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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이 기념한 ‘3.1절 98주년’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7/02/28 14:10
  • 수정일
    2017/02/28 14:10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한일민중연대 네트워크 방문기… 일본 활동가들 ‘한국 촛불항쟁’에 높은 관심
▲ 개회사를 하고 있는 한일민중연대 전국네트워크 대표 와타나베 켄쥬

일본 평화운동단체들이 주관하는 3.1절 기념행사인 ‘2월 25일 집회’에 초청 강연자로 일본을 방문하게 되었다. 일본 방문 이모저모를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필자가 머문 곳은 도쿄 동쪽 스미다구에 위치한 료고쿠역(両国駅) 인근 호텔이었다. 일본의 거리는 깨끗했고, 지하철은 분할 민영화돼 있어 환승역마다 요금을 따로 물어야 했다. 확실히 일본은 집값과 교통비가 비쌌다. 식당 음식 등 일반생활품은 한국과 비슷했다.

료고쿠역 근처에는 도쿠가와 이에야스 통치기의 일본상을 보여주는 ‘에도 도쿄 박물관(江戸東京博物館前)’과 스모 경기가 열리는 ‘료코쿠 국기관’, 요코아미쵸 공원(横網町公園) 등이 있었다.

요코아미쵸 공원 안에는 관동대지진 희생자와 도쿄대공습 희생자를 추모하는 ‘도쿄도위령당’이 있었는데, 그 옆 구석에 관동대지진 시절 학살당한 조선인을 위로하는 추도비가 조그맣게 놓여 있었다. 비문에는 “1923년 9월에 발생한 관동대지진의 혼란 가운데, 잘못된 책동과 유언비어로 인해 6000여 명이 넘는 조선인이 귀한 생명을 빼앗겼습니다.”라고 씌어 있을 뿐이었다. 학살이라는 말은 없었다. 아직도 일본에 정부가 굽신거리니 추도비 하나가 제대로 세워져 있지 않았다.

▲ 요코아미쵸 공원안에 있는 조선인 추모비

25일 11시께 일본 랭고(연합)를 찾았다. 연합회관은 조용했다. 2층 평화포럼 사무실에서 후지모토 평화포럼 대표와 한충목 반전평화국민행동 공동대표와 함께 간담회를 가졌다.

평화포럼은 일본 노동운동의 축이었던 총평계와 연합계가 함께 만든 단체로서, <포럼 평화·인권·환경>의 약자이다. 한국과 달리 일본 평화포럼의 주축은 노동운동이었고 사무실, 인력, 재정 모두 연합이 책임지고 있었다. 환경, 인권, 평화운동을 노동운동이 책임지고 있다는 점이 새로웠다.

후지모토 야스나리 평화포럼 대표 역시 사회과 교사 출신으로 일교조에서 파견한 활동가였다. 한국에는 메이데이 행사, 8.15 행사 등 수차례 방문하였기에 낯이 익었다. 한국 촛불항쟁 전망과 대선, 이후 정국 진단, 일본 정세 등을 주제로 논의가 오갔고, 6월 항쟁 30주년 공동사업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 랭코 건물 앞에 선 필자(좌)와 건물 안에 전시되어 있는 노동자상(우)

2월 25일 오후 6시부터 도쿄 문경구 구민센터에서 <3·1 조선독립운동 98주년 기념행사>가 진행되었다. 주중에는 모일 수가 없어서 주말에 앞당겨 진행한 것이다. 행사는 “한미일 군사동맹에 반대하는 조선민중의 투쟁에 연대하자”는 제목으로 진행되었는데, 실내행사도 ‘집회’라고 부르는 것이 특이했다.

1부에서는 시게루 한다 동경신문 사회부 논설위원 겸 편집위원이 강연을 했다. 강연 제목은 “GSOMIA와 안보법제가 전쟁으로 이끄는 길”이었는데, 한다 논설위원은 GSOMIA(General Security of Military Information,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가 미일, 한일 간에 체결되고, 아베 정권 아래서 각종 안보법제화가 이루어지면서 동북아 전쟁위기가 더욱 고조되고 있다는 취지의 강연을 하였다.

▲ 2.25 집회 중 한다 기자의 강연장면

중간에 특별 호소시간이 있었다. 130일째 해고 철회를 위해 일본 원정투쟁 중인 금속노조 경남지부 산연(산켄) 지회 원정투쟁단이 율동을 하였다. 율동은 일본 민중세력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일본 집회는 연설 위주로 되어 있다고 한다.

산연의 목적은 자본 철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노조 와해에 있었다. 유럽 수출 물량은 ‘메이드 인 코리아’로 나가게 돼 있는데, 공장을 폐쇄하고 위장 생산을 하면서 산연지회 조합원들을 해고하는 만행을 저지렀다. 조합원들은 지방노동위원회에서 승소하였으나 회사는 전혀 교섭에 임하지 않고 있다.

산연 일본원정투쟁단에 대한 일본 민중단체의 연대와 협조는 정말 지극 정성이었다. 원정단 조합원들은 자신들이 머물 숙소도 구해 주고, 출근투쟁과 대시민 홍보활동에 함께해준 일본 단체 회원들에게 “혈육의 정”을 느낀다며 감사해 마지않았다. 정말 일본인들은 산연 조합원들과 함께 울고 함께 웃으면서 싸우고 있었다.

▲ 산연 원정투쟁단의 율동공연. 일본 활동가 한 분도 함께 율동하고 있다.

2부에서 필자는 <한국 게스트 보고; 한국 촛불혁명과 평화운동>이라는 제목으로 50분 정도 강연을 하였다. 일본 방문은 처음이었지만, 한국 촛불항쟁에 대한 일본 진보세력의 관심은 대단했다.

▲ 강연하고 있는 필자

강연이 끝나자, 2부 호소 시간에 여러 명이 나와서 다양한 정치연설을 하였다. 부산 소녀상 철거 요구에 대한 규탄 연설, 조선학교 무상화를 요구하는 재판에 대한 지원과 대응을 주제로 열띤 연설이 이어졌다.

일본 진보세력이 한국 ‘위안부 피해자’ 문제와 조선학교 문제에 대해 아낌없이 지원하고 헌신적으로 활동하는 것을 보고 필자는 매우 놀랐다. 한국 노동운동, 진보운동의 국제연대와 지원사업에 대해 많이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 반전평화, 위안부 소년상, 조선학교에 대해 호소하고 있는 연사들

집회에 참석했던 분들 중 20여명이 넘게 뒤풀이에 참석했다.

뒤풀이 방식은 음식을 먹으며 한 마디씩 자기 소개도 하고, 노래도 하고, 건배도 하면서 한국과 비슷하게 진행했다.

필자 순서가 돌아와 인사말도 하고, 세월호 노래인 ‘진실’을 가사만 소개하려고 했는데, 가사 첫머리를 꺼내자마자 참가자들이 힘차게 합창하기 시작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모두 함께 목청 높여 세월호 노래를 불렀는데, 부정의한 세력과의 투쟁에는 역시 국적이 따로 없구나 하는 마음에 가슴이 뭉클했다. 알고보니 한국진보운동과 연대하는 세력은 한국에 대해 모르는게 없었다. 뒤풀이가 무르익어 가는데, 한국인지 일본인지 구별이 안 될 정도로 한국 투쟁가를 불렀다. 고맙기도 하고 감격스럽기도 했다.

▲ 뒤풀이에서 서로 인사하는 장면

마지막 날인 26일 오전엔 한국의 토즈와 같은 곳에서 한일민중연대 네트워크 관계자들과 한충목 반전평화국민행동 공동대표와 함께 간담회를 가졌다. 용산 전자상가와 비슷한 아키하바라에 있는 구민센터였는데, 구에서 운영하는 곳이라 가격이 싸다고 했다. 한국에도 이런 시설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한일네크워크와 간담회 장면

한일 네크워크와의 간담회에선 6월 항쟁 30주년을 기념하여 한국에서 국제포럼을 진행하자는 것, 또한 연속으로 일본에서도 동아시아 평화포럼을 진행하자는 등등의 협의가 진행되었다.

일본 평화포럼, 한일민중연대 네트워크 관계자들과 만남은 귀중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뜨겁고 정 깊은 국제연대를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2박3일의 짧은 시간 동안 만난 일본 민중과 활동가들은 정말 착하고 겸손하고 순했다. 감성도 풍부했다. 이런 사람들의 나라에 군국주의가 들어선 것이 이해가 안 될 정도였다. 아쉬운 석별의 정을 나누고 나리타 공항으로 향했다.

김장호 편집국장  minplus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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