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2015/08/09 13:46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의 내일?

공산주의 운동의 전면화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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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로|국제코뮤니스트전망 

 

1.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은 무엇이었나?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이란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을 풍미한 PDR과 NDR 등 스탈린주의 이론에 기초한 민주주의 혁명론을 받아들인 기존 운동과 단절하고 보다 철저하게 맑스-레닌주의에 기초한 노동계급 운동을 창출하려 했던 일군의 정치그룹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사회주의노동자신문)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에 대한 엄밀한 구분은 별개로 하더라도, 이 용어 앞에 ’혁명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이유는 사회주의/공산주의 운동의 역사에서 맑스주의 연속성과 혁명 전통을 벗어난 조류가 너무 많아서 이들과 구분하기 위해서이다. 그런 의미에서 조직 규모나 활동 성과와 관계없이 ‘프롤레타리아 계급(혁명의 주체)의 세계혁명(아래로부터의 노동자평의회 국제권력)을 통해 자본주의 착취체제를 폐지(임금노동, 상품생산, 화폐 폐지)하고 공산주의 사회 건설을 지향하는 운동’ 을 혁명적 사회주의/공산주의 운동이라 규정할 수 있겠다. 여기서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 (맑스에게 이 두 개념은 동의어였다)는 당이나 국가 수준에서 실천할 수 있는 조건이나 강령이 아니라, 국가, 상품생산 및 가치법칙의 폐지인, 자본주의 사회 관계를 의식적으로 극복하기 위한 사회운동이다. 그동안 존재했던 한국의 이른바 ‘혁명적 사회주의’ 세력이 이 규정에 얼마만큼 부합하는지는 별도의 토론과 검증이 필요하다.


필자는 발제자(사회주의노동자신문)의 운동 평가와 문제의식에 대체로 동의하면서도, 토론의 폭을 넓히기 위해 한국 사회주의 운동을 세계적인 혁명적 사회주의/공산주의 운동 흐름과 비교하면서 평가해 보았다.


먼저 세계적인 혁명운동의 흐름에 비해 한국의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은 왜 취약할 수밖에 없었는지 알아보겠다. 여기에는 현재의 상황도 포함된다.


첫째, 한국의 노동자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은 한국전쟁 이후 40년 넘는 오랜 기간, 그리고 계급투쟁의 결정적인 시기에 세계적인 공산주의 운동, 혁명전통과의 단절이 있었다. 


현존하는 국제 혁명조직들은 맑스의 ‘공산주의자 동맹’에서 시작하여 10월 혁명의 결과로서 창설된 제 3인터내셔널에 이르기까지의 노동자 운동의 혁명적 사상과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그것은 19세기 말 기회주의에 대항해 투쟁해온 제 2인터내셔널의 좌익분파에서 시작하여, 1914년 제국주의 전쟁(제1차 세계대전)에서 국제주의를 방어했고, 1917년 러시아혁명에서는 프롤레타리아혁명을 수호했으며, 1919년 코민테른 창설에 공헌했고, 1920년대 코민테른 내부의 기회주의 흐름에 대항해 저항하면서 하나의 국제적 흐름을 형성했다. 그 후 코민테른의 타락과 스탈린주의 반혁명에 맞선 투쟁, 자본의 좌파로 자리 잡은 스탈린주의, 트로츠키주의, 마오주의, 김일성주의 등 사회주의 참칭 세력과의 투쟁, 그리고 자본주의 방어역할을 하는 사민주의, 개량주의, 민족주의 세력과의 오랜 투쟁을 해 온 혁명적 전통이다.


반면 한국에서 오랜 기간 혁명전통의 단절은 극단적 민족주의 세력(김일성주의)이 운동의 다수를 장악하는 과정에서 무기력했고, 사상 이론적 취약성과 경험부족에 인해 잦은 내부 분열과 대중운동에 뿌리내리지 못하는 고통을 겪게 하고 있다.


둘째, 사회주의 선전그룹에서 혁명이론-조직노선/체계를 갖춘 혁명조직으로 나아가기 위한 강령 토론-논쟁의 과정이 없었거나 부족했다. 


1930년대 이후 기나긴 반혁명의 암흑기에도 살아남은 국제 혁명운동세력들은 68혁명 이후 분출한 계급투쟁의 물결과 함께 유럽을 중심으로 남미, 북미, 아시아 일부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고 새롭게 부활하게 된다. 그리고 각개 약진하던 이들은 1970년대 초부터 일련의 국제대회를 개최하여 국제그룹을 형성하고, 1977년에는 전 세계의 혁명적 공산주의 그룹에 국제대회를 제안하여 이탈리아에서 제1차 대회를 하게 된다. 국제대회 참가 그룹들은 이미 내부강령을 갖고 있거나 여러 가지 쟁점들에 대한 토론의 결과 국제적인 수준의 강령을 정립하게 된다. 국제대회의 과정에서 10년 넘는 지난한 강령토론과 사상투쟁의 과정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국제적 수준의 행동통일과 혁명적 공산주의 세력의 국제적 재 조직화 가능성, 그리고 세계혁명당 건설의 전망은 나오기 힘들었을 것이다. 최근에 한국에서 쟁점이 되었던 강령토론의 주제들 대부분은 사실은 이미 40년 전 또는 8~90년 전에 깊고 풍부하게 토론되었던 내용이었고, 한국의 강령논의는 안타깝게도 여기서 한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 


민주집중제 원리에 기초한 비합법 전위정당의 건설, 프롤레타리아트 사회주의 혁명, 인민전선 같은 상층연대 방식이 아니라 노동자 대중투쟁에 입각한 전술, 평의회 권력으로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등이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이 내세운 공통의 지반이었다.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사회주의노동자신문)

 

한국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의 큰 성과라 할 수 있는 위와 같은 공통의 지반은 혁명조직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당시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 하더라도 국내외의 여러 혁명세력과 강령토론을 추진했어야 하는데, 시도하지 못했기 때문에 검증받을 수 없었고, 독자적으로라도 완성된 강령으로 나가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개별운동 수준에 머물렀다. 지금도 이와 같은 소규모 그룹이나 분파의 역할은 미래의 ‘당 노선’을 올바르게 하는데 투쟁함으로써 계급투쟁이 복원될 때 본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셋째, 한국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의 가장 큰 취약점은 역사적인 계급투쟁과 혁명운동의 경험 부족이며, 이것을 간접적으로 보완해줄 국제적 교류도 거의 없었기 때문에, 운동이 전반적으로 폐쇄적일 수밖에 없었고, 특정인물이나 정파의 조직 장악이라는 폐해를 낳았다.


혁명정치는 혁명가들이 계급투쟁에서 배운 경험을 일반화하며 계급운동에 투쟁의 목표와 전망을 전달할 때 발전한다. 길게는 100년, 짧게는 40년 넘는 계급투쟁과 혁명 운동의 경험 속에서 운동의 상승과 퇴조를 총체적으로 반영하여 장기적 전망을 갖고 현실 운동에 임하는 것과 불과 5~10년 정도의 제한된 경험을 모든 운동에 인위적으로 적용시키는 것은 본질에서 다르다. 파시즘 아래서도 살아남아 일상적인 선전전과 현장운동을 이어나갔던 이탈리아 공산주의 좌파 혁명가들의 경험, 68년 혁명 이후 다양한 사상 운동적 조류 속에서도 혁명적 흐름을 재 조직화하고 공산주의 운동의 지평을 넓힌 공산주의자들의 경험, 노조를 넘어선 수많은 와일드 캣 파업과 파업위원회, 대중총회에 함께 한 유럽, 북미, 호주 공산주의 투사들의 노동자 민주주의의 경험, 수많은 국제대회와 포럼, 캠프를 통해 얻게 된 토론문화, 연대의 기풍은 공산주의 운동의 소중한 자산들이다. 이런 경험들이 공유되지 못하거나 배척당할 때 운동은 한 국가, 지역에 갇히게 되고 연속성을 갖지 못한다. 


안타깝지만 한국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의 취약점은 지금도 대부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수많은 혁명운동의 경험을 공유하고 세계적인 계급투쟁의 흐름에 함께 하기 위한 공산주의자 국제대회 참가-개최 등의 공동 노력은 아직도 보이지 않고 있고, 사노위를 계기로 잠시 점화되었던 강령토론도 중단된 상태이다

 

2. 1992년 이후 사회주의 운동의 간략한 평가


<국제코뮤니스트전망>은 출범 문서와 대선평가입장을 통해 1992년 이후 사회주의 정치운동을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1992년부터 자의적이거나 타의적이거나 공개영역으로 나온 사회주의 서클들은 선거주의와 의회주의로 경도되면서 합법·개량주의로 나아갔다. 특히 1997년은 양날개론으로 표현되는 민주노총의 건설과 그에 기반을 둔 민주노동당의 건설로 혁명적 사회주의의 비공개영역과 적대적으로 분리되었다. 2002년의 대선은 이러한 관계설정을 마무리하는 과정이었다. 그 당시 <노동자의 힘>과 <사회당>은 선거전술에 집착하여 혁명정당 건설을 통한 혁명주의의 복원으로부터 이탈했다. 혁명적 사회주의 서클과 함께 혁명당을 건설하려는 노력은 무산되었다.


2003년 <사회주의정치연합>은 중도주의와 선을 긋고 혁명적 사회주의 세력의 연대와 단결을 위한 매개의 역할을 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으며 그 노력의 일환으로 2005년 7월 <혁명적 맑스주의자 모임>의 제안이 있었다. 그 제안은 다음의 몇 가지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첫째, 자본주의의 표면적 사멸이라는 역사유물론에 근거하여 비맑스주의의 역사적 오류를 비판·극복해야 한다는 점,


둘째, 자본주의의 객관적 구조와 혁명적 주체의 변증법적 결합을 총체적으로 인식하는 변증법적 유물론에 근거하여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실천을 통한 진정한 계급혁명을 이룩해야 할 역사적 과제를 인식했다는 점,


셋째, 과잉생산이라는 자본주의의 축적위기가 자본의 전략으로 모면될 수 없고 전쟁과 파시즘이라는 야만에의 회귀로 나아가, 결국 인류의 파멸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인식했다는 점,


넷째, 1920년대 초반의 세계 혁명의 실패, 스탈린주의의 등장은 반혁명의 역사적 반동으로 나아갔고, 이러한 역사적 퇴행에 도움을 주었던 사회민주주의, 무정부주의, 민족주의는 자본주의와 부르주아지의 유지·강화를 보완하는 반혁명적 이데올로기로 기능했고, 혁명세력의 복원을 가로막았다는 점,


다섯째, 지금까지의 인터내셔널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진정한 새로운 인터내셔널의 건설을 목표로 한 각각의 혁명적 프롤레타리아 당 건설의 과제가 우리에게 놓여 있으며, 프롤레타리아트 전체의 권력기관인 노동자평의회와 변증법적 결합으로 혁명을 실천해야 한다는 역사적 교훈을 얻었다는 점이다.


그 모임의 제안은 세계혁명을 향한 세계 혁명적 맑스주의(사회주의) 진영의 국제주의 실현을 위한, 세계 코뮤니스트 연대를 위한 것이며, 그러한 흐름 속에서 한국의 혁명적 맑스주의자(사회주의자)들도 함께 하면서, 우리의 혁명적 운동을 복원해내고 고립·분산되어 각개약진하고 고군분투해왔던 세력들이 새로운 각오로 힘차게 연대 전진할 수 있는 새로운 시작을 하자는 취지였다. 2년간에 걸친 진지하고 열띤 토론을 기반으로 이 모임은 <사회주의노동자연합 (이하 ‘사노련’)>을 공개적으로 제안하고 동의한 주체들을 중심으로 2008년 2월 출범하게 된다. 


혁명적 사회주의와 혁명당 건설을 공개적으로, 대중적으로 선언하고 계급투쟁을 통해 실현하겠다는 이 흐름은 새로운 시도로 한국의 공산주의 운동사에서 역사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장기간에 걸친 혁명운동의 새로운 주체 창출이 아닌 운동의 몰락 속에서 발생한 단기적 연합운동이었기에 그 한계는 분명했다. 사노련은 서클연합으로 출범했기 때문에, 결합하지 못한 서클과 혁명주의자, 그리고 중도주의 세력 속의 혁명인자들이 다시 한 번 공동실천을 통해 한 걸음 전진하자는 <사회주의노동자정당 건설 공동실천위원회 (이하 ‘사노위’)> 결성제안은 더욱 실험적인 시도였으며, 1년 반 동안의 공동실천은 결국 강령, 조직, 전술의 통일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하며 종지부를 찍는다.


사노위에서 분화된 세력이 <노동자혁명당추진모임 (이하 ‘노혁추’)>와 <노동해방>으로 각개약진하고 사노련의 잔존그룹은 <혁명적노동자당건설 현장투쟁위원회 (이하 ‘노건투’)>로 각각 실천하게 된 것은 혁명 세력의 분열이 아니라, 오히려 독자적인 실천을 하면서 계급으로부터 검증받는 과정이기 때문에, 바람직한 측면이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2012년 총선 선거전술 문제로, 노혁추에서 좌익공산주의 세력이 분화한 것은, ‘종파적 철수’가 아니라 ’정치적 차이’의 결과였다. 그 차이는 혁명당 건설을 둘러싼 정치활동의 전망에 있었다. 

그리고 2012년 대선은 노동자독자후보에서 비판적 지지까지 늘 반복되는 선거전술의 재탕과 이합집산 속에서 두 명의 노동자 후보, 민주노총의 무능, 저조한 득표,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실패, 사회주의 정치의 실종 등 최악의 선거결과를 초래했고 이는 노동자운동 전체의 쇠락을 가속하는 역할을 했다.


첫째, 변혁모임, 사노위, 노혁추 등은 대선 시기 정세개입(야권연대 반대)을 통해 대중투쟁을 촉진하고 이후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의 기반을 마련한다는 기조 하에 후보전술을 구사했지만, 현실적으로는 사회주의 노동자당 건설 노선의 후퇴와 지신들의 기반인 전투적 노조운동의 위기 상황에서 정세개입과 당 건설 당위의 압박이 작용한 결과 무리한 선거전술을 사용했다. 이는 선거 이후 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라는 퇴보한 계급정당건설 노선으로 나타났다. 또한, 태생적으로 선거주의를 안고 나왔기 때문에 합법과 비합법, 혁명과 개량, 투쟁과 타협 사이의 중도주의 노선에서 계속 퇴보할 가능성이 커졌다. 


둘째, 노건투 등은 역량부족, 후보전술 절차와 선거 강령상의 문제, 그리고 진보신당 참여에 대한 반대를 주장하며 노동자 후보 캠프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들은 아쉽게도 부르주아 선거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의식은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부르주아 선거참여를 전술의 하나로 판단하는 낡은 사고를 보여주었다. 또한, 강령에 입각한 당 건설이라는 원칙과 낮은 차원의 공동전선 형태인 변혁모임 참여 사이에서 정치적으로 후퇴하거나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셋째, 국제코뮤니스트전망은 부르주아 선거와 후보전술 자체를 반대하였다. 즉, 부르주아 선거에 대한 원칙을 강령수준으로 판단하여 “노동계급에는 그들 자신의 방식으로 하는 투쟁만이 계급 간의 교착상태를 깨고 정세의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는 세력을 만들 수 있다. 선거가 아닌 대중의 직접행동으로, 대리인과 우상을 내세우지 말고 투쟁하는 노동자가 주체가 되어, 부르주아 정치를 거부하고 노동자의 방식으로 직접정치를 실현해 나가야 할 것”임을 주장했다.
 
현재 더 이상의 연합운동이나 활동가 중심의 당 건설 흐름은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제대로 된 반성도 없다. 하지만 우리는 혁명주의 세력의 노선 투쟁을 통한 경쟁과 연대·단결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동안 혁명세력이 반혁명적 스탈린주의 세력이나 민족주의 세력, 각종 기회주의 세력과 대적 전선을 공고히 하는 데 주력해 온 성과를 인정하면서도, 독자적인 사상노선으로 논쟁하고 계급으로부터 검증을 통해 신뢰를 획득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러한 노선투쟁의 역사가 이미 유럽과 러시아 등지에서 100년 전부터 있었음을 상기하고 있다. 세계 혁명당 건설을 목표로 노동자 국제주의를 실현하려는 현 단계 한국의 혁명적 맑스주의(사회주의) 세력은 이제 본격적으로 자신들의 맑스주의 사상과 실천의 원칙을 분명하게 내세우고 노선투쟁을 해야 하고, 진정한 의미의 정치 원칙·강령의 통일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공산주의 운동의 역사에서 「공산주의 좌파」의 원칙과 투쟁을 계승· 복원하고, 다른 혁명주의자들과 논쟁하고 토론하며 다시 연대하고 단결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3.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의 내일? 공산주의 운동의 전면화를 위하여


운동이 전반적으로 퇴조하고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 여전히 극소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위와 같은 평가는 우리에게 수많은 과제를 남겨주었다. 낡은 것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운동을 지배하고 있다. 낡은 것뿐 아니라 오히려 운동을 과거로 돌리려는 세력이 늘어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낡은 것과의 단절 속에서 새로운 것을 창출해야 한다.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의 내일은 한국 사회주의/공산주의 운동의 현재를 넘어서는 일이자, 모든 가능성을 최대한 현실로 바꾸는 일이다.
여기서는 한국 공산주의 운동의 현실에서 출발하여 새로운 공산주의 운동과 과제에 대해 몇 가지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한다.


1) 한국 공산주의 운동의 현재


한국의 공산주의 운동의 현재는 다음과 같이 암담하다.


첫째, 한국사회에 수세대에 걸쳐 오랜 기간 뿌리 깊게 자리 잡은 (혁명적) 공산주의에 대한 오해와 반감은 지금 세대가 스스로 극복할 수 없고, 반공주의와 스탈린주의 모두에 경도되지 않은 새로운 세대에 의해서만 극복할 수 있다.


둘째, (혁명적) 공산주의와 적대하는 세력인 민족주의/스탈린주의의 장기적 운동지배는 운동사회 내부모순마저 적대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자본(주의)과 투쟁하면서 이들과의 투쟁도 반드시 병행하여 대중(운동)에서 분리해야 한다.


셋째, 공산주의 운동이 극복하고자 하는 낡은 운동(조합주의, 의회주의)이 내부 변화가 불가능할 정도로 굳어져, 새로운 주체 창출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새로운 운동이 내부에서 생겨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외부에서 내부로 진입하기에도 장벽이 너무 높다.


넷째, 국제주의 의식과 공동행동 경험부족으로 계급운동과 정치운동 전체가 국내 운동에 갇혀 있다. 작업장, 고용형태, 업종, 정파, 지역, 국가에 갇힌 운동은 배타적 노동자 정서와 자본의 계급 분리 정책과 부합하여 공산주의 운동의 미래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것이다. 


2) 공산주의 운동의 가능성


한국에서의 공산주의 운동은 오랜 기간 단절과 늦게 출발한 취약성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가능성이 많다고 볼 수 있다. 그 가능성과 장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공산주의 운동은 자본주의 쇠퇴시기 근본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서 새로운 주체와 운동에 부합하는 가장 현실적인 운동이다.


둘째, 맑스주의 연속성과 혁명적 전통을 계승한 사상적 명료함과 풍부함으로 운동의 최종목표를 밝혀 다양한 계급운동을 정치적으로 모아나갈 수 있는 혁명적 운동이다. 


셋째, 혁명적 공산주의 운동은 현실에 존재하는 국제적인 혁명운동이며, 유사한 경향의 국제조직과 실질적인 연대세력이 다수 존재한다.


넷째, 현재(미래)의 공산주의 운동은 조직운영/토론문화 등에서 위계질서나 권위주의를 제거한 운동이기 때문에 새로운 운동주체들이 접근하기 쉽다.


다섯째, 삶과 운동에 대한 총체적 인식과 당-평의회, 계급의식에 관한 근본적 문제를 제기하여 인간의 사회적 삶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발본적인 운동이다. 


3) 새로운 공산주의 운동이란?


그렇다면 위와 같은 한계와 가능성 속에서 공산주의 운동은 어떠해야 하는가?


첫째, 공산주의 운동은 총체적이어야 한다. 모든 것을 정치사상의 문제로 환원하지 않으며 여성, 소수자, 장애인, 빈민, 반인종주의, 이주 운동 등과의 유기적인 결합을 통해 공산주의 운동을 보다 창조적이고 풍부하게 발전시켜야 한다. 또한, 정치뿐만이 아니라 생산과 소비, 문화와 심리 등 인류의 삶을 규정하는 모든 영역으로 확장하여, 자본주의 가치법칙과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를 넘어설 수 있는 전 인간적 운동이어야 한다.


둘째, 공산주의 운동은 혁명적 계급의식의 집단적이고 역사적인 산물이므로 개별 활동의 연합이 아니라, 집단적 활동, 지속성, 실현 가능성을 가져야 한다. 이것은 공산주의 조직의 생존 기반이자 물질적 힘이다. 혁명 강령과 공산주의 노동자의 집단적 존재여부가 당대의 계급투쟁 수준의 반영이다.

 
셋째, 공산주의 조직은 과거 왜곡된 전위당 노선이나 스탈린주의 공산당들과 같이 일방적 지도체제와 획일적 성원 규정을 갖는 것이 아니라, 정치의식의 균질화에 기반을 둔 자발성, 다양성, 창조성을 담아내는 조직체계를 가져야 한다. 모든 조직 활동은 총회에 책임을 지는 수평적 직접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하며, 내부 소통에서는 이론과 지식, 정보에 대한 정직한 표현과 전달, 그리고 토론에서 상호 모욕금지를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4) 무엇을 할 것인가?


첫째, 쇠퇴하는 자본주의 끝없는 위기상황 속에서 새롭게 분출될 계급투쟁에 능동적이고 장기적으로 대응할 수 있기 위해 공산주의 운동은 대중(운동)과 직접 만나 공개적 활동을 펼쳐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 공산주의를 염원하고 공산주의 운동을 지지하는 동지들과 '코뮤니스트(국제주의) 그룹'을 형성해야 한다. 코뮤니스트 그룹은 지역/현장/활동공간에서 대중과 직접 만나거나 실천하는 기본단위이자 공산주의 운동(조직)의 근간이 될 것이다. 코뮤니스트(국제주의) 그룹은 모든 계급투쟁에 함께하면서 계급투쟁의 가장 혁명적인 부분과 만나, 연대와 공동 활동에 대한 원칙을 세우고, 유연하면서도 원칙적인 코뮤니스트/국제주의자 연대의 전형을 세워나가야 한다. 


둘째, 특정 공산주의 그룹의 확장이나 몇몇 그룹들의 정치적 연합이 혁명당 건설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므로, 공산주의자들은 '코뮤니즘 운동의 확산'이라는 목적에 맞게 열린 자세로 '세계혁명당의 국제적 분파'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먼저 그동안의 당 건설 운동 실패에 대해 평가, 반성하고, 새로운 조건에서의 공산주의자(노동자)당 건설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주체형성과 강령건설에 나서야 한다. 새롭게 건설될 공산주의자(노동자)당은 세계혁명당 건설에 복무하는 혁명조직이어야 한다.


셋째, 국제적인 수준에서 공산주의, 국제주의 세력과의 교류와 연대를 활성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장기적으로 동아시아와 한국에서 공산주의자 포럼과 국제대회를 개최하고, 아시아에서 공동의 정치 입장을 발행하고, 국제주의 원칙에 따른 공동행동을 통해 아시아 지역 수준에서 계급투쟁 개입을 실현해야 한다.


넷째, 전면전인 이데올로기 투쟁과 장기적이고 총체적인 계급의식 발전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새로운 혁명의 주체가 물리적 힘을 갖기 위해서는 주체의 ‘계급의식’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새로운 주체가 노동자(프롤레타리아)계급 고유의 계급의식 - 적대계급과 계급투쟁에서의 ‘전투성(자발적 행동)’ ‘단결성(투쟁의 확장)’ ‘창조성(자기 조직화와 자기 권력 창조)’ - 을 갖게 되는 계기와 과정, 그리고 혁명조직의 역할에 대해 모르거나 준비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주체는 실체 없는 계급이거나 실현 불가능한 주체로 남게 될 것이다. 


다섯째, 계급투쟁의 새로운 전형 창출 노력해야 한다. 저임금, 비정규직, 실업노동자 중심의 노동자평의회 운동과 조직노동자 운동의 반노조주의-반의회주의 전선의 지역적/수평적 결합과 연대의 전형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노동조합 자체를 넘어서려는 아래로부터의 급진적인 투쟁이 필요하다. 노조집행부를 장악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조합을 넘어서는 직접행동을 제안하고, 실제 노동자 행동그룹이 출현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노동자들이 한국이라는 지역에 갇히지 않고 국제주의 관점에서 국제적 계급투쟁의 흐름과 새로운 운동의 경험을 받아들일 수 있는 토대를 조성해야 한다. 세계적인 계급투쟁은 다시 한 번 혁명의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새롭게 분출되는 프롤레타리아트 투쟁이 보여준 용기와 결단, 그리고 깊은 연대의식은 자본주의가 아닌 다른 세계가 가능함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적인 계급투쟁의 경험으로부터 아래로부터의 계급투쟁을 확산시키는 비공인파업, 점령운동 등 새로운 노동자연대의 전형을 창출해야 한다. 


여섯째, 계급의식을 발전시키기 위해 대중총회와 같이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가 완전히 실현되는 정치토론 광장을 통해 노동자 토론문화를 획기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노동자들의 토론능력(문화)과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 실현만이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맞선 계급의 무기가 될 것이다. 광장에서의 토론은 직접행동으로 이어져야 하며, 내용과 형식을 일치시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직접행동들은 수평적 네트워크로 확장되어 새로운 프롤레타리아 연대의 중심에 서야 한다.

 

나오며


우리는 늦게 시작한 만큼 기초를 튼튼히 하면서 나아가고자 한다. 많은 시간과 조직적 개인적 성숙이 필요한 만큼 더 열어놓고 토론하고 경험하고, 투쟁 속에서 우리의 원칙을 세워나가야 한다. 서두를 이유는 없다. 코뮤니스트 운동에서 적어도 우리는 새로운 세대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천천히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갈 길이 먼 것이다!
공산주의는 실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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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09 13:46 2015/08/09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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