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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샌더스가 질 수밖에 없는 진짜 이유

 
[박영철-전희경의 국제 경제 읽기] 민주당의 '슈퍼 대의원'
 

 

한국에 버니 샌더스 돌풍이 대단하다. 민주당 대선 후보인 샌더스의 정치 혁명에 관심을 가지는 한국 유권자들이 많다. 그들을 세 부류로 나눠 보았다.

첫 번째 부류는 선진국 최악의 소득 불평등이라는 불명예를 가진 미국에 샌더스의 정치 혁명이 던지는 신선하고 강력한 선거 유세 메시지가 한국 정가와 경제계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 오기 바라는 사람들이다.

두 번째 부류는 혹시라도 샌더스 돌풍이 내년(2017년)에 있을 한국의 대선에서 '경제 민주화'를 화두로 부활시킬까 두려워하고 걱정하는 사람들이다.

세 번째 부류는 신자유주의 경제의 본산인 미국에서의 샌더스 돌풍이 과연 자본주의 시장 경제 체제에 근원적이고 '과격한' 개혁 바람을 불러일으킬지 순수한 호기심에서 주시하는 사람들이다. 

세 번째 부류에 속하는 독자가 최근의 샌더스 관련 기사를 읽고 박영철 교수에게 아래와 같은 이메일을 보내왔다. (☞관련 기사 : 어쩌면 샌더스가 이길 수 있는 여섯 가지 이유)

"프레시안에 실린 '어쩌면 샌더스가 이길 수 있는 여섯 가지 이유'를 잘 읽었어요. 많은 부문에 동의하는데 민주당의 슈퍼 대의원 제도에 대한 설명이 빠져 있어 서운했습니다. 왜냐하면, 샌더스가 아무리 예비 경선에서 선전해도 이 제도 때문에 후보 지명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고 하던데요." 

2월 14일(미국 시각), 독자의 지적이 정곡을 찌르는 중요한 이슈임을 인정하면서 이 문제를 더 깊이 살펴보기 위하여 박영철 전 원광대학교 교수와 인터뷰를 했다.

박영철 전 교수는 벨기에 루뱅 대학교 경제학과에서 국제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세계은행(World Bank)에서 경제 분석가(Country Economist and Project Analyst)로 15년(1974~1988년)간 근무했다. 그 이후 원광대학교 교수(경제학부 국제경제학)를 역임했고, 2010년 은퇴 후 미국에 거주하며 개인 컨설팅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전희경 : 우선 민주당의 '슈퍼 대의원(super delegate) 제도'가 무엇인지 설명해 주십시오.

박영철 : 오는 7월 25~28일에 필라델피아에서 열리는 2016년 민주당의 전당 대회에서 대통령과 부통령 후보 지명 투표에 참여하는 대의원은 두 종류로 나누어집니다. 하나는 당원 대회(코커스)나 국민 경선(오픈 프라이머리) 등 예비 경선을 통해 선택되는 '선언 대의원(Pledged delegates)'과 다른 하나는 선거 없이 자동으로 선택되는 '슈퍼 대의원'입니다.

2016년 대선에서는 이 두 종류의 총 대의원 수가 4764명이므로 과반수 2384명의 표를 얻어야 민주당의 공식 대통령 후보가 됩니다. 

전희경 : 슈퍼 대의원은 어떤 사람들이며 몇 명이나 되는지요?

박영철 : 슈퍼 대의원은 민주당의 상원의원, 하원의원, 주지사(State Governors), 미 영토 지사(Territorial Governors), 민주당 전국위원회 위원(Members of the DNC) 등으로 구성됩니다. 대부분이 선출직인 이 슈퍼 대의원 수는 4년에 한 번씩 있는 대선 때마다 조금씩 변합니다. 

2008년 대선 때는 민주당의 상원과 하원 의원이 많아서 724명이나 되었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438명 정도라 합니다. 이들이 지지하는 대선 후보에 대한 예측은 발표하는 언론사마다 각각이며, 전당 대회 시작 직후에나 공식 집계가 나옵니다. 현 시점에서 슈퍼 대의원 362명이 힐러리를, 겨우 8명이 샌더스를 지지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유의해야 할 점은 예비 경선에서 선택된 '선언 대의원'은 민주당 당원, 민초의 뜻을 반영하는데 반하여, 이 슈퍼 대의원은 자격과 구성 면에서 잘 나타나듯이 민주당의 엘리트 집단(Establishment)을 대변한다는 사실입니다. 

전희경 : 그렇다면 왜 슈퍼 대의원 제도를 만들었는지 매우 궁금합니다. 민주당 일반 당원의 뜻이 아니라 민주당 지도 계급의 의지를 대표하는 슈퍼 대의원 제도가 왜 필요한지, 과연 올바른 정치 제도인지, 왜곡된 제도가 아닌지 의심이 드는데요?

박영철 : 매우 적절한 지적입니다. '538 블로그'에 실린 "슈퍼 대의원 제도가 힐러리 후보를 살리지 못할 수도 있다"는 기사에서 이렇게 일갈하고 있습니다.

"슈퍼 대의원 제도는 민주당 엘리트 집단이 손가락으로 저울을 누르고 있는 셈이다. 즉, 저울 눈금을 조작할 수 있다." 

왜냐하면, 슈퍼 대의원 제도의 원래 취지는 민주당 엘리트 집단이 원하지 않는 후보의 당선을 차단하기 위한 것입니다. 

전희경 : 과거로부터 배우기 위해 지난 2008년 대선에서 오바마가 후보 지명을 얻은 과정을 알아야겠습니다. 

박영철 : 2008년 민주당 대선 후보 지명전에서 오바마 후보가 선언 대의원의 51%, 슈퍼 대의원의 66%, 합계에서 53%를 얻어 46%를 얻은 힐러리 후보를 가볍게 물리쳤습니다.


우리의 관심을 끄는 사항은 이같이 순탄한 경우에도 만약 슈퍼 대의원의 반란표가 크게 나타났다면 최종 결과는 역전이 될 수도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구체적으로 힐러리 후보가 선언 대의원 투표에서는 49%대 51%로 아깝게 졌지만, 슈퍼 대의원 투표에서는 34%대 66%로 크게 패한 것입니다. 문제는 후보 지명 대회가 접전일수록 일반 당원의 뜻과는 달리 슈퍼 대의원 투표가 최종 후보를 결정할 수 있다는 맹점입니다.

전희경 : 민주당의 경우, 후보 지명 예선 경선이 접전인 경우 슈퍼 대의원의 표심이 최종 승자를 가린다는 사실이 '반민주적' 제도라는 느낌이 드는군요. 그런데 2016년 대선에서는 최근에야 뒤늦게 이 슈퍼 대의원 제도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요? 

박영철 : 매우 중요한 지적입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지난 2월 9일 뉴햄프셔 오픈 프라이머리에서 샌더스 후보가 22%포인트 차로 압승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확보한 대의원 수가 힐러리에게 크게 떨어진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그전에는 샌더스 승리 확률이 매우 낮아 슈퍼 대의원의 비민주적인 제도에 별 관심이 없었던 것입니다.

뉴햄프셔 예비 경선 후 각 후보가 확보한 대의원 수는 다음과 같습니다.


전희경 : 이 문제에 대한 샌더스 선거 진영의 대응책이 나왔는지요?

박영철 : 물론 나왔습니다. 이 제도 자체를 비난하기보다 슈퍼 대의원에게 일반 당원의 뜻을 역행하지 말고 존중해달라고 호소하는 '청원서(Petition)'를 발표했습니다.

"우리는 이번 후보 지명 선거의 최종 결과를 민주당 내부 인사(Insiders)들이 결정하도록 내버려두지 않겠다." 또는 "슈퍼 대의원이 전당 대회에서 일반 당원의 뜻을 따라 투표해 주기를 진심으로 간청한다." 그리고 "우리는 풀뿌리 운동을 총동원하여 슈퍼 대의원이 예비 경선에서 이긴 후보를 지지하도록 설득하겠다." 등등 

전희경 : 슈퍼 대의원은 아무 때고 지지자 후보를 바꿀 수 있다고 알고 있는데 사실인지요? 

박영철 : 그렇습니다. 선언 대의원은 전당 대회에서 적어도 첫 투표에서는 자신이 선언한 후보를 찍어야 합니다. 그런데 슈퍼 대의원은 그런 구속 사항이 없어 첫 투표에서도 후보 지지를 바꿀 수 있습니다. 비민주적이고 조작된 슈퍼 대의원 제도가 가진 유일한 장점입니다. 

전희경 : 그렇다면 샌더스 선거 진영의 앞으로의 전략은 어떻게 전개될 것으로 보시는지요? 

박영철 : 선택의 폭이 넓지 않습니다. 슈퍼 대의원 제도 자체에 대한 개혁은 샌더스가 대통령이 된 후에나 가능합니다. 따라서 샌더스 선거 진영은 다음 두 가지 전략에 총집중하고 있습니다. 

우선 무엇보다 예비 경선에서 힐러리를 큰 격차로 이겨야 합니다.

다음은 많은 슈퍼 대의원의 지지 후보 변경을 얻어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현재 힐러리를 지지하는 대의원을 설득하여 샌더스를 찍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 목적을 달성하는 최선의 방법은 예비 경선에서 크게 이겨 본선에서의 '당선 가능성(Electability)'을 향상하므로 슈퍼 대의원들의 심정 변화를 일으켜야 합니다. 

전희경 : 샌더스에게 어려운 싸움이군요. 그런데 2월 13일 아침 샌더스가 네바다(Nevada)주 예비 경선에서 힐러리와 동점을 이룩한다는 놀라운 여론 조사 결과가 나와 왔군요.



'타깃 포인트' 여론 조사에 의하면 2월 21일에 열리는 네바다 당원 대회에서 샌더스와 힐러리가 45% 동점을 기록한다고 하는군요. 이는 지난 12월 '리얼 클리어 폴리틱스(Real Clear Politics)'의 조사에서 힐러리가 20%포인트 차이로 샌더스를 앞서고 있다는 결과와는 엄청난 변화를 보입니다. 

그리고 최근 '모닝 컨설트(Morning Consult)' 여론 조사 기관이 실시한 미국 전국 조사에서도 샌더스가 39%로 힐러리를 바짝 쫓고 있다는 소식이군요. 샌더스 진영의 사기가 무척 고무되었다고 하는데 네바다 당원 대회 결과가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요?

박영철 : 샌더스 진영에는 희소식 중 희소식입니다. 왜냐하면, 최근까지 오는 2월 21일 네바다 주에서 시작하는 남서부 주의 예비 경선에서 히스패닉과 흑인 등 소수 인종의 압도적 지지를 받는 힐러리의 독주가 예상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만약 샌더스가 네바다에서 승리하고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에서 선전하여 한 자릿수로 패한다면 후보 지명전 지형에 지각 변동이 생길 것입니다. 동시에 슈퍼 대의원의 힐러리 지지 추세에 큰 제동이 걸릴 가능성도 커질 것입니다. 

전희경 : 여론 조사의 정확도 면에서 '천재'라는 별명을 듣는 <뉴욕타임스>의 '538 블로그'가 최근에 매우 흥미로운 조사를 발표했다는군요. 이번 민주당 후보 지명 대회에서 슈퍼 대의원의 표가 얼마나 중요한가? 다시 말하면 선언 대의원의 지지를 얼마나 많이 얻으면 슈퍼 대의원의 지지가 전혀 필요 없는지, 반대로 슈퍼 대의원의 100% 지지 없으면 후보 지명에서 패하는 선언 대의원의 최저 지지율은 얼마인지를 계산한 조사라고 하던데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박영철 : 말씀하신 대로 매우 중요하고 흥미 있는 조사입니다. 이 조사에 의하면, 슈퍼 대의원의 표 하나도 없이 후보 지명을 받으려면, 예비 경선에서 선언 대의원의 58.8%라는 엄청나게 높은 지지율을 얻어야 합니다. 반대로 선언 대의원의 41.2%라는 낮은 지지율을 얻고도 후보 지명을 얻으려면 슈퍼 대의원 전원의 지지를 따내야 합니다. 물론 가장 가능성이 큰 시나리오는 이 두 극단적인 58.8%와 41.2% 안에 있습니다.

전희경 : 이 조사에 의하면 힐러리가 예비 선거에서 샌더스에게 지더라도 슈퍼 대의원 지지에서 이기면 민주당의 후보가 될 수 있다는 말씀이군요. 예를 들어 설명해 주십시오.

박영철 : 예비 경선에서 힐러리가 47.5%로 52.5%를 얻은 샌더스에게 진 경우를 상상해 봅시다. 이 표 차이는 미국의 모든 주에서 힐러리가 샌더스에게 5%포인트 졌다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힐러리가 후보 지명을 따낼 수 있을까요? 있습니다. 그리고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왜냐하면, 이 경우 힐러리가 슈퍼 대의원의 64%만 얻어도 후보가 됩니다. 그런데 현 시점에서 힐러리는 슈퍼 대의원의 97.8%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전희경 : 그렇다면 경기는 끝난 것 아닌가요? 

박영철 : 아닙니다. 두 변수가 살아 있습니다. 샌더스 진영이 선언 대의원과 슈퍼 대의원의 지지율을 높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두 변수는 동행하는 특성이 있습니다. 대의원은 예비 경선에서 이기는 후보에게 몰리는 특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왜곡되고 기울어진 운동장인 슈퍼 대의원 제도로 샌더스 싸움은 더 힘들게 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끝난 싸움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민주당의 진보 진영과 일부 노동조합 그리고 젊은 남녀 지지층의 열정이 '오늘의 미국보다 더 정의롭고 평등한 미국의 건설'을 외치는 샌더스의 시대 정신의 구현을 요구합니다. 

전희경 : 오늘 인터뷰를 통해 샌더스가 무척 힘든 싸움을 하고 있음을 더욱 실감합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남기고 싶은 말씀은? 

박영철 :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 교수가 최근에 샌더스와 힐러리의 경제 개혁 공약은 핵심 내용에서 차이가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저는 이 선언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점진적 개혁'을 주장하는 힐러리와 '정치 혁명'을 통한 근원적인 개혁을 주창하는 샌더스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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