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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기분 좋고 감격스러웠던 투쟁!

7.10 평택 투쟁 참가기

투쟁에 참가하는 많은 사람들의 참여하는 동기와 소감은 각각 다르겠지만, 나로서는 참으로 감격스러운 투쟁이었다.

 

투쟁의 배경은 이렇다.
해방후 평택에 미군이 주둔하면서 자신들의 삶의 터전을 빼았긴 대추리의 주민들이 근처에 있던 갯벌을 개간하여 옥토로 만든지 60년! 이제 그 땅마저 빼앗으려는 시도에 저항하고 있는 것이 바로 미군기지 확장반대 투쟁이다.

 

과연 이 투쟁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이 문제를 일개 지역주민의 문제로 보고 적절한 배상을 촉구하는 투쟁이 된다면, 그것은 우리가 흔히 보아온 철거민들처럼 지역주민의 생존권투쟁에 다름 아니게 된다.

그러나 이 투쟁이 우리 역사에 중대한 의미를 갖는 것은 바로 주한미군의 재배치계획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첫째, 평택 이북의 미군기지를 평택으로 통합한다는 것은, 먼저 전쟁 발발시 북의 장사정포의 사정거리에서 벗어난다는 의미이고, 보복이나 반격에 의한 공포의 균형 속에서 억제되던 전쟁을, 선제공격을 하고서도 보복을 두려워 않게 되는 상태, 즉 그만큼 전쟁 가능성을 높이는 조치라는 점이다.

 

둘째, 이 시기에 미군이 전략적 유연성을 운운하며 신속기동군 전략에 따라 전 세계적인 미군재배치 계획의 일환으로 이 계획이 추진되고 있다는 점이다.

 

1990년에 냉전의 시대가 끝났음에도 전 세계에 미군기지가 무수히 늘어나고 있고, 미국이 군비를 확장하고 있는 이유는 실질적인 적국이나 적대세력과의 대치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원과 시장과 수탈을 보장하기 위한 군사적 뒷받침을 위해서 바로 유일 패권적 군사적 제국주의를 추구한다는 점에 있다. 이러한 군사적 제국주의를 추구하기 위해 만들어 낸 가상의 적이 중국이고 미국은 현재 전 세계적으로 중국을 포위하는 전략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나라들 중에 미군기지가 없는 나라가 어디에 있는가? 뿐 아니라 아마도 대만해협에 매장되어 있다는 석유자원도 한 몫을 했을 터이지만, 중국과 대만의 분쟁시 군사적 개입을 위해서 한반도의 미군을 동원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것이다.

 

남한의 작전통제권을 가지고 있는 미군이 미군만의 결정으로 대만해협의 분쟁에 개입하게 될 때, 남한 역시 곧바로 전쟁에 끌려가지 않을 수 없다.

즉 주한 미군 재배치 계획은 북에 대한 전쟁도발과 동북아 전장에 대한 개입을 위해서 만들어 진 것이다. 한반도 뿐만 아니라 동북아 전체의 평화를 위협하는 이러한 미제국주의의 전략을 파탄시키는 것은 실로 거대한 의의가 있다.

 

2차대전 후로 남미를 비롯하여 수많은 진보적인 정권과 진보적인 세력들을 짓밟아 온 세력이 누구인가? 바로 미제국주의이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북에서 ‘미국은 우리민족의 철천지 원수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미국은 우리 민족의 철천지 원수가 아니고 ‘전세계 인민의, 전세계 진보적인 세력의 철천지 원수’라고 표현해야 옳다. 이 차이 즉 우리 민족이 아니라 전세계 인민의 원수라는 것을 철저히 인식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릇된 실천에 빠지게 된다.

 

2차대전후로 사실 반제 반미제국주의 투쟁은 활발하지 못했고 물론 거기에는 여러 까닭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라도 미제국주의를 반대하고, 그들의 유일 패권적 군사적 제국주의 전략을 파탄시키는 것은 전세계 진보세력의 엄중한 과제임이 명백하다.

 

반공 지랄의 60년의 세월을 넘어 반제의 투쟁의 싹을 틔우고 키워나가는 것은 자본의 착취의 사슬을 끊는 것만큼이나 참으로 소중한 과제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므로 평택의 이 투쟁은 결코 일개 지역주민의 생존권 투쟁이나, 혹은 반북책동의 저지라는 차원이 아니라, 이 시기 반제투쟁의 중대한 고리라는 점을 자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겠다.

 

광주항쟁때에도 감옥에 있는라 참여하지 못했던 것을 내 인생의 큰 불행으로 생각하고 있는 나로서는, 이런 역사적인 투쟁이 진행되고 있고, 나 또한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지 모르겠다.

 

문정현 신부님의 노력으로 기아 화성동지들이 매일 200명씩 교육을 받아 왔다는 것, 노동자들도 단사나 조합주의적인 전망이 아니라, 전체 민중의 대의에 공감하고 결합했다는 점 또한 감격스러운 일이었다.

 

뿐 아니라 집회에는 감상적인 민족주의와 통일만 외치던 사람들도 있었고, ‘노동자의 힘’이나 ‘사회진보연대’, ‘이윤보다 인간’ 등 계급적 좌파들도 참여하였고, 전국에서 몰려온 노동조합 동지들만이 아니라 전농과 전노련 등 수많은 농민과 노점상과 도시빈민들까지도 자신들의 일로 받아들이고 참여하고 있었다.

파병반대 초기집회 이후 이렇듯 다양한 세력이 한반도의 한 시골구석에 모여 미제국주의를 반대하는 투쟁에 동참했다는 것도 감격스러운 일이었다.

 

그보다 더 감격스러웠던 점은, 평화적 기조와 같은 똥밟는 소리가 아니라, 역사가 대중의 연대와 단결과 투쟁으로만 전진된다는 것을 굳게 자각하고, 타격투쟁을 벌였다는 점이었다.

이 싸움에서 우리가 철조망을 몇미터 걷어낸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몇 사람이 싸우다 다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근래에 보기 드물게 평화가 아니라 투쟁을 기조로 삼았다는 점에서 나는 우리 역사의 희망을 보았다.

 

전번에 내가 쓴 울산 플랜트 투쟁 참가기를 본 사람들은 기억하겠지만, 순박한 무지렁이 대중들이 두달 석달씩 생계의 한계를 무릅쓰고 투쟁을 키워왔음에도 불구하고, 투항파 기회주의자들이 그 투쟁을 방해하고 팔아먹은 사실을 목도한 것이 불과 한달 전이라면, 우리는 마땅히 오늘이 있기까지 수년간 이 투쟁의 싹을 키우고 준비한 허신적인 동지들에게 이 공을 돌려야 한다.

 

우리들의 영원한 투쟁을 위하여! 건배!!!
이 투쟁을 위하여 헌신해온 동지들을 위하여,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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