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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달
-울산플랜트노조투쟁 참관기-
지난 5월13일이었던가…, 울산플랜트노조가 처음으로 SK앞에서 상경투쟁을 하였다. 그동안 화장실을 지어달라는 등 21세기 선진한국에서 참으로 기가막힌 요구조건을 내걸고 수십일을 싸워도 오히려 짓밟히기만 했던 그들의 투쟁이기에 이 투쟁에 연대한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었다.
이 투쟁의 의미는 일개 노조의 투쟁이 아니라 독점자본과 정부가 한패가 되고 비정규투쟁을 중심으로 삼는 노동이 한패가 되어 전선을 심화시키고 있었기에, 하이닉스 매그나칩스투쟁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투쟁이었다. (기대됐던 덤프는 내분으로 투쟁을 종료했었다.)
이 투쟁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종료할 것인가가 향후 비정규전선에 끼칠 영향은 실로 막대한 바 있었기에 그 중요성을 올바로 평가하고 제대로 키워나갈 책무가 있었던 것이었다.
여하간 5.13. 약 150명에 달하는 대오는 초라하기 그지 없었다. 상경단 4-50명과 다함께 30여명 기타로 이루어진 대오는 전 노동자의 분노와 연대를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초라했던 것이다.
물론 그들이 울산에서 싸울 때에도 연대는 제도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고립된 채로 2달여를 싸워온 바 있다. 투쟁에 대한 연대가 운동의 기본이라면 이것이 오늘 이땅의 투쟁의 현주소일지 모른다.
5.23. 대학로 집회후 삼보일배를 하려던 상경노동자 전원이 연행되는 만행이 일어났다. 그날 밤 경찰청 앞에서 처음으로 자발적인 연대가 이루어졌다. 소식을 듣고 분노한 동지들이 몰려들었다. 족히 6-700명은 되지 않았을까? 덤프동지들이 마련한 주먹밥과 담요 깔판도 흐믓했고 각 연맹 동지들도 많이 결합하였다.
다음날인 5.24.밤 SK옆에서 열린 연대행사에는 1,500 여명의 동지들이 모였다. 그곳에서 유기수 동지를 보았다. 그 전주에 울산에서 고공농성이 진압되던 것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던 유동지. 누군가에게 찍혀서 인터넷에 올라온 유동지의 사진을 보면서 곱디 고운 노동운동가의 심상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전날 잡혀 갔다가 오후 5시에 풀려 나왔다는 그는 세수도 안한 채 며칠째 집에 못간 꾀죄죄한 옷차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쉰 목소리로 집회를 조직하려고 집회장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집호장에서 풀려나온 나이 먹은 노동자들과 대화하면서 무엇이 그들을 그토록 강인한 투쟁으로 이끌었는가를 알아내려고 애를 썼다.
그것은 결코 그깟 더러운 처우개선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땅의 주체로서 한 인간으로서 당당하게 살고 싶다는 것이고, 그들은 투쟁속에서 자신들의 존엄성과 해방을 만끽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억하라 우리의 요구는 한갖 돈 몇푼 더 받자는 소리도 아니요, 처우 좀 개선해 달라고 니들 좆같은 놈들한테 매달려 사정하는게 아니다.
울산에서 싸웠으면 잡혀가지도 않했을 텐데 괜히 서울까지 와서 연행되었다는 푸념도 했지만 전술적으로 보면 삼보일배하자는 그런 평화적인 투쟁까지도 집압하는 경찰과 노무현에 대해 여론이 분노하고 우리 편이 되었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볼 때 잘 된 일이다.
다음날 퇴근하려는데 유동지의 전화가 왔다. 광화문에 왔다가 일이 끝났는데 저녁이나 같이 먹자는 얘기다. 이보다 큰 영광이 또 있으랴…
여전히 엊그제 본 옷차림 그대로다. 아마 오늘은 일정을 끝내고 집에 들어가려는 것이려니 하고 물었더니, 확인해야 될 일이 많아 사무실에 가야만 한단다.
저녁을 먹으면서 유동지 하는 말이 ‘요새는 눈물나는 일이 너무 많아요.’ 잡혀간 노동자 중에 중국교포가 있는데 가족들도 모두 한국에 와 있고 자신만 추방될 운명이란다. 플랜트 노조에 왜 가입하고 왜 상경하였느냐고 묻는 유동지의 질문에 그 교포동지는 ‘떳떳하고 싶었단다’. 무었이 무슨 사정이 마음 착한 유동지의 마음을 아프게 했는지는 다 물어보지 못했다.
다 다음날 5.27. 플랜트 동지들에게 아무런 힘도 보태지 못한 것이 너무나 짐이 되어 작심하고 울산에서 열리는 노동자대회에 참석하기로 했다. 처음에 부탁했던 공공연맹의 버스는 만원이라고 전날늦게 연락이 와서 부랴부랴 다른 동지들을 수배해서 승용차로 울산으로 향했다.
사실 이날 싸움의 의미는 실로 중요했다. 이미 80여일을 끈 투쟁. 이날이 클라이맥스가 될 터이다.
가면서 핸드폰을 통해서 전달되어 오는 울산의 상황은 심각했다. 집회의 기조를 총연맹이 투쟁이 아닌 평화로 잡자고 우겨서 관철시켰다는 얘기와, 그럼에도 텍을 준비하고 있는 것을 안 강승규가 오후 2시에 교섭장을 쫒아가서 개지랄을 했다는 소식과 울산에 도착했을 때, 합의가 되었고 승리로 마감되었다고 사기치는 것을 보아야 했을 때, 강승규 이수호 이들은 이미 노동자 계급과 투쟁의 배반자였다.
사회적 합의로 붙어먹기 위해서 행여나 투쟁이 커질까봐 온갖 지랄을 하면서, 투쟁을 팔아먹고 사기치는 이들을 뭐라고 불러야 될까? 청산주의자? 투항주의자? 기회주의자? 아니 딱하나 그들에게 어울리는 것은 배신자들이라는 것뿐이다.
울산에 도착하여 건설연맹의 간부들과 울산본부의 간부들 그리고 현자 집행부들의 얘기를 종합하면서 원없이 싸우고도 사기당한 스토리를 재구성할 수 있었다.
경험이 없는 노조원들과 큰 그림이 없는 집행부, 그들을 돕고자 했던 연맹, 제대로 연대하지 못한 울산, 연맹중집의 비관주의, 그리고 총연맹의 사기극 이 모든 것이 영웅적인 투쟁을 패배로 끝나게 한 것이었다.
그들은 일용직노동자이고 이미 3달 가까이 파업을 해서 더 이상 끌고 나가기 어렵기 때문에 마지노 선으로 노조만 인정받고 교섭은 내년으로 미루자’는 결론을 내렸다는 연맹 중집.’
‘대회가 끝나면 플랜트 노조만 따로 빠져서 도로를 점거하고 쇠파이프로 제대로 싸워보기로 했다’는 울산본부.
이미 전전날 협의에서 퇴장하면서 태도변화가 있을 때 연락하라고 했는데, 어떻게든 이 싸움을 적당히 정리하려는 총연맹은 쪽팔리게 대화를 먼저 요청하였고, 이 요청 자체가 양보하지 않는 자본가들에게 포장의 협조를 요청한 것과 똑같은 것이었다.
그러면서 평화기조를 강요했던 총연맹과 강승규는 울산본부의 텍을 알자 부랴부랴 협의장에 쫒아가서 노동자들에게 사기치는데 협조해 달라고 사정해서 알맹이 하나없는 공허한 합의문을 승리적으로 발표했던 것이다.
니들이 아무리 사기치고 투쟁을 팔아 먹어도 그리고 오늘 당장 힘을 모으지는 못하더라도 싸여진 분노는 또다시 투쟁으로 일어설 것이다.
엊그제 6.10. 보건대학원에서 열렸던 비정규투쟁 토론.
이영섭 민노총 충북본부장의 얘기가 가슴에 와 닫는다.
사실 요즘 투쟁을 제대로 하고 투쟁이 살아 있는 곳은 충남북밖에 없다. 최근 수년간 충북대 병원, 정식품, 네슬레, 우진교통 투쟁 등 강고한 연대와 끈질긴 투쟁으로 지역연대투쟁의 모범을 만든 곳이다.
플랜트노조가 민주노조운동의 성지인 울산에서 변변한 연대없이 외롭게 싸웠다면, 하이닉스 매그나칩스 노조 투쟁은 지역연대투쟁의 모범을 보여왔다.
지난 메이데이 날에도 수천명의 전경과 맞붙어서 광장을 점거하고 주유소를 점거하고 싸웠다. 그날 민노총은 광화문 집회에서 청주에서 노동자들이 피터지게 싸우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대중들에게 한마디도 발표하지 않았다. 개새끼들!!!! 행여 투쟁이 알려질세라 행여 투쟁이 발전할까봐, 행여 지들보고 싸우라고 할까봐 총연맹의 집행부라는 놈들이 온갖 지랄을 하는 것을 보면 참으로 기가 막힌다. 주둥아리로만 투쟁과 연대를 외치는 이 잡놈들을 그냥 개새끼들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여하간 이영섭 본부장의 말, ‘우리가 어떻게 해서 이렇게 투쟁을 발전시켜 올 수 있었는지 아십니까?’ 수년간의 연대투쟁의 경험과 현장과 투쟁 속에서의 꾸준한 맞춤교육, 거기에서 성장한 계급의식으로 무장한 두터운 활동가층, 이것이 답입니다. 그런데 이달 22일과 29일 전국대회가 잡혀 있는데 지역연대만으로 해결하기가 너무도 벅찬 이 싸움을 전국적으로 발전시켜 전선을 만들어 내야 되는데 총연맹이 나서서 플랜트 노조처럼 꼬추가루 뿌리고 팔아먹지 않을까 그것이 제일 걱정됩니다.
이제 기회주의자들이 판을 치는 총연맹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공조직을 넘나드는 투쟁하는 활동가조직을 건설해야 됩니다.’
그래! 더 이상 그들을 국민파니 연합파니 하면서 씹지말자. 더 이상 그들을 기회주의니 타협주의니 출세주의자니 하면서 욕하지 말자. 선거에 연연하지도 말고 우리끼리 배짱맞는 놈들끼리 속편하게 싸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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