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entary No. 251, Feb. 15, 2009
경제적 재난의 정치
("The Politics of Economic Disaster")
날이면 날마다 접하는 게, 이 나라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서 경제학자․언론인, 또는 행정부 관료들이 어찌 하면 경제가 되살아날지에 관해 하는 얘기들이다. 이로부터 제시된 처방들이 서로 앞뒤가 안 맞는다는 거야 두 말 할 것도 없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언뜻 환생한 화타 같기도 한 이분들께서는 거의 모두 판타지의 정원에서 살고 있나 싶다. 스스로 내린 처방들이 비교적 단기에 걸쳐 먹힐 거라고, 그분들은 정말로 믿는 것 같다.
사실, 현 세계는 상당한 기간에 걸쳐 지속되고 갈수록 훨씬 더 악화될 공황의 문턱에 이제 막 들어섰을 뿐이다. 정부에게 지금 당장 긴급한 이슈는 경제 살리기가 아니라, 지구상의 어느 정부가 됐든 예외 없이 맞닥뜨리게 될, 점증하는 대중들의 분노를 어떻게 견뎌내느냐 하는 것이다.
지금의 경제 현실에서부터 시작해 보자. 지난 30~10여년 동안 현존 세계 내의 거의 모든 행위자(정부와 기업, 개인)들은 스스로 번 수입을 초과하여, 게다다 빚을 져가며 살아왔다. 현 세계는 아찔하리만치 부풀어오른 소득과 소비로 굴러갔다. 여기저기 낀 거품들은 안 터질 도리가 없다. 이번에 그 중 하나가 터졌(거나, 몇몇 거품이 실제로 터진 상태)다. 거품경제가 더는 지속불가능해졌음이 의식의 표면 위로 떠오르자, 모든 정부와 기업, 개인들은 자기들 수중에 실제로 운용할 돈이 바닥나리라는 데 대해 갑자기 겁을 집어먹기 시작했다.
이런 두려움이 고개를 들 때 사람들은 지출이나 대출을 중단한다. 그리고 지출과 대출이 급격히 줄어들 때 기업들은 생산을 멈추거나 줄인다. 간판을 완전히 내리거나, 적어도 노동자들을 해고할 수도 있다. 이는 악순환을 부르는데, 공장을 폐쇄하거나 노동자를 해고할 경우 그로 인해 실질 수요는 더 오그라들고 소비나 대출은 더더욱 까다로워지기 때문이다. 이를 일러 공황, 그리고 가치잠식(디플레이션)이라고 한다.
아직 돈을 빌어 쓰고 찍어낼 수 있는 지위에 있는 미합중국 행정부로서는 이때, 상당량의 화폐를 신규투입하려 할 것이다. 엄청난 양을, 그것도 현명하게 미국 행정부가 들이붓는다면 이 방법이 통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리 되진 않을 게 거의 확실하다. 설사 통할 만한 양을 들이부은들, 결국 또다른 거품만 만들고 말 뿐인 것도 거의 확실하다. 이렇게 되면 달러 가치는 여타 화폐들에 비해 정말이지 훨씬 더 빠르게 떨어질 공산이 있다. 자본주의 세계경제 최후의 주요 버팀목을 뽑아내면서 말이다.
그 사이, 세계 인구 중 하위 90%에 해당하는 이들에게 하루치 소비에 써야 할 돈은 갈수록 줄어든다(그리고 상위 10%를 차지하는 이들에게, 이는 그닥 좋은 소식이 아니다). 사람들은 불안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지난 달만 해도 그리스, 러시아, 라트비아, 영국, 프랑스, 아이슬란드, 중국, 한국, 과들루프, 리유니온, 마다가스카, 멕시코와 같이 많은 나라들에서 경제적인 곤경에 처한 이들이 거리로 나왔는데, 그 수는 갈수록 늘면서 훨씬 더 많은 경우 언론의 조명조차 받지 못한 상황이다. 사실 이런 움직임은 지금까진 비교적 온건한 편이었건만, 각 정부들은 그마저 못 견뎌 하고 있는 상황이다.
각국 행정부의 주된 관심사가 영토 내부의 불안정을 처리하는 것이라 할 때, 이들이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정말이지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시위대에게 총을 겨누거나, 아니면 그들을 달래거나. 발포는 어느 정도까지만 먹힐 뿐이다. 이러자면 우선, 그런 물리력 행사를 위임받은 이들에게 그렇게 기꺼이 나서도 될 만큼 충분한 보상이 따라붙어야 한다. 그런데 심각한 경제적 하강 국면에 그렇게 하기란, 각국 정권에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이들 정권이 자국 인구를 달래기 시작하는 건 그래서다. 어떻게? 무엇보다도 보호주의를 내세우면서다. 모두가 다른 국가들의 보호주의에 대해 불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바로 그렇게 불평하는 이들이 스스로 보호주의를 실행에 옮기고 있다. 자유시장을 신봉하는 경제학자들은 보호주의가 경제 상황을 총체적으로 악화시킬 것이라고 한다. 확실히 그렇지만, 정치적으로는 아주 부적절한 소리다. ‘지금 당장’ 일자리를 원한다며 사람들이 거리로 나서는 상황에선 더더욱 그렇다.
불안정기에 각국 정부들이 달래기 용도로 써먹는 두 번째 방법으론, 사회민주주의적인 복지 시책들이 있다. 하지만 그러자면 돈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돈은 각종 조세에서 나온다. 자유시장 경제학자들은 한결같이, 경제하강기에 이뤄지는 증세는 그게 어떤 명목이 됐든 전체적인 경제 상황을 한층 더 악화시킨다고 일러준다. 그럴 수 있겠지만, 단기적으로는 이런 충고도 부적절하긴 마찬가지다. 말하자면, 하강기에 조세 수입은 줄게 마련이다. 정부들로선 지출을 늘리는 건 고사하고, 현재의 지출 수준조차 유지할 수가 없다. 각국 정부에선 이에 따라 이런 저런 방식으로 세금을 걷으려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화폐를 증발하거나 말이다.
대중을 달래는 마지막이자 세 번째 방법이 있는데, 인민주의적인 처방전populism을 상당량 발부하는 것이다. 상위 1%와 하위 20% 간 실질소득 격차는 지난 30년에 걸쳐 일국 수준으로나 지구적으로나 엄청나게 벌어져왔다. 이 격차는 이제 좀더 “정상적”이었다는 1970년대 수준으로 되돌아갈 텐데, 1970년 당시 수준이란 지금 봐도 매우 크지만 가당치도 않을 만큼 크지는 않은 수준을 말한다. 미국과 프랑스 정부에서 그렇듯, 금융계 임원들을 상대로 “연봉상한제”에 관한 얘기가 나오는 건 그래서다. 또는 중국 정부가 그렇듯, 부패에 연루된 이들을 기소할 수 있도록 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현 상황은 이를테면 대형 태풍이 지나가게 될 곳에 자리한 것과도 같다. 최악의 태풍이 갑작스레 각국 행정부를 덮쳐올 수 있다. 그랬을 때 정부들로선 지하실로 몸을 피하려 들겠지만, 그래봤자 언 발에 오줌 누는 격이다. 태풍이 지나가고, 어느 정부인가가 그러고도 살아남아 있다면, 손실이 어느 정도인지 조사하러 나설 게다. 그 규모는 매우 광범위한 것으로 밝혀질 것이다. 맞다, 그 정부가 예전 상태를 재건하는 데 나설 수 있다. 하지만 그랬을 때, 재건은 어떻게 할 것이며 그에 따른 혜택은 얼마나 공정하게 나뉠지를 놓고 진정한 논쟁이 시작된다.
이런 잿빛 구도는 얼마나 오래 동안 만연해 있을까? 아무도 모르고 장담할 수도 없지만, 꽤 오랜 세월 동안 그리 되리라는 건 확실하다. 그 와중에 각국 정부에서는 선거를 치르게 될 텐데, 유권자들은 현 행정부 구성원들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을 것이다. 각국 정부들에게 보호주의와 사회민주주의적인 복지시책은 태풍이 지나갈 때 지하실이 보여줬던 정도의 쓸모밖에 없다. 각급 은행들의 준국유화는 지하에 몸을 숨기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우리 인민/민중들이 생각하고 대비해야 하는 건, 그때가 언제가 됐든 은신처에서 나올 때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우리가 근본적으로 던져야 할 물음은, 어떤 식으로 재건에 나설 것이냐다. 이 물음은 진정으로 정치적인 투쟁을 촉발할 것이고, 그 풍경은 익숙치 않은 양상을 띨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이제껏 경험한 레토릭들은 모두 미심쩍은 것으로 여겨지게 될 것이다. 결코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앞으로 이뤄질 재건이 어떤 식이냐에 따라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은 세계를 맞이할 수 있지만, 훨씬 더 나쁜 세계를 맞이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어느 경우든, 그 세계는 현존 세계와는 판이한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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