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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강국' 염원한 백범은 '효창운동장 철거'를 납득할까?

[이종성의 스포츠 읽기] 애국선열 추모와 스포츠 유산 공존이 진짜 문화 강국의 길

이종성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 | 기사입력 2026.01.30. 08:49:16

내 올해 계획 중 하나는 잠실야구장에서 프로야구 경기를 보는 것이다. 1982년에 개장한 잠실야구장이 올 시즌을 끝으로 사라지고 재건축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한국 프로야구의 성지(聖地)이자 학창 시절 추억이 담겨 있는 원래의 잠실야구장에서 경기를 보는 건 올해가 마지막인 셈이다. 하지만 이미 2년 전부터 입장권 구하기가 매우 힘들어진 잠실야구장 직관에 성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어쩌면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야구 올드 팬들이 많다면 난 잠실야구장 직관에 실패할 것이다.

느닷없이 잠실야구장 얘기를 꺼낸 건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잇달아 효창운동장 철거를 재촉했기 때문이다. 지난 해 12월 국가보훈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효창공원 안에 위치한 효창운동장 철거와 공원화 검토를 지시한 이 대통령은 지난 20일 국무회의에서 재차 국립공원화 방안을 강구하라고 보훈부에 주문했다.

이 대통령은 "김구 선생부터 많이 모셔져 있는데, 가끔씩 가보면 너무 음침하다"며 김구 선생과 윤봉길 의사 등이 안치된 효창공원 전체를 항일독립투사들의 성지로 새롭게 단장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이 대통령의 지시에 이제 효창운동장은 철거 기로에 섰다.

▲ 효창운동장 ⓒ서울시 체육시설관리사업소

왜 효창공원에 축구장이 건립됐을까?

물론 효창운동장이 효창공원에 세워진 배경에는 이승만 정권의 정치적 의도가 크게 작용했다.

1956년 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아시안컵)에서 우승을 차지한 한국은 1960년 대회 개최권을 확보했지만 대회를 개최할 만한 국제규모의 축구장이 없어 부득이 하게 경기장을 새로 지어야 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이승만 대통령이 국유지였던 효창공원 안에 축구장을 건설하라는 지시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효창운동장 건립 계획은 초기부터 거센 반대에 휘말렸다. 이 계획에는 이승만의 정치적 라이벌이었던 백범 김구를 비롯한 순국선열들의 묘소를 훼손하려는 의도가 다분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축구장을 세우려면 백정기, 윤봉길, 이봉창 의사의 묘소를 이장해야 한다는 당국의 계획이 발표되자 순국선열들의 유족들은 물론 언론과 국회까지 이 계획에 반기를 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독립운동가들의 묘소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경기장 건립이 시작됐다. 하지만 예산 부족과 잦은 설계 변경으로 무리한 공사 진행이 이어졌다. 대회가 개막하기 전까지 관람석 주위의 마무리 공사가 채 끝나지 않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한국 대표팀은 이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해 아시안컵 2연패를 달성했다. 하지만 구름 관중이 몰린 한국과 이스라엘과의 경기에서 불상사가 발생했다. '공짜 티켓' 때문에 효창운동장 관중 수용 규모보다 두 배나 많은 팬들이 몰려든 데다, 난간도 설치되지 않았던 부실공사까지 겹쳐 관중들이 넘어지고 21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한마디로 1960년 아시안컵 대회는 4.19 혁명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한 뒤에 나타난 한국 사회의 혼란스러운 상황의 축소판이었던 셈이다.

▲ 1960년 10월 효창시립운동장 개장식 ⓒ서울기록원

효창운동장이 품고 있는 한국 축구 역사

하지만 효창운동장에서 이룬 아시안컵 2연패는 광복 이후 한국 축구가 '아시아의 호랑이'라는 별칭을 얻는 계기가 됐다.

1961년 유고슬라비아와의 월드컵 예선전 경기가 효창운동장에서 펼쳐지기도 했다. 이 경기는 광복 이후 한국 대표팀이 공산권 국가와 가진 최초의 경기로 기록돼 있다. 효창운동장은 크고 작은 선거에서 정치인들의 유세 장소로도 자주 활용됐다. 대표적으로 1971년 대통령선거 당시 김대중 신민당 후보도 효창운동장에서 유세를 했다.

이후 효창운동장은 한국 고교 축구선수들의 땀과 꿈이 서린 무대로 스포츠 역사를 썼다. 주요 전국고교축구대회가 효창운동장에서 펼쳐졌고, 미래의 한국 축구를 이끌어 갈 유망주들도 이곳에서 성장했다. 학창 시절 축구부가 있는 고등학교에 다녔던 팬들 역시 효창운동장에서 친구들과 응원전을 펼쳤던 추억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지난 1983년 인조잔디가 깔리기 전까지 흙바닥에 먼지가 심하게 날렸고 접근성도 당시 고교야구의 성지였던 동대문야구장에 비해 열악했지만, 누가 뭐래도 효창운동장은 한국 축구의 산실이자 요람이었다.

한국 축구가 세계로 나아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했던 1983년 멕시코 세계 청소년 축구대회 4강 신화도 효창운동장에서 시작됐다. 당시 청소년 대표팀을 지휘했던 박종환 감독은 선수들과 함께 멕시코로 떠나기 전 효창운동장에서 산소마스크를 쓰고 훈련을 했다. 멕시코 고원 지대에서 펼쳐질 경기에 대비한 이 특별 훈련은 멕시코 4강 신화 창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효창공원과 효창운동장 모두 역사적 보존가치가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지시 이전에도 효창운동장 철거는 자주 논의됐었다. 백범 김구 서거 50주년이던 1999년에는 효창운동장을 허물고 그 자리에 백범기념관을 건립하는 계획이 수립됐었다. 서울시의회는 효창운동장 철거를 뼈대로 하는 효창원 성역화 및 백범기념관 건립촉구 건의안을 의결했다.

하지만 대한축구협회는 1년에 1000여 건의 아마추어 경기가 열리는 효창운동장 철거에 반대의사를 냈다. "불과 1년 전에 8억 원의 예산을 들여 인조잔디를 새로 깔고 나서 운동장 전체를 철거하겠다는 건 탁상행정의 표본"이라고 꼬집은 대한축구협회의 주장은 일리가 있었다. 결국 효창운동장 철거 계획은 백지화됐고 백범기념관은 효창공원 테니스장 자리에 건립됐다.

효창운동장 철거 문제는 2005년에 또 불거졌다. 노무현 정부는 효창운동장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녹색 광장과 백범 광장 등을 조성하려고 했다. 국가보훈처는 당시 효창공원을 독립공원으로 만들어 이 공간을 애국선열들에 대한 '추모의 장소'로 활용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독립운동가 묘역이라는 효창공원의 성격과 맞지 않는, 대한노인회중앙회, 노인복지관, 반공위령탑, 배드민턴장과 체력단련장 등의 이전도 추진했다. 하지만 이 계획도 체육계와 효창공원 인근 주민 등의 반대에 부딪쳐 좌초됐다.

2019년에 서울시와 국가보훈처는 '효창 독립 100년 공원 구상안'을 내놓았다. 이 계획은 효창운동장을 존속시키는 대신 독립운동가 묘역을 가로막고 있는 경기장 스탠드와 조명탑 등 일부 시설만 없애는 것이었다. 이 같은 결정은 서울시민과 각계 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효창공원과 효창운동장 모두 역사적으로 보존가치가 있다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 1983년 10월 효창구장시설공사 ⓒ서울기록원

스포츠 유산으로 남아야 할 효창운동장

동대문야구장이 사라진 뒤 들어선 동대문디자인플라자는 세계적인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건물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가 설계한 건물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찍으려는 관광객만 존재할 뿐, 내부 동선이 복잡하고 새로운 콘텐츠가 부족해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의 관객 유입 효과는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모습이다. 자연스레 주변 상권도 침체되고 있다. 만약 동대문운동장이 그대로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효창공원에 위치하고 있는 효창운동장도 이 같은 관점에서 공존의 모델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독립운동가들을 위한 추모 공간에 더 많은 시민들을 찾게 하려면 다양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오순도순 얘기를 나누는 벤치, 인근 주민들이 조깅을 할 수 있는 길, 동호인들이 공을 차는 축구장이 함께 있다고 한들, 추모의 의미가 훼손되지는 않을 것이다. 축구도 하고 가족들과 나들이도 하면서 독립운동가들을 추모할 수 있는 '복합 공간' 말이다.

효창운동장 부근에는 이봉창 의사 동상이 폭탄을 던지는 모습으로 서있다. 축구장 바로 옆에 의거하는 독립운동가의 동상이 세워져 있는 곳은 세계적으로도 찾기 힘들다. 그래서 이곳을 지날 때마다 효창공원과 효창운동장은 이미 사이좋게 공존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이승만의 불순한 의도로 건립된 경기장이라기보다, 독립운동가들과 함께 하는 경기장이라는 느낌이다.

한국은 이제 백범이 꿈꾸었던 '문화 강국'의 반열에 올라섰다. 문화 강국이 된 한국에서 독립운동가 묘소의 성역화를 위해 지난 2013년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등재된 효창운동장이라는 스포츠 유산을 철거하는 게 타당한지 잘 이해가 안 된다. 그럼에도 굳이 효창운동장을 철거하면, 한국에서 스포츠 유산은 문화유산으로 대접받을 수 없는, 홀대의 유력한 근거가 될 것이다.

이종성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

<프레시안> 스포츠 전문기자 시절, 스포츠와 사회·문화·역사가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구조에 주목했던 언론인 출신 학자다. 이후 축구의 본고장 영국으로 건너가 드몽포트대학교에서 '남북한 축구사'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양대학교 스포츠산업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야구의 나라>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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