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창운동장이 품고 있는 한국 축구 역사
하지만 효창운동장에서 이룬 아시안컵 2연패는 광복 이후 한국 축구가 '아시아의 호랑이'라는 별칭을 얻는 계기가 됐다.
1961년 유고슬라비아와의 월드컵 예선전 경기가 효창운동장에서 펼쳐지기도 했다. 이 경기는 광복 이후 한국 대표팀이 공산권 국가와 가진 최초의 경기로 기록돼 있다. 효창운동장은 크고 작은 선거에서 정치인들의 유세 장소로도 자주 활용됐다. 대표적으로 1971년 대통령선거 당시 김대중 신민당 후보도 효창운동장에서 유세를 했다.
이후 효창운동장은 한국 고교 축구선수들의 땀과 꿈이 서린 무대로 스포츠 역사를 썼다. 주요 전국고교축구대회가 효창운동장에서 펼쳐졌고, 미래의 한국 축구를 이끌어 갈 유망주들도 이곳에서 성장했다. 학창 시절 축구부가 있는 고등학교에 다녔던 팬들 역시 효창운동장에서 친구들과 응원전을 펼쳤던 추억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지난 1983년 인조잔디가 깔리기 전까지 흙바닥에 먼지가 심하게 날렸고 접근성도 당시 고교야구의 성지였던 동대문야구장에 비해 열악했지만, 누가 뭐래도 효창운동장은 한국 축구의 산실이자 요람이었다.
한국 축구가 세계로 나아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했던 1983년 멕시코 세계 청소년 축구대회 4강 신화도 효창운동장에서 시작됐다. 당시 청소년 대표팀을 지휘했던 박종환 감독은 선수들과 함께 멕시코로 떠나기 전 효창운동장에서 산소마스크를 쓰고 훈련을 했다. 멕시코 고원 지대에서 펼쳐질 경기에 대비한 이 특별 훈련은 멕시코 4강 신화 창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효창공원과 효창운동장 모두 역사적 보존가치가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지시 이전에도 효창운동장 철거는 자주 논의됐었다. 백범 김구 서거 50주년이던 1999년에는 효창운동장을 허물고 그 자리에 백범기념관을 건립하는 계획이 수립됐었다. 서울시의회는 효창운동장 철거를 뼈대로 하는 효창원 성역화 및 백범기념관 건립촉구 건의안을 의결했다.
하지만 대한축구협회는 1년에 1000여 건의 아마추어 경기가 열리는 효창운동장 철거에 반대의사를 냈다. "불과 1년 전에 8억 원의 예산을 들여 인조잔디를 새로 깔고 나서 운동장 전체를 철거하겠다는 건 탁상행정의 표본"이라고 꼬집은 대한축구협회의 주장은 일리가 있었다. 결국 효창운동장 철거 계획은 백지화됐고 백범기념관은 효창공원 테니스장 자리에 건립됐다.
효창운동장 철거 문제는 2005년에 또 불거졌다. 노무현 정부는 효창운동장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녹색 광장과 백범 광장 등을 조성하려고 했다. 국가보훈처는 당시 효창공원을 독립공원으로 만들어 이 공간을 애국선열들에 대한 '추모의 장소'로 활용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독립운동가 묘역이라는 효창공원의 성격과 맞지 않는, 대한노인회중앙회, 노인복지관, 반공위령탑, 배드민턴장과 체력단련장 등의 이전도 추진했다. 하지만 이 계획도 체육계와 효창공원 인근 주민 등의 반대에 부딪쳐 좌초됐다.
2019년에 서울시와 국가보훈처는 '효창 독립 100년 공원 구상안'을 내놓았다. 이 계획은 효창운동장을 존속시키는 대신 독립운동가 묘역을 가로막고 있는 경기장 스탠드와 조명탑 등 일부 시설만 없애는 것이었다. 이 같은 결정은 서울시민과 각계 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효창공원과 효창운동장 모두 역사적으로 보존가치가 있다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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