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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요 며칠 플랜트 노조 따라다니느라고 바빴다.  울산에도 내려가 결합을 해야지… 심장은 터질 듯한데 투쟁의 중심에 있지 못하고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집회에 결합하여 쪽수채워주는 것이 전부다. 그거라도 해야지…

 

요새 읽은 책들

 

바만 아자드 / 영웅적 투쟁과 쓰라린 패배
장시복 / 세계화 시대 초국적 기업의 실태
프리드만 /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
경제저격수
그 외에도 더 있었을 텐데 제목도 생각이 안나는군

 

많이 읽기보다는 읽고 꼭 정리하는 것이 중요할 것같아 독후감을 쓰기로 하고서도 제목도 제대로 기억을 못하고 있으니 하물며 내용이야…

 

ML주의자라면 바만 아자드의 글은 반드시 읽어야 한다.
10월혁명이 성공한 이후 전시공산주의와 NEP 그리고 스탈린에 의해 진행된 급속한 공업화 모델,  후루시쵸프의 잘못된 스탈린 비판과 급속한 소비성장 모델의 문제, 그리고 발달한 사회주의 모델과 안드로포프, 뒤를 이은 고르바쵸프등의 반동에 따른 사회주의의 포기에 대해 절절하게 공감이 가게 쓴 역작이다.

무엇이 문제엿든가?  경제법칙과 화폐와 시장법칙은 하루아침에 소멸되지 않는다는 것, 낮은 단계의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필요에 따른 분배가 아니라 능력과 일한 양에 따른 분배가 경시되어서는 안된다는 것, 그리고 노동대중의 자발성과 하부단위의 자율성, 나아가 당과 국가의 분리 즉 당으로서의 기능과 국가의 기능의 분리가 제대로 안되어 발생한 여러 문제들을 단지 스탈린 개인의 악행과 관료주의로 돌리는 것은 구체적인 역사적 조건에서 국체적인 권력과 정책을 평가해야 된다는 점에서 시초부터 잘못되었다는 점을 얘기하고 있다.

전위는 끝까지 행정권력의 비판자로서의 역할과 대중의 조직 및 교육의 역할을 맡아야지 행정의 역할을 맡으면서 권한의 집중을 추구함으로써 비판자 없는 무소불위의 권력으로서 그에 기생하는 관료층을 만들 수 밖에 없었다.

새로이 시작되는 혁명이 처한 위치는 소련과 다를 것이다. 온갖 부르주아적인 제도와 유물이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 가운데서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것은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다.  훈고파나 청산파 모두가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읽은 지 오래되서 감동만 남아있고 내용이 별로 생각이 안나는 군. 나중에 다시 정독을 해봐야 겠다.

 

프리드만에 대하여는, 초국적 자본의 축적에 순응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통제가 아니라 개방을 함으로써 생산자본만이 아니라 투기자본까지 몰려들어와 주식시장 등 경제가 투명해지고 그에 따라 합리적으로 자본이 발전한다는 논리를 편다.  그대로라면 맞는 말인데 그 부작용에 대하여는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다만 중요한 것은 구 사회주의권조차도 세계체제에 순응하기 위하여 개방을 한다는 것이고 개방을 한 이상 개방의 논리에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점과, 과연 세계화의 극복의 대안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경제저격수는 제국주의 특히 미제가 제3세계의 자원등을 약탈하기 위해 먼저 경제적인 술책(저격수)가을 벌리고 안되면 자칼이라는 암살 등의 방법을 사용하고 안되면 군사력을 동원해서라도 자주적인 정부를 뒤집어업고 종속적인 정부를 세운다는 점을 잘 묘사하고 있다.

이때에 제국주의의 의도와 관련해서, 그 이익의 관점은 자원,  군사적 요충, 노동력의 수탈, 상품시장, 과잉자본의 해소처로서의 역할을 강요하는 바, 그 여건에 따라 반제의 극복방법이 달라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자주적인 권력이 자원의 수탈과 종속적인 경제, 빈곤과 저개발의 재생산의 악순환을 끊는 방법은 단절과 자주적인 공업화의 방안과 ALBA와 같은 대안이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한국에 와있는 제국주의 자본의 이해관계는 어떠한가? 군사적인 요충지로 활용하고 무기시장으로서의 역할을 강요하는 점을 제외한다면, 한국은 남미와 많은 점에서 다르다. 초국적 자본도 성장하고 자본수출까지 하고 있으며 상품시장과 값싼 노동력의 착취를 위해서 해외로 진출하고 있다.  자주적인 정부가 이러한 초국적 자본과 동거할 수 있을 것인가는 그들 나라의 입장에서 살펴 볼 일이다. 어찌됏건 한국에서는 국제투기자본의 극복과 과도한 수출의존의 극복이 경제적인 측면에서 중요하다.

FTA의 영향은 어떻게 평가하고 대안은 무엇인가? 우리는 러다이트 운동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 볼 일이다.  북유럽의 사민주의 정권이 신자유주의 정책을 취하는 것은 종국적으로 자본의 승리를 말해주는 것인데, 노동의 승리란 단지 생산수단의 사회화나 국유화만으로 혹은 복지정책만으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즉 우리는 생산관계만을 고찰하고 있는데 생산력이란 사실은 구체적인 상품을 생산하는 생산력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삼성의 반도체나 현대의 자동차 공장을 국유화한다고 하여 문제가 해결될 것인가?  오늘날 사회화나 사회주의의 대안을 얘기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생산할 것인지 어떻게 판매나 교환을 할 것인지에 대하여 침묵하고 있다.

 

한마디로 경제를 전인민의 생산력을 놓고 볼 때에 시장을 위한 생산이 아니라 인민의 필요를 위한 생산을 추구한다고 할 때, 과연 삐삐가 핸드폰이 되고 핸드폰이 DMD가 된다고 했을 때, 그러한 유의 생산력의 성장이 진정 인민에게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이냐? 바꿔 말하여 DMD가 없으면 인민이 불행한가의 문제이다.

 

인간은 무엇을 위해 생산과 노동을 하는가?  참다운 인민의 복지와 행복은 무엇인가?  세계경제나 한국경제를 보았을 때, 과잉자본은 투기를 하고 불로소득의 몫을 키우고 결국은 보다 세련된 소비수단과 건축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국민소득이 만달러이건 4만달러이건 그들 대중의 생활수준과 양식은 비슷하다.  안락한 주거와 편리한 가전제품과, 사치스럽게 치장하는 것과 비싼 오락과 여가를 상품으로 구입하는 것외에는 없는 듯하다.

 

200달러도 안되는 베트남에서도 무상의료를 실현하고 있다면 무상교육과 의료 보육의 문제는 생산력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삶의 가치관에 관련된 문제인데 답은 무엇일까?

 

이외에도 일자리는 어떻게 창출되는 것이냐? 생산력의 실제란 무엇이냐? 세계체제속에서의 바람직한 일국경제는 무엇이냐? 비교가격론의 온당한 평가는 FTA와 관련하여 어떠한 것이냐? FTA의 극복방안 혹은 세계화의 제대로 된 극복방안은 무엇이냐? 아무래도 자본론과 정치경제학비판을 다시 읽어봐야 할 듯하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고 어떻게 가야하는 지에 대해 이제 즉자적인 운동을 극복하고 대자적인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길은 결코 훈고파나 청산파가 제시할 성질은 아닌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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