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공공병원의 적자와 낮은 신뢰는 누구의 책임인가? 그리고 다음 정부는 이 오래된 숙제를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할까? 무엇보다 먼저 인정해야 할 중요한 전제가 있다. 바로 한국 사회가 이 사안을 논의하고 해석하는 데 필요한 경험과 지식이 아직 충분치 않다는 점이다.
지금 아픈 사람들은 "어떤 의료 체계가 바람직한가" 같은 질문을 할 겨를이 없다. 당장 어떤 병원에 어떻게 갈 수 있는지가 더 급한 문제다. 공공병원의 수가 워낙 적다 보니 애초에 이용해 본 사람도 드물고, "내가 경험한 공공의료"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더더욱 적다. 지역에 따라 필요로 하는 공공의료의 역할과 구성도 달라 공공의료를 지지하는 운동 안에서도 입장이 꼭 같지는 않다.
이런 조건에서는 의료의 공공성이나 체제 개혁을 논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이 주로 전문가나 의료인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다. 이처럼 시민들의 경험과 언어가 충분히 쌓이지 못한 현실은, 정치가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공공의료의 가능성에 회의적인 이들은 공공조직의 비효율을 탓한다. 완고한 공무원 조직 안에서 의사들이 자율적인 진료를 할 수 없고, 인력이 부족하고 임금이 낮은 탓에 동기부여가 되기 어렵다고 말한다. 서울의 대형 대학병원처럼 인재를 붙잡을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보니 조직 충성도도 낮다. 선의를 품고 공공병원에 입사한 의료인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그러나 공공병원은 수익이 나지 않고 다른 병원에서 꺼리는 환자를 치료하는 일을 본연의 업무로 삼는다. 전국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후천성면역결핍증(AIDS) 환자 중 절반 이상이 국립중앙의료원에서 진료를 받고, 지방정부들은 의료급여 환자나 노숙인, 장애인, 이주민 등 취약집단에 대한 의료를 공공병원에 맡긴다.
병원마다 지역의 필요에 부응하는 사업을 벌이기도 한다. 호스피스 완화의료 시범사업에 참여하고,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해바라기센터를 수탁 운영하며, 없는 사정에 자체 예산을 들여 미등록 이주여성의 산전진찰을 지원하기도 한다.
문제는 '공공성이 높은 의료'가 대개 경영에 부담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공공병원은 근로기준법과 산업안전보건법 등 각종 규제를 더 엄격히 준수해야 한다. 덕분에 민간보다 노조 조직률과 고용 안정성이 높아서 조직을 재편하거나 조정하는 일이 더 어렵다. 의사 등 관리자 역할을 하는 입장에서는 새로운 일을 벌이거나 관행을 바꾸기 어렵지만 일반 노동자들에게는 더 좋은 일터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처럼 규정이 엄밀하고 공공의 목적에 복무해야 하니 의료행위에도 더 많은 규제가 따른다. 값비싼 기계를 들여와 밤낮없이 돌리거나, 의학적 근거가 애매한 약을 처방하며 비급여 시장을 개척하기도 어렵다. 예방접종과 건강검진 등 비급여 의료를 하더라도 더 저렴하게 서비스를 제공해 지역의 의료비 상승을 억제하는 역할을 해내기를 기대받는다.
그런 와중에 코로나나 메르스 같은 신종 감염병이 돌면 병원을 통째로 비워 감염병 환자를 받는다. 그 사이 기존 환자들은 다른 병원으로 옮겨가 돌아오지 않는다. 감염관리를 위해 투자한 시설은 평상시 수익을 내는 데 도움이 안 되고, 괜찮은 수가를 보상받는 중증 의료를 수행하기엔 대학병원에 비해 두루 자원이 부족하다. 결국 일부 주민에게는 감염병 환자나 취약계층 진료를 전담하는 병원으로 여겨지기까지 한다. '나와는 상관없는 병원'으로 여겨지기 십상이라는 의미다. 그러다 보니 적자를 면할 도리가 없다.
지역에 공공의료 요구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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