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entary No. 271, Dec. 15, 2009
흑인 대통령 오바마
("Obama as a Black President")
미합중국 의회 흑인의원연맹(이하 연맹)의 오바마에 대한 인내가 바닥을 드러낸 가운데, 이같은 정치적 긴장이 언론을 통해 불거져 나오고 있다. 연맹 회원들이 느끼기에, 오바마는 작금의 경제적 곤경이 아프리카계 주민들과 그밖의 소수자 그룹에게 국내 인구 중 그 어느 부류보다도 엄청난 여파를 끼쳐왔다는 사실에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으며, 따라서 이들을 상대로 특단의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공화계인 에마뉴엘 클리버는 이렇게 말했다. “오바마는 의식적으로 인종과 멀찍이 떨어져 있으려 애써왔고, 이는 우리 모두가 이해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아프리카계 흑인 실업자 수가 이렇게 터무니없는 상황에서, 가장 커다란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한테 주의와 자원을 돌리지 않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할 만하다.”
버락 오바마가 흑인으로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그가 2007년 대통령 후보경선 출마를 선언한 이후로 줄곧 주요하고도 잦은 토론거리가 돼왔다. 미국의 흑인 정치인들한테서 오바마가 처음부터 열렬히 지지를 받은 건 아니었다. 그들 다수는 힐러리 클린턴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 아프리카계 미국 언론매체에서는 오바마가 “충분히 흑인답다고 할 만한지”를 놓고서 상당한 토론이 벌어졌다.
이렇게 주저하던 태도가 급격히 바뀐 건, 2008년 1월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오바마가 대부분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승리를 거두면서부터였다. 아이오와 주는 백인 비중이 압도적인 곳이었다. 그런 데서 오바마가 상당한 지지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은 아프리카계 정치인들에게 그가 경선에서 이길 수 있겠다는 메시지로 읽혔다. 흑인이 드디어 미합중국 대통령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정치인뿐 아니라 일반인까지 포함하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에게 무엇보다 우선하는 고려요소였다는 게 밝혀졌다.
대통령으로 당선됐을 때까지만 해도 그는, 빈부와 노소를 막론하고 사실상 미국 내의 모든 흑인들한테서 열정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들이 흘린 기쁨의 눈물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고, 아프리카계 초중생들은 각자가 스스로 바라는 그 어떤 목표도 열망할 수 있겠다는 것을 그의 당선이 입증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그가 유권자들한테서 어떻게 지지를 이끌어냈는가 하는 점이다. 아프리카계 흑인들만으로 그가 선거에서 이기기란, 설령 분별력 있는 유권자가 모두 투표를 했더라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오바마는 민주당을 든든히 받쳐주는 핵심 지지자들 말고도, 예전까지만 해도 불확정적이던 세 부류의 유권자들에게서 표를 얻었다. 첫 번째 부류는 여느 때 같았으면 투표소에 가지 않았을 이들로, (대체로 학력이 상대적으로 짧고 빈곤층인) 다수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과 (흑인과 백인을 망라한) 젊은 친구들이다. 두 번째 부류는 중도파 유권자들인데, 통상 교외에 위치한 커뮤니티에 속해 있고 백인인 경우가 일반적이다. 세 번째 부류는 백인 숙련노동자들로, 지난 십수년 간 사회문제를 보는 관점을 이유로 민주당을 외면해(왔고 인종주의적 감수성을 자주, 공공연히 드러내)온 이들이 되겠다.
오바마가 (공화당을 등지라고 꾀어냈던 중도파-교외거주 유권자들과 백인-숙련노동자들인) 두 번째와 세 번째 부류한테서 지지받았다면 그건 바로, 그가 “성난 흑인”이 아님을 해당 유권자들에게 납득시켰기 때문이었다. 그는 정말 그렇게, 다시 말해 아주 “차분한” 품행을 갖춘, 출중한 학력에다 실용적이고, 중도성향을 가진 정치인으로 자신을 앞세웠다. 그는 대선 유세 기간뿐만 아니라 당선 이후로도 이같은 모습을 유지했다.
이제 아프리카계 정치인들은 깨달아 가는 중이다. 자신들이 파우스트가 그랬던 것과 같은 거래를 (오바마와) 했다는 점 말이다. 그들은 흑인 후보를 지지함으로써, 미합중국 최고위 선출직에 둘러쳐졌던 인종적 장벽을 무너뜨리는 상징적인 가치를 획득했다. “작심하고 인종(관련 쟁점)과는 멀찍이 떨어져 있고자 해온” 흑인 후보를 말이다. 오바마가 그런 태도를 취한 이유는 두 가지다. 부분적으로는 그게 바로 그의 진정한 모습이자 평생에 걸쳐 추구해온 바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인으로서 그런 모습을 유지해야 하는 점도 있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2012년 대선에서 자신이 재선되고 자신의 입법 의제를 통과시킬 민주당 의석을 충분히 확보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여겨서다.
이게 어디까지나 오바마의 문제이자 그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과 맺고 있는 관계상의 문제라면, 장기적인 역사적 과정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같은 상황은 사실, 세계 전반에 걸쳐 좀더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정치적 쟁점 중의 한 사례일 뿐이다.
상징적인 약진은 세계 정치에서 주된 요소를 이룬다. 어느 나라에서든 대통령 같은 자리에 예전에는 꿈도 꿀 수 없었던 부류에 속한 누군가가 앉게 되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 당장, 넬슨 만델라가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에보 모랄레스는 볼리비아 최초의 원주민 대통령으로, 여성들이 여러 무슬림 국가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뽑혔던 기쁨과 진보의 순간들을 떠올려 보라. 버락 오바마가 미합중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뽑힌 일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들 모두 정치적으로 중요한 사건이었고, 그 사건들이 지닌 중요성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상징적 승리는 실질적인 변화에 관한 번역을 거쳐야 하는데, 안 그럴 경우 이런저런 상징적 승리란 쓴맛으로 남게 마련이다. 상징적 승리를 거둔 지도자가 얼마나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가는, 부분적으로 그/녀 스스로 상정해둔 우선순위에 달려 있지만, 해당 국가가 안고 있는 특정한 제약들에 달려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미국의 경우, 오바마에게 주어진 운신의 폭은 매우 좁다. 흑인 입장에서 그가 반응했던 몇몇 순간들이 있었는데, 그는 곧바로 정치적 지지를 잃었다. 그의 유세기간 중 그의 정신적 지주로, 시카고 트리니티 교회 목사인 제레미아 라이트가 한 몇몇 “선동적인” 발언이 부상하면서였다. 이에 대해 오바마가 처음 보였던 반응은, 미국적인 삶에서 인종이란 화두가 갖는 의미에 대해 세련된 연설을 하는 것이었다. 연설에서 그는 “백인인 내 할머니와의 연을 끊을 수 없는 만큼이나 [제레미아 라이트와의 연을] 끊을 순 없다”고 했다. 그러나 그러고서 얼마 있지 않아 오바마는 후퇴해야 했고, 트리니티 교회에 발을 끊음으로써 자신의 정신적 지주와 정말로 절연했다.
이런 일은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 이후 (아프리카계 미국인인) 헨리 루이스 하버드대학 교수가 말썽이 난 자기 집 현관문을 억지로 열고 들어갔다가 체포됐을 때도 있었다. 그는 집에 들어가고 난 뒤 백인 경찰관한테 검문을 당했고, 상당 정도 댓거리가 오고간 후에 “질서문란 행위”로 체포됐다. 오바마의 첫 반응은 해당 경찰관이 “바보 같은 행동을 했다”고 말한 것이었다. 정치적인 반발이 뒤따랐고, 그리고 나서 오바마는 우호적인 하나됨의 자리를 마련하고자 루이스와 해당 경찰관을 백악관으로 불렀다.
오바마가 우리에게 던지는 교훈은 명백하다. 그에게는 그 어떤 환경에서도 “흑인 대통령”으로서 정치적 처신을 할 만한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 말인즉슨, 정치적 관점이 동일한 백인 대통령이라면 거리낌 없이 했을지 모를 행동과 발언을 오바마는 제약당하고 있다는 뜻이다. 오늘날 미국이라는 맥락에서, 아프리카계 대통령이라는 건 상징적 성취인 동시에 정치적 핸디캡임이 드러난 셈이다. 이 점을 오바마는 깨달았고, 흑인의원연맹에서는 알아차리고 있다. 문제는 이에 대해 오바마나 흑인의원연맹에서, 설사 무언가 있다고 한들, 그 무언가를 하겠다거나 할 수가 있겠냐는 것이다.
이매뉴얼 월러스틴
매번 이렇게 일일이 번역하시는거에요? 완전 대단하심당~~ 아, 나도 빨리 영어공부해야 하는데... 앞으로 몇 주간은 더 요놈의 자격증 취득에 매달려 있어야 하니.. ㅠ.ㅠ
그렇죠 머. 나름대로 땡기고, 또 귀차니즘에 굴복하지 않는 한에선요.ㅋ 솔직히, 다소 긴 글들을 번역해 놓고픈 의욕만큼 능력이 따라주질 않다 보니, 짤막한 거라도 해 두잔 것도 있겠지만요.ㅎ; 아, 자격증 취득을 준비중이시군요. 쉰소린지 몰라도, 저두 어서 운전면허증을 따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