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서 제1도련선은 주한미군이 관할하는 저지선이 아니라 미국 인도태평양사령부가 관할하는 저지선이다. 문제는 주한미군사령관이 ‘뒤집힌 지도’를 갖고 제1도련선 문제를 거론하고 있다는 점이다.
주한미군사령관의 시선이 제1도련선 안의 지역 즉 동중국해, 대만, 남중국해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뒤집힌 지도’의 존재가 드러난 것은 지난 6월 말이다. 브런슨 사령관이 한 컨퍼런스에서 주한미군이 올해 초부터 ‘뒤집힌 지도’를 제작해 내부 교육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힌 것이다.
주한미군의 역할 범위가 남중국해로까지 확대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주한미군의 새로운 발견,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는 전략적 요충지
브런슨 사령관이 이 연설에서 지적했듯이, 미국 인도-태평양 전략의 초석은 제1도련선이다. 그런데 ‘뒤집힌 지도’로 보면 주한미군이라는 존재는 새로운 가치를 갖는다. 다음은 브런슨 사령관 연설의 한 문장이다.
“이미 한반도에 배치된 병력은 증원이 필요한 원거리 전력이 아니라, 위기나 유사시 미국이 돌파해야 할 도련선 내부에 이미 배치된 병력으로 드러납니다.”
이 발언은 두 가지 중요한 문제를 제시한다.
첫째, 미국은 제1도련선을 방어선 혹은 저지선으로 설정한 것이 아니라, 돌파선(to penetrate)으로 설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도-태평양사령부가 지난 9월 실시한 한미일 프리덤 에지 군사연습을 설명하면서 “제1도련선 안에서 전투 가능성 전력”을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프러덤 에지가 제1도련선에서 중국 군사력을 방어 혹은 저지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군사연습은 제1도련선 ‘밖’에서 해야 한다. 제1도련선을 돌파하여 중국으로 진출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제1도련선 안’에서의 전투 전력을 언급한 것이다.
둘째, 주한미군의 가치이다. 브런슨에 따르면 주한미군은 제1도련선 내부에 “이미 배치된 병력”이다. 그래서 한국은 자연스럽게 “전략적 요충지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이 브런슨의 사고이다.
그렇다면 전략적 요충지로서의 주한미군의 역할은 무엇일까. 브런슨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관점의 전환은 한국이 지닌 자연적 전략적 요충지로서의 역할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거리 분석을 통해 캠프 험프리스가 잠재적 위협에 얼마나 가까이 위치해 있는지가 드러납니다. 평양까지 약 158마일, 베이징까지 약 612마일, 블라디보스토크까지는 약 500마일입니다. 한국은 러시아로부터 오는 북방 위협에 대응하는 동시에, 한·중 간 해역에서 벌어지는 중국의 활동에 맞서 서쪽 방향의 작전 범위를 제공하는 위치에 있습니다.”
위 발언은 주한미군 기지가 갖는 전략적 가치를 드러낸다. 평택에 있는 캠프 험프리스는 평양, 베이징, 블라디보스토크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다. 따라서 러시아의 위협에도, 중국의 위협에도 대응할 수 있는 전략적 이익을 미국에 준다.
브런슨의 연설이 강조하는 것은 분명하다. 주한미군의 역할이 대중국, 대러시아로 확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뒤집힌 지도’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의 필요성과 효용성을 드러낸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은 중국으로의 역할 확대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러시아로의 역할 확대도 포함된다. 주한미군은 제1도련선 안에 있는 유일한 미군으로써 대중국 전초기지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또한 주한미군은 북방에서 내려오는 ‘러시아의 위협’에도 대응해야 한다.
한국, 일본, 필리핀을 연결하는 전략적 삼각 지대의 중요성
브런슨의 사고는 새로운 전략적 삼각 지대의 형성으로 확대된다. 한국과 일본, 필리핀을 연결하는 삼각 지대를 형성(emergence)해야 한다는 것이다.
브런슨은 이를 ‘삼각 프레임워크’라고 표현하는데, 미국에게 상호 보완적인 역량을 제공한다. 특히 북중러를 동시에 대상으로 하는 ‘삼각 프레임워크’에서 한국은 전략적 깊이와 중심적 위치를 제공한다. 세 나라 모두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위치로 인해 한국은.러시아와 중국 모두에 대해 비용을 부과하는 능력이라는 추가적인 이점도 제공한다.
여기서 비용 부과 능력(cost-imposition capabilities)은 적에게 군사적으로, 전략적으로 부담을 주는 효과를 의미한다. 즉 ‘삼각 프레임워크’ 안에 한국이 존재함으로써 중국과 러시아는 군사 작전을 성공하기 어려운 부담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노골화되는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더 이상 방치하면 안된다
주한미군사령관이 이렇게 노골적으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강조한 적은 없었다. 이는 한미 팩트 시트와 SCM 공동성명에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확대를 우리 정부가 동의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브런슨의 연설문 공개는 이재명 정부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확대를 합의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제 주한미군 기지를 대중국, 대러시아 전초기지로 만드는 과정이 본격화될 것이다. 이미 그것은 시작되었다. 군산 기지로 F-16이 집결하고 있다. 지난해 31대의 F-16으로 첫 수퍼비행대대를 창설한 미군은 올해 두번째 수퍼비행대대를 창설했다. 주한미군은 시범 운영을 위한 조치라고 밝히지만, 새로운 기지에서의 F-16 비행을 테스트하는 단계라는 말이지 F-16이 오산기지에 임시 머물렀다가 다른 곳으로 이전 배치된다는 뜻이 아니다.
2020년에 군산 기지에는 강화된 격납고 20개가 신설되었다. 올해 추가로 18개의 강화된 격납고가 완공될 예정이다. 이곳엔 F-35A 전략폭격기가 배치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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