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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자폭했는데, 난 못 했어요”…26살 북한군이 말했다

입력 2026.01.3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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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 참전 1년’ 우크라이나는 지금?

김영미 PD가 경향신문에 전한 취재기

이토록 무참한…러-우전쟁 4년의 ‘참상’

다큐앤드뉴스코리아 제공

우크라이나 전쟁이 한창이던 2024년 말. 우크라이나군은 격전지 쿠르스크에서 적군의 시신을 수색하던 중 한 편지를 발견했습니다. 편지에는 한글로 ‘그리운 조국’ ‘정다운 아버지 어머니’ 등이 적혀 있었습니다. 말로만 떠돌던 북한군 파병설을 증명하는 부정할 수 없는 물증이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파병된 북한군이 본격적으로 전투를 시작한 지도 어느덧 1년이 흘렀습니다. 전력을 강화한 러시아는 공세를 높였고, 북한군은 첨단 전쟁 기술을 익히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시민들의 고통은 더 길고 짙어졌습니다. 오늘은 북한군 참전 1년을 맞아 우크라이나를 찾은 김영미 국제분쟁전문 PD가 경향신문에 보내 온 생생한 취재기를 전해드립니다. 김 PD가 북한군 포로 2명을 인터뷰한 기록도 함께 담았습니다.

“북한군, 생포하려니 자폭하더라”

북한군이 투입된 쿠르스크는 러시아의 농업지대로, 유럽으로 가는 가스관과 원전이 위치한 요충지입니다. 우크라이나는 2024년 8월 최정예부대를 앞세워 쿠르스크를 점령했습니다. 허를 찔린 러시아는 북한에 손을 내밀었습니다. 북한과 러시아는 ‘한쪽이 침공을 받으면 다른 쪽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돕는다’는 조약을 맺고 있었거든요. 2024년 10월 러시아에 도착한 북한군 1만3000명은 훈련을 받고 같은 해 12월 쿠르스크에 배치됐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70여년이 넘도록 대규모 교전을 치러본 적 없는 북한군은 드론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북한군은 드론전에 적응했습니다. 러시아는 북한군에 전자전 장비와 드론 사용법을 가르쳤고, 나중에는 북한군이 직접 드론을 운용하기도 했습니다.

우크라이나군을 질리게 만든 건 북한군의 ‘독기’ 또는 ‘광기’였습니다. 부상당한 북한군은 우크라이나군이 접근하면 수류탄 핀을 뽑아 자폭하기 일쑤였습니다. 생포되자 스스로 팔을 물어뜯어 숨진 이도 있었습니다. ‘포로가 되느니 자살하라’고 철저하게 세뇌당했기 때문입니다. 맹목적으로 돌진하는 북한군을 앞세워 러시아는 2024년 4월 쿠르스크를 탈환했습니다.

‘미사일 오나’ 앱으로 확인하는 일상

북한은 러시아에 단거리 탄도미사일(KN-23)도 무더기로 제공했습니다. 명중률이 떨어지던 북한 미사일은 러시아 기술자들의 보완을 거쳐 더 정밀하고 강력해졌습니다. 북한군이 현대전에 익숙해지고 있는 겁니다. 우크라이나 국방부 관계자는 “이들이 북한으로 돌아가면 100만 대군을 훈련시키는 교관이 될 수 있다”며 “한국은 용맹하고, 잘 훈련됐으며, 신식 무기로 무장한 적을 갖게 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다큐앤드뉴스코리아 제공

북한군의 강화된 전력은 우크라이나 민간인까지 위협했습니다. 평범한 주택가에 북한제 미사일이 쏟아지고 있는 겁니다. 우크라이나 시민 나탈리아(81세)는 “부엌에서 죽을 끓여 남편에게 건네려는 순간 미사일 파편들이 집안으로 쏟아져 들어왔고 얼굴은 피범벅이 됐다”며 “집 전체가 통째로 솟구쳐 오르는 것 같은 느낌이 계속 떠오른다”고 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시민들은 언제 날아들지 모르는 미사일 때문에 공포에 떱니다. 자정이 넘은 시간, 공습경보가 울리자 시민들은 바로 휴대전화를 열었습니다. 앱을 통해 미사일이 어느 지역으로 날아오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내가 사는 곳으로 미사일이 오고 있다면 물과 휴대전화를 챙겨 대피소로 이동한 뒤, 공습경보가 해제될 때까지 버티는 게 우크라이나의 일상입니다.

“나는…자폭 못 했어요”

지구 반대편에서 전선에 투입된 북한군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김영미 PD는 우크라이나군에 잡힌 북한군 포로 2명을 인터뷰했습니다. 최근 MBC <PD 수첩>에도 나왔던 그 인터뷰입니다.

북한 체제의 세뇌는 강력했습니다. 포로 김모씨(26)는 “다른 사람은 포로가 되지 않으려고 다 자폭했는데, 나는 수류탄이 떨어져 자폭을 못 했다”며 “살아 있는 게 불편하다”고 했습니다. 우크라이나군의 기만전술에 걸려 생포된 백모씨(24)도 “명색이 조선군인데 적군의 포로가 돼 살 수 있겠느냐”고 했습니다.

세뇌만큼이나 무서운 건 전쟁터의 참상이었습니다. 김씨는 “그렇게 피비린내 나는 살벌한 전투는 처음 목격했다”며 “온전한 시체가 없다. 온몸이 찢어지고 절단된다”고 했습니다. 백씨도 “제 나이 또래들, 말 한마디 못 하고 머리에 드론 폭탄을 맞아 그 자리에서 다 전사했다”고 했습니다. 그는 ‘북한군은 정말 죽음에 초월했느냐’는 질문에 잠시 생각하더니 “같은 사람인데 죽고픈 사람이 어디 있고 목숨을 그렇게 쉽게 여기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고 했습니다.

다큐앤드뉴스코리아 제공

26살과 24살, 어린 나이에 전쟁을 겪은 이들은 고향의 부모님을 떠올립니다. 백씨는 “군에 동원되러 갈 때 차창 밖으로 손을 내밀면서 손잡고 본, 눈물 흘리는 어머니의 모습이 마지막”이라고 했습니다. 성악가를 꿈꾸던 김씨는 인터뷰 중 북한 노래 ‘어머니가 제일 좋아’를 불렀습니다. “다 자라도 찾는 어머니. 백발 돼도 찾는 어머니. 엄마 없이 나는 못 살아. 어머니가 제일로 좋아….”

이들은 한국 송환을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김씨는 “포로가 되면 역적이나 마찬가지”라며 “북한에 돌아가면 가족, 친척, 친구 등이 다 멸족당한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김영미 PD가 준비한 장아찌와 김밥을 먹으며, 포로가 된 뒤 처음으로 웃었습니다. 김 PD와 헤어질 때는 “엄마 같아서 보내기 싫다”며 눈물을 참았습니다.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1991년 걸프전 당시 미군의 미사일 발사 장면을 반복해서 내보낸 CNN 보도를 비판하며 “걸프전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미디어가 전쟁의 강렬한 이미지를 유포하면서 참혹한 진실을 가리고, 전쟁을 영화나 ‘비디오 게임’처럼 보이게 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다룬 많은 기사도 최신 드론이나 국제정세 등에 집중합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평범한 시민들과, 전쟁에 끌려온 젊은이들의 화려하지 않은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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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람 기자

뉴콘텐츠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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