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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사진 짓밟는 이진숙과 국힘의 5·18 왜곡

김호경 에디터

haojing610@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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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에 '자랑스런 대통령' 사진 걸어놓고 모독

YS에게 5·18은 "한순간 한순간 말 못할 고통"

가택연금에 뭘 해도 보도 안 되자 비장한 결단

5·18 3주년 되는 날부터 무기한 단식투쟁 돌입

체중 14kg 빠지고 '극히 위험'…23일만에 중단

10년 뒤, 대통령 취임 직후 대국민 특별 담화

"문민정부는 광주민주화운동 연장선상에 있다"

각종 기념사업 지원, 특별법과 국가기념일 제정

국힘은 자유한국당 시절에도 공청회 망언 쏟아

이번 이진숙 주최 포럼 판박이…실상 YS 부정

1983년 5월 18일부터 23일 간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하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지금 보수의 상당 부분을 잠식한 극우층, 특히 국민의힘 의원들은 김영삼(YS) 전 대통령에게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어떤 의미였는지 대부분 모르거나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국민의힘 여의도 중앙당사에 몇 안 되는 '자랑스러운 대통령'으로 YS 사진을 걸어놓고 있으면서도 당내 인사들과 그 지지층은 5·18을 극도로 폄훼하고 모욕하는 행태를 부지기수로 벌인다. 이는 결과적으로 YS의 존재와 업적을 짓밟는 짓이라고 할 수 있다.

"충격적 학살 소식에 심화(心火)가 솟아올라 견딜 수 없어"

"전두환 일당 참극, 민족의 가슴에 영원한 멍울이 될 한(恨)"

YS에게 5·18은 중요하다는 정도를 넘어 '심화(心火)가 솟아올라 견딜 수 없는' 사건이었고, '한순간 한순간이 말할 수 없는 고통'이었으며, '이 민족의 가슴에 영원한 멍울이 될 수밖에 없는 한(恨)'이었다. YS는 5·18 이틀 뒤인 1980년 5월 20일 서울 상도동 자택에서 전두환 신군부의 5·17 쿠데타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던 도중 무장 군인들에 의해 1차 가택연금을 당하던 상황을 <김영삼 회고록>에서 이렇게 술회했다. ☞ 참고 기사 <5·18, 헌법 전문에 왜 넣어야 하나>

"그날 밤부터 '광주사태'가 단편적으로 전해졌다. 권력에 눈먼 정치군인들의 야만적인 학살극이 시작된 것이었다. 1980년 5월 20일 아침 8시경 M16 소총에 실탄을 장전하고 착검까지 한 무장 헌병 중대병력이 내 집 주변을 에워쌌다. 그중 20여 명은 대문을 밀고 들어와 10여 평 남짓한 비좁은 마당이 꽉 차게 늘어섰다. 내가 서둘러 회견문을 읽으려던 차에, 군 책임자의 지시가 떨어졌다. 그 순간부터 무장한 군인들은 집 안에 있던 사람들을 모두 몰아내고 내 집 안팎을 완전히 봉쇄했다.

연금이 시작될 즈음, 나는 광주에서 걸려 온 당원들의 떨리는 전화 목소리를 통해서 충격적인 학살 소식을 전해 들었다. 나는 심화(心火)가 솟아올라 견딜 수가 없었다. 계엄군의 검열로 누더기가 된 신문이나 TV를 통해서는 일반 국민들이 '광주사태'의 진상을 알 도리가 없었지만, 광주의 소식을 이미 전해 들은 나로서는 '광주'가 보도되는 한순간 한순간이 말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으로 다가왔다. 정권욕에 사로잡힌 전두환 일당은 국민을 향해 총부리를 돌림으로써 역사에 남아서는 안 될 참극을 연출하고 있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83년 5월 18일부터 단식투쟁에 들어가며 낸 성명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자료

성명을 내도 국내 언론엔 한 줄도 보도 안 되자 '비장한 결단'

전두환 정권, 병원에 강제 이송…음식 냄새 피우고 망명 권유

광주민주화운동이 '광주사태'로 불리던 시절, YS는 군인들이 상도동 자택 부근 길목을 100여 미터 앞에서부터 막는 삼엄한 가택연금 속에서도 비상계엄 해제 등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몰래 밖으로 전해 외신에 보도되도록 하고, 집으로 찾아온 글라이스틴 주한 미국대사를 만나 "전두환의 만행을 절대 용서할 수 없다"는 입장도 밝혔지만 국내 언론에는 한 글자도 보도되지 않았다. 결국 그는 1983년 5·18 3주년을 앞두고 뭔가 비장한 결단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 무렵 마하트마 간디의 저서를 읽으며 비폭력 무저항 단식투쟁에 천착하게 된 YS는 정확히 5월 18일을 기해 '단식에 즈음하여'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하고 무기한 곡기를 끊는 투쟁에 돌입했다.

"국민 여러분! 나의 단식은 5·17 군사쿠데타에 의하여 민주주의가 송두리째 파괴·부정당함은 물론, 민주화를 요구하던 수백 수천 명의 민주시민이 광주에서 무참히 살상당하는 사태에까지 이르게 된 데 대한 자책과 참회의 뜻을 표시하는 것이며, 비극적인 광주사태로 목숨을 잃은 영혼과 거기서 희생된 민주시민들과 그 가족이 겪고 있는 고통에 동참하는 기회이며, 동시에 반민주적인 독재 권력의 강화와 인권 유린 및 정치적인 탄압에 대한 항의와 규탄의 표시입니다. 또한 나의 단식은 앞으로 우리가 전개해야 할 민주화 투쟁은 생명을 건 투쟁이어야 하며, 생명을 건 투쟁만이 민주화를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을 국민 여러분께 알리면서 나의 투쟁 결의를 굳건히 다지기 위한 것입니다."

YS의 부인 손명순 여사는 이 성명서 내용을 전화로 외국 언론기관에 직접 낭독해줬고 유수의 통신사인 AP, UPI, 로이터, AFP, 교토통신 등이 이 사실을 일제히 세계에 타전했다. 단식 8일차인 5월 25일이 되자 전두환 정권의 당국자와 경찰 간부 등이 찾아와 단식 중지 및 병원 치료를 권했다. YS가 이를 물리치자 경찰 수십 명이 들이닥쳐 YS를 완력으로 구급차에 태워 서울대병원 12층 병동에 강제 이송하고 다른 환자들은 전부 퇴거시켰다. 당시 병원에서 측정한 YS의 체중은 61kg으로 평상시 70kg보다 벌써 9kg가량이 줄어있었지만 YS는 일체의 음식과 의료행위를 거부한 채 단식을 지속했다. 민정당 권익현 사무총장이 병실로 찾아와 전두환의 제안이라며 연금 해제와 해외 망명을 권하기도 했지만 단칼에 거절했다.

"제12일(5월 29일). 원래 단식을 하려면 식사량을 단계적으로 줄여 가는 과정은 물론이고, 관장부터 먼저 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그런 과정 없이 곧바로 단식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고통이 심해졌다. 이날은 참을 수 없을 만큼 복통이 엄습해 왔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다. 온몸을 구르며 비명을 참으려 해도 되지 않았다. 머리까지 깨지는 듯 아파오고 온몸에 진땀이 나며 기력이 빠졌다. (…) 전두환 정권은 내가 단식을 중단하도록 온갖 수단을 다 썼다. 불고기, 생선 등 맛있는 음식상을 차려와 내 병상 앞에 갖다 놓고 냄새를 풍기도록 했다. 나는 '그따위 비열한 짓 하지 말고 당장 가져가라!'고 고함을 쳤다."

 

1983년 6월 4일 미국 워싱턴 시내 주미한국대사관 근처인 듀폰써클에서 김대중(오른쪽)과 문동환 목사가 김영삼의 단식투쟁을 지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자료

DJ "최후의 수단, 감동…재야 민주세력 결집시키는 전기"

동교동계-상도동계 손잡아…민추협 결성, 신민당 돌풍으로

당시 미국에서 망명 생활을 하던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이 소식을 접하고 크게 감동하며 재야 민주세력을 결집시킬 중요한 전기(轉機)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그러나 한국 언론에는 일절 보도되지 않자 <김영삼의 단식 투쟁(Kim's Hunger Strike)>이라는 글을 뉴욕타임스에 기고하기까지 했다. 독자 투고가 아닌 칼럼니스트 자격의 기고였다. DJ는 또 YS를 지지하기 위해 워싱턴과 뉴욕 등에서 재미 교포들과 팻말을 들거나 피켓을 목에 걸고 행진했다. 한국 대사관과 국무부, 백악관 앞에서도 가두시위를 벌였다.

"단식은 극한 투쟁이며 최후의 수단이었다. 나는 감동했고, 동지적 연대감을 느꼈다. 김영삼 씨의 단식에는 중요한 정치적 함의가 담겨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전두환 정권 하에서 야당 정치인의 첫 항거였다. 단식투쟁은 재야 민주세력을 결집시키는 전기가 될 수 있었다. (…) 그 후로 김영삼 씨와는 현안에 대해서 긴밀히 협의했다. 그해 광복절에는 서울과 워싱턴에서 김영삼 씨와 공동 명의로 '민주화 투쟁은 민족의 독립과 해방을 위한 투쟁이다'라는 제하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 <김대중 자서전>

DJ가 주시한 대로 YS의 몸을 던진 절박한 투쟁은 제도권과 재야를 망라하고 민주 진영의 광범위한 결속을 불러일으켰다. 함석헌, 문익환, 홍남순, 이문영, 예춘호 등 재야 지도자들이 동조 단식에 들어갔고, 특히 동교동계와 상도동계가 박정희 사망 이후 처음으로 손을 잡아 '범국민 연합전선' 구축에 나섰다. 이는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 결성 및 신한민주당(신민당) 창당 돌풍으로 이어지게 된다. YS는 급기야 체중이 14kg이나 빠지고 혈압이 급강하하면서 의사들도 "극히 위험한 단계"라고 진단하자 단식 23일째인 6월 9일에야 중단을 선언했다.

"국민 여러분! 나는 이미 죽음을 각오하고 결심했던 몸으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와 신념으로 민주화투쟁의 과정에서 그 고통과 고난의 맨 앞에 설 것이며, 그 어떤 희생이라도 감수할 것입니다. 나는 광주사태에서 희생된 영령과 조국의 제단에 자신을 던진 현충(顯忠)의 넋, 그리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청년·학생들의 투쟁과 고난을 생각하면서, 그 고난의 맨 앞의 일부를 나 자신이 떠맡기 위하여 민주 투쟁의 최일선에 설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서약하는 바입니다."

 

1983년 5월 18일부터 23일 간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하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모습. 부인 손명순 여사가 간병을 하고 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자료

단식 투쟁 꼭 10년 뒤 특별 담화 발표…YS의 '국정과제 1호'

국힘은 망언 되풀이 퇴행만…"당 대표실에서 YS 사진 내려라"

그로부터 꼭 10년 뒤인 1993년 5월 13일, 대통령에 취임한 지 이제 두 달여밖에 안 됐음에도 YS는 청와대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국민 여러분에게 드리는 글>이라는 특별 담화를 발표했다. 그는 "문민 민주화를 향해 우리가 걸어온 고난에 찬 역정에서 볼 때 광주민주화운동은 우뚝한 한 봉우리를 차지하고 있다"며 1983년 23일간의 단식투쟁을 회상한 뒤 "분명히 말하거니와 오늘의 정부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연장선 위에 서 있는 민주정부다. 광주민주화운동은 정당하게 평가되고 올바르게 역사에 기록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정신을 기리고 그 명예를 높일 수 있는 사업을 적극 지원할 것"이라며 ▲온 국민이 그 날을 기념할 수 있도록 기념일 제정 ▲망월동 묘역을 민주 성지로 가꿔나갈 수 있도록 묘역의 확장 등 지원 ▲5·18 당시 계엄군과 교전을 벌인 장소인 전남도청 위치에 광주민주화운동 기념공원 조성 및 기념탑 설립 등을 약속했다. 피해자들 위로에 필요한 모든 노력과 지원을 다하겠다고도 공언했다. YS에게는 5·18 문제 해결이 '국정과제 1호'였던 셈이다.

이어 1995년 12월에는 YS가 민자당 강삼재 사무총장에게 내린 지시에 따라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과 '헌정질서 파괴 범죄의 공소시효 등에 관한 특별법'이 통과됐고, 5·18특별법에 의해 전두환·노태우는 반란수괴 및 내란수괴, 내란목적살인 등 죄목으로 역사적 심판을 받았다. 1997년 4월에는 5·18일이 국가기념일로 제정됐으며, 같은 해 5월 18일에는 정부가 주관하는 첫 5·18기념식이 거행됐다. '광주사태'라는 명칭은 공식적으로 '5·18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자리 잡았다. 이렇듯 5·18에 대한 역사적·법적 규정을 정립하는 데 YS가 남긴 족적은 거대하고도 뚜렷했다.

 

국민의힘 이진숙 의원 주최로 13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5.18 민주화운동의 재조명 국회 포럼'에서 참석자들이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2026.8.24. 연합뉴스

그럼에도 YS를 계승했다는 국민의힘과 그 전신 보수정당에서는 5·18 왜곡 사태가 끊이질 않는다. 2019년 2월 자유한국당 시절에도 김진태·이종명 의원 공동 주최로 지만원 씨 등 극우 인사들이 발표자로 참석한 가운데 국회에서 '5·18 진상규명 대국민 공청회'를 개최해 "광주 폭동" "북한군 개입" "5·18 유공자라는 괴물 집단" "전두환은 영웅" 등 온갖 참혹한 망언을 쏟아낸 바 있다. 최근 이진숙 의원이 주최해 큰 파문을 일으킨 '5·18 민주화운동의 재조명 공개 포럼'은 그 판박이인 것이다. 국민의힘은 지난 5월엔 5·18 정신의 헌법 전문(前文) 수록 등이 포함된 개헌안의 국회 본회의 표결에 불참해 39년 만의 개헌을 끝내 무산시키기도 했다.

김호경 시민언론 민들레 에디터‧편집이사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대표는 29일 부산시당위원장인 박홍배 의원의 지역사무소(부산 사상구) 개소식에 참석한 자리에서 "국민의힘은 정말 김영삼 전 대통령의 정신을 계승한 것이 맞다면 이진숙을 내쫓고, 그게 아니면 김 전 대통령 사진을 (당 대표실에서) 내리라"고 일갈했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이진숙 의원을 내쫓기는커녕 이 의원 제명 촉구 결의안 표결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조경태·한지아·김예지·우재준 의원을 거꾸로 징계할 태세다. 이 의원은 이 와중에도 5·18을 "소요 사태" "거의 폭동"으로 매도하는 영상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공유하는 등 점입가경이다. YS가 살아있다면 본인 입으로 "당장 장동혁 대표실에서 내 사진 내리라"고 불호령을 내릴 게 분명하지만, 국민의힘은 실상 YS를 부정하는 듯 전두환·노태우 시절로 퇴행하고만 있다.

김호경 에디터 haojing610@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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