정해 왔지만, 이제 미국은 그러한 정서적 언어에 더 이상 전략적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트럼프식 동맹 인식에서 과거의 희생과 연대는 설득의 근거가 되지 못하며, 협상력을 높이는 자산으로도 작동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호소는 변화된 조건을 읽지 못한 낡은 언어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군사력은 여전히 세계 최강이지만, 동맹을 대하는 태도는 더 이상 안정적이지 않다. 트럼프식 외교는 예측 가능성을 전략자산으로 보지 않고, 불확실성 자체를 협상 도구로 활용한다. 동맹은 신뢰의 대상이 아니라, 조건이 맞으면 거래하고 아니면 압박하는 상대가 된다.

이 변화는 연인 관계에 비유할 만하다. 과거의 관계가 믿음과 절개에 기반했다면, 지금은 조건이 맞을 때 유지되는 계산의 관계다. 이런 환경에서는 신뢰를 호소하기보다, 계속 만나고 싶게 만드는 조건이 필요하다.

상대가 변했고, 그 변화는 되돌릴 수 없는 조건이 됐다. 그럼에도 관계 유지가 중요하다면, 과거의 언어와 방식에 머물 수는 없다. 변화를 인정하고 관계의 조건을 다시 설계하느냐, 아니면 감정에 기대다 선택의 대상에서 밀려나느냐만 남았다.

이 같은 변화는 추상적인 가정이 아니다. 한국의 대미관계는 필수적이지만, 그 관계가 자동 개입이나 무조건 헌신 위에 놓여 있다고 기대하기 어려운 시간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변화된 조건 속에서 한국이 어떤 설득력을 보여줄 것인가다.

이 점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은 현대 국방전략에서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미국이 오늘날 전쟁을 어떤 방식으로 계산하고 관리하는지 분명하게 보여준 사례다. 군사 지원은 철저한 정치적 계산과 비용 평가의 대상이 됐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남긴 가장 중요한 교훈은, 현대전의 승패가 미국 수준의 최첨단 무기를 누가 더 많이 보유하느냐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밀한 무기는 전쟁의 양상을 바꿀 수 있지만, 전쟁을 끝내지는 못한다. 전선에서 더 자주 작동하는 것은 포탄과 보급, 수리와 생산, 그리고 소모된 전력을 얼마나 빨리 다시 채울 수 있느냐라는 문제다.

이 점에서 2024년 9월 발행된 미국 의회의 보고서(CRS "Defense Production for Ukraine")는 솔직하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미국 국방산업 구조 자체가 고강도 장기전에 맞게 설계돼 있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났다는 지적이다. 냉전 이후 방산기업의 통합과 생산라인 축소, 저강도 분쟁 중심의 전략 사고가 누적되면서, 대규모 소모전을 감당할 산업적 체력이 약화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은 한국전쟁 이후 최대 규모로 155밀리미터 포탄 생산을 늘리고 있지만, 증산 속도와 납기, 공급망 병목은 여전히 전략적 부담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 미국은 전쟁을 '지원'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 동원'의 문제로 다루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무기를 보충하는 동시에, 미국 내 재고를 채우고, 동맹과 함께 글로벌 생산 능력을 확장하는 방식으로 전쟁을 관리하고 있다. 미 의회가 강조하는 것은 "누가 더 많이 도와줬는가"가 아니라, "누가 전쟁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가"다.

새로운 한미동맹의 방향

2025년 8월 25일 이재명 대통령이 미국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연합뉴스

이 지점에서 한미 간 역할 분담의 논리는 더욱 분명해진다. 지금까지처럼 군사력의 주종 관계를 전제로 동맹을 설명하는 방식은 더 이상 현실과 맞지 않는다. 전쟁이 실제로 작동하는 구조에 맞춰, 각자가 잘할 수 있는 기능을 분담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미국이 강점을 갖는 영역은 핵 억제와 확전 통제, 그리고 전략자산 운용이다. 이 힘은 최후의 단계까지 상황이 치닫지 않도록 막는 장치로 작동한다. 실제로 사용되지 않더라도, 존재 자체만으로 위기 계산을 바꾸는 억제 효과를 낸다.

반면 한국이 설득력 있게 맡을 수 있는 영역은 전쟁을 버티는 힘이다. 재래식 전력에서 북한을 압도하는 군사력과 축적된 방위산업 역량은, 단순한 방어 수단을 넘어 외교적 협상력을 뒷받침하는 자산으로 기능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보여주듯, 승패를 가르는 것은 단발의 성능이 아니라 소모된 전력을 얼마나 빠르게 다시 채울 수 있는 능력이다. 물량은 전쟁을 지속시키고, 정밀은 전쟁의 결과를 바꾼다. 양과 질은 대체 관계가 아니라 보완 관계다. 이때 핵심은 탄약과 부품의 비축, 수리와 보급 체계, 전시 생산 전환 능력, 공급망의 내구성이다.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동맹을 '의존의 대상'이 아니라 '전쟁 지속 능력을 함께 구성하는 파트너'로 재정의하고 있다. 공동 생산, 표준화, 납기 조율, 공급망 분산이 새로운 동맹의 언어가 됐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의 방위산업은 단순한 수출 산업이 아니라, 동맹 전체의 전쟁 지속 능력을 떠받치는 핵심 자산으로 재정렬될 수 있다.

이러한 역할 분담은 전쟁 참여를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을 피하기 위해 어떤 조건이 가장 효과적인지를 냉정하게 계산하자는 제안에 가깝다. 트럼프식 협상은 가치나 의리보다 눈에 보이는 성과와 거래 조건에 반응한다. 한국이 제시할 수 있는 것은 군사적 모험이 아니라, 협상 환경에서 억제력을 높이고 부담을 관리할 수 있는 현실적 지렛대다.

이 역할론은 미국의 구조적 부담을 겨냥하는 동시에, 미국이 원하는 바를 충족시키는 방식이다. 미국이 감당하기 어려워진 전쟁의 지속 비용을 줄여주고, 동맹 전체의 준비 태세를 높이는 조건을 제시함으로써, 방위비 인상이나 일방적 압박의 명분을 약화시키는 효과를 노릴 수 있다. 변덕스러운 동맹 환경에서 전쟁 가능성을 낮추기 위한 방어적 협상 전략이 되는 것이다.

결국 새로운 한미동맹의 방향은 명확하다. 미국은 전쟁을 억제하는 힘을 제공하고, 한국은 전쟁이 길어질 경우 버티는 힘을 제공하는 분업 구조다. 이 분업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구호가 아니라 숫자와 체계로 증명돼야 한다. 연간 생산량, 비축 일수, 수리 회전율, 전시 전환 시간 같은 구체적 지표가 있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미국이 더 이상 '손해를 본다'는 프레임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한국이 동맹 안에서 설득력 있는 역할을 제시할 수 있는 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그 방향을 이미 현실로 보여줬다.

#임상훈의글로벌리포트 #한미동맹 #우크라이나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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