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사니즘'과 국정과제 123개, 국민은 잘 모른다
지난 1년, 정부의 국정철학이 무엇인지 아무도 제대로 묻지 않았다. 아무도 제대로 답하지도 않았다. 우리나라는 5년 단임 대통령제 국가다. 5년마다 '무슨무슨 정부'라 부르며, 지난 정부와는 다른 새 정책을 추진하려 한다. 이를 위해 대통령 선거가 끝나면 약 2개월간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꾸려진다. 인수위는 새 정부의 비전, 목표, 전략, 국정과제를 준비한다. 정부는 이 과제들을 5년 동안 관리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의 탄핵으로 대통령 선거 다음 날 곧바로 취임했다. 정부의 비전과 국정 과제를 충분히 논의할 시간이 없었다. 문재인 정부는 인수위 대신 '국정기획자문위원회'를 꾸렸다. 이 위원회는 약 두 달간 한시적으로 운영됐다. 국정 과제를 마련한 뒤에는 해산했다. 그 이후 국정 과제 관리는 상설 자문기구인 '정책기획위원회'가 맡았다.
현 정부는 취임 직후부터 광복절 전후까지 약 두 달간 '국정기획위원회'를 운영했다. 이 위원회는 국가 비전으로 '국민이 주인인 나라, 함께 행복한 대한민국'을 제시했다. 그 아래 3대 국정 원칙과 5대 국정 목표를 두었다. 다시 그 아래 23개 추진 전략과 123개 국정 과제를 제시한 뒤 활동을 마쳤다.
'실용과 성과'라는 국정 원칙, '기본이 튼튼한 사회'라는 국정 목표는 먹사니즘과 연결된다고 볼 수 있다. 소득·주거·의료·돌봄이 보장되는 사회, 안전하고 존중받는 사회, 그 안에서 각자의 가능성을 실현하는 사회. 이것이 '기본이 튼튼한 사회'의 목표다. 이를 위해 대통령 직속 '기본사회위원회'를 운영 중이다. '국민행복 보장을 위한 기본사회 기본법(안)'도 국회에 발의됐다. 문제는 국민이 이런 사정을 거의 모른다는 것이다.
지난 1년 그리고 지금 추진 중인 정책들이 국정 기획 차원의 전략·과제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설명이 부족하다. 국가 비전 달성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도 잘 설득되지 않는다. 상황 논리, 정치적 이해관계, 추진 가능성 등 이른바 '그때그때 논리'가 앞선다는 인상이다.
정치적으로도 그렇다. 처음엔 소위 오른쪽 인사를 기용하며 '국민 통합'을 내세웠다. 지금은 지지 세력을 넓혀 '구조적 다수'를 구축하려 한다. 국민의 눈에는 대통령과 국회의원 과반수가 같은 정당이다. 우호 세력까지 합치면 국회의원 약 5분의 3이 범여권이다. 하지만 '국민 통합'이든 '구조적 다수'든, 이는 직업 정치인들 사이의 정치공학적 연합을 말하는 것이다.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말은 아니다.
'그때그때 정책', '표지갈이 정책'으론 안된다
국민에게는 말 그대로 기본이 튼튼하고, 먹고사는 데 어려움을 없애주는 정책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주식시장 혼란을 키운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는 예탁금 상향 등 투자 조건이 강화됐다. 보유 주택 규모 중심에서 실거주 여부와 주택 가액 중심으로 바꾸려던 부동산 세제 개편은 후퇴했다. 기초연금개혁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대상자를 줄이고 저소득 수급자를 두텁게 지원하는 '하후상박'(下厚上薄, 소득이 낮을수록 더 많이 지원하는 방식)형 개혁을 추진했다. 하지만 결국 기존 수급 대상(하위 70%)은 그대로 유지하고, 저소득층 급여만 소폭 올리는 수준으로 후퇴했다.
정부는 이를 민의를 반영한 빠른 정책 전환이라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전형적인 '그때그때 정책추진'의 사례라고 할 수밖에 없다.
최근 2030 청년세대를 위한 지원 정책도 살펴보자. 출생 때부터 부모의 양육 부담을 완화하는 정책이 새로 제시됐다. 하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기존 출산 양육 지원을 재구성한 것에 가깝다. 이른바 '표지갈이 정책'이다. 자산 형성 종잣돈 마련과 취업 지원은 좋은 정책이다. 다만 기존 정책의 연속선상에 있을 뿐이다.
문제는 취업 지원을 넘어 고용 창출, 즉 청년이 취업할 일자리 자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고용 없는 성장이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도 적극적 일자리 창출 정책 논의는 찾기 어렵다. 문재인 정부는 공무원과 공공기관 정원을 늘리는 등 청년 채용을 국가 정책으로 추진한 바 있다. 민간 기업의 청년 채용을 독려하는 방안도 있었다. 지금은 이런 논의가 잘 보이지 않는다.
청년 주거 지원도 다양하게 제시되고 있다. 하지만 목돈이 없는 청년에게는 그림의 떡일 수 있다. 사회 전체적으로는 다른 부작용도 있다. 무주택 4050 중장년 세대의 허탈감과 불만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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