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3일(목) 오후 2시쯤, 안암동 고려대 국제관 115호실. 민주노총 대학노조 주최로 명지대학교에서 있었던 지부 파업 과정에 대한 평가회가 열렸죠.


서수경 지부장님과 어제 결혼하신 송서향 조합원, 조미지 조합원 등 명지대 지부 성원분들 외에, 대학노조 본조와 서울본부(명지대 용인캠퍼스를 커버하는 대학노조 경기인천지부는 이 날로 평가회 연기를 요청했다더니만 결국 불참), 민주노총 서울본부 관계자분, 그리고 한양대 지부 소속이라는 여성조합원 한 분과 송서향 조합원의 꿀물이 되신ㅋ 외대 지부의 고중식씨가 자리에 함께 하셨더만요. 명지대 학생동들과 동문대책위 소속 한 분도 참석하셨구요. 그간 명지대 투쟁에 꾸준히 연대해왔던 살맛의유나동과, 세현동의 ‘그녀’ 전하정동도 같이 있었습니다.ㅋ


아무래도 평가회 장소가 고려대다 보니 고대 청소노조 분회장께서도 일단 참석은 하셨는데 다른 볼일 때문인지 얼마 후 자리를 뜨셨고, 연세대 청소용역노조 분회장님과 부분회장님은 끝까지 자리를 지키셨습니다. 그럼 서비(준)에서는? 이류 선배, 이상선 공공노조 서경지부 부지부장님, 세현동과 제가 참석한 “셈”이더군요. 따로 같이 가자 해서 모인 건 아녔던 터라.ㅋ 아무튼 그 외에도 낯익은 몇 분이 더 있었으나, 제게 식별가능한 분들은 여기까지였다는 거~^^;


평가회는 잠깐의 쉬는 시간과 함께 6시 경까지 진행이 됐더랬습니다. 돌이켜 보건대, 평가회에서 쟁점은 크게 세 가지 정도 아녔나해요. 1) 상당수 조합원들이 명지대 법인과 이룬 타결안은 지금껏 한 게 억울해서라도 받아들이기 힘들다며 법률소송으로 “싸움의 판”을 옮기겠노라고 한 걸 어떻게 평가·정리할 수 있을지 2) 당사자들 스스로 투쟁력을 높여야 하는 게 우선이라는 대학노조 본조 쪽의 입장과, 상급단체로서 대학노조가 적절한 “지도와 임기응변의 묘”를 살리지 못했다는 명지대 지부나 지역대책위 쪽 입장에서 나타나는 간극은 그럼 어떻게 봐야 할지 3) 어느 투쟁 과정에서건 나올 수밖에 없는 얘기겠습니다만, 투쟁이 거둔 “성과”가있다면 그건 뭐였겠는지.


그런데 제가 보기에, 총평하자면 평가회는 이렇지 않았나 싶더라구요. 마치, “정주민”들과 “이주민(내지 유목민)”들이 앞으로어떻게 한 집 살림을 해야 할지 놓고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고 할까요? 달리 말해, 이런 상황이라면 한 집 살림 여부가 핵심도 아녔을 뿐더러 그게 실현 가능성을 떠나 과연 유효하겠는지부터 먼저 따져봐야 했던 거 아니냐. 이 점에 대해 좀더 솔직하게 토론을 했어야 했겠다는 겁니다.


실제로는 감당이 안 되는데도 주위에서 그래야 한다니까 “원칙”만 천명하고, 그러다 보니 왕년에 “깃발 꽂던” 얘기밖에 할 수 없다면(그 깃발이 푹푹 꽂히던 지형 자체가 이젠 워낙 물러져 무작정 꽂는 게 능사는 아니게 됐다면 더더욱), 차라리 달라진 대학 내 지형 속에서 솔직히 뭘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노라고 고충을 토로하는 게 더 낫겠더라고 할까요.


이랬을 때 (물론 고정불변은 아니겠지만) 지금의 정세와 조건에서 대학노조가 명지대 지부와 그나마 같이 할 수 있는 것과 사실상 할 수 없는 게 뚜렷해지면서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도 좀더 분명해질 테고. 또 그래야 지대위나 제 연대 단위들에서도 그저 해야 하는 거니 앞으로 잘 하겠지, 하고 착각(!)하지 않을 수 있겠다는 겁니다. 바로 이 점이, 앞서 언급한 세 가지 쟁점을 평가하기에 앞서 명확히 전제돼야 할 대목이겠다 싶더라구요.


그래서 안 그래도 명지대 사례와 관련해 향후 대학노조 쪽의 대응 전략과 방향을 묻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습니다만, 글쎄요, 이게한 번의 토론회로 가닥잡힐 일도 아니지만, 앞서 말씀드린 이유로 단지 토론 횟수만으로 내용의 질이 보장되긴 정말 쉽지 않아보이더군요. 대학노조 본부 쪽에서야 빠듯한 시간 관계상 추후에 제대로 다루자고 일단 패스했지만요.


중요한 건 결국, 원튼 원치 않든 정주민이 아닌 이주/유목민으로 살아내야 할 명지대 지부 조합원 분들에게 적합한 ‘싸움의 기술’과 이 기술을 벼리는 데 필요한 (요즘 제가 틈만 나면 떠들어대는 테마입니다만ㅋ) ‘장소’는 과연 어떤 것이겠는지 차분히 토론하고 숙의해 가는 일이지 싶어요. 토론과 숙의가 필요하다고 한 만큼 그 장소를 지금 당장 특정하긴 무리겠지만, 적어도 분명한 건 그 장소가 ‘명지대학교’나 ‘대학노조 본부’는 아니겠다고 할까요. 지부에 남아 노조를 꾸릴 조합원이 몇이겠냐도 물론 무시해선 안 되겠지만, 당장 눈에 보이는 머릿수나 “깃발 꽂기”보다 지금 더 중요한 건 이 점부터 명확히 하는 일이지 싶습니다.


예컨대, 조미지 조합원께서 작성한 투쟁 평가서 내용을 인용하면 이렇습니다. 조미지 조합원에 따르면 “파업투쟁은 개인의 희생을 피할수 없으나, 그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한 것이 대부분이요, 열심히 한 사람들은 희생자가 되어 그나마 결과에 대한 수혜자도 못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투쟁 시작 무렵부터 깔려 있던 “전반적인 조합원들의 생각”이었다고 하죠. 이처럼 “(19)96년도 이후,괄목할 만한 결과 없이 불쌍하게 죽어간 희생자들만 보여준 매스컴교육을 그들이 무슨 수로 비켜 생각할 수 있었겠는가”라고 하면서요. 한마디로 “체제순응형” 여성이었던 조합원들에게, 그들 스스로 거듭나고 자신을 다르게 긍정할 만한 계기가 워낙에 없었다는 얘길 겁니다. 쟁점 1)에서 확인할 수 있다시피, 명지대학교와 벌인 싸움의 경험도, 힘겨웠던 만큼이나 이런 계기가 되지는 못했던 셈이겠구요.


사정이 이렇다면 그간의 투쟁을 헛됐다고만 치부할 수 없을, (특히나 남기로 한) 지부 조합원들의 거듭남과 적극적인 자기긍정의 계기들은 앞으로 어떻게 마련될 수 있겠으며, 이런 계기들이 형성되는 데 지역대책위 단위들에서 함께 할 수 있는 것으론 그럼 뭐가 있겠는지 조합원 분들과 지속적으로 이야기해 가야 하지 않겠느냐.


요컨대 이주/유목민인데도 정주민의 삶의 패턴을 어떻게든 빼닮아보려 애쓰다가 결국 낭패만 겪기보다는, 비슷한 처지의 이주/유목민들과지속적으로 어울릴 광대한 ‘장소’를 형성해 가는 게 훨씬 더 유효한 길이겠다. 어느 책에서 본 구절을 써먹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즉, 앞으로 이주/유목민들의 특장점과 미덕을 크게 살린 싸움/투쟁이란 “깃발꽂기”가 은연중 암시하는 것처럼 개별캠퍼스의 일부 “땅을 차지하여 내 것으로 만든다는 의미”가 더는 아니겠다는 거죠. 오히려, 명지대처럼 기업화·자본화한 사학들의 돈지랄로부터 벗어날 “길을 열고 잇는다는 의미”에 더 가깝겠다고 할까요?


아마 투쟁이 이런 (어떻게 보면 지체됐던) 의미를 획득해 갈 때 “개인주의 사고방식”이야말로 우리가 각자 누려야 할 개별성의 최대위협요소이며, 저마다의 개별성은 거꾸로 ‘여럿이 함께’인 삶의 방식을 일구어 가는 가운데 진정 빛날 수 있다는 사실도 조합원들과 연대단위들이 함께 발견해 갈 수 있잖겠느냐(가뜩이나 궁뎅이가 무겁다는 “정주민”들이, 하다 못해 마지 못해서라도 이주민들과 실질적으로 합세하는 상황은 이렇게 함으로써 가능해지지 않겠냐는 겁니다).


따지고 보면 바로 이게 명지대 투쟁을 통해 조합원 분들이 놓쳐서는 안 될 가장 큰 성과이지 않겠나 싶어요. 적어도 제가 보기에, 이런 의미에서 명지대 투쟁의 성과를 말하기엔 아직 이른 시점이라고 해야겠다 싶기도 하고요. 바꿔 말하면 앞선 투쟁이 그저 헛된 시간일지 아닐지는 지금부터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는 얘기기도 할 텐데요.


저로서는 그래서 서수경 지부장님을 위시한 명지대 조합원분들이 부디 이 점을 놓치지 마시고 긴 호흡으로 심기일전하시길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어차피 돌이킬 수 없는 거라면, 투쟁 과정상의 ‘시행착오’와 아쉬움이야 어찌 됐든 말이죠. 물론, 일단들 한 숨부터 돌려야 할상황이시겠지만요.^^:




p.s.1.

<명지대지부 파업 평가> 문서 제일 앞면을 보니 이런 문구가 눈에 띄더군요. “우리는 … 마침내 인간의 향기 넘치는 지상낙원을 만들어간다.” 순간 ‘어우, 깜짝이야!’ 싶더니만 향기보다는 냄새가 나는 것이, 웬지 보면 볼수록 부대끼더라구요. 것참, 왜그랬는지 원.ㅋㅋ

 


p.s.2.

토론회가 끝날 무렵, 대학노조 서울본부장이라시는 분께서 짐짓 엄숙하고 결연한 표정으로 “민주주의는 다수결”이라는 논지를 펼치며 조직적인 의사결정의 원리원칙에 대해 발언하시는 걸 들었죠. 20여 년 전의 노조 조직화 경험을 곁들이시면서요.


20 여 년 전에도 사실 그렇지만, 특히나 지금 “민주주의는 다수결”이라는 ‘원리(혹은 상식)’이 과연 우리 같은 이주/유목민들한테 적합한 의사결정 방식인지 심히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밖에 없었더랬어요. “민주주의는 다수결”이라는 주장은 뭉툭한 정치학 개론서에서조차 꽤 위험한 발상이라며 조심스러워하는 걸로 아는데, 서울본부장님이 한 발언만 가지고는 솔직히 머릿수만 많으면 내용이야 어떻든 민주주의 아니냐는 현 집권당 원내대표의 발상법하고도 뭐가 크게 다른가 싶더만요. 제가 알기로, 이주/유목민들 처지에서 추구해야 할 민주주의는 결코 그런 게 아닐 뿐더러, 그런 민주주의에 기댔다간 한 방에 훅 가거나 제 발등 찍기 십상이라고도 하구요.


그래설까요. 겉보기보다 자못 심각하게 되씹어봐야 할 씨츄에이션이겠다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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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14 06:15 2009/12/14 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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