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만 갈아치운 ‘이름 세탁’, 굴종은 가려지지 않는다
‘승인’ 없인 아무것도 못 한다는 모욕의 역사
대통령 결단 뭉개고 미국 상전 모시는 안보실
평화는 구걸이 아니다, 당당한 주권의 길로 가자

결국 우려하던 일이 벌어졌다. 외교부가 주도하는 ‘한미 대북정책 공조회의’가 지난 16일 가동됐다. 통일부가 ‘주권 침해’를 이유로 불참을 선언하며 제동을 걸었으나, 외교부는 미국과 마주 앉아 협의체 가동을 강행했다. 이는 한반도 평화 공존을 위한 우리 정부 자율 공간을 스스로 폐쇄한 행위다.

간판만 갈아치운 ‘이름 세탁’, 굴종은 가려지지 않는다

외교부는 논란이 일자 협의체 이름을 ‘한·미 정상회담 조인트 팩트시트 후속 협의’로 슬그머니 바꿨다. 하지만 간판을 바꾼다고 본질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이는 통일부의 정당한 문제 제기를 교묘하게 피해 결국 미국 의도대로 대북 정책을 통제하겠다는 ‘이름 세탁’에 불과하다. 껍데기만 바꾼 협의체는 사실상 부활한 ‘제2 한미워킹그룹’이자 우리 정책을 검열하는 통제 기구일 뿐이다.

이 협의체는 태생부터 위법하다. 우리 법은 남북 관계 주무 부처를 통일부로 명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대북 정책 조율권을 외교부가 쥐고 미국과 실무 협의를 진행하는 것은 헌법과 정부조직법 근간을 흔드는 월권이다.

‘승인’ 없인 아무것도 못 한다는 모욕의 역사

우리는 과거 트럼프 대통령이 남북 관계 개선 움직임을 두고 “한국은 미국 승인 없이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던 모욕적인 언사를 똑똑히 기억한다. 당시 그 고압적인 ‘승인’ 체제의 실체가 바로 한미워킹그룹이었다.

2018년 평양 정상회담 감동이 채 식기도 전, 워킹그룹은 ‘공조’를 앞세워 남북 사이를 가로막았다. 개성공단 재개와 금강산 관광, 철도·도로 연결 같은 내부 사업조차 미국 사전 승인 없이는 한 걸음도 떼지 못하게 만들었다. 인도적 지원과 사회문화 교류마저 제재 문턱에 걸려 멈춰 섰다. 전직 통일부 장관 6인이 한목소리로 “제2 워킹그룹은 안 된다”고 경고한 것은 반복되는 실패에 대한 뼈아픈 성찰이다.

대통령 결단 뭉개고 미국 상전 모시는 안보실

 

이번 첫 회의 결과는 참담하다. 양국은 ‘빈틈없는 공조’를 내세웠으나 내용은 케케묵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대북 제재‧압박 강화였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제안하고 대통령이 언급했던 ‘한미연합군사훈련 조정’이나 ‘대화 여건 조성’은 논의 안건조차 되지 못했다.

정부 주무 부처 평화 전략은 미국 ‘우려’ 한마디에 허망하게 무너졌다. 특히 이재명 대통령 통치 철학을 앞장서 실현해야 할 위성락 안보실장이 도리어 미국 대통령의 기색을 살피며 훈련 축소 가능성을 일축한 처사는 실로 개탄스럽다. 대통령 결단보다 미국 눈치를 앞세운 안보 수장의 굴욕적인 후퇴 직후 이 협의체가 가동된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는 ‘공조’ 명분이 실제로는 우리 정책을 검열하고 통제하는 족쇄임을 입증한다.

평화는 구걸이 아니다, 당당한 주권의 길로 가자

위성락 실장은 지금 이 순간에도 미국과 일본을 돌며 한미일 안보협력에만 몰두하고 있다. 정작 한반도 긴장을 낮추는 핵심 열쇠인 군사훈련 중단과 같은 과감한 신뢰 구축 조치는 안중에도 없다. 미국 실무 관료들의 냉전적 사고에 우리 정책 운명을 맡기는 한, 평화는 결코 오지 않는다.

국민이 바라는 것은 미국 허락을 구하는 정부가 아니라, 스스로 평화 길을 여는 주권 정부다. 평화 공존 전략이 ‘공조’ 족쇄에 묶여 폐기되는 현실을 더는 묵과할 수 없다. 이름만 바꾼 채 주권을 침해하는 이 기형적 협의체는 존재할 이유가 없다.

정부는 당장 '한미 대북정책 공조회의'를 해산하라. 낡은 굴레를 벗고 당당하게 주권의 길로 나서는 것만이 한반도 위기를 극복하는 유일한 해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