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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로비에 울려 퍼진 “삼천만 잠들었을 때”가 구슬픈 이유

나이로비에 울려 퍼진 “삼천만 잠들었을 때”가 구슬픈 이유

 
 
 
 
 
 
 
전국농민회총연맹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으로 구성된 WTO 반대 한국원정투쟁단이 16일 오전 케냐 나이로비 시내에서 시민 홍보를 하고 있다.
전국농민회총연맹과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으로 구성된 WTO 반대 한국원정투쟁단이 16일 오전 케냐 나이로비 시내에서 시민 홍보를 하고 있다.ⓒ민중의소리
 

아침부터 서둘러야 했다. 8시까지 나이로비 시내에 도착하려면 적어도 새벽 5시 30분에는 일어나야 했다. WTO 각료회의 때문에 더욱 심각해진 ‘지옥 같은’ 교통체증은 아침 7시 전부터 시작됐다. 원정투쟁 2일차, 이날 아침엔 세계 각국에서 모인 농민운동가들과 함께 시민 홍보가 예정되어 있었다.

시차적응도 안된 상태에서 꾸역꾸역 새벽밥을 먹은 한국 투쟁단은 예약한 시간 10분이 지나도 오지 않는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심하세요. 교통사고 나면 당한 놈만 손해입니다” 한국인 게스트하우스 사장의 말이었다. 나이로비 차량은 늘어나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지만 보험에 든 차량은 손에 꼽힌다고 한다. 가해자는 감옥에 가지만 피해자는 보상을 받을 길이 막막하다고.

한참 지난 뒤에야 택시가 도착했다. 한 눈에 봐도 낡아보이는 승용차 4대에 투쟁단이 나눠 타고 시내로 출발했다.

“이거 되는 거야?”

게스트하우스 사장의 말이 생각났던 것일까. 앞좌석에 앉은 투쟁단원이 안전벨트를 채우며 말했다. 그런데 웬걸. 휙 하고 갑자기 잡아당기면 덜컥 하고 멈춰야 할 안전벨트는 고장이 났는지 아무리 잡아당겨도 허망하게 늘어졌다.

“여기서 보험 하면 잘되겠어요”

기자가 꺼낸 말이었다. 차량보험이야 꼭 필요한 것이니 조금만 영업을 하면 가입자가 몰리지 않겠느냐. 농담처럼 꺼낸 말이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진지했다.

30년 농사에 빚만 잔뜩...한국 농부 장부식의 고백

“남들보다 앞서가면 안 돼, 망해”

뒷자석에 기자와 함께 앉았던 장부식(50) 진도군 농민회 사무국장의 무뚝뚝한 대답이었다. 물건이 아무리 좋아도 시기를 맞추지 못하면 망한다는 것이었다.

30년 전부터 그는 열정 가득한 농부였다.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새로운 작물을 재배하는 것이 그에게는 즐거움이었고 새로운 기회이자 도전이었다.

오쿠라, 여주, 약도라지, 마, 최근 논란이 일었던 백수오까지. 처음 듣는 생소한 작물들이 그의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 모두 그가 한 발 앞서 시작한 작물이었고 결과는 대 실패였다. 농사를 망친 것이 아니라 판로가 없었다. 지금이야 약도라지가 건강식으로 인기를 얻고 있지만 그가 처음 약도라지를 시작했을 땐 물건을 사갈 상인도 없었다.

“아 냅둬 저리 꺼져”

4년이나 키운 백수오가 kg당 5천원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는 상인에게 한바탕 욕을 퍼부었다. 못 받아도 3만5천원을 받아야 그나마 수지가 맞았지만 상인은 안하무인이었고, 성질머리가 치솟은 그는 욕을 퍼부어 버렸다. 그는 그해 수확한 백수오를 전부 가루로 만들어 지인들에게 나눠줬다.

새로운 도전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한 번 실패하면 안전한 작물을 키웠다. 그가 농사를 짓고 있는 진도는 대파 주산지다. 대파는 늘 안정적인 수익을 내주던 작물이었다. 하지만 그가 심었다 하면 가격이 폭락했다. 대파 뿐 아니었다. 배추도 양파도 그가 심기만 하면 판판히 ‘똥금’이 됐다.

“야 너 올해 뭐 심냐?”

그의 친구들이 놀리면서 묻는 말이다. 그 작물만 피해가면 된다는 것이다.

어떻게든 돈 되는 작물을 찾던 장 사무국장의 도전은 번번히 실패했고 그나마 수입이 안정적인 작물이라는 마늘이나 양파, 대파 등은 가격이 롤러코스터를 타기 일쑤다.

이유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그 이유를 WTO를 비롯한 신자유주의자들이 확산시키고 있는 농산물 수입정책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다양한 수입 농산물이 싼 가격으로 한국 시장에 밀려들어오면서 개별 품목의 가격 경쟁력을 잃게 했고 한국 농업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중소농을 일부 ‘돈 되는’ 작물에 몰아넣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들 일부 품목은 풍작이 되면 생산량이 급격하게 늘어 가격이 떨어지고 운대가 잘 맞아 가격이 올라간다고 해도 올라간 가격으로 재미를 보려는 무역 업자들이 수입 농산물을 들여와 판매하기 때문에 다시 가격이 내려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장부식 진도농민회 사무국장
장부식 진도농민회 사무국장ⓒ민중의소리

30년 농사 빚더미, 아이를 키운건 아내의 방앗간

당연히 장부식 사무국장의 아내는 그사이 “못살겠다”고 난리였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들어갈 돈은 많은데 농사로 버는 돈은 부족하기만 했다. 지켜보던 그의 아내는 2007년 결단을 내렸다. “도저히 안되겠다. 내가 장사라도 해보겠다”고 나섰다.

“뭐 내가 이래라 저래라 할 처지인가? 맨날 돈만 까먹고...빚을 내서라도 해보라고 했지”

몇 달을 고민하던 아내가 내놓은 계획은 방앗간 운영이었다. “큰 돈은 못 만져도 현금이 도는 장사니까 굶어죽진 않을 것”이라는 아는 형님의 말을 들은 터였다. 가족회의를 통해 방앗간을 하기로 하고 아내는 방앗간 기계 만지는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3개월여, 마침 마땅한 방앗간이 매물로 나왔다. 하지만 그는 농사를 포기할 수 없었다. “나는 죽어도 농사 못 그만둔다”고 말했고 아내와 택배를 하던 장 사무국장의 동생이 합심해 방앗간을 인수했다.

장부식 진도농민회 사무국장
장부식 진도농민회 사무국장ⓒ민중의소리

가계세 3천만원에 기계값 5천만원, 이런저런 초기 투자 비용이 1억원이었다. 빚으로 시작했지만 소소한 수입이 들어오는 방앗간 수입으로 그는 자식 둘을 키우고 있다. 30년 농사를 지었지만 정작 돈을 벌어준 건 아내가 시작한 방앗간이었던 셈이다.

택시 안에서 한참 동안 장 사무국장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지옥 같은’ 교통체증에도 어찌어찌 제 시간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려 나이로비 시내를 적시고 있었다. 원정투쟁단은 비옷을 챙겨 입고거리로 향했다. 30년 동안 농사를 지었지만 빚만 잔뜩 졌던 장 사무국장의 손에는 ‘DOWN DOWN WTO’라고 적힌 푯말이 들려 있었다. 그리고 익숙한 노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삼천만 잠들었을 때, 우리는 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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