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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친일파의 후손

해방 후 친일파 청산을 제 때 하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
 
정운현 | 2015-08-11 19:45:40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사람이 제 맘대로 선택할 수 없는 것이 둘 있다. 조국과 조상이다. 자신이 태어날 땅을 제 맘대로 선택할 수 없으며, 부모를 가려서 태어날 수도 없다. 한날한시에 태어나도 한국 땅에 태어나는 사람이 있고 반대편 남미 땅에 태어나는 사람도 있다. 또 부잣집 맏이로 태어나기도 하고 찌들게 가난한 집 막내로 태어나기도 한다. 누구도 그 연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불가의 인연법을 수긍할 따름이다.

친일파 후손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원해서 친일파의 아들딸로 태어났다고 볼 순 없다. 태어나고 보니 그들의 부모가 친일파였을 뿐이다. 따라서 친일파 후손들을 무작정 비난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그러나 우리사회에서 친일파 후예들은 그들의 조상과 함께 비난의 대상이 돼 왔다. 그 이유는 후손들의 태도 또한 조상들에 못지않기 때문이다. 조상들의 부끄러운 반민족 행각을 비호, 왜곡하는 것이 그것이다. 대표적인 인물로 이인호 현 KBS 이사장 같은 사람을 들 수 있다.

최근 <뉴스타파>에서 해방 70년 특별기획물로 ‘친일과 망각’ 4부작을 야심차게 내놨다. 지난 6일 1부 ‘친일후손 1177’을 선보였는데 8개월 동안의 작업성과라고 한다. (2부는 10일 공개) 이들은 참여정부 시절 ‘제2의 반민특위로 불린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가 확정 발표한 친일인사 1,006명의 후손들이다. ‘국가공인 친일파’ 1,006명은 일제로부터 작위와 은사금을 받은 귀족, 조선총독부 자문기구인 중추원 참의, 군수급 이상의 고위 관료, 친일단체 주요간부, 저명 언론인·예술인 등 일제 강점기 최고 엘리트들이다.

▲<뉴스타파> 화면 캡쳐

그간 친일파에 대한 조사 및 연구 작업은 더러 있어 왔다. 일생을 친일파 연구에 몸 바친 고 임종국 선생을 필두로 그 후학들이 거둔 성과가 그것이다. 그러나 친일파 후손들에 대해서는 그간 이렇다 할 만 한 조사가 진행된 적이 없다. 그 주된 이유는 당사자가 아닌 후손을 거론할 경우 자칫 연좌제로 오해받을 수 있는데다 첫머리에서 언급한 ‘조상선택 불가론’도 한 몫을 했다.

<뉴스타파> 보도에 따르면, 친일파 후손들 가운데 상당수는 정치인, 고위관료, 대학교수, 기업인, 언론사주 등 우리사회의 상층부를 구성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조사를 통해 구체적으로 밝혀진 것일 뿐 따지고 보면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부와 권세를 거머쥔 부모 밑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심지어 해외유학까지도) 다시 사회에 나와서는 앞에서 끌어주고 옆에서 밀어주니 쑥쑥 크는 것은 당연지사다. 친일기업인들의 재산은 고스란히 후손들에게 대물림됐으며, 이를 물려받은 후손들은 지금 떵떵거리며 살고 있다.

10여 년 전 필자는 대표적인 친일문인 파인 김동환의 3남 김영식 씨(2008년 작고)와 교류한 적이 있다. 총경 출신의 김 씨는 은퇴 후 십 여 년에 걸쳐 전국을 돌며 부친과 관련한 자료를 모았다. 이를 토대로 <파인 김동환 전집>(전5권), <삼천리 영인본>(전 32권), <파인 김동환 문학연구>(전 30권), <언론인 파인 김동환 연구-신문기자. 잡지인>(전 15권) 등을 펴냈다. 2001년 파인 탄생 100주년을 맞아서는 음악회, 전시회 등 무려 7회의 행사를 개최했는데 이는 한 개인이 하기에는 벅찬 일들이었다.

필자가 그를 주목한 것은 부친에 대한 효성만이 아니었다. 그는 94년 부친의 일대기를 펴내면서 그 서문에서 부친의 친일행각에 대해 부친을 대신해 사죄했다. 이후 김 씨처럼 조상의 친일 행각을 사죄하는 후손이 더러 나타나긴 했지만 그 시작은 김 씨였다. 비단 사죄의 글만이 아니었다. 친일파 관련 토론회 등 각종 행사에 참석해 증언을 하는 등 사죄의 마음을 행동으로도 보여주었다.

다시 첫머리로 돌아가 보자. 조상을 내 맘대로 선택할 수 없는 이상 후손들에게 조상의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그러나 조상이 친일의 대가로 형성한 기득권을 그 후손이 향유하고 있다면 일말의 책임은 있다고 본다. 그들에게 김영식 씨와 같은 처신을 기대하긴 어렵겠지만 정부를 상대로 조상 땅찾기 소송을 하는 것까지를 봐줄 순 없는 노릇이다. 해방 후 친일파 청산을 제 때 하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일 따름이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1&table=wh_jung&uid=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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