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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관대하다

투표권을 지니고 대선을 맞는 것이 벌써 세번째다. 대선 때마다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진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아무리 초연하려고 해도 자연히 관심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지난 두 번의 대선도 그랬지만, 내가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후보도 없고, 그나마 투표하고자 하는 후보는 당선될 가능성이 로또보다 조금 높은 정도라서, 이맘때가 되면 약간 방관자적 입장이 되곤 한다. 그리하여 대선에서 재미란, 누가누가 못났나 폭로전과 막판까지 아슬아슬한 접전이 되는데, 이번 대선에선 이명박의 독주로 인해 그나마의 재미마저 없어졌다.

BBK 사건 무혐의 판결 이후에 40%가 넘는 지지율을 탈환한 이명박인데, 난 이 현상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BBK 문제를 뺀다 하더라도 이명박은 이번 대선 후보 중에 가장 뒤가 구린 이미지의 후보다. 아무리 광신적인 이명박 지지자라 하더라도 만약 이명박의 정치경력에 한 점의 비리도 없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명박을 지지하는 것은 도덕성 때문이 아니다. 바로 현대건설의 성공 신화와 서울 시장 재임 시절 보여줬던 이명박의 추진력이 지지를 이끌어내는 동력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번에야말로 역전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보수 계층이 가지는 정권교체의 절박함도 있겠지만, 이것만으로는 40%가 넘는 지지율을 설명하기 힘들다)

이건 공무원들이 편법으로 야근 수당 타먹는 행위를 맹렬히 비난하는 평소의 자세와 분명 다르다. 한국인은 비리에 굉장히 민감하다. 한국인이 가장 증오심을 보이는 비리는 아마도 병역 비리일테지만, 이를 제외하면 공무원-관료들의 비리에 굉장한 분노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 누구보다 공정해야할 공복으로 공무원들을 보는 시선에 더하여 자신들이 낸 세금으로 호위호식하는 것이 아마도 싫은가 보다.

근데 공무원들의 수장인 대통령이 될 사람이 각종 비리 의혹에 쌓여있어도 상관없다는 걸까? 여기서 이해할 수 없는 관대함이 발동하는 듯 하다. 아마도 관대함은 다음과 같은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1. 도덕성은 중요하지 않다. 큰 일 할 사람은 그런 걸루 발목잡아선 안된다.
2. 털면 먼지안나오는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도덕성 문제는 누굴 뽑아도 마찬가지다.
3. 의혹은 의혹일 뿐 밝혀진 바 없다. 검찰도 BBK 사건은 무혐의라고 하지 않았나.



탈세, 위장전입 등, 만약 그가 아니었으면 엄청나게 지탄받았을만한 일들도 그가 했다고 하면 관대하게 넘어가는 이 분위기... 내심 이명박이 당선되고 대통령직을 수행하게 된다면, 기본적으로 워터게이트에 버금갈만한 게이트 시리즈 하나쯤은 터뜨려주지 않을까 기대되는데(그는 분명 큰 일을 할만한 인물이거든), 그 때 가서도 이런 크세르크세스 모드가 계속되어 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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