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변호인단의 대표 격으로 윤석열의 이런 궤변을 국민에게 전파하는 윤갑근 변호사는 1964년생 충북 청주 출신이다. 청주고와 성균관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사법시험 29회, 사법연수원 19기로 윤 대통령의 4기수 선배인데, 나이는 네 살 적다.
연수원 19기에는 이름난 검사가 많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수사하고 박근혜 정부 민정수석을 지낸 우병우, 특수통으로 세월호 사건 때 대검 형사부장으로 청와대와 법무부의 해경 수사 외압에 맞섰던 조은석 현 감사원 감사위원(감사원장 직무대행), 문재인 정부 때 윤석열과 함께 검찰총장 후보에 올랐던 봉욱 전 대검 차장, 이런저런 구설에 올랐던 여성 1호 검사장 조희진 등이 다 윤 변호사의 사시 동기들이다.
윤 변호사는 1993년 대구지방검찰청에서 검사로 첫발을 내디뎠다. 이명박 정부 때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장, 중앙지검 3차장검사를 거치면서 특수통 계보에 이름을 올렸다. 박근혜 정부 때도 잘나간 편이다. 서울중앙지검 1차장을 거쳐 그해 말 검사장으로 승진해 대검 강력부장에 오른 데 이어 특수통 검사들이 선망하는 대검 반부패부장을 꿰찼다. 2017년 대구고검장을 끝으로 검찰을 떠났다.
윤 변호사는 검찰 재직 시 이른바 우병우 사단의 주요 인물로 꼽혔다. 박근혜 정부 때 우병우 민정수석이 검찰 인사를 주물렀다는 건 거의 정설이다. 윤 변호사가 그 시절 대검 강력부장에 이어 요직인 반부패부장을 맡은 것도 사시 동기인 우병우 덕분이라고 보는 사람이 많다.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사연이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의 후유증 등으로 검사장에 오르지 못하고 변호사 개업을 했던 우병우가 청와대 민정수석실 민정비서관에 임명된 것은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 지 한 달이 지난 2014년 5월이다. 두 달 뒤 세월호 사건과 관련해 유병언 세모그룹 회장에 대한 부실수사 책임을 지고 최재경 인천지검장이 사직하자, 대검 반부패부장이던 강찬우 검사장이 인천지검장 직무대행을 맡고, 윤갑근 대검 강력부장이 반부패부장 직무대행을 겸하는 연쇄 인사가 났다.
그해 11월 최순실씨의 남편인 정윤회씨가 박근혜 정부의 비선 실세라는 '십상시'를 이끌면서 국정에 개입한다는, 이른바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이 터졌다. 검찰은 처음에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에 맡겼다가 박근혜 대통령이 국기문란 사건으로 규정하자 특수2부를 투입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를 지휘하는 사람이 3차장검사인데, 현 국민의힘 법사위 간사인 유상범 의원이 당시 그 자리에 있었다. 2015년 1월 정윤회 문건 사건의 수사 결과를 발표한 사람도 바로 유상범 3차장이었다. 윤갑근이 직무대행을 맡은 대검 반부패부장은 전국 특수부 수사를 조율하고 지휘하는 자리였다.
당시 검찰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의 전조였던 이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대신 문건 유출 경위에만 수사를 집중해 관련자들을 처벌함으로써 청와대의 걱정을 덜어줬다. 뒤에서 검찰을 움직이던 우병우는 수사 발표 직후인 2015년 2월 민정수석으로 승진하면서 검찰 인사에 본격적으로 개입한다. 이때 윤갑근은 직무대행 꼬리표를 떼고 정식으로 대검 반부패부장이 된다.
2015년 12월 윤갑근 검사장은 대구고검장으로 승진했다. 이듬해 8월 언론을 통해 우병우 민정수석에 대한 각종 비리 의혹이 제기되자 검찰은 여론에 떠밀려 특별수사팀을 꾸리는데 윤갑근 고검장이 그 수사팀장을 맡았다. 이 수사팀은 우 수석에 대한 황제 조사, 봐주기 수사 논란에 휩싸였다. 검찰 조사실에서 우병우가 검사들 앞에서 팔짱 끼고 있는 사진이 이 같은 논란을 부채질했다.
우병우 전 수석 얘기를 하자면, 윤석열 대통령과의 인연을 빼놓을 수 없다. 우병우와 윤석열 두 사람은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8월~2011년 7월까지 2년간 대검에서 함께 근무했다. 우병우가 요직인 범죄정보기획관을 지낼 때 윤석열은 그 직속 부하인 범죄정보2담당관이었다. 이후 우병우가 중수부 수사기획관으로 영전하면서 윤석열을 특수통 코스인 중수2과장으로 끌어올렸다.
윤갑근의 목표는 차기 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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