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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한달…나만 가족을 못 찾으면 어쩌죠…”

등록 : 2014.05.15 21:38수정 : 2014.05.16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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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발생 30일째인 15일 오후 전남 진도군 팽목항 방파제에서 한 남성이 사고 해역을 바라보며 황망한 듯 앉아 있다. 진도/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르포 l 지치고 지친 ‘실종자 가족들’

며칠째 궂은 날씨다. 비가 오지 않으면 바람이 사정없이 불고, 때로는 비바람이 함께 몰아친다. 14일도 마찬가지였다. 기상청 일기예보에서는 분명 남부 지역에 초여름 더위가 찾아온다고 했는데, 전남 진도군 진도읍 동외리의 야산 기슭에 자리잡은 진도체육관 주변은 음산하기 짝이 없었다. 부슬부슬 흩뿌리는 빗방울이 기다리는 사람의 가슴에 시리게 맺혔다.

 

 

“아들 맞는 줄 알았는데…”

 

해질 무렵, 아침 일찍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으로 떠난 순환버스가 돌아왔다. 진도체육관 입구의 왼쪽과 오른쪽에서 비 구경을 하던 이들의 눈길이 일제히 버스 쪽으로 쏠렸다. 어두운 표정의 40~60대 남녀 10여명이 무거운 발걸음으로 말없이 버스에서 내렸다. 남아 있는 실종자 23명(15일 오후 현재 실종자는 20명)의 가족 가운데 일부다. 지켜보고 있던 한 남성은 “하아” 긴 한숨을 토해내며 등을 돌렸다.

 

“아들 맞는 줄 알았는데…. 이번에는 맞는 줄 알고 갔거든. 비슷하길래 봤더니 아니야….”

 

지난달 16일 침몰한 세월호에서 아직 아들을 찾지 못한 아버지 ㄱ씨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다. 철 지난 겨울 점퍼에 가려진 그의 가슴이 왜소해보였다. 진도 앞바다에 가라앉은 세월호에는 경기도 안산 단원고 학생 325명이 타고 있었다. 사고 당시 목숨을 건진 학생은 75명이다. 234명은 숨진 채 가족의 품에 안겼다. 이날까지 여전히 생사를 알 수 없는 학생이 16명이다. 그 가운데 한 명이 ㄱ씨의 아들이다. 마침 이날 오전 세월호에서 주검 5구를 추가로 건져냈다는 소식에 ㄱ씨는 팽목항을 찾았더랬다. 또다른 실종자 가족 ㄴ씨가 옆에서 위로의 말을 건넸다.

 

 

진도체육관에는 
술로 기다림의 고통을 잊기 전까지 
잠 못드는 가족도 있다 
ㄴ씨는 요즘 안주도 거의 없이 
하루에 소주 5병… 

천막 덧댄 팽목항 숙소는 
비가 새고 습기도 찬다 
그런데도 20여명 한달째… 
“좀더 가족과 함께 있는 
기분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기다려봐요. 곧 나오겠지.”

 

“같은 반 친구들은 다 찾았는데, 그 녀석만 안 나오니까 그러지.”

 

“….”

 

15일로 세월호 침몰 사고 한달째를 맞았다.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나던 단원고 학생 325명 등 모두 476명(잠정 집계)이 타고 있던 세월호가 침몰한 2014년 4월16일 오전. 희생자 가족의 시간은 거기서 멈췄다. 특히 사고 한달째가 되도록 주검으로도 나타나지 않고 있는 ‘실종자’ 20명의 가족은 시간제한 없는 기다림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권오복(60)씨는 “살면서 그 무엇이든 이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려본 적은 절대 없다”고 말했다. 권씨는 ‘절대’라는 말을 두번 힘주어 반복했다.

 

권씨의 동생 재근(51)씨는 지난달 16일 부인 한윤지(29)씨와 아들 혁규(6)군, 딸 지연(5)양을 모두 데리고 제주도로 이사를 떠나던 중 사고를 당했다. 세월호 사고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네 식구 가운데 지연이 혼자다. 지연이의 엄마 한씨는 지난달 23일 숨진 채 발견됐다. 권씨의 동생과 큰조카는 여전히 세월호와 함께 진도 앞바다에 가라앉아 있다. 권씨는 “나는 (동생과 조카) 다 찾아야 올라가니까, 걱정이 더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14일 저녁 봄비를 피해 진도체육관 안으로 들어가던 그가 혼잣말처럼 읊조렸다.

 

“오늘 찾을까, 내일 찾을까 하며 기다리다보니 벌써 한달이 되어버렸네….”

 

잔인한 기다림이다. 내 아들, 딸은 반드시 살아서 나타나리라는 믿음도 사고 한달째에 접어들며 거의 사그라졌다. 팽목의 바다를 향해 함께 서러움을 토하던 동료 가족의 빈자리가 하나둘 늘어갈 때, 남겨진 자의 가슴에는 뻥뻥 구멍이 뚫렸다. 기적을 바라는 마음이 줄어드는 공간만큼, 혼자 남아 잊혀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똬리를 틀었다. 권씨는 “아무래도 내가 가장 마지막까지 남는 건 아닐까, 나만 가족을 찾지 못하는 건 아닐까, 이런 게 신경이 쓰인다”고 토로했다.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깊어지는 불면의 밤도 남겨진 가족을 괴롭힌다. 15일 현재, 20여명의 실종자 가족이 숙식을 의지하고 있는 진도체육관은 자정 무렵 불을 끈다. 체육관 아래에서 관중석 쪽으로 향하는 일부 조명만 켜놓는다. 어둠이 내리고 밤이 깊어져도 두 다리 뻗고 편히 잘 수 있는 실종자 가족은 없다. 술로 기다림의 고통을 마취하기 전까지 잠들지 못하는 실종자 가족도 여럿이다.

 

 

깊어지는 불면의 밤

 

ㄴ씨는 요즘 안주도 거의 없이 하루에 소주 5병 넘게 폭음을 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그의 낯빛은 하루가 다르게 검게 변하고 있다. “잠이야 잠이 오면 자는 거죠. 술에 취해 여기저기 쓰러져 있으면 동료 가족이 데리고 들어가 재우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여기는 잠자고 일어나는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는 그런 곳이 아니에요.” 지난 12일 오후 팽목항에서 만난 ㄴ씨는 똑바로 걷지 못했다. 한낮의 태양이 ㄴ씨의 뒷모습을 가만히 비췄다. ㄴ씨와 친한 권오복씨도 하루 평균 소주 1병 이상 마시지 않으면 잠을 이루지 못한다.

 

열악한 주거환경도 문제다. 냉난방 및 실내공기 순환 설비가 어느 정도 갖춰진 진도체육관은 팽목항 임시 숙소보다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천막을 덧대어 지은 팽목항 숙소는 사람이 오래 머물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그런데도 20여명의 실종자 가족은 상대적으로 더 불편한 팽목항 숙소를 한달째 고집하고 있다. 15일 여전히 진도에 머물고 있는 실종자 가족 40여명의 절반에 해당한다. 사고 지점에서 조금이라도 더 가까운 곳에 머물고 싶다는 바람 때문이다.

 

“지내기야 체육관이 더 낫죠. 여기는 비도 새고 습기도 많이 올라와 불편하거든요. 비가 오지 않으면 너무 더우니까 쉽게 지치고요. 그래도 몇몇 가족은 팽목항 숙소에 있으면 좀더 가족과 함께 있는 기분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가족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이쪽으로 끌어당기는 것이죠.” 15일 오전 팽목항을 찾은 김형기 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대책위) 부위원장이 말했다.

 

범정부 사고대책본부는 사고 한달째가 됐는데도 수색 작업의 끝이 보이지 않자 이곳 팽목항에 이동식 조립주택을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대책본부는 15일 오전 진도군청에서 열린 정례 브리핑에서 “실종자 가족의 체류 환경 개선을 위해 가족들의 의견을 들어 팽목항에 이동식 조립주택을 설치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20일까지 먼저 10개동의 조립주택을 설치한 뒤 이를 실종자 가족의 임시 숙소로 제공할 예정이다.

 

 

가족들이 원하는 건 하나 
빨리 만나고 싶다는 것 
“바라는 건 다른 거 없다 
첫째도 구조 소식 
둘째도 구조, 셋째도 구조…” 

 

 

“미친 XX, 여기는 뭐하러 찾아와”

 

세월호 사고와 관련한 정치권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14일 국회에서는 세월호 참사 현안보고가 열렸고, 15일에는 6·4 지방선거 후보 등록이 시작됐다. 14일 오후 서울시장 선거에 뛰어든 박원순·정몽준 두 후보의 진도 방문을 시작으로 상당수 선거 출마자의 진도 방문이 이어질 것 같다. 같은 날 열린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의 세월호 현안보고에서는 여야 의원 모두 주무 부처인 안전행정부 비판에 힘을 모았다. 일부 여당 국회의원은 강병규 안전행정부 장관을 질타하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모습을, 야당 의원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정부의 무능한 대응을 되짚으며 울먹이는 장면을 보였다.

 

여당 의원의 장관 질타와 야당 의원의 눈물은 언론이 주목한 ‘뉴스’였지만, 남겨진 실종자 가족의 반응은 달랐다. 이날 진도체육관 바깥에 설치된 대형 티브이로 이 장면을 지켜보던 한 실종자 가족은 “선거용 쇼”라며 혀를 찼다. 말없이 지켜보던 다른 가족의 표정도 밝지 않았다.

 

세월호 실종자 가족이 바라는 건 당장의 편안한 잠자리와 눈에 띄는 일회성 관심이 아니다. 진도에 잊혀진 채 버려지지 않는 것, 그래서 빨리 가족을 되찾겠다는 것이 이들의 한결같은 바람이다. 이어지고 있는 정치인의 진도 방문에 대해 실종자 가족 ㄴ씨는 13일 “구체적인 재발 방지 대책 등 실종자 가족한테 실질적인 힘이 되는 메시지 없이, 그냥 잠깐씩 왔다 가는 방문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세월호 사고 한달째를 맞은 15일 오후, 민관군 합동구조팀이 세월호 선체에서 주검 3구를 추가로 수습해 이제 남겨진 실종자 수는 20명으로 줄었다. 진도에 남겨진 실종자 가족도 그에 비례해 당연히 줄어들지 모른다. 이와 관련해 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는 이날 오전 팽목항 대합실에 마련된 세월호 가족지원실에서 회의를 열었다. 대책위는 회의 결과 수색 작업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대책위 임원단 일부를 팽목항에 상주시키기로 했다. 회의에 참석한 한 실종자 가족은 “누가 마지막까지 남을지 모르는 상황이라, 임원단을 비롯한 모든 세월호 희생자가 남겨진 실종자 가족과 끝까지 함께하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진도/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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