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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지역 공동체, 나무심기로 되살린다

재난지역 공동체, 나무심기로 되살린다

 
이도원 2013. 11. 14
조회수 212추천수 0
 

비무장지대 등 세계 재난지역, 녹화 통해 어떻게 자연과 공동체 회복했나

자연 보살펴 사회-생태계 회복탄력성 기른 풍부한 사례와 이론 소개

 

오성산_녹색연합.jpg » 비무장지대 철원 오성산 부근의 풍경. 전쟁과 이후 자연이 살아나는 과정의 역사가 남아 있다. 사진=녹색연합

 

반갑게도 우연히 시의적절한 책을 한 권 만났다. 아직 우리 말 번역을 기다리고 있는 책으로 지난 수 년 동안 개인적으로 붙들고 있는 두 가지 숙제를 이어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먼저 그 두 가지 숙제를 간략히 소개해 본다.

 

하나는 “출근길 생태학”이라는 제목으로 연구실과 집을 잇는 길을 걸으며 만나는 다양한 풍경을 생태학적 시각으로 해석하는 일이다. 찻길을 피해 골목을 찾아다니는 출근길에서 마주친 가정집 앞 시멘트 바닥에 놓인 화분들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저 풍경을 이 땅에서 얼마나 오래 볼 수 있을까? 소박한 화분 가꾸기 능력의 소유자가 이 땅에서 생명을 다하면 저 풍경이 과연 유지될까? 우리의 행정기관은 청계천이나 서울숲, 더 나아가 4대강 같이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부어야 하는 사업들은 지원하면서 왜 저 기특한 마음을 북돋워줄 생각엔 미치지 못하고 있는가? 저 작은 풍경으로부터 늘 위로를 받는 주민들이 청계천이나 서울숲에 가볼 수 있는 날은 일생에 몇 번이나 될까? 거대한 사업의 극히 일부를 내 집 앞 가꾸기 경진대회에 투자하면 어떨까? 국책사업은 모두 정책 입안자와 기업가의 몫인데 조성과정에 시민들의 참여를 차단하고 있는 이 현실은 과연 바람직할까?"


이런 마음으로 출근길에서 만나는 풍경의 뒷면에 관심을 가지고 짧은 글을 소개해본 나는(이도원 2011) 이제 생각을 더욱 펼쳐 단행본을 내어볼 꿈을 꾸고 있다(이도원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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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색지대 녹화: 재난과 회복탄력성, 공동체 녹화

Keith G. Tidball and Marianne E. Krasny ed. Greening in the Red Zone: Disaster, Resilience and Community Greening, 2013, Springer.

 

다른 하나는 강의와 연구를 위해 내가 해야 할 임무의 일부다. ‘회복탄력성(resilience)과 지속가능성이라는 주제를 어떻게 소개할 수 있을까?’

 

김주환(2011) 교수는 그의 책에서 회복탄력성을 “원래 제자리로 되돌아오는 힘을 일컫는 말로 회복력 혹은 높이 되튀어 오르는 탄력성을 뜻한다. 심리학에서는 주로 시련이나 고난을 이겨내는 긍정적인 힘을 의미하는 말로 쓰인다.”고 설명했다.

 

이 설명은 1973년 한 생태학자(C. S. Holling)가 처음으로 제안하고, 지금은 사회-생태계의 지속가능성(social-ecological system)의 바탕이 되고 있는 중요한 회복탄력성 개념(Walker & Salt 2006)을 개인의 자기 계발이라는 제한된 수준에 적용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개념을 수년 전 아주 간략하게 소개해 봤으나(이도원과 박찬열 2009), 만족할 수준으로 전달하는 길은 아직 실현하지 못했다.

 

Lienhard Schulz_640px-Heidekampgraben_Berlin_10_Mahnmal.jpg » 분단장벽이던 동서 베를린 국경 2.3㎞가 도심녹지로 개발됐다. 사진=린하르트 슐츠, 위키미디어 코먼스

 

최근에 만난 책,'적색지대 녹화'는 망가진 공간과 시기를 경험한 사람들이 녹지를 만들고 가꾸는 사업에 참여함으로써 인간과 공동체, 더 나아가 사회-생태계 전체가 회복탄력성을 되살린 사례들과 이론을 엮어 내가 고민하고 있는 두 가지 화두를 잘 정리하고 있다.

 

저자들이 책에서 적색지대를 길게 정의하고 있지만 나름대로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태풍이나 지진 같은 자연재해와 테러공격이나 전쟁과 같은 인재를 겪은 재난 이후의 상황을 포함하여 잠재적으로 또는 가까운 시기에 적대적이거나 위험하고 극심한 시공간적 상황(setting)을 말한다.”

 

편집자들은 이 책을 35개의 장으로 구성했다. 즉, 10개 장의 동기 및 설명(motive and explanation)과 11개 장의 사례연구(case study), 11개 장의 축약사례(vignette), 2개 장의 서론, 1개 장의 종합분석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수많은 개념과 내용을 포함하면서 생긴 복잡성을 해소하기 위해 독자들에게 전체 개관을 매우 성의 있게 제시하고 있는 점이다. 그리하여 독자는 1장에서는 책의 주요 구성이 되는 동기 및 설명과 사례연구, 축약사례에 포함된 각 장들에 대한 개요를 3개의 표로 나누어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조망을 함으로써 독자가 흥미를 느끼는 주제를 찾아가면 초두에 짧은 요약을 만난다. 이 요약은 그 글을 어떻게 읽을 것인지 스스로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런 만큼 편집자들은 자연을 보살피는 인간의 행동이 어떻게 개인과 공동체, 사회-생태계의 회복탄력성을 배양하는지 탐구할 목적으로(Tidball & Krasny 2013:11) 다양한 나라와 규모, 내용의 사업 사례를 수집하여 제시했다.

 

Bjoertvedt_640px-Bosnia_invert_tree_line_IMG_9310_sarajevo_Hrid.jpg » 사라예보 동쪽 산등성이가 보스니아 전쟁 때 세르비아군이 포격과 저격을 위해 벌채한 모습. 사진=Bjoertvedt, 위키미디어 코먼스

 

앞서 밝혔듯이 이 내용은 책의 1장에서 표로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해 놓았다. 대강을 보면 일본의 동경과 히로시마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도시숲 가꾸기(제18장), 서로 다른 나라에서 태풍에 의한 파괴 이후의 도시숲 복원(제19, 20, 22, 23장), 테러 공격으로 가족과 친구를 잃은 사람들의 정원조성 활동(제25장), 죄수와 간수들의 정원 가꾸기(제27장), 이민자들의 녹색활동(제29장), 독일의 분단장벽 녹화(34장), 한국의 비무장지대(제15장), 과테말라와 보스니아, 헤르제고비나의 전쟁 이후 공동체 정원 나무심기(제30장), 아프가니스탄의 혼농임업(제9장), 케냐의 야생동물 관리 노력(제28장), 미국과 영국의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참전 예비군들의 녹색활동(제13장), 러시아연방 붕괴 이후 별장정원(dacha garden) 활성사업(제26장)들이다.

 

한국 독자에게 특별히 가까운 내용은 두 가지 한국 사례일 터이다. 하나는 편집자의 한 사람인 크래즈니(M.E. Krasny) 교수에게서 박사학위 논문지도를 받고 있는 이은주의 글이다(제12장). 제1장의 표에서 요약된 내용을 재구성해보면 다음과 같다.

 

산업화와 태풍으로 망가진 강원도 동해시 해안가 마을을 이주시키고 작은 해안림을 만든 사례이다. 생태계 서비스를 제공하는 작은 숲을 새로 만드는 과정으로 공동체 감성과 문화전통을 포함하는 시골의 생활양식의 회복탄력성을 끌어냈다. 시민단체와 함께 주민의 참여와 문화 활동의 기회를 유도한 것이 녹화사업에 대한 긍정적 반응으로 본다.”


다른 하나는 카타르대학교의 그리칭(Anna Grichting) 교수와 서울대학교 김귀곤 명예교수의 비무장지대에 대한 글로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w015장).

 

한반도 비무장지대를 냉전과 분단, 갈등, 통일에 대한 열망, 특이한 생물다양성 보존의 국가적 국제적 상징 경관으로 보고, 전쟁으로 망가진 지대의 생태계와 다양성과 인간의 갈등을 주위보다 더 건강한 상태로 전환할 수 있는 회복탄력성을 기대한다. 특이한 생물다양성을 간직하는 통일이후 녹색지대 계획과 생태관광의 잠재력을 녹지 가꾸기로 기대할 수 있는 반응으로 내다본다.”


이 자료들을 기반으로 편집자들이 전체의 짜임새를 갖추기 위해 보여준 노력은 처절하다. 많은 저자들의 글을 모아놓은 대부분의 책에서 발견되는 허술함을 최근의 학술적인 개념들로 흩어진 생각을 엮은 결과는 귀감이 되겠다.

 

640px-Dachas_outside_Kirov.jpg » 러시아 키로프 주변의 여름농장인 다차 모습. 사진=위키미디어 코먼스

 

회복탄력성을 중심에 두고, 적응순환(adaptive cycle), 되먹임 순환(feedback cycle), 패나키(panarchy), 적응(adaptation), 변환(transformation), 생명애(biophilia), 장소애 또는 장소애착(topophilia), 사회적 학습과 기억(social learning & social memory), 시민생태학(civic ecology), 긍정적 정서(positive emotions), 공동체성(sense of community), 참살이(human well-being) 등의 개념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자칫 어려운 말로 독자를 힘들게 할 가능성은 있지만 2장의 서론과 1장의 종합으로 저마다 다른 사례들을 유기적으로 엮는 방법이었던 만큼 독자들에게 안겨줄 선물은 클 것이다. 소개된 여러 개념에 익숙하지 않는 독자는 먼저 흥미로운 사례를 몇 개 읽은 다음 1장과 2장을 공부하는 순서도 시도해볼 만하다.

 

이 책이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독자들의 흥미를 끌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공간의 가치 증진을 위해 노력하는 분야에 종사하는 전문가들(이를 테면 토지이용계획가이나 조경가, 원예가, 정책 결정자, 행정가)에게 많은 도움이 될 책이다. 더 나아가 사회-생태계의 회복탄력성과 지속가능성의 관계를 이해하고자 하는 학도들에게 넉넉한 정신적 자양분을 제공할 것으로 믿는다.

 

참고자료

김주환. 2011. 회복탄력성. 서울: 위즈덤하우스.
이도원. 2011. 출근길 잠깐의 사유, 풍경과 생태. 오명석 엮음. 『서울대 명품강의 2』. 글항아리, 서울. 279-298쪽.
이도원. 2014. 마을과 도시 풍경 속의 생태학. 서울: 지오북(인쇄중).
이도원, 박찬열. 2009. 우리나라 전통생태 지식과 실천의 현대적 함의: 지속가능성 관점. 문화관광부 편.『아시아 생태문화 입문』민속원:서울, 57-75쪽.
Tidball, K.G., and M.E. Krasny (eds.) 2013. Greening in the Red Zone: Disaster, Resilience and Community Greening. New York: Springer.
Walker, B., and D. Salt. 2006. Resilience Thinking: Sustaining Ecosystems and People in a Changing World. Washington, DC: Island Press

 

이도원/ 한겨레 물바람숲 필진,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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