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유가 폭등의 해일에 직격당한 미국, 소비심리도 뚝

이태경 편집위원,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red1968@naver.com

다른 기사 보기

  • 경제

  • 입력 2026.09.13 07:30

  • 수정 2026.09.13 08:42

  • 댓글 1

트럼프 비웃듯 경유값 사상최고 찍어

속수무책 백악관…휘발유도 5달러 전망

호르무즈 이어 홍해도 비상, 엎친 데 덮쳐

고유가 습격에 미 소비자심리 47.8로 추락

서서히 고개드는 '기대 인플레이션'

유가 급등의 쓰나미가 미국을 강타 중이다. 경유 가격이 사상 최고를 찍은데다 휘발유가격도 무섭게 폭등 중이다. 유가 급등이 물가 전반에 빠르고 확실하게 영향을 미치는 가운데 백악관은 사실상 대책이 없다. 설상가상으로 원유의 주 수송로인 호르무즈가 미국과 이란의 전쟁으로 위협받는 가운데 홍해마저 후티반군의 감제를 받는 처지가 됐다. 유가가 더 상승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고유가의 습격에 소비의 나라 미국은 휘청거리고 있다. 소비자심리가 역대 두번째로 낮은데다 기대인플레이션마저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가 미국을 나락으로 밀어넣고 있다.

사상 최고치 찍은 경유값에 미국 소비자들 기함

트럼프 대통령은 10일(현지시간) 공화당의 사상 첫 중간선거 전당대회를 마무리하면서 “우리는 11월 3일(중간선거일) 투표할 것을 맹세한다”며 당원과 유권자들에게 투표 참여를 호소했다.

하지만, 그날 공교롭게도 물가 민심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는 미국 경유 가격은 사상 최고치를 새로 썼다. 유가정보업체 가스버디는 전국 평균 경유 가격이 사상 처음으로 갤런당 6달러를 돌파했다고 밝혔다.

미국자동차협회(AAA)도 11일 평균 경유 소매가격이 갤런당 6.06달러를 기록했다고 거듭 확인했다. 지난해 같은 시기의 갤런당 3.71달러와 비교하면 무려 63.3% 치솟은 것이다.

미국 주유소에서 팔리는 평균 경유 가격이 갤런당 6달러를 넘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다만 화폐가치를 감안한 실질 가격으로 따져보면 2008년 금융위기(갤런당 7.20달러)나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6.56달러) 때만큼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란 전쟁 이후의 가파른 가격 상승에 따른 경제적 고통이 덜어지는 것은 아니다. 경유가 경제 전반에 미치는 파급 경로를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경유는 미국 내 주요 운송수단인 트럭과 기차의 연료다. 특히 전국 구석구석으로 물품을 나르는 트럭의 연료비 상승은 식료품과 생활필수품 가격을 끌어올린다.

AP 통신에 따르면 전 세계 슈퍼마켓 7500곳으로 구성된 독립식료품연합은 연료비가 식료품 가격의 약 15∼30%를 차지한다고 추정했다.

최근 발표된 7월 물가지수에서 전체 식료품 가격은 전년 동월 대비 2.7% 올랐는데, 냉장·냉동 운송이 필수인 해산물 가격은 7.0%, 신선 과일은 4.9% 상승했다.

미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아마존은 전쟁 이후 일부 판매자에게 3.5%의 연료 할증료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페덱스, UPS, 연방우정청(USPS)도 일부 배송 소포에 추가 요금을 부과하게 됐다.

 

미국 포틀랜드 주유소, AP=연합뉴스 자료사진

폭등하는 유가상승 영향 전방위로 확산 중

경유 가격은 운송비뿐 아니라 생산비에도 영향을 미친다. 농산물을 재배·수확하는 농기계, 수산물을 포획하는 어선에 경유가 쓰이기 때문이다.

경유는 일부 지역에서 난방용이나 전력 생산에도 사용된다. 또 건설용 중장비와 버스 같은 대중교통의 연료로도 쓰여 경유 가격 상승은 다른 비용 상승으로 일파만파 확산한다.

결국 경유 가격은 장바구니 물가로 직결되고, 선거의 표심을 가장 크게 좌우하는 생활비 부담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과 집권 공화당의 책임론을 부채질할 가능성이 큰 셈이다.

블룸버그 통신은 “이 문제는 전국에서 가정 난방에 난방유를 사용하는 가구 비율이 가장 높은 메인주, 그리고 오하이오·캔자스·아이오와 같은 수확철을 앞둔 농업주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메인·오하이오·아이오와 등은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서 ‘격전지’로 꼽히는 곳이다. 이들 지역에서 갤런당 6달러가 넘은 경유 가격은 공화당 후보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경유와 함께 국제유가에 연동하는 휘발유 역시 평균 소매가격이 4.29달러까지 올랐다. 이란 전쟁 직전의 2.98달러와 비교하면 44.0% 오른 가격이다. 제프 커리 원자재 전략가는 선거일까지 휘발유 가격이 5달러에 이를 가능성이 “극도로 높다”고 말했다.

경유·휘발유 가격이 중간선거 판세에 ‘발등의 불’이 됐지만,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전략 비축유 방출 외에는 뚜렷한 정책 수단이 거의 없다고 블룸버그는 지적했다.

중동에서 호르무즈·바브엘만데브 해협의 에너지 수송 병목 현상이 지속하는 가운데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정유시설 타격까지 겹쳐 수급에서 근본적인 문제가 풀리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 책사인 케빈 해싯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은 이날 폭스비즈니스에 출연해 디젤 가격이 “중대한 우려 사항”이라고 말했다. 백악관이 할 있는 건 우려 뿐이라는 뜻이다.

 

미 몬태나주에서 농기계 운전하는 모습, AP=연합뉴스

주요한 중동 원유 수송로인 홍해마저 후티 반군의 지배 아래 들어가

한편 호르무즈 해협의 통행 제한에 이어 친이란 후티 반군이 홍해의 전략적 요충지까지 장악하면서 중동 산유국들이 원유를 실어나를 수 있는 대체 수송로마저 위협받고 있다. 유가 급등에 기름을 붓는 일이 생긴 셈이다.

11일(현지 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후티 반군은 이날 예멘의 전략적 홍해 항구도시 모카를 장악하고 사우디아라비아의 지원을 받는 예멘 정부 측 병력을 몰아냈다.

모카는 홍해와 인도양을 잇는 바브엘만데브 해협 인근에 위치한 전략적 요충지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지난 2월28일 이란을 공격한 이후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의 통행을 제한하면서 바브엘만데브 해협은 사우디 원유의 주요 대체 수송로로 활용돼왔다.

그러나 후티가 모카를 장악하며 홍해에 대한 통제력을 확대하면서 이 대체 항로마저 위협받게 됐다. 해상 데이터업체 케이플러(Kpler)에 따르면 최근 일주일간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통과해 홍해를 빠져나간 사우디 원유 화물은 단 2건에 그쳤다.

호르무즈 해협의 선박 통행도 여전히 전쟁 이전 수준을 크게 밑돌고 있다. 전쟁 전 하루 약 130척이 통과했던 호르무즈 해협의 이달 하루 평균 통항량은 19척으로 급감했다. 지난 10일에는 단 9척만 해협을 통과했다.

 

사우디아라비아 메디나 지역에서 동서 파이프라인이 화재로 파손됐음을 보여주는 위성 사진, Planet Labs / AFP=연합뉴스

미 해군이 이란 반대편인 오만 연안에 가까운 항로를 확보해 일부 원유 수송을 유지하고 있지만 선박 공격이 잇따르면서 운항 위험도 커지고 있다. 지난 7~8월 오만 인근 해역에서는 최소 23척의 선박이 공격받았다.

육상 수송로도 차질을 빚고 있다. 앞서 사우디가 호르무즈 해협을 우회해 홍해로 원유를 운송하는 데 이용해온 동서 송유관이 드론 공격을 받아 가동을 중단했다. 이에 따라 호르무즈 해협뿐 아니라 홍해와 육상 송유관까지 주요 원유 수출 경로가 동시에 위협받는 상황이 됐다.

수송 차질은 원유 수출 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사우디의 원유 수출은 지난달 최소 13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해양정보업체 윈드워드는 이란을 제외한 걸프 산유국의 지난달 원유 수출이 전쟁 이전의 약 3분의 2 수준으로 감소한 것으로 추산했다.

공급 불안이 커지면서 국제유가는 이날 장중 배럴당 108달러를 넘어 전쟁 이전보다 약 50% 상승했다. 전문가들은 호르무즈 해협에 이어 대체 수송로까지 잇따라 차질을 빚으면서 중동이 수십 년 만에 가장 심각한 에너지 공급 위기에 직면했다고 평가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원유 수송망 비상, 자료 : 로이터통신 등

고유가 여파에 미 소비자심리 47.8로 급락해

미 미시간대는 경기에 대한 소비자들의 자신감을 반영하는 9월 소비자심리지수(예비치)가 47.8로 집계됐다고 11일(현지시간) 밝혔다.

전달(51.7) 대비 7.5% 하락한 것으로, 다우존스가 집계한 전문가 전망치 51.4도 밑돌았다.

이 수치가 이달 말 확정치에서도 유지될 경우, 해당 조사가 시작된 이래 두 번째로 낮은 기록이 된다.

현 경제 상황을 반영하는 현재 경제 여건 지수는 8월 51.9에서 9월 50.9로, 향후 전망을 나타내는 소비자 기대지수는 같은 기간 51.5에서 45.8로 떨어졌다.

 

소비심리 하락 (PG)

전월 대비 7.5% 하락하며 예상치도 하회…기대인플레 4.6%로 상승

향후 물가에 대한 소비자들의 우려도 커졌다.

미 소비자들의 향후 1년 기대 인플레이션은 8월 4.0%에서 9월 4.6%로 상승했다. 미·이란 전쟁 발발 전인 2월의 3.4%를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소비자들의 장기 인플레이션 전망을 반영하는 5년 기대 인플레이션 역시 같은 기간 3.3%에서 3.4%로 올랐다.

트럼프가 벌인 미국-이란 전쟁이 유가를 천정부지로 앙등시켜 소비의 나라 미국의 숨통을 조이고 있는 광경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상황이 더 심각한 건 호르무즈도, 홍해도 미국이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어 보인다는 사실이다. 정치지도자를 잘 못 뽑은 댓가를 미국의 유권자들이 처절하게 치르고 있는 것인데, '정치가 곧 경제'라는 명제는 변하지 않는 진리다.

 

미 아칸소주의 한 월마트 매장. AFP 연합뉴스

 

이태경 편집위원,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 red1968@naver.com

 

저작권자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