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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이렇게 미쳐 돌아가도 되나

 
 
[손석춘 칼럼] 언론은 왜 침묵하나… 명백한 조직적 범죄, 원세훈 유죄로 끝날 일인가
 
입력 : 2015-03-09  17:22:37   노출 : 2015.03.09  18:35:15  손석춘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20
 

“나라가 이렇게 미쳐 돌아가도 되나?”

공안검사 출신 새누리당 국회의원 김진태의 개탄이다. 그는 국회 법사위에서 “과연 하나에 1억씩 하는 명품 시계를 받았다는 것이 중요한가, 아니면 그거를 누구한테 흘렸고 누가 그걸 과장했느냐가 더 중요한가”라고 야당 의원들을 훌닦았다. 같은 날 MBC와의 인터뷰에서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는 곳에서 한 발짝만 나가면 전부 논이고 밭이다”며 “그러면 밖에다 버렸다고 하는 것하고 논두렁에 버렸다고 하는 게 그게 무슨 그렇게 차이가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어떤가. 나는 ‘공안 검사’출신이 그 차이를 정말 모를까 궁금하다. “집사람이 밖에 버렸다고 하더라”라는 진술과 “논두렁에 버렸다”의 차이는 크다. 굳이 소통이론을 들이댈 필요도 없다. 당시 국정원이 ‘심리전’을 강화한 사실만 주목해도 충분하다. 논두렁에 버렸다는 SBS의 ‘단독보도’ 이후 그 진술이 얼마나 ‘노무현 조롱’을 불러왔고 파국으로 몰아갔는가를 톺아볼 일이다. 

하지만 ‘공안검사 의원’과 시국 인식을 전적으로 같이하는 대목이 있다. 그는 법사위에서 문제의 발언을 하며 “국정원을 우습게보지 말라”고 부르댔다. 그렇다. 나는 국정원을 우습게보지 말라는 저 집권여당 ‘공안의원’ 말에 십분 공감한다. 어찌 우습게 볼 수 있단 말인가. 공안의원이 국회에서 그렇게 주장한 날, 나는 경향신문에 국가정보원이 ‘국가전복원’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칼럼을 썼다.[관련기사 : 경향신문 / 누가 내 생각을 조종한다면]

공통점은 더 있다. “나라가 이렇게 미쳐 돌아가도 되나?”가 그것이다. 정말이지 길 지나가는 시민들 한 사람 한 사람 붙잡고 물어보고 싶을 정도다.

   

▲ 2015년 2월 25일 경향신문 2면 기사

 

 

‘논두렁 시계’가 상징하듯이 심리전은 고도의 세련된 ‘언어 마술’이다. 만일 전직 대통령의 인격을 파탄 내는 여론을 조성하려고 국정원이 수사검사들의 반대를 묵살한 채 언론에 흘린 게 사실이라면, 국정원의 심리전은 국민의 생각을 조종할 단계에 이미 와 있었다고 보아도 결코 과장된 진단이 아니다. 

더구나 국정원의 대선개입은 아직 전모가 드러나지 않았다. 진실을 밝히려는 올곧은 검사들은 곰비임비 옷을 벗거나 좌천당했다. 하지만 그 부실한 자료만으로도 고법은 당시 국정원장 원세훈을 법정 구속했다. 

그럼에도 마치 별 일 아니라는 듯이 나라가 사뭇 조용하다. 민주공화국이 이렇게 미쳐 돌아가도 정말 괜찮을까? 명토박아둔다. 나는 국정원이 대한민국 정보기관으로서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본분에 성실한 요원도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원세훈과 그 일당이 저지른 대선개입은 용서할 수 없는 범죄다. 작게는 국정원을, 크게는 대한민국을 근본부터 뒤흔든 반국가사범들이다. 기실 그들이야말로 국가보안법을 적용해야 마땅한 대상이다.

그런데 보라. 신문과 방송 대다수는 짐짓 모르쇠다. 야당의 ‘분노’또한 어쩐지 시늉뿐이다. 왜 그럴까? 저널리즘 이론에 밑절미 두고 설명할 수 있다. 무릇 어떤 사안이든 초기에 어떤 정보가 제공되느냐에 따라 공중의 태도가 완고하게 형성된다. 20세기 후반, 미국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인권에 민감했던 지미 카터 정권에서 언론 쪽 책임자의 말은 시사적이다. 국무부 공보담당 차관보를 역임한 호딩 카터는 “만약 심각한 도전 없이 3일 정도의 시간을 사용할 수 있다면, 정부는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사안의 맥락을 규정하고 그 사안에 대한 공중의 인식도 통제할 수 있다”고 호언했다. 카터 정권이 그 수준이라면, 다른 나라, 다른 정권들이 무슨 일을 어떻게 했을지 짐작해볼 일이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은 당시 서울경찰청장의 수사 결과 중간발표로 초기에 ‘사실 무근’이 되었고, 공중의 태도 또한 그렇게 형성되었다. 선거가 끝나고 대통령 취임식 이후에 뒤늦게 진실이 밝혀지기 시작하면서 공중의 태도가 바뀔 수도 있었다. 하지만 권력과 손잡은 대다수 언론이 진실을 은폐하는 범죄에 가담했다. 야당은 ‘대선 불복’의 틀에 갇혀 정당하게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주장에 스스로 족쇄를 채웠다. 

   

▲ 손석춘 건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그렇다. 대다수 국민은 지금 그 문제를 원점에서 바라보는 데 심적으로 거부감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정말이지 언론인이나 학자들마저 침묵해도 좋을까. 국정원이 대선에 개입한 선거에서 당선된 후보가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대통령 자리를 만끽하고 있어도 괜찮을까. 사실심 아닌 법률심을 하는 대법원에 지금 어떤 ‘로비’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지 감시는 누가하고 있는가?

한 사람의 학자로서 나는 진실을 공부하는 대학생들 앞에 이 엄청난 거짓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고심하고 있다. 이 땅은 지금 학문의 자유조차 온전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몸으로 실감하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그래서다. 우국충정으로 쓴다.

“나라가 이렇게 미쳐 돌아가도 되나?”

 

20gil@hanmail.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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