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수강의 진보금융 찾기] 단순한 정책금리 인하 요구를 넘어서야
임수강 금융평론가 | 기사입력 2024.06.20. 05:45:50
미국 연방준비은행(연준·Fed)이 본격적으로 정책금리를 올려 나가던 2022년 9월에 연준의 파월 의장은 보수적인 카토 연구소와 인터뷰를 하면서 다음과 같은 발언을 했다. "미국경제는 고용시장에서 노동수요가 매우 강하고 높은 임금의 새로운 일자리가 계속 창출되는 불균형에 놓여 있다." 그러므로 "연준은 정책개입을 통해 상당 기간 추세 이하의 성장을 유지함으로써 노동시장을 균형수준으로 되돌리고 임금상승률도 2% 물가목표에 근접한 수준으로 낮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파월은 연준의 정책금리 인상의 목적이 성장률을 낮게 유지하여 실업률을 높이고 임금 상승률을 떨어트리는 데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연준 홈페이지에서는 연준의 목표가 고용의 최대화와 물가의 안정을 달성하는 데 있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파월의 인터뷰는 연준 정책이 겉으로 내세우는 목표와는 달리 고용의 최대화가 아니라 오히려 고용의 축소를 목표로 전개된다는 놀라운 사실을 보여준다. 실제로 연준은 고용 수준이 높아 기업들이 노동조합과 협상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판단할 때는 항상 금리의 인상을 노동자들을 길들이는 수단으로 활용해왔다.
미국의 경제학자 에드윈 디킨스(Edwin Dickens)는 연준에서 금리 결정을 담당하는 공개시장위원회의 1950년대 회의록을 분석하여 연준의 금리정책이 노동자들의 순응성을 키우고 임금을 낮게 유지하는 데에 어떻게 활용되었는가를 보여준 바 있다. <불확실성의 시대(1979)>를 쓴 존 케네스 갈브레이스의 아들인 경제학자인 제임스 갈브레이스는 연준의 정책이 인플레이션에 대한 반응의 결과인지 낮은 실업률에 대한 반응의 결과인지를 조사했는데, 인플레이션보다 완전고용에 대한 근거 없는 두려움이 연준의 정책을 결정하는 우선적인 기준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마이클 패럴먼(Michael A. Perelman)은 <무엇이 우리를 무능하게 만드는가(2014)>라는 저서에서 미국 연준의 1979년 고금리 정책이 인플레이션을 잡겠다는 공표된 목표 외에도 노동조합 세력을 위축시키려는 의도가 개입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당시 연준 의장이었던 폴 볼커(Paul Volcker)는 미국 제조업 노동자들의 임금 상승을 몹시 경계했고 이를 정책 금리 결정에 참고했다. 그는 산업별 노동조합의 임금인상 요구 수준과 협상 상황, 그리고 노사 합의 내용까지 일일이 체크했다. 곧, 볼커는 노동자들의 힘을 약화시키는 데에 연준의 정책을 교묘하게 이용했던 것이다.
연준의 중요한 목표 가운데 하나는 어느 정도의 실업률을 유지함으로써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게 하는 것이다. 자본의 논리가 주도하는 사회에서 실업의 공포가 사라진 경영 환경은 자본가로서는 끔찍할 수밖에 없다. 파월의 발언은 최근 연준의 정책금리 인상 결정의 과정도 물가에 대한 반응이라기보다는 임금에 대한 반응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현재의 물가 상승이 에너지와 식량 부족, 그리고 글로벌 공급망의 파손에서 생긴 것이고 따라서 정책금리 인상이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은 그러한 판단에 힘을 실어준다.
이처럼 중앙은행의 정책금리 인상이 노동자들의 실업률을 높이는 데 활용되고, 또 그것이 가계의 금리부담, 투자와 소비의 위축, 나아가 사회 전체의 고통 증대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노동조합은 정책금리 인하를 요구해야 할 것처럼 여겨진다. 실제로 진보 성향의 여러 연구자들은 정책금리의 인하를 주장한다. 예를 들어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경제학자로 분류되는 스티글리츠는 '과도한 수요'를 줄이겠다는 최근의 금리 인상이 인플레이션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경제 수축으로 이어져서 사회에서 가장 힘없는 사람들에게 타격을 주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위에서 언급한 제임스 갈브레이스는 금리 인상이 노동자들에게 무거운 경제적 부담을 안기는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저금리를 옹호하는 글을 썼다. 마르크스주의자인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연준의 정책금리 인상이 진정으로 노리는 바는 노동계급을 공격하는 것이라면서 역시 금리 인하를 주장한다.
더욱이 일부 보수적인 연구자들의 금리 인상 주장은 노동조합이 요구하는 금리 인하의 정당성을 뒷받침해주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보수적인 오스트리아학파의 전통에 서 있는 에드워드 챈슬러(Edward Chancellor)는 최근 펴낸 <금리의 역습(2023)>이라는 저서에서 저금리가 가져올 수 있는 나쁜 결과를 이야기한다. 그는 시장 논리가 작동하는 경제에는 '자연 이자율'이라는 것이 있는데, 시장 이자율이 그보다 낮으면 여러 '잘못된 투자'가 이뤄지고 특히 투자의 많은 부분이 생산적인 부문에서 금융자산으로 옮겨가서 거품을 일으킨다고 본다. 실제로 지난 20여 년 동안은 중앙은행의 개입으로 시장 이자율이 자연 이자율보다 더 낮은 상태가 이어졌다고 그는 설명한다. 그 결과 생긴 잘못된 투자는 통화 긴축과 금리 인상을 통해 해소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그런데 자산시장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좀 어리둥절한 상황을 만들어낸다. 왜냐하면 여기에서 들려오는 금리 인하 목소리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보다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현재 정책금리 인하를 가장 바라는 쪽은 금융시장 참가자들이나 부동산을 많이 보유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고용 상태까지 챙기면서 거기에 촉각을 곤두세우는데, 연준이 정책금리를 결정할 때 참조하는 중요 지표가 실업률이기 때문이다. 자산 계층은 실업률이 올라가면 연준이 정책금리를 내릴 것이라고 판단하며, 실제로 그 판단이 적중하면 자산 가격이 올라간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산 계층은 정책금리의 인하를 요구하며 이들의 이익을 옹호하는 경제 신문들은 그 필요성을 드러내놓고 제기한다.
노동자와 자산 계층 모두 금리 인하로 이익을 얻는다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이는 노동조합의 금리 인하 요구가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저금리가 오히려 자산 계층에게 유리하게 된 사정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대표 저서인 <고용, 이자, 화폐의 일반이론>의 마지막 장은 이 저서가 지향하는 사회철학에 대해 다룬다. 거기에서 케인스는 우리가 살아가는 경제 사회의 결함으로 실업과 불평등 문제를 들면서 미래 사회에서는 이런 문제들도 점진적으로 해결될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본의 양은 상대적으로 풍부해지는 데 비해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의 감소에 비례해서 자본의 수요는 줄어들 것으로 보았다. 이는 장기적으로 이자율이 떨어지리라는 것을 함의한다. 케인스는, 이자율이 떨어지면 이자를 받아서 생활하는 계급은 그 수입이 줄어들어 결국 ‘안락사’할 것이라고 추론했다. 자본이 더는 희소하지 않은 상황이 되면 금융의 힘은 약해지고 금융 불로소득은 사라진다는 얘기다.
그런데 자본의 급증과 이자율 수준의 지속적인 하락이 특징인 신자유주의 시대에 금융 불로소득은 사라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큰 힘을 발휘하는 모습이다. 오늘날 이자(임대료) 소득자들은 안락사한 것이 아니라 그 자리를 더 굳건하게 다지고 있다. 현재의 시점에서 보면 증가한 자본의 양에 비해 그 수요가 줄어들어 이자율이 떨어지고 그 결과 금융 불로소득자들이 안락사할 것이라는 케인스의 예상은 빗나간 것처럼 보인다. 자산 계층에게 저금리 상황이 저주가 아니라 오히려 축복이 된 이 수수께끼 같은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브렛 크리스토퍼스가 쓴 <불로소득 자본주의 시대(2024)>는 그 수수께끼를 풀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에 따르면 저금리가 이어지는 상황에서도 금융 불로소득이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증가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이자율 하락을 메울 만큼 또는 메우고도 남을 만큼 대출이 증가했다는 사실이다. 케인스는 경제 사회가 발전할수록 자본의 수요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자본의 절대량이 늘어날수록 투자를 해야 할 곳은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따라서 자본의 한계 효율도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케인스에게는 곤혹스럽게도 자본의 수요는 생각보다 줄어들지 않았다. 기업, 가계, 정부의 자본에 대한 수요는 케인스가 예상했던 것을 크게 넘어섰다. 은행은 신용창조를 통해 그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었다. 그 결과는 대출 증가, 부채 증가로 나타났다.
다른 하나는 금융 규제완화의 덕을 본 자본화의 발전이다. 자본화란 정기적인 소득 흐름을 낳는 어떤 것을 자본처럼 간주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국채는 정기적으로 이자 소득을 낳는다는 점에서 이의 보유자에게는 자본처럼 기능한다. 이 국채는 자본으로서 어떤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니며 그저 이자를 지급 받을 권리를 나타낸 청구권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자 지급 청구권은 마치 실체를 가진 자본처럼 간주되어 가격으로 표시된 다음 시장에서 거래된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채권, 그리고 여기에 더해서 배당을 자본화한 주식, 나아가 임대료를 자본화한 부동산을 가공자본으로 묘사했다.
자본화 가운데 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대출의 증권화이다. 대출의 증권화란 어떤 경제 주체에 대한 금융기관의 대출을 증권으로 전환하는 것을 말한다. 대출에서 생기는 정기적인 이자를 증권으로 전환한다는 점에서 대출의 증권화는 자본화이기도 하다. 대출의 증권화를 통해 금융기관들은 만기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 언제든 중간에 대출을 다른 누군가에게 팔아넘길 수 있게 되었다. 대출의 증권화가 발전하면서 금융기관들은 주택담보대출, 학자금대출, 자동차 할부대출, 신용카드 대출 등 온갖 대출을 증권화의 대상으로 삼았다. 여기에 정기적인 여러 공공 임대료 수입까지 자본화의 대상이 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영국의 진보적인 지리학자인 레이션&쓰리프트(Andrew Leyshon&Nigel Thrift)는 이를 '거의 모든 것의 자본화'라고 표현한 바 있다.
대출의 증권화는 금융자산이 크게 증가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예를 들어 금융기관이 대출을 담보로 새로운 증권을 발행하면 금융자산은 두 배로 증가한다. 이 증권이 신탁회사들의 펀드에 편입되어 수익증권 형태로 발행되면 금융자산은 또다시 증가한다. 1980년대 이후 금융기관 대출이 증가한 데다 이를 바탕으로 삼은 2차, 3차 증권이 발행되면서 세계적으로 금융자산이 급팽창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금융자산의 비율이 1980년에서 2000년까지 20여 년 사이에 거의 네 배가 증가했다. 금융자산이 증가하면서 이제 금융부문에서는 이자 수입에 비해 자본 이득의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커졌다.
금융자산의 가격은 미래에 생산되는 부가가치에 의해 뒷받침된다는 특징을 갖는다. 예를 들어 금융자산의 가격은 미래에 노동자들이 생산하는 부가가치, 그 가운데 금융 부문으로 흘러가는 몫, 그리고 실제로 이를 실현할 수 있는 금융의 영향력에 의존한다. 그리고 그 정도는 이윤율과 이자율의 '전망'으로 표현된다. 미래에 이자율이 오르고 금융자산의 가격이 더 높게 형성될 것으로 전망되면, 현재 유통되고 있는 금융자산의 상대적인 가격은 떨어진다. 어제 시장 금리가 5%일 때 발행된 10년 만기 채권이 있다고 해보자. 내일 더 높은 금리를 주는 채권이 시장에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면 어제 발행된 채권의 상대적인 가격은 하락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시장금리가 오를 것으로 전망되면 기존의 증권 가격은 하락하고 거꾸로 시장 금리가 떨어질 것으로 에상되면 금융자산의 가격은 상승한다.
화폐 자산만을 보유하고 있는 어떤 사람이 이를 누군가에게 대출해주어야 한다면 그 사람은 금리가 오르기를 바랄 것이다. 금융자산(부동산을 포함하여)을 많이 가지고 있고 이를 언제든 시장에서 처분할 수 있는 사람은 금리가 떨어지기를 바랄 텐데, 그 국면에서 오히려 자본 이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에 금융자산의 축적이 증가하면 금리 인하에서 생기는 단기적인 이익은 클 것이고 그럴수록 금리 인하에 목매는 세력도 증가한다.
1980년대 이후 금융 세력이 금리 인하를 기대하고 주요 중앙은행들이 여기에 호응하면서 저금리 편향적인 금융정책을 편 배경에는 이 시기에 금융자산이 크게 팽창했다는 사정이 자리잡고 있다. 금융자산이 거대하게 축적된 현실에서 금리 인하는 금융세력의 약화가 아니라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가 생산한 부가가치의 많은 부분이 금융부문으로 지속적으로 흘러 들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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