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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7/08/30
    흑과 다의 환상 (黑と茶の幻想)(2)
    레니
  2. 2007/08/29
    Trust No One : 인터넷 보안 프로그램(4)
    레니
  3. 2007/08/16
    예비군과 일상 정치(6)
    레니
  4. 2007/08/10
    디워 (D War, 2007)
    레니

흑과 다의 환상 (黑と茶の幻想)

개인적으로 난 온다 리쿠(恩田 陸)의 팬이다. 아마 지금까지 국내에 나온 온다 리쿠의 작품은 거의 다 읽었을 것 같은데, 확실히 이 사람 소설은 색다른 뭔가가 있다고 느껴진다.

온다 리쿠의 작품을 특징 짓는 단어는 "미스테리"와 "초감각"이다. 온다 리쿠의 모든 작품이 미스테리물인 것은 아니지만, 그의 역량이 가장 빛나는 장르가 바로 미스테리물임은 분명하다. 미스테리물에서 그녀의 스토리텔링 기술은 매우 뛰어나다. 정체모를 무언가에 대한 긴장감, 적절히 배치한 복선 등 최소한 클라이막스까지 숨쉴 틈을 주지 않는 그녀의 기술은 책장 넘기는 속도가 점점 가속되며 소설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요인이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그녀의 단점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온다 리쿠의 미스테리는 결말을 잘 짓지 못한다. 터질 듯 팽팽하게 부푼 긴장감을 한 방에 터뜨리는 지나치게 충격적인 결말은 생뚱맞게 보일 때가 많다. "지나침이 모자람만 못하다"는 말처럼, 지나친 결말이 작품의 전체적인 균형을 깨뜨리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다. 이는 <황혼녘 백합의 뼈>에서 가장 아쉬웠던 점이다. 이 소설은 반전에서 반전을 거듭한 결말을 제시하는데, 최후의 반전만 없었으면 최소한 수작으로 남을 수 있었을텐데, 너무 지나친 마지막 반전이 결국 이 소설을 범작으로 만들고 말았다. (물론 개인적인 평가지만)

이런 의미에서 <흑과 다의 환상>은 긴장감과 결말이 절묘하게 균형잡힌 수작이라 할 수 있다. 상/하권으로 나뉘어 제법 무시못할 분량을 자랑하지만, 이 작품을 읽으며 한 순간이라도 지루하게 생각되었던 것이 없었던 것 같다. 네 명의 동창들이 Y섬의 태고적 삼림으로 전설의 벚나무를 보기 위해 투어를 떠나는데, 한 명씩 화자가 되어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이들 사이의 숨겨진 관계들이 드러난다는 꽤 단순한 내용이다. 하지만 시점이 바뀔 때마다 이들의 숨겨진 비밀이 드러나고, 그 비밀들은 의문의 죽음을 당한 또다른 동창을 매개로 하나로 연결된다.

<흑과 다의 환상>은 장이 바뀔 때마다 사람이 하나씩 죽어나가고 보이지 않는 공포에 심장이 조여드는 류의 미스테리는 아니다. 오히려 <밤의 피크닉> 같이 여러 사람이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며 나누는 대화가 중심이라 잔잔한 분위기를 풍긴다. 하지만 서로가 숨겨왔던 비밀이 하나씩 공개되는 과정과 이들의 숨겨진 관계에서 오는 갈등은 결코 무시못할 긴장감을 가져다 준다. 이 작품은 확실히 다른 미스테리물과는 차별되는 매우 고급스러운 작품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작품이 <삼월은 붉은 구렁을>(이하 <삼월>)이라는 온다 리쿠의 전작에 나오는 액자 소설이라는 것이다. 물론 설정이 약간 바뀌긴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삼월>에서 먼저 예고편이 나온 후 발간된 본편 같은 느낌이다. 온다 리쿠는 자신의 작품과 등장 인물들로 이런 장난을 곧잘 친다. <흑과 다의 환상>의 중요한 인물인 의문의 죽음을 당한 동창 카지와라 유리도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에 등장한 인물이다.

에구 초감각까지 더하면 글이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온다 리쿠의 초감각 이야기는 다른 작품 소개 때 써야겠다. 여튼 이 작품, 강추다( -_-)-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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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ust No One : 인터넷 보안 프로그램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11월에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큰 이벤트인만큼 돈 드는 일이 많이 생기는데,  그 중 비중이 큰 신혼여행을 조금이라도 싸게 갔다 오려고 여행사를 통하지 않고 직접 알아보는 중입니다. 그 때문에 요즘 해외 사이트에서 결제할 일이 많이 생겼는데요, 외국의 사이트에서는 일단 파폭에서 결제가 된다는 점이 너무나 편리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국내 사이트에서 결제하는데 필요한 겹겹히 쌓인 방어막이 없으니 살짝 불안해 지는 것도 사실이더군요.

국내 사이트에서 금융 거래를 하기 위해서는 갖춰야 할 것이 많습니다. 일단 보안 프로그램들을 깔고 실행을 시켜야만 금융 거래가 가능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 대부분이죠. 이 보안 프로그램들이라는 것은 거의 (전에 네트워커에서 설명드린 바 있는) ActiveX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윈도우 플랫폼과 IE에서만 동작이 보장되는 ActiveX를 깔아야만 다음 단계를 진행시킬 수가 있기에, 비(非)윈도우 OS나 비IE 브라우저 사용자들은 온라인으로 결제나 인터넷 뱅킹을 하기가 쉽지 않은 환경이지요. (물론 IE탭이나 플러그인 설정을 통해 파폭에서 인터넷 뱅킹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소개된 바가 있습니다만, 비윈도우 플랫폼에선 여전히 ActiveX의 한계를 넘기가 힘듭니다)

그럼 인터넷 뱅킹 등 금융 거래를 하기 위해 필요한 보안 프로그램들은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요? 저의 주거래은행인 H모 은행의 인터넷 뱅킹 사이트에 한 번 접근해 보겠습니다. 인터넷 뱅킹 페이지로 들어가면 암호화 모듈을 확인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현재 필요한 ActiveX가 설치되어 있는지 확인하는 창이 나옵니다. ActiveX가 설치되어 있지 않은 사용자는 이 페이지에서 보안 프로그램 설치를 마치도록 되어 있습니다. 보안 프로그램을 설치하거나 이미 깔려 있는 사용자는 인터넷 뱅킹 로그인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로그인 페이지로 이동했다면 이 시점에선 이미 보안 프로그램이 작동하는 중일 것입니다.


현재 페이지에서 사용하는 ActiveX 컨트롤의 목록을 보면, 꽤 많은 ActiveX가 브라우저에서 실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보안과 연관된 컨트롤은 크게 세 종류로서 각각 I***사와 A***사, S***사에서 제공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서로 다른 영역을 분담하여 담당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HTTP 통신과 인증서 통신 등의 암호화를 담당하고 있으며, 다른 하나는 개인 방화벽을 지원하고 있고, 또 하나는 키보드 해킹을 방지하는 역할을 하고 있죠. 대부분의 보안 솔루션들은 이렇게 각자의 전문화된 영역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은행 등의 사이트는 필요하다 싶은 보안 솔루션 여러 개를 조합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깔아야 할 프로그램의 수가 많을 수밖에 없는 것이죠.

일단 이 프로그램들은 나름 존재의 이유를 갖추고 있습니다. 데이터 통신을 암호화하는 프로그램은 패킷을 중간에서 가로채는 패킷 스나이핑Packet Sniffing에 대비한 프로그램입니다. 패킷 스나이핑이란 네트워크로 보내고 받는 데이터를 중간에서 가로채는 해킹 방법으로, 네트워크로 나가는 중요한 개인 정보 등이 이를 통해 노출될 수 있습니다. 이 데이터를 암호화하여 누군가 가로채더라도 쉽게 내용을 알아볼 수 없도록 하는 것이 데이터 통신 암호화 프로그램이죠.

키보드 보안 프로그램은 키로거Key Logger를 막기 위한 프로그램입니다. 키로거란 키보드로 입력한 내용을 다른 어딘가에 저장하거나 전송하여 다른 사람이 볼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해킹툴입니다. 키보드로 입력하는 아이디, 비밀번호 등의 개인정보를 보호한다는 측면에서 이 프로그램은 꽤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지만, 키로거같은 백도어Backdoor가 깔린 상황이라면 이미 그 컴퓨터는 심각하게 크랙되어 있는 상황이기에, 어떻게 보면 키보드 보안 프로그램 하나만으론 역부족인 단계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각 보안 프로그램의 유용성은 분명 인정할 만한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여러 프로그램이 복잡하게 얽혀 보안 체계를 구축하는 체계는 여러 문제점을 야기합니다. 일단 모든 보안 프로그램을 깔지 않으면 금융 거래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사용자의 선택의 여지를 제한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키보드 보안 프로그램은 사용자가 정상적으로 사용하는 다른 프로그램들의 키입력과 충돌하여 여러가지 귀찮은 문제를 야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키를 눌렀는데 입력이 안된다던지 한 번 누른 키가 여러 번 입력 된다던지 하는 문제는 비교적 빈번하게 발생하는 부작용이죠. 하지만 인터넷 뱅킹 등을 하려면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불편함을 감수하고서라도 반드시 이 프로그램을 깔아야만 합니다.

또한 모든 보안 프로그램이 다양한 플랫폼을 지원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용자의 시스템 환경을 모든 보안 프로그램이 지원하는 플랫폼의 최소공배수로 맞춰야 하는 문제도 있습니다. 어떤 똑똑한 보안 프로그램이 맥과 리눅스를 지원한다고 하더라도 다른 보안 프로그램들이 맞춰주지 못한다면, 인터넷 뱅킹 사이트에 접근하려면 어쩔 수 없이 윈도우 플랫폼에서 사용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그리고 보안 프로그램을 사용한다는 것은 본래의 목적인 인터넷 통신 이외의 부가적인 작업을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 작업이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닐 뿐더러 시스템 리소스도 꽤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시스템 성능을 저하시키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인터넷 뱅킹을 하다 보면 컴퓨터가 느려진다는 느낌을 받는 경우가 많을텐데요, 물론 사이트 자체가 플래시 덩어리라서 느린 것도 있겠지만, 보안 프로그램도 여기에 한 몫 한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겠습니다.

물론 인터넷 금융 거래에서 보안은 이런 프로그램들만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으며, 오히려 이런 프로그램은 보안카드, 공인인증서 등의 온/오프라인의 보안 시스템을 보완해 주는 역할과 함께 사용자에게 "당신은 보호받고 있습니다"라는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는 역할을 한다고 보입니다. 이런 2중 3중의 자물쇠를 채운다 하더라도 스스로가 개인 정보 보호와 보안에 소홀히 하거나 이를 관리하는 주체가 허술하게 한다면 언제든지 파고들 여지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개인 정보 누출 사고를 보면, 결국 개인 정보는 스스로 지켜야 하고 가장 좋은 것은 최소한의 개인 정보만을 제공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입니다.

왠지 엑스파일에 나오는 "Trust No One"이라는 말이 생각나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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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군과 일상 정치

월-화 양 이틀간 예비군 훈련을 갔다 왔더랬다. 이번엔 동원 미지정으로 되어 출퇴근하며 훈련을 받았다.

전에도 한 번 언급한 적이 있지만, 세상에서 가장 불필요하고 무의미한 것을 꼽으라면 분명 "예비군 훈련"이 베스트 3 안에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예비군 훈련에 참가한 사람들"을 추가하고 싶다. 분명 부대 밖에서는 나름 쓸모 있는 사람들일텐데, 어찌된 일인지 군복만 입혀 놓으면 귀차니즘과 이기주의의 화신으로 변모한다. 훈련 중에 하지 말라고 하는 일만 골라서 하고, 여기저기 엎어져 자다가 현역 군인인 교관이 깨우면 성질을 내고, 뭘 시켜도 무기력하고 흐느적 거리면서 밥먹을 때나 집에 갈 때만 되면 동작이 날렵해진다. (물론 나도 이런 사람들 중에 하나였지만)

이렇게 게으른 사람을 양산하는 데에는 예비군의 특수한 권력 관계에 원인이 있다. 예비군은 기본적으로 군인 신분이 아니기 때문에, 군대의 엄격한 계급 관계와 규율의 통제를 받지 않는다. 또한 계급 관계를 따진다 하더라도 대부분 병장 제대를 한 사람들이라 교관의 역할을 수행하는 일반 병사보다 상위 계급에 위치한다. 따라서 예비군에게 가할 수 있는 최대한의 처벌이란 고작 집에 돌려보내는 강제퇴소인데, 뒷말이 나올까봐 두려워서인지 강제퇴소조차 잘 시키지 않는다. 그리하여 그나마 예비군에게 말발이 먹히는 사람은 강제 퇴소 권한이 있는 부대 장교와 동대장 뿐이고, 대부분의 시간에 통제를 담당하는 일반 병사들은 간청하다시피 하며 겨우겨우 교육을 끌고가게 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예비군 훈련을 가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 지 참 애매하기 짝이 없다. 물론 거시적인 시각으로 본다면 군사 훈련과 안보교육을 일방적으로 시키는 예비군 훈련은 철폐해야 마땅할 대상이다. 강제적으로 총을 들게 하고 사람을 죽이는 기술을 가르치기 때문에 불복종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옳다. 만약 훈련 불참시 벌금이 부담되어 예비군 훈련에 참가하더라도, 훈련을 사보타지 하고 사격은 철저히 거부하며 통제에 따르지 않는 것이 올바른 실천이겠다.

하지만 훈련을 사보타지 한다거나 통제에 따르지 않는 것은 예비군 누구나 하는 행동이다. 다만 대부분의 이들은 어떤 정치적인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귀찮기 때문이고 결정적으로 반드시 명령에 따라야 할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신병훈련소에서 이들은 교관의 고함소리에 움찔하며 순한 양처럼 훈련을 받았을 테지만, 예비군은 권력 관계에 있어 교관보다 우위에 있기 때문에 당당하게 훈련을 사보타지 할 수 있다.

게다가 예비군이 훈련을 태만하게 받음으로써 결국 현역 병사로 복무하고 있는 교관들에게 피해가 돌아간다. 현역병은 장교과 예비군 사이의 묘한 권력관계 속에서 공통적으로 열위에 있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예비군의 태만으로 인해 현역병들이 장교들에게 질책을 받게 되는 광경을 종종 보게 되는데, 이럴 때엔 이들이 그렇게 불쌍해 보일 수가 없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예비군들이 현역병들이 책잡히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게을리 해 줬으면 하는 마음이 들 때가 많다. 문제는 그렇다고 해서 훈련을 열심히 받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건 군대라는 특수한 권력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애매함이지만, 사회에서도 정치적인 올바름을 명확하게 인지함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행동에 나서야 할 때 어떻게 해야 할 지 애매한 경우가 많이 발생하는 것 같다. 정치적인 아젠다를 외치는 것과 구체적인 행동을 요구받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가는 분명 다른 차원의 문제다. 작년에 지음이 예비군 훈련에 참가하여 사격을 거부했다는 글을 읽은 적 있는데, 정치와 일상을 합치시키는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지 새삼 깨닫게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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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워 (D War, 2007)

솔직히 <디워> 관련 뉴스가 릴리즈 될 때만 해도 이 영화가 이렇게까지 선전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이미 <용가리>를 제작할 때도 신지식인이니 뭐니 하며 떠받들다가, 영화의 대실패 이후 사기꾼 취급을 당하던 심형래 감독이기에, <디워> 역시 개봉 시기가 2006년에서 계속 연기될 때마다 전작의 케이스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디워>는 개봉했고 예상과 달리 여름 극장가의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다.

흥행 면에서 볼 때는 <디워>가 <괴물>의 기록을 깨네마네 하는 형국이지만, <디워>는 <괴물>과 본질적으로 다른 영화다. 물론 특수효과에 엄청난 돈을 쏟아부으며(총제작비 <괴물> 약 100억원, <디워> 최대 700억원 - <디워>의 제작비는 아직 논란의 대상이 다) 한국산(産) 블록버스터를 표방했다는 점, 그리고 영화 그 자체와는 무관하게 논쟁을 생산하는 영화라는 점에서 두 영화가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괴물>은 (봉감독의 말에 따라) 순수오락영화로 볼 수도 있지만 (평론가들의 말에 따라) 사회풍자영화로 읽을 수도 있는 반면, <디워>는 오락영화에 애국주의가 결합된 매우 감정적인 영화라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이미 인터넷에서는 격렬한 찬반논쟁이 벌어지고 있었지만, 어제 방송된 "100분 토론"에 의해 이 논쟁은 한층 과열됐 다. <디워>는 솔직히 신선한 논쟁꺼리를 제공하는 영화는 아니지만, "애국주의 마케팅"이라는 종교논쟁적인 논점으로 인해 논쟁이 격화되고 있는 것 같다. 뭐 여기선 "애국주의 마케팅"은 일단 스킵하고 영화 자체에 대한 단상만을 정리해 보자.

1. <디워>를 재미있게 본 사람이든 재미없게 본 사람이든,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웬만하면 수긍할 수 있는 사실이 두 개 있다. "특수효과 지대로 썼다"와 "스토리 디게 엉성하다"라는 점이다.
  일단 특수효과부터 얘기하면, 개인적으로는 <디워>의 특수효과는 대단히 잘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특수효과, 그 중에서도 CG는 3D모델링을 얼마나 잘 했느냐가 승부의 관건이 아니다. 아무리 3D모델링을 잘 해서 사람과 똑같이 생긴 캐릭터를 만든다 해도, 실사와 CG가 잘 융합되지 않으면(흔히 말하는 "CG가 뜨면") 특수효과빨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괴물>의 특수효과가 높은 평가를 받았던 것은 동적인 괴물의 움직임이 한강과 원효대교와 잘 맞물려 돌아갔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디워>의 CG장면에서의 카메라워크 또한 훌륭하다. 조선시대 장면에서 "부라퀴" 군단이 마을을 공격하는 장면에서 "부라퀴" 병사들 사이로 지나가는 카메라워크는 CG이기 때문에 가능한 장면이고, CG의 힘을 효과적으로 사용한 예라 할 수 있다. 또한 아파치 헬기의 체인건 사격에 나즈굴 비슷하게 생긴 새에 총알이 박히는 모습을 세밀하게 표현한 것 등, 디테일도 떨어지지 않는다. 이런 점을 종합할 때 <디워>의 CG는 높게 평가받을만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2. 그리고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한 것이 바로 스토리다. <디워>는 단지 시나리오가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 내러티브 그 자체가 엉성하기 짝이 없는 것이 문제다. 심형래 감독에게 엄청난 반전이나 미려한 미장센을 바라는 게 아니다. 단지 자연스럽게 영화에 몰입할 수 있도록만 해 준다면 만족스러울텐데, 스토리 전개의 호흡 조절(초반은 너무 느리고 후반은 너무 빠르다), 뜬금없는 장면전환(부라퀴의 출현으로 차가 꽉막힌 LA에서 순식간에 교외로 탈출, 지구가 아닌 듯한 마지막 장면), 하도 어색해서 민망할 정도인 배우들의 연기(특히 많이 나오는 얘기지만 조선시대 배우들의 연기), 동서양이 짬뽕된 어이없는 설정(조선 병사들과 오크 군단의 대결이라-_-)  등 <디워>는 도저히 몰입을 할래야 할 수 없는 영화다. 솔직히 말하면, 이 영화가 이렇게 흥행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영화 자체의 평론은 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3. 애국주의 외에 <디워>의 흥행을 도와주는 요소가 또 있는데, 바로 심형래 감독의 외길 인생 스토리다. 일본애들이 좋아하는 근성(곤조)을 한국인들도 좋아라 하는 것 같은데(김성모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이것이 황우석 사건과 마찬가지로 열성적인 지지자를 만들어 낸 것 같다. (심형래 감독과 황우석 박사의 사례는 매우 유사한 점이 많고 연구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디워>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기 전에 나오는 심형래 감독의 인생 스토리는, 비충무로 개그맨 출신인 심형래 감독이 영화판에서 느낀 설움의 토로이고, 영웅대접을 받다가 사기꾼으로 전락했던 과거에 대한 서운함이면서, 이젠 정말 제대로 된 영화를 만들었다는 자신감의 표출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심형래 감독의 이런 인생역정이 꽤 매력적인 스토리이긴 하지만, 아직 그런 영상을 자신있게 보여주기엔 영화 감독으로서 배워야 할 것이 너무 많다고 생각한다. 현존하는 영화 감독 중 누구보다 대중과 가까이 있었던 심형래 감독이기에 그런 식의 접근이 가능하리라 생각은 되지만, <우뢰매> 성인판 같은 <디워>의 완성도로 봐서 그 영상은 어쨌든 마케팅 수단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디워>와 연관된 애국주의와 논란은 기회가 되면 포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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