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entary No. 273, Jan. 15, 2010


중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How to Think About China")




누군가 세계를 향해 ‘한 나라이자 세계 권력으로서 미합중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던지면, 사람들한테서는 아주 명확한 답들이 나올 것이다. 모두들 자기 견해 하나씩은 있다. (대체로 가난한) 남반구에 살든 (대체로 부유한) 북반구에 살든, 부유하든 가난하든, 남자든 여자든, 정치적으로 우파든 좌파든, 나이가 많든 적든 간에 말이다. 견해들은 극히 호의적인 경우에서부터 극히 적대적인 경우에 이르까지 엄청나게 다양하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이 미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안다고, 그렇게 정말로 여긴다.


30년 전, 중국에 대해서도 이는 십중팔구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제 더는 그렇지 않다. 세계의 많은 이들, 아마 대부분은 한 나라 내지 세계 권력인 중국에 대해 가진 자신의 생각을 더 이상 확신하지 못한다. 그것은 정말이지, 불확정적일 뿐만 아니라 첨예하기도 한 논쟁거리다. 중국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중국을 다룰 때 어떤 쟁점들로 논쟁을 벌이는지 짚어보는 게 유용할 듯싶다. 주로 세 가지가 있다.


아마 가장 널리 알려진 첫 번째 쟁점으로는, 중국이 본질적으로 사회주의 국가냐 아니면 자본주의 국가냐 하는 게 있다. 물론 중국은 예나 지금이나 스스로 사회주의 국가임을 천명한다. 공산당이 계속 중국 행정부를 통치하고 있다. 반면 내부적인 경제 운용, 특히나 세계 무역은 실제로 시장 원리들에 바탕해 이뤄지고 있다.


이 쟁점에 대해서는 세계 좌파가 됐든 우파가 됐든 통일된 견해가 전혀 없다. 우파 쪽에서는 시장 기제란 한낱 외피일 뿐, 그 목적인즉슨 전통적인 맑스-레닌-마오주의 이데올로기가 상정한 역사적 과제를 추구하려는 의도를 지속하려는 데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다수 우파들은 중국을 완전한 시장기반 경제로 “이행”중인 나라로 보며, 시장 기제가 아니라 맑스-레닌-마오주의 이데올로기를 외피로 파악한다.


좌파 쪽에서도 양상은 동일하다. 여전히 사회주의적 과제에 바탕한 통치가 중국에선 이뤄지고 있으며 “시장” 기제는 전술적 후퇴거나 외피라고 보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중국의 현 정책들에 대해 냉소적이거나 공공연히 환멸을 드러내는 좌파들도 있다.


견해가 갈리는 다음의 쟁점으로는, 중국이 여전히 남반구 지역의 일원이냐 아니면 이젠 북반구 지역의 일원이 됐느냐 하는 물음이 있다. 30년 전만 해도 여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중국은 1955년 반둥에서 열린 아프리카-아시아 회의(이른바 반둥회의)에 참가했다. 이 당시 중국은 어디서건 남반구 국가들의 지정학적 관점과 이해를 전투적으로 북돋우는 존재로 자신을 앞세웠다. 그러나 오늘날 중국은 “부상중인” 국가군에서는 가장 강력하고 세계 제2위의 경제 규모를 지닌 국가다. 전 세계 언론에선 현존 세계의 권력을 마침내 양분할 나라로 G-2, 즉 미국과 중국을 거론하고 있다. 1960년대 후반 중국에서는 미국과 소비에트연방을 나머지 모든 국가들이 맞서 단결해야 할 “두 초강대국”이라고 했다.


그래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남반구와 북반구 할것없이 중국을 본질적으로 북반구의 일부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중국을 남반구의 목소리를 주도하는 국가로 계속해서 고려하는 이들 또한 남과 북을 막론하고 있다. 그들이 말하길, 중국 인구의 대다수는 여전히 경제적으로 매우 열악하게 살고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 쟁점은, 아마도 가장 논쟁적일 텐데, 중국을 계속해서 반제국주의의 선봉에 선 권력으로 생각하느냐 아니면 그 자체 제국주의적인 권력의 하나로 생각하느냐다. 이 물음은 남반구보다는 북반구에서 상대적으로 쟁점화가 덜 돼 있다. 많은 이들은 중국이 여전히 제국주의의 중심 축인 미국 제국주의를 저지하는 데 계속해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더군다나, 이렇게 주장하는 이들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을 상대로 중국에서 이뤄지는 경제적 지원 방식이, 늘상 협잡이나 마찬가지인 부대조건을 동반하는 미국과 유럽의 원조와는 다르다는 데 주목한다. 그들에 따르면 이러한 중국의 움직임은 남반구 국가들에게 굉장히 절박한 경제적 지렛대를 제공하는 것으로, 사회주의적 협력의 전형적인 사례인 셈이다.


그러나 남반구에 속한 다른 이들은 중국의 원조가 이들 남반구 국가들한테 반드시 안성맞춤이지는 않은 방식으로 핵심 천연자원들에 대한 접근을 보장받는 한 양식이라고 본다. 그리고 상당수 사람들은 중국계 소상인들이 이들 나라에 두드러지는 데 대해 언짢아하면서, 이들의 활동이 해당 지역 소상인들의 입지를 잠식하는 가운데 정착민 식민화의 형태를 띤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금 진행중인 논쟁에 대해 말하자면 안개가 자욱하게 낀 상태로, 이 와중에 그어진 분할선은 불확정적이다. 이런 상태가 아주 오래 가진 않을 것 같다. 한 10년 후면 거의, 20년 후면 확실히 그럴 텐데, 다시 한 번 모두가 중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중국이 좋구 나쁘구를 막론하고) 견해들은 다시금 확고해질 것이다.



이매뉴얼 월러스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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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17 03:11 2010/01/17 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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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앙겔부처 2010/01/18 13: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들의 활동이 해당 지역 소상인들의 입지를 잠식하는 가운데 정착민 식민화의 형태를 띤다고 주장하고 있다.
    -- 이 말에 적극 동감해염

    • 들사람 2010/01/18 20: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월옹으로선 아마 짐작컨대, 얼마 전 타계한 지오반니 아리기의 유작으로, 우리말로도 번역된 <베이징의 아담 스미스>를 염두에 두고 썼나 보다 싶던데용. 저도 이제 갓 읽기 시작했지만, 아리기는 아마도 중국 내지 중화경제권의 부상이, 그저 자본주의 세계경제 내부에서 포스트미국 헤게모니 쟁투의 일환으로 진행중인 것만이라곤 보기 힘든, 즉 역사적 자본주의 체제와는 다른 사회관계로 이행하는 징후적 측면도 있다는 주장을 하고팠던 모양이예요. (서문에 보니, 월러스틴에 대해선 일절 언급이 없더군요. 그래도 빙햄턴대학 브로델센터서 한때 '지적 동지'간였는데, 뭐 그때도 견해상의 긴장이 없진 않았다지만 아예 사이가 틀어졌던 겐지.. 살짝 변죽스런 궁금증이 생기더라는.ㅎ;)

      글쎄여, 아리기의 이런 견해가 꽤나 핀트가 안 맞는 (주로 중국과 일본 쪽) 참고문헌 활용이 부른 분석상의 삑사린지, 좋게 봐도 꿈보다 야무진 해몽인지, 설사 그렇더라도 최소한 이른바 '동아시아경제권 부상'의 복합적 맥락과 양상만큼은 섬세히 들여다보잔 취지로 봐줘야 할진... 끝까지 읽어보구서 판단해얄 것 같네요. 사실 아리기에 앞서, <전지구적 자본주의에 눈뜨기>로 알게 된 아리프 딜릭은 '구미권의 침체-쇠락'에 대비되는 '동아시아의 부상' 가능성에 들뜰 게 아니라, 그런 헤게모니 축의 변동 속에서 지속적이면서도 새롭게 나타나는 계급적 갈등 구도란 어떤 것이겠느냐를 묻는 게 더 중요하리라고 말했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다 읽고서 판단하겠다곤 했지만, 저로선 이런 딜릭의 기본 논지 속에서 아리기의 논의를 비판적으로 헤쳐모여시켜야잖겠나 하는 쪽입니다.


      그나저나, 낼 점심 지나서쯤 진보넷 사무실에 들러 달력을 받을까 하는데,, 여즉 있으까요 여분이?^^:

    • 앙겔부처 2010/01/19 01:14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럼요 그렇지 않아도 빨리 받아가시라고 말하려고 했긔 ㅎ
      아리기는 모르지만.. 암튼 중국 하는 꼬라지가 영...;

  2. 앙겔부처 2010/01/19 15: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거.. 거짓말쟁이 @_@ 왜 안 오세염 ㅋ

  3. 연애편지 2010/03/12 14: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최근에 레디앙에 김정호님의 중국에 관련된 글과 관련해서 어떤분이 윌러스틴과 아리기등의 세계체제론자들이 현대 중국체제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하길래 실제로 그러한지, 그러하다면 어떤점에서 긍정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초면에 실례를 무릅쓰고 댓글을 남깁니다.

    윌옹의 몇몇 저서를 읽고, 평소에 들사람님이 올려주신 윌옹논평을 살펴보았지만... 그런 이야기는 처음이어서. 저로써도 좀 당황스럽네요.

    • 들사람 2010/03/12 19: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뭘요, 사는 게 뭐 늘 초면인데요.ㅋ 김정호님의 글을 읽진 않았는데요, 아마 아리기와 월러스틴을 한묶음으로 소개했나보군요. 사실 세계체제 분석틀을 갖고 역사적 자본주의를 다룬대서 한 목소리를 내는 건 물론 아닌데, 아리기와 월러스틴만 해도 꽤 그렇죠.

      김정호씨로선 아마, 아리기의 유작 <베이징의 아담스미스>가 실은 중국(혹은 중화경제권)의 부상이 가진 의미에 대한 낙관적, 긍정적 해석으로 평가를 받고 있어서 그런 얘길 했을 거예요. 아리기만 거론해야 할 걸, 나머지 세계체제 분석가들까지 싸잡았달 수 있겠네요. 그러니, 당황하실 것까진 없으셔도 될 것 같아요.ㅋ

      다만, 프랑크가 <리오리엔트>에서 제가 보기엔 '통쾌한 오바'라 했던 식으로 끈 떨어진 모습을 보였던 것과 관련해, 세계체제 분석틀이란 게 아마도 분석 규모상 빠지기 쉬운 어떤 난점을 보여주는 거란 생각은 듭니다. (이에 대해선 유재건 부산대 교수가 리오리엔트의 미덕과 자기파괴적 난점들에 대해 쓴 논문이 푸른역사에서 나온 유럽중심주의 비판 관련 책에 실려 있는데, 꽤 도움이 되실 검다.) 일례로, 유석춘 연세대 교수만 해도 세계체제 분석틀을 일정하게 차용해 외려 유교가 동아시아 자본주의 발전에 기독교만큼이나 공헌했다는 자신의 우파적 논지를 강화하는 모습을 보였단 말이죠. 월러스틴 스스로도 자본주의 극복을 기치로 제창했던 세계체제 분석틀이 이런 현상옹호적 용도로 '변주'되는 데 대한 우려를 표한 적이 있는데, 제 생각엔 아리기도 중국의 부상과 관련해, 유석춘까진 아녀도 그와 비슷한 중-일 쪽 연구자들의 논의를 끌어온 바람에 현 중국의 부상에 대해 과도한 낙관에 이르렀던 건 아닌지 의심해보곤 있어요. 한국어판을 읽어볼랬더니 워낙 오류가 많다고도 하고, 원문을 보자니 시간은 없고 해서, 확언까진 못하겠지만요..ㅋ;

      아무튼, 윗글에서 짐작하실 수 있겠지만, 여러 세계체제 분석가 중 한 사람인 월러스틴으로선 아리기 식 낙관을 주장할 여지가 있음을 전혀 이해 못할 바는 아녀도, 수용할 정도까진 아닌 것 같아요. 월러스틴은 아마도, 아리기가 단순한 자본주의적 시장으로의 편입이 아닌 '다른 방식의 시장 형성'의 계기를 열었다고 적극적으로 해석한 중국의 '시장경제화' 자체보다는, 그것이 변증법적으로 만들어내게 될 (아마도 진정으로 사회주의적/반체제적인ㅎ) '정치의 시공간'에 주목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합니다. 다른 시장 형성의 계기라고 보기엔 아무래도 무리란 얘기기도 하겠죠. 카오스-복잡계 이론을 크게 수용한 월러스틴에 따르면, 이런 시공간의 창출이 어떤 양상으로 진행될지는 불확정적인 것으로, 달리 말해 행위자/당사자들이 어떻게 움직일 거냐에 달렸단 얘길 테고요. 이 행위자/당사자는 물론 대한민국이나 대만, 일본 등 이른바 동아시아권역 당사자들의 움직임까지 포괄하는 게 아닐까 싶고.

      뭐, 제가 보기엔 이렇네여.

  4. 연애편지 2010/03/12 20: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답변 감사합니다. 저는 윌러스틴-아리기 이런 라인으로 봐서 잠시 헷갈렸는데 들사람님의 명쾌한 답변에 이해가 되네요. 솔직히 김정호님의 중국 체제 예찬론의 가까운 글을 읽으면서 글쎄다(?)싶었는데 여기에 윌러스틴-아리기등의 세계체제분석까지 나오지 더욱 당황했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중국이 동아시아라는 특수한 체제의 또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고만 생각해서... 체제에 대한 평가는 아직 유보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물론 중국에 대해 지나치게 악마화할 필요도, 맹신할 필요도 없지만, 요새 한국의 언론이라든지, 지식인들, 사람들을 살펴보면 극단화되었다는 생각이 자꾸 드네요..

    • 들사람 2010/03/12 20: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네, 도움이 되셧다니 다행이네요. 김정호씨가 쓴 글은 저도 첨엔 좀 봤는데.. 중국 현지에 있으니 실상을 더 잘 안다고 속단할 수가 없는 게, 엄밀히 말하면 그 분은 아마도 북경대학이라는 구체적 장소에서, 거기 있는 연구자들이 하고 있는 상황판단의 실상을 다른 이보다 더 가까이 볼 수 있었던 걸 테니까요.ㅎ 그에 관한 정보가 중국 현실과 맞아떨어지는가는 전혀 별개의 문제죠 사실. 비판적인 '거리두기'(혹은 다가가기와 떨어져 보기의 끝없는 운동?)라는 게 이렇게 보면 단순히 지리적으로 멀고 가깝단 식으로만 한정할 순 없을 텐데요.

      그만큼 중국 혹은 중화경제권의 부상에 대해서도, 일테면 김정호씨가 본 긍정적인 측면과 이를테면 하비가 주목하는 것처럼 강탈에 의한 축적으로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이 창출되는 측면 중 어느 한 쪽을 들어 보라, 이렇잖냔 말이다, 식으로 갈 게 아니라, 말하자면 이 두 측면을 하나로 묶어볼 동태분석 필요할 것 같은데... 뭐, 그래서 저도 어떤 단정적인 규정보다는 님처럼 유보적인 입장을 갖되, 그래야 하는 측면들론 뭐가 있는지를 얘기하는 게 외려 중국서 진행중인 정세를 파악하는 데 더 도움이 되잖겠나 생각하는 쪽예요. 물론 중국 좀 뜬다고, 레토릭 좀 다르다고 것봐 다르다구, 하는 식으로 줄기를 놓치고 싶진 않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